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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7화 (7/137)

〈 7화 〉 chapter 2. 게이트

* * *

7.

톡, 톡, 툭.

한 남자가 벽에 정을 대고 망치로 치니까,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돌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남자는 돌을 들고 나와 또 한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 보이시죠. 이게 미스릴입니다.”

돌 중간에 아주 가는 은빛 선이 보였다.

저걸 가지고 가서 정제한다고 해도 1g도 안 나올 것 같았다.

저게 돈이 될까?

“이 정도면 얼마나 해요?”

“50에서 100만원 사이?”

“그 정도나요?”

미스릴 비싸다고 말만 들었지, 실제로 가격을 접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같은 무게로 치면 금의 10배 쯤 하니까요.”

“김상기 키퍼는 돈을 쓸어 담았겠네요.”

“강남에 몇 십 층짜리 빌딩을 세웠다고 하더라고요.”

“와...”

그게 얼마야? 적어도 천억은 넘어갈 것 같은데, 개인이 소유해도 되는 건가?

“아무튼,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한 번 해보실래요?”

“아, 네.”

나는 정과 망치를 받아들고 벽 앞에 섰다.

은빛 선이 드문드문 나 있는 부분에 보고 배운대로 정을 대고 망치로 두드렸다.

톡, 톡, 툭.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벽이 갈라지며 덩어리가 떨어졌다.

“잘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돼요.”

“이 돌은 저기다 모으면 되는 거죠?”

갱도의 한쪽에는 외발수레가 있었다.

“네, 저 수레를 두 번 정도 채우면 됩니다. 느긋하게 하시면 3­4시간이면 끝날 거예요.”

“생각보다 널널한 거 같은데요.”

수레가 꽤 크긴 했지만, 두 번은 금방 채울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웃기만 했다.

“한 번 해보세요.”

“무서운데요.”

“막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저는 다른 곳에서 일을 봐야 해서. 이따 저녁 때 뵙죠.”

“네.”

남자가 갱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는 다른 쪽 갱도에서 갱도를 넓히고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는 이 미스릴 광산 게이트에서 일한지 5년이 넘는 베테랑으로, 이번에 함께 온 사람 중에 제일 고참이었다.

그에 반해 나와 함께 남아 있는 한 사람은 이번에 처음 이 게이트에 들어온 사람이고, 둘 다 이번에 처음으로 키퍼가 된 사람이었다.

“소연씨라고 하셨죠?”

“네, 박소연이에요.”

단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빛도 잘 들지 않는 갱도 안에서 작업하는데,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파트너가 이성인 건 더할 나위 없고.

“저는 이정민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도요. 저희 열심히 해요!”

닳고 닳은 베테랑은 저 소리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돈 나오는 건 똑같은데 뭘 열심히 하냐고. 적당히 하다 가면 된다고.

하지만 소연은 그렇게 말할 만했다.

그녀는 신입이었고,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단순 반복 노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뭔가 두근거린다.

“네!”

나도 약간 들떠 대답하곤, 갱도의 끝으로 갔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벽에 가는 은빛 선들이 보였다.

나는 아까처럼 선 주변에 정을 대고 망치로 쳤다.

톡, 톡, 툭.

떨어진 미스릴 광석을 주워서 수레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같은 일의 반복이다.

톡, 톡, 툭.

톡, 톡, 툭.

톡, 톡, 툭.

.

.

.

처음의 두근거림은 꽤 오래 갔다.

20번 왔다 갔다 할 때까지만 해도 재밌었다.

하지만 1시간쯤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지루해졌다.

정확하게는 힘들었다.

반복된 망치질로 어깨는 아파왔고,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는 허리는 비명을 질렀다.

역시나 노가다란.

하루에 300만을 준다고 해도 더 안 하고 싶은 일이다... 라는 것도 며칠 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이제 키퍼가 됐기 때문에 하루 300만이 눈에 안 차는 거겠지.

며칠 전이라면 이런 키퍼를 보고 욕했겠지만, 지금이야 뭐.

사람은 원래 내로남불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거니까.

“후와... 정민씨, 이제 한 번 갔다 와야 할 것 같은데요.”

소연이 광석으로 가득 찬 수레를 가리켰다.

베테랑 선임은 한 번 채우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우리는 1시간 만에 끝내 버렸다.

그만큼 쉬지 않고 했다.

소연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그 아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역시 옷이 땀으로 다 젖어서 굉장히 불쾌했다.

“그러죠.”

내가 수레의 손잡이를 잡고 밀었고, 소연이 앞을 잡고 끌었다.

통로가 매끈했으면 혼자서도 충분했겠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두 명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드르륵.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이 갱도를 채웠다.

이대로 20분 정도는 가야 했다.

어둠 속의 두 남녀.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문장이지만, 실제로는 둘 다 힘들어서 숨만 몰아쉴 뿐이다.

어느 정도 지나자, 소연의 숨소리가 가라앉았다.

나도 정신을 좀 차려서 대화를 시도했다.

조용히 가면 좀 심심하니까.

“레일 같은 게 있으면 좋았을 텐데, 굉장히 불편하네요.”

“아, 힘드시면 바꿀까요?”

“아니요, 힘든 게 아니라... 그냥 푸념이에요.”

“오기 전에 찾아 봤는데, 레일은 만들기가 어려운가 봐요. 나무로는 무게를 버티기가 힘들고, 게이트 안에서 철을 가공하는 게 힘들어서요.”

하긴.

이 외발수레도 밖에서 가지고 온 거다.

게이트 내부 인력으로는 이렇게 튼튼한 외발수레를 만들 수 없다.

키퍼 중에 대장장이 스킬 같은 게 있지 않는 한.

“광산 게이트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준비 열심히 하셨나 봐요.”

“조금요. 별 건 아니에요. 처음 하는 거니까 사전 준비는 해야죠.”

소연이 약간 쑥스러워 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걸까.

“키퍼가 되기 전에는 뭐하셨어요?”

“학생이었어요. 대학생이요.”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겠어요.”

“아직 안 알려줘서 몰라요. 사실 입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친구도 없었지만요.”

“그럼 1학년이에요? 20살?”

“네.”

좀 앳돼 보이긴 했지만, 20살인 줄은 몰랐다.

20살이라니, 20살에 키퍼라니, 그 젊음이 부럽다.

나도 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젊음이 최고잖아.

“부럽네요. 새내기. 그럼 학교는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휴학했어요. 키퍼하는 데 도움이 될 학과도 아니라서요.”

“키퍼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과가 따로 있어요?”

“소재 공학 같은 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겠네요.”

케이트 덕분에 새로운 자원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런 것들을 연구하는 사람이 키퍼가 되면, 자기 게이트 안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파악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슨 과인데요?”

“국문과요.”

“정말 도움이 안 되는 과네요. 그래도 언젠가 졸업은 하시는 건가요?”

“고민 중이에요. 학교도 좋은 곳이 아니라 굳이 해야 할까 싶고요.”

“혹시 학교가 어디인지 물어봐도 돼요?”

보통이라면 궁금해도 넘어갔겠지만, 키퍼에게 졸업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편하게 물어봤다.

“한서대요.”

“네!?”

예상외의 답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서대는 내가 졸업한 학교였기 때문이다.

“역시 별로죠? 인서울 턱걸이긴 한데... 그게 다라서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한서대 출신이거든요.”

“네?”

“작년에 졸업했어요. 한서대가 별로긴 하죠.”

“아, 저, 그게 아니라...”

소연이 말을 더듬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아요. 자기가 자기 학교 욕하는 건데요, 뭐.”

“...죄송해요. 선배님인 줄도 모르고.”

선배.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단발에 귀여운 여후배가 그렇게 말하니까 좋아지는 거다.

뭔가 기꺼이 호구가 돼서 밥을 사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이젠 돈도 많으니 호구든 말든 상관도 없어서 더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선배 좋네요. 그럼 선배로 부를래요? 씨는 아무래도 정감이...”

“아, 네. 정민 선배님. 선배님도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그래, 소연아.”

“그런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요. 처음 게이트에 들어갔는데 학교 선배를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인연인가?”

“...네?”

“장난이야. 나도 신기하네. 앞으로 3일 잘해 보자.”

“네, 선배님.”

어쩌다 만난 동료가 학교 후배라니, 3일간 어색하진 않을 거 같아 다행이다.

+++

3일 뒤.

어색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거듭된 노동으로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으니까.

특히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는 동안 허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허리를 혹사해서야...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너는 좋겠다.”

“뭐가요?”

“염력 말이야.”

“에이, 또 그 소리에요?”

“또가 아니지. 허리가 아플 때마다 그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고.”

소연의 각성 능력은 ‘염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돌을 줍기 위해 나처럼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었다.

지금처럼 염력으로 돌을 옮기면 되니까.

“그럼 선배님 것도 제가 옮겨 드릴까요?”

“이제 와서?”

두 시간 정도만 더 하면 이제 밖으로 나간다.

첫 게이트 채굴이 무사히 끝난다는 이야기다.

“이제 와서니까 도와드리는 거죠. 선배님 거 까지 옮기다간 저도 금방 녹초가 된다고요.”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야.”

소연은 이제 갓 키퍼가 됐다.

능력이 미약할 뿐만 아니라, 체력도 부족했다.

“그럼 도와줘.”

“...네?”

“왜? 도와준다면서?”

“아니, 그래도 그게...”

소연이은 빈말이었나 보다.

나도 웬만하면 그냥 괜찮다며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허리가 너무 아팠다.

소연이가 녹초가 되는 거? 내 허리가 아작 나는 것보다는 낫다.

소연이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부탁할게, 후배님. 장난이 아니라, 진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그래. 2시간이라도 좀 쉬자.”

“...알겠어요. 나중에 꼭 갚으셔야 해요.”

“물론이지. 후배를 위하는 선배가 어떤 건지 꼭 보여줄게.”

“그럼 다시 시작해요.”

“좋아!”

소연이가 염력으로 돌을 날라 주니까, 세상 편했다.

노동의 강도가 반으로 준 듯했다.

절로 신바람이 났다.

정과 망치질에도 여유가 생겼고, 광석을 떼어내는 속도도 높아졌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나자, 소연이와 나는 자연스레 분업에 이르렀다.

내가 벽에서 광석을 캐면, 소연이가 광석을 염력으로 수레에 옮긴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고 한탄을 할 정도로, 우리의 작업속도는 빨라졌다.

이런 것이 ‘효율’이라는 것인가?

분업 만세!

2시간은 일해야 꽉 채워지는 수레가, 1시간 남짓 만에 꽉 채워졌다.

저게 다 채워지면 오늘 할당량은 끝이고, 게이트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걸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덕분에 편하게 했어, 소연아.”

“저야말로요. 이렇게 하니까 훨씬 낫네요. 염력도 더 많이 쓸 수 있고요.”

각성 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능력을 반복해서 쓰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방법은 소연에게도 이득이었다.

“키퍼 등급 올라도 나 잊으면 안 돼? 알지? 이거 내가 부탁해서 시작한 거다.”

“암요암요. 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가볍다.

나도 소연이도 목소리 톤이 많이 올라갔다.

하지만 일은 늘 그럴 때 발생하는 거다.

투툭.

망치를 내려치자, 여느 때처럼 벽에서 돌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은, 돌 뒤에 새로운 돌이 아니라,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어? 선배님, 벽 뒤에 공간이...”

그리고 검은 구멍에서 나는 붉은 빛을 보았다.

“소연아, 피해!”

다행히 소연이는 재빨리 움직여 뒤로 물러났고, 나 역시 재빨리 물러났다.

콰가강.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졌다.

돌 사이로 개처럼 생긴 것이 우리에게 돌진해 왔다.

보통 개보다 2배는 덩치가 큰 게 너무 인상적이다.

“도망쳐!”

나는 소리치며 밖을 향해 뛰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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