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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1화 (11/137)

〈 11화 〉 chapter 3. 고블린과 춤을

* * *

11.

키퍼 협회의 강당에 사람들이 서 있다.

몇 번 와서 익숙해진 소강당이 아니라, 조금 더 큰 강당, 이른바 중강당이다.

사람들이 더 큰 곳에 모여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고블린 원정은 꽤나 큰 규모이기 때문이다.

나와 소연을 포함해, 23명의 키퍼들이 게이트를 넘어 다른 차원으로 가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다들 사전에 매뉴얼을 잘 읽고 오셨겠죠? 매뉴얼대로만 하신다면, 별다른 일 없이 원정을 마칠 수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

매뉴얼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게이트 내 지형, 날씨, 부락의 리젠 위치부터, 고블린 상대법, 고블린 부대를 상대로 한 압박방법, 고블린 발자국 구별법까지.

실전에서 도움이 될 실용적인 내용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너무 실용적이라 읽는 것만으로는 와 닿지 않았다.

여러 번 읽고, 외우기까지 했지만, 잘 쓸 수 있을까?

진짜로 들어가서 고블린과 조우해야 매뉴얼의 내용이 몸으로 체득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진짜 믿어야 할 건, 매뉴얼이 아니라 4인 1조의 팀의 조장을 맡을 베테랑 키퍼다.

그리고,

“개인 화기는 위급할 때만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원정은 총기 미사용을 원칙으로 합니다.”

위급할 때는 권총으로 냅다 갈겨 버리면 된다.

권총은 협회에서 대여해줬다.

어제 오늘 사격 연습도 했는데, 오랜만에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에 총알이 죄다 빗나갔다.

사실 권총은 처음이라 잘 쏠 자신이 없다.

근거리에서야 대충 쏴도 다 맞겠지만.

권총은 의외로 소연이가 잘 쐈다.

염력 때문인지 집중력이 남다른 듯했다.

아무튼 23인 전부가 권총 하나씩은 들고 들어간다.

하지만 이 총은 정말로 위급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

고블린 잡는 데 쓰라고 가지고 가는 게 아니다.

몬스터를 잡을 때 총기를 쓰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다.

개인 화기는 C급 몬스터만 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퍼들은 총기보다 각성 능력에 익숙해져야 한다.

F급 몬스터는 키퍼들이 각성 능력을 연마하기에 좋은 상대다.

이런 하급 몬스터를 총기로 쉽게 처리하면, 키퍼들의 능력이 올라갈 기회가 없다.

성장이 멈춘 키퍼들은 각성 능력에 총기를 접목시켜 새로운 길을 열기도 하지만, 이제 막 키퍼가 된 나나 소연이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이 원정에 참가한 F급 키퍼들도 마찬가지고.

“최근 게이트 내에서 이상 변화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팀장과 저에게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상 위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번 원정의 책임자이자, 이번 게이트의 주인, B급 키퍼 가람이었다.

“자, 그럼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게이트로 들어가겠습니다. 3분 드리죠.”

가람이 말을 마치자, 옆에 서 있던 소연이 입을 열었다.

“선배, 저번에 만났던 메탈릭 하운드 같은 게 또 나오는 건 아니겠죠?”

“아니겠지. 그런 일은 흔하지 않잖아?”

게이트 내에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늘어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런 게 흔했다면, 좋은 게이트를 가진 키퍼들의 입지가 지금과 같지 않았겠지.

“요새는 또 그게 아닌가 봐요. 왜 저번 주에도 게이트 내 지형이 갑자기 바뀌었다나 그랬다잖아요. 그 전 주에는 새로운 몬스터도 나왔고.”

“그래? 그래도 흔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야. 일주일에 게이트 원정을 떠나는 팀들이 천 개 정도 될 텐데, 그 중에 하나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거잖아? 그럼 뭐, 굉장히 작은 확률이지.”

“그것도 그러네요. 이번 게이트는 괜찮겠죠?”

“괜찮을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나만 믿으라구. 내가 꼭 지켜줄게.”

“...치잇, 저보다 총도 못 쏘는 사람이 무슨. 제가 오히려 선배를 지킬게요.”

“그런데 아까부터 왜 계속 선배야? ‘님’자는 어디다 빼 먹었어?”

“어제부터 없어졌어요. 저보다 총도 못 쏘면서 ‘님’은 무슨 ‘님’이에요. 선배는 선배로 충분합니다.”

상상도 못한 이유에 순간적으로 대응 논리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뭐라고 반박도 못한 채, 게이트 진입 순간이 찾아왔다.

“다들 짐을 들고 모이세요.”

개인 무기를 제외한 짐은 가람 측에서 전부다 준비했다.

짐은 대부분 식량이었다.

거의 일주일 치로, 원정 일정의 3배는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협회 규정이 그랬다.

불의의 사고가 있을 때, 제일 중요한 건 식량이니까.

가람이 중앙에 섰고, 저번처럼 손과 손으로 모든 사람이 서로 연결됐다.

“그럼, 가겠습니다.”

화아악.

푸른 장막이 강당을 뒤덮었다.

과연, 고블린은 어떤 생물일까?

+++

“이쪽입니다.”

방검복을 입은 남자가 발자국을 살피더니 나무 사이를 가리켰다.

방패와 검으로 무장한 남자는 D급 키퍼로, 고한결이었다.

그는 우리팀의 팀장으로, 우리는 지금 베이스캠프 주변을 수색 중이다.

“선미씨가 앞으로, 소연씨와 정민씨는 뒤로. 네, 좋습니다. 그거예요.”

팀은 4인 1조다.

나와 소연, 팀장이 고한결, 그리고 육체 강화계 전사인 이선미까지.

고한결 팀장 말고는 셋 다 전투 경험이 없어서, 지금 한결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고 있었다.

“선미씨는 전방, 소연씨는 좌측, 정민씨는 우측입니다. 그렇게 사방을 주시하는 거예요. 경계는 기본입니다. 고블린이라도 깜빡 긴장을 놓으면 죽을 수 있어요.”

고한결 팀장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박혔다.

사전에 들어 아는 이야기였지만, 전혀 잔소리라고 생각 되지 않았다.

첫 전투에 대한 긴장감 때문일까.

나는 초집중 상태였다.

그렇게 10분 쯤 흘렀을까.

앞장서던 고한결 팀장이 주먹을 들었다.

‘정지’라는 뜻이다.

그는 이어 손가락을 앞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의 끝에는 고블린이 있었다.

“키익.”

뾰족 튀어나온 귀와 매부리코.

눈은 픽하고 찢어져 있고, 갈색 피부는 멀리서 보기에도 퍼석퍼석했다.

거기에 비쩍 말라 수수깡 같은 팔과 다리, 작은 키까지.

거적 데기 같은 걸 두르고 있는 고블린의 첫 인상은 거지나 다름없었다.

저 몸을 해가지고 무기를 휘두를 수나 있을까?

몽둥이랑 방패를 들고 있는 고블린이 둘, 활을 들고 있는 고블린이 하나.

조잡한 무기였지만, 그조차도 사용할 힘이 없어 보이는 외모였다.

“염력으로 활을 마크하고, 두 분이 한 명씩 맡으면 될 것 같네요.”

고한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거리가 좀 있어서, 고블린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여차할 때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꿀꺽.

드디어 시작이다.

첫 전투.

고한결의 손짓에 따라 이선미가 먼저 튀어나갔고, 내가 그 다음, 마지막으로 소연이 따라왔다.

“키에엑!”

“키익!”

“키악!”

고블린들은 우리가 올 줄 알았다는 듯, 우리를 향해 몸을 돌리곤 괴성을 질러댔다.

괴성을 지르는 고블린은 조금 전과 달라 보였다.

아까는 힘없는 거지같았는데, 지금은 잘 못 건드리면 베일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는, 이유를 모르는 적의였다.

나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뜻이 그 붉은 눈에서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고블린은 굉장히 강해 보였다.

나는 약자가 된 느낌이고.

나도 모르게 잠깐 머뭇거렸다.

이선미도 마찬가지인지, 속도가 약간 늦어졌다.

그 탓에 우리 둘은 고블린에게 선공을 내줬다.

이선미는 팔로 몽둥이를 막아야만 했고, 나는 방패가 나를 치러 오는 걸 보며 어깨를 내줬다.

쾅!

어깨가 아팠지만, 아작 날 정도는 아니었다.

버틸만 했다.

한 대 맞으니까 이제야 아드레날린이 도는지, 고블린이 다시 작아 보였다.

실제로 고블린은 작았다.

키만 40cm는 차이 났으니까.

몸무게는 적어도 30kg이상 차이 나지 않을까?

“활은 막았어요!”

소연의 목소리에 뒤를 보니, 고블린이 활을 당기려는 자세로 멈춘 게 보였다.

그럼 뒤는 걱정 말고.

“키익!”

나는 고블린의 몽둥이를 피해 물러났다.

고블린의 몽둥이가 땅을 찍자, 나는 재빨리 달려가 군용단검을 찔렀다.

나는 정확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블린은 뒤로 훌쩍 뛰더니 내 공격을 피했다.

예상보다 날랬다.

괜히 팔다리가 수수깡이 아니다.

“키이익!”

고블린은 바로 역공에 들어왔다.

무식하게 몽둥이를 휘둘러 나를 압박했다.

몽둥이를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피하고 공격을 하는 건 어려웠다.

협회에서 제공하는 기본 전투 교육을 이수하긴 했지만, 나는 아직 전투에 익숙하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야 하는데, 너무 확 물러나고.

바로 다음 동작을 생각하기 보다는 공격을 피하는 데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하지만 뭐, 지금은 그래도 된다.

지금 파티에서 내 포지션은 전위가 아니라 후위니까.

살짝만 버티고 있으면...

“키에엑!”

고블린의 단발마가 들려왔다.

이선미가 다른 고블린 하나를 처리한 것이다.

“지금 갑니다!”

이선미가 내 쪽으로 오자, 나를 공격하던 고블린이 물러났다.

나는 이선미에게 자리를 내주고, 완전히 뒤로 빠졌다.

활을 든 고블린은 아직 활과 씨름 중이었다.

소연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 중이었고.

이럴 때는.

나는 오른손을 들어 룬어를 떠올렸다.

흑마법의 기본이 되는 ‘거리두기’ 룬으로 마나를 밀어내고, 밀어내진 마나를 마력으로 붙잡는다.

거기에 ‘타오르다’ 룬을 그리면.

화아악.

최하급 흑마법 ‘미니 파이어 볼’이 완성된다.

하지만 전부 완성된 건 아니다.

이걸 쏘아내려면 또 다른 룬이 필요하다.

바로 ‘거리두기’ 두 개를 겹쳐서 만들어내는 ‘멀어지다’

쑤우욱.

작은 화구가 고블린을 향해 날아갔다.

화구의 속도는 날아가면서 점점 빨라졌다.

고블린은 당겨지지 않는 활시위와 씨름하느라 피할 생각도 못했다.

화구는 바로 그 고블린의 얼굴에 직격했다.

펑!

작은 폭발과 함께 고블린의 얼굴에 불이 붙었다.

“키엑! 캬아악!”

고블린이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바닥에 뒹굴었지만,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결국 잠시 후, 고블린의 몸부림이 멈췄다.

그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이선미도 남은 고블린 하나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후, 후우...”

이선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단검을 뽑아냈다.

한 5분? 그 정도의 짧은 전투였지만 피로도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나도 그렇다.

전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확 몰려왔다.

이거이거, 이따가 부락을 쳐야 하는데 할 수 있으려나?

짝짝짝.

“다들 잘 하셨습니다. 처음인데도 이 정도면 나중에는 굉장하실 것 같군요. 나중에 A급 키퍼가 되시는 거 아닙니까?”

“에이, 그럴 리가요. 첫 전투라고 너무 띄워주시네요.”

고한결의 말에 내가 대꾸했다.

다른 두 사람은 아직 피로에 지쳐 그럴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저는 빈 말을 안 합니다. 혹시 그때가 되면 저도 좀 챙겨 주세요. 정민씨.”

“진짜 된다면 물론 챙겨 드려야죠. 첫경험을 함께 한 사람인데요.”

“첫경험!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그럼 또 첫경험을 하나 더 해볼까요?”

고한결이 고블린의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단검을 꺼내 고블린의 심장을 찍었다.

“마정석은 보통 심장, 단전, 아니면 머리에 있습니다. 머리에 있으면 단검으로는 꺼내기가 힘들고... 다행히 이놈은... 읏차, 여기 있네요.”

그가 심장에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돌을 꺼냈다.

거무튀튀한 피를 닦아내자, 돌의 푸른빛이 드러났다.

마정석.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원이다.

“처음부터 운이 좋네요. 첫 몬스터에게서 마정석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은데. 축하합니다. 한 번 보실래요?”

나는 고한결에게 마정석을 받아 하늘로 들어 보였다.

태양빛이 마정석을 통과하며 영롱한 푸른빛이 됐다.

마정석을 손에 쥐니, 진짜 키퍼가 된 것 같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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