〈 16화 〉 chapter 4. G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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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키퍼들의 등급은 그들의 강함, 혹은 작전 수행 능력 같은 것들로 정해진다.
S급 키퍼는 S급 몬스터를 힘 대 힘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S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한국에 S급 키퍼는 10명 남짓이다.
그들은 그 강함을 바탕으로 키퍼 사회와 한국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친다.
일종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이다.
바로 S급 몬스터가 출몰하는 게이트를 가지고 있는 키퍼들.
바로 희귀 금속을 채굴할 수 있는 게이트의 주인들.
바로 희귀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자들.
이런 이들이야말로 진짜 권력자였다.
이들에 비하면 단순한 S급 키퍼는 그냥 말에 불과했다.
이들이 부리는 장기말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힘이 있으면 뭐하는가? 쓸 데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원시 사회도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현금화 할 수 있는 게이트가 최고였다.
그런 게이트를 가진 이들은 혼자서도 기업이 부럽지 않았다.
아니, 나라가 부럽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게이트를 가진 키퍼가 그랬다.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딴딴이’을 채굴하는 게이트를 열 수 있었다.
딴딴이는 지구 어느 금속보다 단단하며, 또 가벼웠다.
그는 그걸 가지고 단숨에 세계 최고급의 부자로 우뚝 섰다.
그뿐 아니라, 말 한 마디로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을 오라가라할 수 있는 권력도 얻었다.
그가 딴딴이를 공급함으로써 한국의 무기 기술이 2배나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가 국방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나.
대통령이나 국방부에서 쩔쩔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를 찾는 나라는 많고, 그는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으니까.
그는 극단적인 경우 중 하나지만, 좋은 게이트를 가지고 있는 키퍼들은 하나같이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대기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런 대기업에는 전속 키퍼들, 일명 크루가 존재했다.
크루는 대기업 키퍼의 게이트에 상시 드나들며 게이트의 채집이나 채굴, 사냥을 도와주는 키퍼들을 말한다.
실상 크루가 아니면 대기업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다고 봐야했다.
대기업 키퍼들은 게이트에 들어갈 사람을 ‘더 게이트’같은 곳에서 공개모집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크루 면접을 통해 사람들을 선별하고, 게이트에 들어갈 사람을 정했다.
키퍼들의 꿈은 대부분 대기업의 크루가 되는 거였다.
크루가 되면 최고의 게이트에 자주 들어갈 수 있고, 그건 돈이나 힘이 되니까.
게다가 크루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도 있었고, 좋은 인맥이 따라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B급 키퍼이자, 고블린 부락 게이트의 주인 가람도 크루에 속해 있었다.
그가 속한 크루는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생 크루였다.
크루 수장의 게이트에서는 뇌세포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식물이 자랐다.
연구 결과가 더 나와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지금까지는 치매를 완벽히 치료할 수 있는 식물이 될 거라고 기대 받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근시일 내에 대기업으로 불릴 가능성이 농후한 곳이었다.
‘어디 보자...’
가람은 그가 없는 일주일 사이에 크루에 무슨 일이 있는지 살폈다.
크루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비공개 커뮤니티에 공지글이 써져 있었다.
[수장의 게이트에 2차 진입합니다. ...이번 원정 중에 ‘독 두더지(임시)’를 못 잡을 껄 대비해 크루원들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탐색 능력자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탐색 능력자?’
가람은 최근 공지만 보고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전 공지들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김나연 크루원의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재진입하기로 결정 되었습니다. 탐색 능력자를 찾습니다.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연락 부탁합니다.]
[수장의 게이트에서 김나연 크루원이 중독되었습니다. 독관련 전문가를 찾습니다. 급합니다.]
김나연이라면, 수장의 동생이었다.
그녀가 중독됐다는데 일이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흐음...”
탐색 능력자라고 하니까, 가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정민씨에게 연락을 한 번 해볼까.”
나쁘지 않은 제안은 아닐 것이다.
떠오르는 신생 크루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크루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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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라와 격렬한 섹스와 첫키스를 한 다음날 아침.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눈뜨자마자, 그녀가 온 이후로 늘 하던 일을 했을 뿐이다.
섹...스가 아니라, 룬어 공부.
오랜만에 스킬의 도움 없이 룬어를 쓰려니,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모으기’ 룬어를 써냈다.
이어서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다섯 번째로 써내려갈 때쯤엔 어색함도 사라졌다.
이제 눈감고도 쓸 수 있는 경지였다.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수 있다.
그래야 마나의 ‘ㅁ’이라도 볼 수 있으니까.
본다고 해도 룬어를 완성시킬 수 있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 해볼까.’
평소라면 케이라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고 ‘흑마법’을 빌려왔겠지만, 이번엔 그러기 싫었다.
케이라가 지금 침대 위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어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간 지켜본 바, 그녀는 저 시간을 소중히 하는 것 같았거든.
아무튼, 이번엔 혼자해도 어쩐지 성공할 수 있을 듯했다.
마력 스탯도 생겼고.
나는 흑마법을 쓸 때처럼 마력을 움직이려고 해봤다.
‘음...’
어림도 없었다.
흑마법을 쓸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날뿐더러, 마력은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안 갔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마력은 머리에서 출발한 것 같아서 머리를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두통만 찾아 왔다.
‘좋아, 그러면...’
일단 심장에 ‘모으기’룬어를 써 보기로 했다.
마력은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지만, 마력을 넣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획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그었다.
스윽, 스윽.
머릿속에 떠올린 가상의 심장에 룬어가 차츰차츰 완성되어 갔다.
이마에서 땀이 주륵하고 흘러 내렸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온 몸이 땀범벅임을 깨달았다.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왜 이렇게 힘들어?’
집중이 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단호한 목소리와 따뜻한 손이 나를 붙잡았다.
“집중, 무조건 집중. 룬어만 완성해 봐.”
케이라는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내 이마와 눈가의 땀을 닦아 주었다.
눈꺼풀에 맺힌 땀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집중은 훨씬 편해졌다.
나는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 계속 룬어를 그려 나갔다.
스윽, 스윽.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으로는 1시간 정도 만에, 나는 룬어를 완성했다.
우웅.
심장이 두근 두근과는 다른 느낌으로 진동했다.
그 진동에 맞춰서 무언가가 심장 가까이로 왔다.
살랑살랑 심장 주변을 도는 그것은 서서히 심장 한 곳에 머물렀다.
간질간질 거리는 느낌이었다.
“...된 거야?”
“됐어.”
케이라의 선언과 함께 메시지가 눈앞을 가렸다.
[마나를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탯 ‘마나’를 개방합니다.]
[마나 스탯이 1 상승합니다.]
[마나가 당신에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스탯 ‘친화’를 개방합니다.]
[친화 스탯이 1 상승합니다.]
와, 두 개가 한 번에!
대박이다!
“...생각보다는 늦었네.”
나는 기쁨이 마구 올라오는데, 그녀는 늘 그렇듯 담담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조금 서운하다.
“뭐야, 이럴 때는 칭찬이라도 해줘야지. 드디어 룬어를 완성했다고!”
“잘 했어. 축하해. 이젠 나랑 안 해도 되겠네.”
말은 축하인데, 어조는 어째 더 가라앉은 것 같다.
그런데 뭘 안 해?
아... 이게 또 그렇게 되나?
에이, 그게 그렇게 침울할 일이야?
장난이나 한 번 쳐볼까?
“그렇지. 앞으로는?”
“...”
케이라의 얼굴이 굳었다.
평소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분위기다.
장난이라고 하며 넘어가면 몇 대 맞을 것 같은 그런... 일단 넘겨야겠다.
“그럼 이번엔 마나를 직접 넘겨 보자, 어때?”
“...알겠어.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그거...”
모른다고 하려고 했는데, 바로 떠올랐다. 역시 각성 능력.
“손 줘 봐.”
케이라가 날개 문양이 그려진 왼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늘 하듯이 거기에 입을 맞췄다.
쪽.
그리고 그 상태로 심장의 간질간질한 느낌에 집중했다.
마나가 입술을 통해 케이라에게 넘어가도록.
“...더 기다려야 해?”
“잠깐만, 집중하고 있잖아.”
느릿느릿.
마나는 더럽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
“...됐다!”
마침내 마나가 케이라 쪽으로 넘어갔다.
신기하게도 마나는 계속 느껴졌다.
그녀의 손등에서 움찔움찔하고 있었다.
“...된 거야?”
“아니, 심장까지 옮겨야 하는데... 어떻게 옮기지? 내 마나 친화력으로는 힘들 거 같은데...”
“손을 대고 움직이면 좀 수월할 거야. 그리고 내가 도와줄게.”
“어떻게?”
“이렇게.”
케이라가 내 손을 자기 손 위에 포갰다.
다음엔 내 손을 손등에서 어깨까지 올렸다.
“오케이. 해볼게.”
나는 다시 손등에서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하니까 조금 더 마나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도와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손등, 손목, 팔꿈치, 어깨, 그리고 가슴.
마나와 함께 내 손도 가슴에 도착했다.
말랑말랑.
늘 느끼지만, 가슴을 만지는 건 너무 기분이 좋다.
그녀의 가슴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이라서 꾹꾹 누르는 게 진짜로 재밌다.
“...이제 됐어.”
내 마나가 케이라의 심장에 도착했다.
마나와의 링크는 도착하자마자 끊겼다.
“읏...”
그녀가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약간 숙였다.
“어때?”
“...부족해.”
“어?”
“너무 부족하다고. 이걸로는 아무것도 못해. 1시간에 한 번씩 마나를 충전해도 모자라.”
“그, 그 정도야?”
솔직히 그럴 거 같긴 했다.
심장에 있는 마나라고는 쥐꼬리만 했으니까.
“응. 그러니까 하자.”
“어? 읍.”
케이라가 고개를 들어 내 입술을 덮었다.
조금 놀랐지만, 나도 금방 호응했다.
그녀의 허리를 당기고 입술을 강하게 흡입했다.
“츄릅, 츄웁.”
혀가 달다.
매일 아침마다 이래도 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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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거사를 치른 뒤, 나는 다시 케이라와 마주앉았다.
“마력과 마나로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거지?”
“응. 너의 마력으로는 아직 부족해.”
“마력으로 넣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또 마력을 주입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고.”
결국 일주일 이상 다른 게이트에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게이트 원정은 길어야 3일이긴 한데, 저번처럼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면 또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한 번 인식한 이상, 이제 그런 위험을 또 감수하고 싶진 않다.
케이라는 내게 소중한 존재다.
“대책이 생길 때까지는 게이트에 들어가면 안 되겠다.”
“왜?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그럼 언제까지 이러려고?”
케이라의 질문이 맞다.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결국은 게이트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게이트에 같이 들어가자.”
“어?”
“같이 들어가면 괜찮잖아?”
“난 키퍼가 아닌데?”
키퍼가 아니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다.
그건 이세계인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법칙.
하지만 어쩐지 될 것 같은 느낌이라서 말이지.
“해보자. 왠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누구의 게이트에?”
사실 그게 더 문제긴 하다.
협회가 주관하는 게이트에 들어갈 순 없고.
나는 게이트를 못 여니까.
“그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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