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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2화 (12/137)

〈 12화 〉 chapter 3. 고블린과 춤을

* * *

12.

고블린 12마리, F급 마정석 1개.

우리팀 이 한 시간 동안 수색해서 얻은 결과다.

조금 아쉬웠지만, 고한결의 말로는 고블린 잡고 마정석 한 개도 잘 나온 거라고 한다.

F급 마정석은 대략 천만 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넷으로 나눠서 팀원이 나눠가지면 250만 원.

하지만 이걸 다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게이트 내에서 발견되는 물품을 발견자가 가지려면, 게이트 주인에게 세금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세금의 비율은 사전에 조율되는데, 이번 게이트 같은 경우는 30%다.

30%는 낮은 편이다.

보통은 50% 이상이니까.

대신 그럴 때는 시급이나 일급이 붙고.

30%인 지금 일정에는 시급이나 일급이 없다.

결국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175만 원 정도.

이래도 시급으로 치면 굉장한 돈이다.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시급.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더 높은 사람을 보기 마련이다.

내가 175만원을 벌 때, 이 게이트의 주인 가람은 얼마를 벌었을까?

5개의 팀이 주변을 돌며 찾은 마정석은 총 3개.

그것만으로도 그는 9백만 원을 벌었다.

다섯 배가 넘는 시급이다.

이래서 어떤 게이트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고블린 부락 게이트만 해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S급 마정석이 나오는 게이트를 가지고 있다면...

좋은 게이트를 가진 키퍼들의 발언권이, 강한 키퍼보다 높은 이유가 다 이런 데서 나온다.

힘이 있어봐야, 사용할 데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이게 마정석...”

소연이 마정석을 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팀은 수색을 마치고 베이스캠프에 돌아와 다음 작전을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신기해?”

“네, 봐도 봐도 또 보고 싶네요.”

소연은 벌써 10분 넘게 마정석만 보고 있었다.

마정석의 푸른 빛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저 정도까지는 좀.

하지만 옆에 앉아 있는 이선미의 눈도 마정석을 향해 있는 걸 보니, 마정석이 매력적이긴 한 모양이다.

보석 같은 느낌인 걸까?

“높은 등급의 마정석은 더 크고, 더 영롱합니다. 그걸 보면 놀라시겠어요.”

고한결이었다.

그는 작전 회의를 하러 가람의 텐트에 갔다가 오는 길이다.

그의 말에 소연이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진짜요?”

“네, 사진으로 보는 거랑은 또 달라요. 이름처럼 마력이 있죠.”

“어느 등급까지 보신 거예요?”

“B등급까지 봤습니다. B등급만 되도 F급 마정석이랑은 차원이 달라요. S급은 과연 어떨지. 여러분은 꼭 S급 마정석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게요.”

고한결은 5년차 키퍼로, 이제 거의 성장한계에 도달했다고 봐야 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 스스로도 포기하고 있는 듯했다.

“한결씨도 꼭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저희도 이렇게 키퍼가 됐는데.”

물론 기연을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막말로 나나 소연이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키퍼는 꿈도 못 꿀 사람이었다.

“하하,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소설의 주인공인 되는 건가요?”

보통 키퍼 소설의 플랜이 그런 거였다.

만년 D급 키퍼가 기연을 만나 S급 키퍼가 되는 것.

그만큼 기적이라는 이야기다.

키퍼가 되는 기적과 S급 키퍼가 되는 기적이 겹칠 확률은.

“가능하죠. 그 소설, 제가 꼭 10부씩 살게요.”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슬슬 작전 계획을 알려드릴게요.”

“네!”

소연의 밝고 희망찬 목소리에 맞춰 한결이 고블린 부락 소탕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

“더 이상 접근하면 다른 고블린들에게 들킬 겁니다.”

우리팀을 포함한 10명의 키퍼들은 약간의 고지에 서 있었다.

우리 앞쪽에는 분지 지형이 있었고, 그 안에 나무로 만들어진 고블린 부락이 있었다.

고지를 경계하던 고블린들은 방금 전 B급 키퍼들이 암살했다.

이제 새로운 고블린들이 올라오기 전에 공격에 들어가야 했다.

“알겠습니다. 신호가 오면 들어가도록 하죠.”

10명의 대장격인 가람이 말했다.

나머지 13명의 키퍼들은 반대쪽 고지로 가고 있다.

그들에게 신호가 오면 같이 공격하는 게 이번 작전이다.

신호는 전자기기로 주고받는다.

게이트 안에서도 전자기기는 잘 작동한다.

밖의 세계와 똑같은 물리법칙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다만 게이트 외부와 소통이 되진 않는다.

인터넷은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저쪽 팀도 도착한 모양입니다.”

“그럼 시작하죠. 이정민씨?”

“네.”

내가 앞으로 나섰다.

오늘의 선봉은 나였다.

화구라는 건, 이럴 때 쓰기 좋으니까.

반대편 팀에는 좁은 지역에 번개를 부를 수 있는 능력자가 가 있다.

나와 그가 동시에 공격한 뒤에 나머지 사람들이 진입하기로 돼 있었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작전이다.

나는 룬을 떠올리며 마나를 밀어내고, 뭉친 마나를 마력으로 붙잡았다.

이번에는 저번에 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마나를 모았다.

좀 더 멀리, 한 번에 강한 타격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내 마력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까지 마나를 모은 다음, ‘타오르다’ 룬으로 마나를 불태웠다.

화르르륵!

내 앞에 불꽃의 구가 생겨났다.

최대 출력의 ‘미니 파이어볼.’

크기가 내 생각보다 컸다.

거의 사람의 상체만한 크기였다.

그리고 그만큼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온 몸에서 땀이 주르륵 나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던지세요!”

가람의 말에 나는 미니 파이어 볼을 쏘아냈다.

파이어 볼의 크기 덕에 이미 눈치 챈 고블린들이 놀라 도망치려 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파이어 볼은 그들보다 빠르게 부락의 왼쪽 면에 도착했다.

콰가강!

큰 폭발이 일어났다.

고블린 막사 2개가 부서졌고, 고블린 십수 마리가 불에 타올랐다.

불붙은 고블린들은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이리 저리 돌아다녔는데, 그 덕에 부락 사방으로 불이 번졌다.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

이 정도면 고블린 부락의 1/3은 내가 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른쪽 면에 떨어진 번개가 준 피해는 고작해야 고블린 몇 마리 정도라 내가 준 피해가 더 부각되는 점도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당연했다.

나조차도 놀랄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면 좀 부끄럽다.

“하악, 하악...”

숨쉬기가 힘들다. 머리가 아프다.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무릎이 후들거린다.

눈만 감으면 잠에 들 것만 같다. 영원히 깨지 않는 잠에.

무리했다.

과장이 아니고 죽을 것만 같다.

강력한 공격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힘을 남긴다는 생각은 못했다.

“저런... 소연씨가 같은 팀이었죠? 정민씨 옆에서 좀 지켜주세요.”

“...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진입합니다. 정민씨가 힘내 주셨으니까, 정리만 하면 될 것 같네요. 자, 갑시다!”

가람의 말에 소연만 남고 나머지가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이젠 더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주저앉으려고 하는 나를 소연이 부축해서 조심히 자리에 앉혔다.

“괜찮아요? 선배?”

“하악, 하악...”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일단 쉬어요.”

소연이 소매로 내 얼굴의 땀을 닦아줬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미안했지만, 조금 기쁘기도 했다.

날 걱정하는 사람의 간호를 받는 건 드문 일이니까.

특히 자취하고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누우면 좋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요.”

나도 안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과 여긴 멀지 않다.

누워 있다가 낙오된 고블린에 당하면 그것만큼 초라한 건 없다.

“조금만 참아요. 선배가 한 방 먹여준 덕분에 금방 정리될 것 같으니까요.”

전투는 잘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키퍼들은 21명, 고블린은 100 마리 정도였지만 키퍼들이 전혀 밀리지 않았다.

개개인의 실력차도 있고, 번개와 불이 먼저 고블린들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든 게 컸다.

고블린 부락이 정리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화려하진 않네요.”

소연의 감상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당연한 거다.

아래 등급의 키퍼들은 주로 육체 강화 능력을 각성한다.

근접 격투에 화려함은 멀리서는 알 수 없었다.

가까이서 본다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무튼, 처음 불과 번개 이후로는 다 개싸움이었다.

그리고 개싸움이 유리한 건 우리 쪽이었고.

“어, 저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던 전장에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안쪽의 고블린 막사에서 커다란 고블린이 나타난 것이다.

커다란 지팡이와 온갖 장식이 붙어 있는 모자가 인상적인 고블린이다.

사진으로 많이 봤던 모습이라 뭔지 바로 알았다.

소연이도 나와 같은 답에 도달했다.

“샤먼이에요!”

고블린 샤먼.

강력한 주술과 마법을 쓰는 몬스터다.

샤먼 마다 쓰는 주술이나 마법의 종류가 달라서 상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는 몇 번이고 소탕과 리젠을 반복한 게이트다.

저 샤먼은 우리가 처음일지 몰라도, 우리는 저 샤먼을 몇 번이나 봤다.

매뉴얼에는 화염구나 쇠약 주술을 쓰는 샤먼이 나온다고 했다.

둘 다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정석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키퍼들 중에 두 사람이 튀어나갔다.

가람과 B급 키퍼 중에 한 사람이었다.

듣기로는 둘 다 속도에 일가견이 있어서, 샤먼이 주술이나 마법을 완성하기 전에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샤먼에 먼저 도착한 건 B급 키퍼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전에 검은 것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와 그를 삼켰다.

“어? 어? 저거, 저게 무슨 일이죠?”

“후우... 나도, 잘... 후우.”

잘은 모르겠지만, 예상 외의 일이 벌어진 건 확실했다.

사전 정보대로라면 샤먼은 저런 류의 마법을 쓰지 않아야 했으니까.

뒤늦게 가람이 도착해 샤먼을 공격했다.

가람의 검이 샤먼의 목을 허무하리만치 가볍게 잘라냈다.

그러나 검은 것과 함께 B급 키퍼도 사라졌다.

“어, 선배, 봤어요? 없어진 거 맞죠?”

“어, 그런 거 같아. 없어졌네...”

가람이 주변을 수색하는 듯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다시 고블린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잠시 후, 소탕 작전은 끝이 났다.

모든 고블린은 죽었고, 키퍼 중에 사상자는 없었다.

딱 하나, 검은 것에 먹힌 한 키퍼를 제외하고는.

+++

고블린이 사라진 고블린 부락에 모인 키퍼들에게 가람이 말했다.

“신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신호라는 건 키퍼들의 몸에 붙어 있는 기기에서 나오는 거다.

살아 있으면 신호를 내게 되어 있는 제품이다.

“그렇다는 건 아직 이 게이트 내에 재혁씨가 살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박재혁.

검은 것에 삼켜진 B급 키퍼의 이름이다.

“협회의 원칙에 따라 수색에 들어갑니다.”

게이트 내에 사람을 버리고 오는 건 금지 되어 있다.

사람이 게이트 내에 두고 오는 다른 물건들처럼 사라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들 그럴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게이트 안에서 시체가 사라지는 사례는 종종 보고 되고 있으니까.

그러니 게이트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오는 건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수색은 신호가 끊어질 때까지 할 겁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다들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어떤 반대 의견도 받지 않겠다는 듯, 가람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대부분 키퍼들은 원리원칙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원리원칙이란, 모두가 동의해야 만들어 지는 거니까.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나는 반대 의견을 내고 싶었다.

신호가 끊어지는 경우는 보통 세 가지다.

기기가 파손됐을 때.

키퍼가 죽었을 때.

마지막으로 기기의 배터리가 다 떨어졌을 때.

그리고 기기의 배터리 수명은 보통 일주일이다.

즉, 일주일이나 이 게이트에 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케이라에게 마력을 주입한 뒤로 일주일이 지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케이라도 죽는다.

젠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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