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chapter 3. 고블린과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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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종 키퍼, 박재혁의 수색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생존 신호는 살아 있었고, 가장 큰 걸림돌인 고블린 부락은 이미 정리했다.
부락을 한 번 정리하면, 리젠 되는 데는 최소 열흘이 걸린다.
그 사이에는 강한 몬스터, 그러니까 샤먼 급의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는다.
자잘한 고블린들이야, 키퍼 몇 명만 있어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고.
수색 팀은 생존 신호를 따라갔다.
신호는 고블린 부락을 벗어날수록 강해졌다.
“공간이동 마법인 것 같네요.”
가람이 그렇게 추측했다.
“그렇다면 살아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신호는 서쪽으로 이어졌다.
베이스 캠프도 넘어서, 게이트의 끝까지.
게이트는 무한하지 않다.
어느 지점에서는 투명한 벽을 만나게 된다.
그 벽 너머로 갈 수는 없다.
그 벽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없고.
크기는 게이트마다 다양하다.
작게는 마을 하나 정도의 크기도 있고, 크게는 한국 정도의 크기를 가진 게이트도 있다.
들리는 소문에는 게이트의 끝을 만나지 못한 게이트도 있다고.
그 게이트의 크기는 지구만 한 걸까.
가람의 게이트는 도시 하나 정도의 크기로, 동서 20km, 남북 10km 정도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수색 팀은 하루를 써서 서쪽 끝까지 왔다.
신호는 여기서 더 강해지지 않았고, 벽은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주변에 재혁씨가 있을 겁니다. 다 같이 찾아보죠.”
팀은 하루를 더 써서 주변을 수색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 아래도, 산기슭의 동굴 속에도, 흐르는 강물 아래에서도.
수색 시작 후 이틀, 수색은 암초를 맞아 좌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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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뭐하세요?”
소연이 텐트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이 텐트는 고한결과 내가 둘이서 쓰는 텐트다.
남자 둘이 쓰는 텐트에 무작정 들어오다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나 혼자 밖에 없지만.
“명상.”
“또요?”
“마법사는 매일 아침 명상을 꼭 해야 해.”
그럴 필요는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명상이 아니라, 룬어의 복습이다.
키퍼로 각성 후, 매일 아침에 하고 있던 룬어 공부를 지금도 하는 것이다.
다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룬어를 공부할 땐, 케이라에게서 빌려 온 능력을 다시 돌려주고 한다.
그래야 백지에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흑마법을 빌려 온 상태로 하고 있다.
마법을 빌려 오면, 룬어는 이미 마스터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룬어’에 집중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빌려온 능력과 내 능력의 숙련도가 따로 싸인다면 이렇게 해도 되겠지만, 이미 마스터한 상태라서 변화가 없다면?
그래도 지금은 할 수밖에 없다.
일단 마력을 깨우치는 게 제일 급선무니까.
왜냐고?
마력을 깨우쳐야 흑마법의 위력이 강해진다.
위력이 강해지면 흑마법으로 할 수 있는 탐지의 위력도 강해진다.
탐지가 잘 되면 박재혁 키퍼를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박재혁을 찾으면 게이트 밖으로 일찍 나갈 수 있다.
일찍 나가면, 케이라가 죽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
모든 건 케이라의 생명을 위해서다.
“치잇... 심심한데...”
소연이가 약간 툴툴댄다.
이해는 한다.
박재혁이 실종된 지 벌써 5일.
사람들은 거의 다 포기 상태다.
가람도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쪽이라고 봐야 했다.
수색이 한 번 막히고 나서는 다 그랬다.
사람들을 야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키퍼가 세상에 등장한지 27년.
많이 안전해졌지만, 여전히 키퍼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이다.
잘 모르는 키퍼 한 명의 삶과 죽음에 전력을 다 할 정도로 키퍼들은 감상적이지 않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거지만.
방법만 있다면야, 사람들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심심하면 선미씨랑 놀아.”
“언니는 지금 자요. 이따가 또 수색이라.”
그래도 수색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의욕은 떨어졌지만.
“너는 언젠데? 너도 같이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난다.
나는 지금 집중해야 하는데, 그래야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데.
하지만 소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쉬려고 여기 온 건데... 선배는 안 쉬어요? 제가 볼 땐 선배가 꼭 쉬어야 하거든요.”
소연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은 걱정과 진심.
그리고 초췌한 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그런가...’
케이라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급해졌다.
수색이 난항을 겪은 3일 전부터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룬어에 몰두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확실히 쉬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걱정하는 동생에게 짜증이나 낼 정도라면.
상황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고 말이다.
소연이 입장에서야 내가 박재혁 키퍼를 위해 목숨이라도 거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런 건 아니지만, 케이라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소연이는 비슷하게 반응할 지도 모르겠다.
박재혁이나 케이라나 그녀에게 남인 건 마찬가지니까.
소연이는 아마 내 삶이 더 중요하겠지.
“...알겠어. 일단 좀 잘게. 그러면 되지?”
“네. 조금이라도 자요. 선배도 같이 수색이잖아요.”
“그래, 알겠으니까. 자는 거 방해하면 안 된다?”
“물론이죠. 자는 걸 왜 방해해요. 저도 같이 잘 건데.”
“어?”
“아, 실언이에요. 실수, 실수. 저는 그만 나가 볼게요.”
“그래, 그러면...”
자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쓰러지듯 뒤로 누웠다.
그리고 정신이 끊겼다.
“어, 선배...”
소연이가 뭐라고 하는 것 같지만 잘 안 들린다.
진짜 피곤하긴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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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면서 고집 부리기는...”
소연은 기절한 듯 잠에 빠진 정민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베개도 베지 않고 누워 있었다.
“불편하겠다...”
소연은 주변을 살폈다.
2인용 텐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한결은 잘해보라면서 자리를 비켜 주었기에 소연이 나가기 전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잠깐만...”
소연이 정민의 머리맡으로 가서 무릎 꿇고 앉았다.
그녀는 정민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이거... 솔직히 더 불편할 거 같아.’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무릎베개하면 낭만이 넘치는 느낌이지만, 실제는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그나마 옷이 타이즈 느낌의 슈츠라서 걸리는 게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정민의 뒤통수는 소연의 매끈한 허벅지에 착하고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도 얼굴을 잘 보인다. 속눈썹이 길어.’
소연이 고개를 숙이니 얼굴이 바로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생각보다 긴 속눈썹과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약간 푸석하지만 그래서 더 모성애를 자극하는 입술.
‘입술?’
소연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영화에서 나온 것만 같은 장면을 재현하려는 의지인가?
하지만 성사되기 직전에, 그녀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입술보다 가슴이 머리에 먼저 닿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다시 허리를 폈다.
“흠, 흠흠.”
그녀가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텐트 안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아니야, 지금은 아니니까.’
소연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빨개지는 얼굴을 식히려 노력했다.
아무튼 그렇게 1시간, 수색 시간이 될 때까지 그녀는 정민에게 허벅지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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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까 정신이 맑다.
굉장히 폭신하고 부드럽고 향긋한 기분이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지만, 컨디션은 좋다.
무언가 손해 본 느낌이 있지만.
"자자, 이제 수색 가죠?"
소연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귀가 빨개진 것처럼 보이는데, 왜?
그리고 왜 아직 여기에 있지?
의문이 들었지만 바로 수색에 나가야만 했다.
수색은 저번처럼 4인 1조였다.
수색 방법은 따로 없었다.
이곳저곳을 뒤지는 것 말고는.
솔직히 의미 없는 일이었다.
저 나무 밑도, 저 산기슭의 동굴도, 저쪽 웅덩이도 이미 다 수색한 곳이니까.
다른 팀이 수색한 곳도 있고, 우리 팀이 수색한 곳도 있다.
그럼에도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었다.
‘서치.’
나는 매번 하듯이 주변을 수색하는 척하면서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걸리는 건 없었다.
서치에 걸리는 건 이미 눈에 보이는 것뿐이었다.
나무, 돌, 땅.
대신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 있었다.
[마력이 필요한 기술의 반복 사용으로 스탯 ‘마력’을 개방합니다.]
[마력 스탯이 1 상승합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었다.
스킬을 쓰다보면 마력이 개방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빠르면 6개월, 보통은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고작해야 한 달 만에 마력 스탯을 얻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마법을 썼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속도였다.
이건 분명히 마법 훈련이 도움이 된 거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선배? 무슨 일이에요? 찾은 거예요?”
근처에서 수색 중이던 소연이 다가왔다.
“찾은 지도 몰라. 잠깐만.”
나는 다시 마법 ‘서치’를 사용했다.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알려줬다.
확실히 범위가 넓어졌다.
그뿐 아니라 정확해졌다.
땅 속에는 흙과 돌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공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동굴?’
마력이 생기자, 마법의 운용도 더 자유로워졌다.
원래 서치는 나를 중심으로 5~10m를 탐지하는 마법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좀 더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나는 땅 속으로 범위를 넓혔다. 약 15m 정도.
그러자 땅 속의 풍경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땅 속에 통로가 있었다.
서치를 유지한 채,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선배?”
소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홀린 듯 20m를 걸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발견했다.
“...찾았어!”
“네?”
“찾았다고!”
통로 중간에 살아 있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기다리세요, 재혁씨. 제가 곧 구하러 갑니다.
그리고 케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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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깁니다.”
“여기 말입니까? 대체 어디서 소리가 났다는...”
가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땅 밑에서 사람의 신음소리를 들었다면서 가람을 이리로 데리고 왔다.
가람은 긴가민가했지만, 내가 강하게 주장하자 이곳까지는 왔다.
“여긴데요...”
나는 서치를 통해 발견한 위치에 귀를 댔다.
무슨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
가람의 표정이 더 이상해졌다.
고한결도, 이선미도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마법사인 걸 아는 소연만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볼 뿐이다.
“저는 들리는데... 일단 이 위치에서 신호가 더 세게 잡히는 지 보면 안 될까요?”
“...그러죠.”
가람이 수신기를 꺼냈다.
그는 내가 귀를 대었던 위치에서 한 번,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신호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거 수신기 성능 진짜 썩었네.
“진짜 들은 거 맞습니까?”
“진짜 들었는데요...”
가람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쩌지.
여기까지는 억지가 통해도, 지금부터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실제적인 증거를.
아마도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마법사인 걸 밝히면 모든 게 해결 될 것이다.
아니면 두 가지 능력을 각성했다고 더 큰 떡밥을 던지거나.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케이라가 죽는다.
진퇴양난.
가불기에 걸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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