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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인들이 나만 좋아한다-1화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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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chapter 1.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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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994년 8월 1일.

김창주가 세계 최초로 게이트를 열고, 그 안으로 진입.

같은 날.

김창주가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를 죽이고 사체를 가지고 나옴.

같은 해 10월.

몬스터 사체에서 발견된 푸른 돌을 가지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함.

이후 푸른 돌을 ‘마정석’이라고 명명.

다음 해.

김창주 이후로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함.

그들은 각각의 게이트를 통해 각기 다른 지역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서, 각기 다른 몬스터를 잡아, 각기 다른 자원들을 가지고 돌아옴.

그들은 혼자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는데,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

이후로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사람들을 게이트를 관리하는 자라는 의미로 ‘게이트 키퍼’라고 명명.

2021년 현재.

세상은 ‘게이트 키퍼’들이 가지고 오는 각종 자원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1.

[바르기만 하면 하얘집니다. 나린의 깨끗한 치아를 원하신다면 서둘러 주문하세요!]

영화 채널 중간에 나오는 홈쇼핑 광고다.

무언가 어설픈 B급 감성의 광고지만, 제품의 성능은 확실하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게이트 안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든 거니까.

듣기로는 바르기만 해도 치아가 새것처럼 깨끗해진다고 한다.

평생 스케일링이 필요 없다나.

그래서 그런지 가격도 평생 스케일링하는 비용만큼 비싸다.

돈 없는 공시생인 나는 꿈도 꾸지 못한 수준이다.

“나도 키퍼나 되고 싶다.”

광고에 나오는 저 박나린이란 키퍼도 나처럼 1년 전엔 공시생이었다고 들었다.

키퍼만 되면 저 사람처럼 인생 역전할 수 있다.

하지만 키퍼가 되는 조건은 알려진 바가 없다.

수많은 사람이 키퍼가 되려고 애써 봤다.

게이트에서 가지고 나온 음식들을 먹기도 하고, 게이트 근처에서 숙박하기도 하고, 게이트 키퍼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는 키퍼를 가지고 생체 실험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밝혀진 건 없다.

키퍼는 오로지 우연히, 어느 날 각성할 뿐이다.

그들은 선택받은 자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급은 있지만. 그거라도 어디냐.”

모든 키퍼가 박나린처럼 대박을 터트리는 건 아니다.

그녀는 운 좋게 키퍼가 됐고, 게이트 안에서 대박 물질을 발견한 덕에 성공한 것이다.

키퍼가 되어도 게이트 안에 별 볼 일 없는 것만 있다면 그 게이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게이트에서는 그 흔한 마정석 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키퍼가 되면, 다른 키퍼들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평생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인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된다.

키퍼가 되는 것으로 전 세계 인구 중 0.01% 안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픽.

TV를 껐다.

밥을 다 먹었으니 이제 다시 공부할 시간이었다.

솔직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 책을 붙잡고 있는 수준에 그칠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TV를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닿지도 않을 키퍼라는 허망한 꿈에 기대를 걸 수는 더더욱 없고.

덜그럭.

싱크대에 그릇을 놓는 소리가 작은 원룸 안을 채웠다.

몸을 돌려 다시 책상에 앉으려는데, 내 눈앞에 이상한 게 보였다.

이이잉.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원의 형태로, 크기는 딱 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정도였다.

“...!”

순간 놀라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푸른 물결 주변을 조심스레, 천천히 돌아보니, 옆이나 뒤에선 푸른 물결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앞에서만 일렁이는 푸른 물결이 보였다.

이 정도면 누가 장난치는 건 아니라고 봐야 했다.

그제야 마음속에 흥분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게이트! 말도 안 돼! 진짜 맞아? 진짜지?!”

볼을 꼬집어보니 아팠다.

방방 뛰는 데 방이 울렸다.

아래층에서 튀어 올라올 걱정이 1도 안 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건 로또 당첨보다 백 배, 아니 만 배는 좋은 일이니까.

“자, 그러면...”

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게이트에 가져갔다.

처음 게이트에 손을 대면 능력을 각성하게 된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이다.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게이트 키퍼로서의 운명이 1차로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나는 속으로 좋은 능력이 나오길 바랐다.

이를테면 전투 쪽으로.

그리고 내 손이 일렁이는 푸른 물결 속으로 들어갔다.

“...?”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키퍼들의 후기를 보면 이럴 때 머릿속이 팟하고 밝아지며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된다던데, 내 머리는 언제나처럼 멍한 그대로였다.

“어라? 이게 아닌데?”

나는 게이트 속에서 손을 휘저어 보았다.

허공을 젓는 듯, 손에는 그 무엇도 걸리지 않았다.

원룸 거울에 내 손도, 게이트도 보이지 않는 것만이 이것이 게이트임을 증명할 뿐이었다.

“뭐야, 뭔데, 이러는 게 어딨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줬다가 뺏는 것이다.

설마 그런 결말은 아니겠지.

일단은 차분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게이트는 열렸고, 주변에 사람은 없으니 이건 십중팔구 내 게이트니까.

안으로 들어간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준비도 없이 무작정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능력을 각성한 후에, 적어도 호신용 무기라도 준비한 후에 들어가야 했다.

게이트 안에서 무얼 만날지 모르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이트 안에서 죽으면 그대로 죽는다.

여분의 생명 이런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게 손을 빼내려는데, 손끝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조금 더 뻗어 그 무언가를 잡았다.

몰캉.

보드라우면서도 탄력적인 무언가였다.

이상했다.

원래 게이트라면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이건 통로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내가 만지고 있는 것은 이세계의 위험 물질인지도 모른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빼냈다.

아니, 어쩌면 밀려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손을 빼면서 중심을 잃은 나는 뒤로 주저앉으며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갑자기 어디서...?”

사실 어디에서 나온 건지는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봤다.

그 사람은 게이트를 통해 걸어 나왔고, 게이트는 그 직후 바로 없어졌으니까.

그저 믿을 수 없을 뿐이다.

내가 이제껏 들은 게이트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지, 나오는 곳이 아니니까.

“****.”

여자?

그 사람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투박한 가죽 로브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탓에 성별을 파악하기 힘들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 같았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꽤 매력적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누구시죠?”

“****.”

그녀가 로브의 후드를 넘겼다.

그 순간 나는 숨을 헉하고 삼키고 말았다.

푸른 머리와 푸른 눈동자가 너무나 신비롭고 또 아름다워 다른 세상에서 온 듯했다.

아, 실제로 다른 세상에서 왔지.

“****.”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계심은 어느새 사라졌다.

미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큰 눈동자를 끔뻑이며 나를 쳐다보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고 싶은 게 남자의 본능이다.

“여긴 한국이고, 제 방인데... 좁죠? 일단 좀 앉으실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의자를 권했다.

그녀는 의자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로브 안에서 손을 꺼냈다.

손에는 팔뚝 길이만 한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아니, 지팡이라고 해야 할까?

“********.”

그녀가 조금 전과는 다른 톤으로, 명백하게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그 단어가 연상됐다.

모든 사람이 기대했지만, 아직 아무도 갖지 못한 그것.

마법.

“*****!”

그녀가 약간 외치듯이 말하고는 지팡이를 내 쪽으로 향했다.

빛이 쏘아진다든지 하는 시각적인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여긴 어디야?)”

신기했다.

소리로는 분명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머릿속에 그 뜻이 떠올랐다.

“이, 이건 마법인가요?”

“****(통역 마법이야. 그보다 답은?)”

그녀도 나처럼 들리는 모양이었다.

역시나 마법.

이때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을 쉽게 해내 버린다.

“여긴 한국이에요. 저는 이정민이라고 하고요.”

“(한국? 다른 차원이야?)”

“아마도 그렇겠죠. 당신은 게이트를 넘어왔으니까.”

“(맞아, 게이트를 넘어왔어. 이쪽에서도 보였어? 그럼 누구 게이트인 거야?)”

“그거야...”

당연히 나라고 하려고 했다가 말을 멈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게이트를 통해 능력을 각성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그녀의 게이트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도 자신의 게이트인 걸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이세계인도 게이트 키퍼가 될 수 있는 거였나?

내가 인류 최초로 이세계인을 만났으니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잘 모르겠네요. 게이트를 다시 열어 볼까요?”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게이트를 여는 방법을 몰랐다.

원래 키퍼로 각성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던데, 역시 그게 아닌가 보다.

“안 되는데요. 혹시 그쪽은 가능하신가요?”

“(나도 안 돼. 게이트를 여는 메커니즘은 연구해서 알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야.)”

“그럼 이 게이트는 누구의 게이트도 아닌가 보네요. 둘 다 키퍼가 아니니까.”

“(맞아. 좋은 추론. 그럼 이게 무슨 일이지?)”

“정보가 없으니 판단은 보류해야겠죠. 일단은 사고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내 답에 그녀가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미인의 시선을 받으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얼굴이 빨개진다.

아니지, 내가 답을 잘못한 건가? 아닌데?

“(악마나 마녀의 소행이 아니라?)”

“그런 게 어디... 아, 있을 수는 있겠네요. 게이트도 있는데 악마쯤이야. 혹시 악마이신가요?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그녀는 예쁘다.

너무 예뻐서 솔직히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그래도 악마 같지는 않았다.

세상 혼자 사는 듯한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악마보다는 요정에 가까운 느낌?

쥐뿔도 모르는 내 느낌이 맞을 리는 없겠지만, 틀렸다고 해도 방법은 없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악마가 내 앞에 있으면 내가 어떤 대처를 하지? 혀라도 깨물어야 함?

“(악마는 아냐. 여기 사람들은 너처럼 다 침착해?)”

“침착은 모르겠고, 악마나 마녀는 다들 믿지 않죠. 이곳은 과학과 이성의 세계니까요.”

“과칵콰 기셩?”

그녀의 이상한 발음과 함께 번역이 멈췄다.

무슨 상황인지 눈치로 대충 알 것 같았다.

이건 저런 개념이 그녀의 세상에 없는 거다.

투박한 가죽 로브에 지팡이, 그리고 마법. 역시나 중세 판타지인가!

“과학이라...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된 결과만 받아들이는 거라고 해야 하나... 막상 설명하려니까 어렵네요. 아무튼, 그런 비슷한 것?”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이 충분했을까?

이세계인에게 과학을 설명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을 줄 알았다면 평소에 좀 더 준비를 잘하는 건데...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 저렇게 책이 많은 것도 일반적인 일인가?)”

그녀가 다음 타깃으로 삼은 건 작은 책장이었다.

30권쯤 꽂혀 있었는데, 솔직히 책장이라고 하긴 민망했다. 대부분 공시 관련 문제집이었으니까.

“저 정도라면 어느 집에서도 다 있을걸요.”

“(내가 읽어봐도 돼?)”

“물론이죠. 여기.”

나는 책상에 펼쳐져 있던 책을 하나 건넸다.

그녀는 책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종이를 넘겼다.

행동만 봐도 종이 질에 감탄하는 게 느껴졌다.

“(이런 종이가 일반적이야?)”

“(글자가 두 종류야?)”

“(어떻게 이렇게 빽빽하게 적은 거야? 마법?)”

어린아이 같은 질문에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처음 만난 이세계인에겐 친절해야 하는 법이다.

똘망똘망한 푸른 눈의 미인이라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나도 질문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제 이름은 이정민입니다. 이제 슬슬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

“(케이라 머스탱.)”

꽤 멋진 이름이다.

내가 다 마음에 드네.

“그럼 다시 인사드릴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머스탱 씨.”

나는 책에 눈이 팔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귀찮은 듯 내 손을 슬쩍 잡아 흔들고는 다시 책에 집중했다.

어지간히도 책이 신기한 모양이다.

“(케이라라고 불러.)”

“그럼 저는 정민이라고 불러주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저녁이었다.

내 손에 남은 그녀의 온기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

‘아!’

나는 그제야 처음 내 손에 닿은 몰캉한 느낌을 떠올렸다.

보드라우면서도 탄력적인 그것의 정체.

로브 안에 숨겨져 있는 그것!

‘생각보다... 컸지...’

역시, 벌써 좋은 일이 생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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