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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8화 (8/137)

〈 8화 〉 chapter 2. 게이트

* * *

8.

쉬이익.

뒤에서 바람소리가 났다.

살아 있는 것의 울음 같지 않았다.

뭐지? 뭐야?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쉬이이이익.

소리가 좀 더 가까워졌다.

나도 소연이도 열심히 뛰었지만, 통로가 끝나기 전에 따라 잡힐 듯했다.

통로는 아직도 많이 남아서 밖으로 나가려면 이대로 10분 이상 뛰어야만 했다.

“아악!”

안 좋은 일은 겹친다고 했던가?

소연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우레탄으로 된 트랙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갱도를 급하게 달리는 데 어쩌면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다.

“소연아!”

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넘어진 소연이 보였다.

하지만 붉은 눈의 큰 개는 보이지 않았다.

“선배님! 피해요!”

난 소연의 말을 듣자마자 땅바닥을 굴렀다.

내 위로 무언가가 휙하고 지나갔다.

쉬이이이익.

간담이 서늘해지는 소리였다.

소리는 앞에서 들렸다.

이제 붉은 눈이 갱도를 막고 있었다.

X 됐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며 개의 상태를 살폈다.

키는 내 허리 정도였고, 피부는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무언인진 모르겠지만 금속이다.

당연히 이빨도 금속이다.

저 이빨이면, 팔이나 다리는 바로 잘려 나갈 듯했다.

헤드 라이트 때문인지, 아직 경계 중이었다.

하지만 곧 달려 들 것이다.

좀 전에 우리 순발력이 별로라는 건 알았을 테니까.

내 마법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미니 파이어볼로는 흠집도 안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이곳은 광산의 갱도.

잘못 터트렸다간 큰일 난다.

그럼 다른 마법은...

뇌가 투르르륵 하면서 정보를 토해냈다.

나는 그 중에 쓸 만한 마법을 캐치했다.

재빨리 마력을 일으켰다.

내 마력 자체는 별 볼일 없고, 마법의 위력도 강하진 않다.

하지만 이세계체류계약으로 빌려온 스킬의 숙련도는 빌려온 대상의 숙련도와 같다.

즉, 나는 마법을 생각과 동시에 완성시킬 수 있었다.

쉬악!

그래서 금속 개가 뛰려고 할 때, 나는 마법을 완성시키는 시동어를 외칠 수 있었다.

“그리스!”

쾅.

금속 개는 미끄러워진 바닥 위에서 엎어지고 말았다.

쉬이이익?

쾅, 쾅, 쾅.

개는 연속으로 세 번이나 넘어지고 난 후에야 겨우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게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소연아! 돌 던져!”

소연이 내 말을 바로 따라줬다.

주변에 널린 돌덩이가 개를 향해 날아갔다.

퍽, 퍽.

개는 그 공격에 큰 타격은 입지 않은 걸로 보였다.

돌덩이래 봐야 주먹만 한 정도고, 그다지 빠르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개의 자세를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쾅, 쾅.

개는 연이어 미끄러지며 땅바닥과 몸을 밀착시켰다.

‘지금이다!’

나는 개에게 다가갔다.

그리스의 지속기간이 끝나기 전에 새로운 마법으로 개를 무력화시켜야만 했다.

이번 마법은 그리스보다 사정거리가 짧고, 캐스팅하는 데도 시간이 더 걸렸다.

“소연아, 계속 돌을 날려!”

“...네!”

개가 그리스와 돌로 허우적거리는 사이, 나는 마력으로 마나를 밀어내며 흑마법을 완성시켰다.

나와 개의 사이는 1m 남짓.

나는 개의 눈을 가리키며 시동어를 외쳤다.

“블라인드!”

그와 동시에 그리스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개는 금방 자세를 바로 했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고개가 이상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도 아니고, 소연이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블라인드가 잘 적용 된 것이다.

‘좋았어!’

개가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렸다.

그러나 뭔가 보일 리가 없다.

마법에 걸렸으니까.

나는 소연이를 보며 손짓했다.

소연이는 나의 어설픈 손동작을 보며 염력으로 돌을 들어 다시 개를 공격했다.

나와 소연이가 서 있는 곳이 아닌, 제 3의 방향에서.

퍽.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개는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뛰었다.

그쪽 방향은 갱도 안쪽이었다.

“선...”

나는 급히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고, 소연이도 금방 조용해졌다.

갱도 안은 금속 개가 뛰어다니며 내는 소리가 웅웅하며 울릴 뿐이었다.

약간 시간이 지나자, 웅웅하는 소리가 약간 잦아들었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천천히 움직였고, 소연이도 내 모습을 보더니 나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눈치가 빠르고, 행동도 빠른 친구다.

능력도 괜찮으니, 분명 좋은 키퍼가 될 거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 웅웅거리며 울리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개가 멈췄다는 이야기다.

반쯤은 따돌렸지만, 그대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지금이라도 개가 방향을 틀면 나랑 소연이는 상대할 방법이 없다.

마법 두 개 썼다고 이미 마력, 그러니까 체력이 바닥 난 느낌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 다른 빛이 보였다.

나와 소연이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빛을 향해 달렸다.

빛이 흘러나오는 곳, 갱도의 갈림길에는 호위로 따라온 B급 키퍼가 서 있었다.

“몬스터에요!”

나와 소연은 거의 동시에 그렇게 외쳤다.

우리의 목소리에는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가득 묻어났다.

+++

갱도 안은 2명의 B급 키퍼만이 진입했다.

그들은 2시간 쯤 뒤에 금속 개의 시체를 들고서 나왔다.

두 사람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괜찮은가요?”

김상기의 물음에 남자 쪽 키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둘 다 상처는 없습니다. 그저 피곤할 뿐입니다.”

“많이 어려웠나요?”

김상기가 금속 개를 가리켰다.

짙은 회색의 금속 피부를 가진 개였다.

개의 목이 잘려 있었는데, 몸 안도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저쯤 되면 개 형태의 골렘으로 봐야 했다.

나는 처음 보는 종의 몬스터였다.

그건 B급 키퍼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쉽진 않았습니다. 공격이 단순해서 피하기는 쉬운데, 피부가 금속이라 공격이 잘 안 들어가서요. 마지막에 운 좋게 눈을 찌르지 못했다면 잡지 못했을 겁니다.”

“등급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화계라면 적어도 B급 키퍼 둘은 필요하고, 특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B급 키퍼는 데려와야 상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B급으로 봐야겠죠.”

강화계 키퍼는 자기 육체능력을 강화시키는 키퍼로, 가장 흔한 능력 중에 하나였다.

이번 일정을 따라온 두 명의 키퍼도 강화계 능력자였다.

“B급이요? 그런데 어떻게 살아 나오신 거죠?”

“저희도 오면서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김상기와 두 키퍼, 차례로 다른 사람들의 눈이 우리에게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연도 나를 봤다.

나보고 얘기하라는 뜻인 듯했다.

이거...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하나?

솔직히 그러고 싶진 않았다.

‘마법’이라는 걸 밝히면 이곳저곳에서 관심이 집중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거 정도는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집에는 케이라가 있다.

마법이라는 능력보다 몇 배는 큰 이슈인 ‘이세계인’이라는 존재가.

어쩔 수 없이 말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말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지금 소연의 눈짓이나 그동안의 눈치를 보면 잘 따라와 줄 것 같다.

아니라면... 뭐, 아니래도 일단은 던져보는 수밖에.

“헤드라이트를 끄고 숨죽인 채 있다가 소연씨의 염력으로 따돌렸습니다.”

“염력으로요? 어떻게요?”

“염력으로 다른 방향으로 돌을 날리면, 개가 그쪽에 무언가 있는 줄 알고 달려가니까요.”

급하게 지어낸 말이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저렇게 했으면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급박한 상황에도 기지를 발휘하셨네요. 대단합니다, 소연씨.”

김상기가 소연을 칭찬했고, 사람들도 놀라며 소연을 바라봤다.

소연이 쑥쓰러워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저는 별로... 정민씨가 헤드라이트를 끄라고 한 게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벽 안에서 무언가 발견하자마자 바로 그러더라고요.”

“오호, 그것도 그러네요. 침학하게 잘 대응하셨어요, 정민씨.”

김상기가 나를 칭찬하자, 나도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게 됐다.

사람들의 주목이 아직 많이 어색하다.

“제가 아니라도 다들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다들 키퍼 소설 많이 보셨을 거잖아요?”

내 말에 다들 웃었다.

위기 상황을 기지로 돌파하는 장면은 키퍼 소설에 자주 나온다.

그리고 키퍼 소설은 키퍼고 일반인이고 할 것 없이 현대 최고의 킬링 타임용 컨텐츠였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소설과 달랐다.

웃고 있지 않던 B급 키퍼가 혼잣말인 듯 내게 질문했다.

“그럼 적외선 시야가 아닌 건가? 어둠 속에서 사는 생물이면 보통 적외선 시야일 건데...”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나는 마법으로 개의 시야를 가려버리고 도망쳤으니까.

그게 적외선 시야든, 빛을 보는 시야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싸울 때는 어땠나요?”

“저희도 잘... 뭐, 그거야 차차 밝혀지겠지요.”

역시, 모를 때는 역으로 질문하는 게 최선이다.

남자 키퍼는 어차피 자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김상기님, 개가 나왔다는 갱도의 구멍은 일단 대충 막아 두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들어올 때는 조사단을 꾸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처리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이번 일정은 이대로 마무리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나가기 전에 광산 입구도 막아 놓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혹시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의견이네요. 쉬고 계시면 입구는 이 분들이 막아 주실 겁니다.”

김상기가 나와 소연을 포함한 채굴자 8명을 가리켰다.

8명이서 한다면, 30분도 지나지 않아 입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정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사소하지만 보너스를 얹어 드리겠습니다. 신종 몬스터를 잡느라 수고한 두 분께도 물론이고요.”

짝짝짝.

채굴자들 사이에서 절로 박수가 터졌다.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작은 보너스는 김상기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신종 몬스터의 등장은 그 자체로 큰돈이 되니까.

일단 마정석이 있느냐 없느냐, 얼마 정도의 빈도로 등장하느냐로 1차적 가치가 나오고, 이차적으로는 몬스터의 부산물로 가치가 매겨진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몬스터는 피부가 금속이었다.

금속.

게이트 내에서 여러 재료가 발견되지만, 금속만큼 비싸고 파급력을 가진 건 없었다.

이세계 금속 덕분에 현대 생활이 족히 2배는 편리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런 금속 덩어리 생명체가 게이트 안에서 발견되다니.

이 금속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쓸모가 있다면 대박일 게 분명했다.

보너스를 지급하겠다는 김상기의 표정이 채굴자와 키퍼보다 좋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이래서 내 게이트가 있어야...

아, 난 게이트가 없구나.

그래도 괜찮아.

대신 케이라가 있으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름다운 케이라를 생각하니, 보너스를 받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다.

+++

화아악.

들어갈 때처럼 푸른빛이 우리를 감쌌고, 우리는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처음 들어갔던 그곳, 협회의 소강당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의 등장 때문에, 협회는 다소 분주해졌다.

예상된 시각보다 일찍 나온 것부터, 새로운 몬스터의 발견, 새로운 금속의 발견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처음 발견자인 나와 소연이도 잠깐이나마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다.

“선배, 이야기 좀 할까요?”

소연은 협회 문을 나서자마자 나에게 제안했다.

기다리던 바다.

그녀와는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좋아, 그럼 어디로 갈까.”

“선배집이 여기서 가깝다고 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이야기니까 그리고 가는 게...”

채굴 도중 잡담을 하면서 어디 살고 있다 정도는 이야기했었다.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아니, 우리집은 안 돼.”

“왜요? 여자... 친구라도 있어요?”

왜 ‘여자’가 먼저 나오는 걸까?

물론 대화 흐름상 그게 맞는 거 같긴 하지만.

다른 의미로 집에 ‘여자’가 있는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응? 아니, 그건 아닌데. 여튼 우리집은 안 돼. 정리도 안 돼 있고. 엄청 더럽다니까.”

“알겠어요. 그럼 우리집으로 가요. 조금 멀지만.”

“응? 너희집? 왜 하필?”

“안 그럼 근처 카페라도 갈까요? 보안이...”

보안이라... 주변에서 들을 위험은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냥 소설 이야기 하는 거라고 생각할 텐데.

“괜찮지 않을까? 그냥 카페로 가는 게...”

“아니죠. 역시 보안이 중요하니까 저희집으로 가요. 그럼 택시 잡을게요!”

소연이 내 말을 끊어 버리고는 큰 길로 나섰다.

...어라?

...뭔가 이상한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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