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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코인 클리어한 야겜에 빙의했다-95화 (95/96)

〈 95화 〉 최후의 심판 (4)

* * *

나는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였다.

총이 있는 왼쪽 주머니가 아닌 오른쪽 주머니였다.

"있다……!"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것은 USB, 자물쇠, 그리고 향수였다.

'설마 이 향수가……?'

나는 아이템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에서, 아이템들은 다들 각각의 활용도가 있었다.

USB 세트는 싸이코 교수의 교수실에서 내가 컴퓨터 본체를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료를 빼돌릴 수 있는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싸이코 교수의 자료들이 전부 이 USB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자물쇠는 내가 쓰지는 않았지만 이보람과 같이 싸이코 교수에게서 도망다녔을 때에 만약 내가 왼쪽, 즉 이보람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자물쇠가 달려 있는 동아리방이 존재하는 왼쪽이 아닌 중앙계단 기준으로 오른쪽을 선택했을 때에 다른 밀실에 들어갔을 때에 어쩌면 쓸 수도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보람을 먼저 들여보내고 바깥에서 자물쇠를잠근 뒤에 내가 나가서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이 향수도 특별한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향수를 얻은 것은 꽤 초반이었다.

바로 내가 하숙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와서 처음 외출을 했을 때 동네 슈퍼 할머니가 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자에게 방해자로 인식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었을 때, 내가 지나칠 수 있었음에도 뛰어들어서할머니를 구하고 나서할머니에게 답례로 받은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걸그냥 향수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회차에서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건 바로 싸이코 교수가 향수병에 실 바이러스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고, 실 바이러스 뿐만이 아니라 치료제 또한 향수병에 들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에 나는 조금 전까지 이보람과 함께 다섯 개의 향수병을 수차례 확인하기도 했다.

나는 USB와 자물쇠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에 향수병을 들고 이보람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야! 이보람! 이거야! 이게 치료제일 수도 있어?"

이보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네가 원래부터 치료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나는 향수의 뚜껑을 열며 대답했다.

"아직 확실하진 않아. 근데 아마도, 이게 치료제일 거야."

지금까지 여러 아이템들이 각각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던 것처럼 이 향수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번 회차에서야 그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나는 주저없이 이보람의 얼굴 앞쪽의 살짝 위쪽으로 해서 향수를 분사했다.

­칙, 칙…….

향수에서 뿌려진 향이 퍼졌다.

'사과 향…….'

슈퍼 할머니의 목숨을 구하고 받은 향수에서는 사과 향이 났다.

­칙……! 칙……! 칙……!

몇 번 더 허공에 향을 분사했고, 나는 이보람과 같이 향을 더 실컷 맡아 보았다.

이 사과 향을 제대로맡자나는 뭔가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몸이……! 역시……!'

몸의 열기가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실 바이러스로 인해 달아오르던 욕망이 점점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되어갔다.

이 향수의 향을 맡기 전까지 나는 실 바이러스의 발작이 다가오는 것으로 인해 눈앞의 이보람이 아닌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욕망이 점차 사그라들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차츰 이곳에서 뛰쳐나가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닌눈앞에 있는 이보람의 보지에 박고 싶은 원래의 욕망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오른손으로 향수를 들고 있는 채로 왼손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됐다……. 됐다……! 이보람!!! 나, 너하고 섹스하고 싶어! 실 바이러스의 효과가 사라진 거야!"

이보람도 나와 함께 잔뜩 들떠서 외쳤다.

"꺄아아! 김상훈! 나는 너하고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여기를 나가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졌어! 진짜, 진짜 치료제야!!!"

치료제를 찾았다.

그 치료제로 우리는 실 바이러스를 치료했다.

감격에 겨운 나머지 이보람과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하하! 치료했다! 좆된 줄 알았는데 역전했다고!"

"호호호호호호호호! 야아아아아아아아! 해냈어~!!!"

얼싸안고 자취방에서 뛰었다.

한 손에 실 바이러스 치료제 향수를 들고 있어서 내 자세는약간은 엉거주춤한 감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는 실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치료한 루트로 들어온 만큼 이보람과 함께 충분히 기쁨을 만끽했다.

이보람과 잠시 기쁨을 함께 나눈 뒤였다.

­쿵쿵!

자취방의 철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경찰일 것이었다.

방금 이 집에는 경찰이 도착했고, 우리의 예측대로라면 지금쯤이면 경찰은 차량을 도난당한 싸이코 교수의 신고에 따른 인상착의에 따라주인 아주머니에게 내 호실을 물어봐서 도착해 올 정도의 시간이었다.

아직도 차량 도난에 관한 문제는 해결을 해야 했다.

그래도 상황은 확실히 나아졌다.

실 바이러스가 치료되지 않았다면 경찰과 만난 다음에 조사를 받거나 하는 과정 등에서 실 바이러스의 발작이 일어나 이보람과 나는 섹스를 외치며 난동을 피우게 되었을 수도 있다.

도망치거나 도망치지 않거나 두 경우 모두에서 실 바이러스의 발작은 충분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거였고 그러면 격리소로 잡혀갈 수 있다.

그러한 실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는 제거된 것이다.

밖에서 두드리는 문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사람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쿵쿵쿵

"경찰입니다, 잠시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문 바로 앞에 경찰이 당도해 와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이제 싸이코 교수의 차량 도난에 관한 일만 잘 마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문을 열어주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이제 도난에 관한 일만 잘 해결하면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USB에는 실 바이러스에 관한 자료가 다 들어있다. 이걸 경찰에서 오픈하면 되려나?'

경찰이 문을 더 두드리고 내가 조금 생각을 할 때에는 선택지가 발생했다.

[문을 열어준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여기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시간을 조금 버티는 의미 이외에는 없었다.

경찰이 문앞까지 당도한 지금에 와서는 도망을 치는 것은 어려워진 상황이다.

자취방의 창문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방범용 창살이 있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도망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이 장소에서 단지 좀 더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딱히 내 자취방에 더 있을 이유는 없기 때문에 나는 바로 현관으로 향했다.

­철컥

내가 문을 열자 경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문을 열자마자 마주치게 된 경찰 한 명, 그리고 뒤쪽으로 한 명의 경찰이 더 보였다.

문을 열어주니 거친 인상의 경찰이 내 쪽으로 다가왔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김상훈 씨?"

"네."

경찰은 내 한 쪽 손목을 잡고는 수갑을 들며 말했다.

"당신을 차량 절도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일단은 순순히 경찰에 협조를 해서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는 것을 생각했다.

그 때 USB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하려고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과 함께 경찰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선택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가만히 있는 것으로 협조한다]

[수갑을 거부하고 협조한다]

[싸운다]

[밀치고 도망간다]

이상했다.

순순히 협조를 하는 게 답이 아닌가?

내가 원래 생각을 했던 답은 첫 번째 선택지인 가만히 있으면서 경찰에 협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택지를 보니 협조를 하더라도 수갑을 거부하는 선택지가 있고 협조 자체를 하지 않는 선택지들도 있어서 빠르게좀 더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선택지를 살펴 보니 이중에서는 두 번째 선택지가 가장 괜찮아 보였다.

원래는 그냥 경찰서로 가려고 했었지만 생각해 보니 협조를 하는 데에 있어서 굳이 수갑을 차고 가지 않아도 관계는 없을 듯했다.

나는 그래서 잠깐 동안의 생각을 마치고는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려고 하는 경찰의 손을 밀어냈다.

"저기요."

나는 그의 손을 밀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한테 바로 수갑을 채우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뭐 현행범인 것도 아니고, 영장을 가져오신 것도 아니고, 조사를 하시는 거면 그냥 같이 가시죠.협조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나오자 경찰이 내 손목에 채우려던 수갑을 다시 자신의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으음, 알겠습니다."

경찰은 내 뒤에 있는 이보람 쪽도 한 번 보았다.

그리고는 그는 이보람에게도 말을 했다.

"신고자 분한테 듣기로는 2인조 차량 절도라고 했습니다. 용의자는 김상훈 씨하고 이보람 씨로 추정되고요. 뒤에있는 분이 이보람 씨 맞습니까?"

나는 경찰의 시선을 따라 이보람 쪽을 돌아보았다.

이보람은 방금까지 기뻐했었지만 경찰과 마주하게 되면서 다시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네, 네~, 그런데요."

"서로 같이 가 주시죠."

이보람은 조금 겁먹은 듯이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나는 그녀의 등을 감싸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잘 이야기 해 볼게."

실 바이러스를 치료했기 때문에 나는 경찰과대화로 이번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 만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시죠."

그리고 경찰이 앞장을 서서 걸었고, 나는 이보람과 함께 그 뒤를 따라 원룸 건물의 복도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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