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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코인 클리어한 야겜에 빙의했다-93화 (93/96)

〈 93화 〉 최후의 심판 (2)

* * *

"라벨이 붙어 있지는 않은데."

내 자취방 가운데에 깔아놓은 다섯 개의 향수들을 한 번 더 이리저리 살펴 봤지만 특별한 표시나 그런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향수병들에 들어있는 것이 실 바이러스인지 아니면 치료제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그냥 봐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일단은 그렇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싸이코 교수의 차를 타고 와서 그의 차 안을 샅샅이 뒤져서 물건들은 다 가져왔고, 이 다섯 개의 향수들 중에서 치료제가 한 개 이상은 무조건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향수병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한 번씩 보다가 다섯 개 중에 하나의 향수병을 들고는 이보람에게 말했다.

"하나씩 열어 볼까?"

이보람도 향수병들을 관찰하다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중에 실 바이러스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어차피 전파자고, 또 이 중에 치료제도 있을 테니까 우선 다 확인해 보자!"

이보람의 말이 맞다.

나도 그건 생각하고 있던 거였다.

만약 우리가 실 바이러스 전파자가 아니었더라면 이 향수병들을 시향했을 때에 실 바이러스 향수병이 나와서 그것 때문에 전파자가 되는 것이 조금 걸릴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미 전파자라서 그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원래 전파자였든 향수로 인해 전파자가 되든 이 다섯 개의 향수 중에 치료제가 있다면 전파가 되어도 굳이 상관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서 시향을 해 보기로 했다.

그 시간 제한이란 다름아닌 실 바이러스의 전파자가 되었기 때문에 섹스가 너무 하고싶어지는 발작 증상이 일어나는 시간 이전까지는 우리가 치료제를 찾아야 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이보람에게 말했던 대로 향수 하나의 뚜껑을 열고는 내 왼손 손등에 대고 향수를 뿌릴 준비를 했다.

분위기는 시향회가 됐다.

내 자취방은 문수경 누나가 탈출 과정에서 그녀를 칭칭 감있던 테이프 등을 뗴어서 아무렇게나 뜯어 던져 버려서 잔뜩 어질러져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쓰레기는 후각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그 가운데에서 향수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이것부터 한 번 시향해 보자고."

위쪽을 누르니 향수 위쪽의 분사구에서 향수가 뿌려져 나왔다.

­칙…….

향수는 내 손등에 뿌려졌고, 나는 한 번으로 조금 부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 번 더 내 손등에 향수를 뿌렸다.

­칙……. 칙…….

나는 향을 맡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향인지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모과네."

모과향은 이보람이 말했던 실 바이러스의 향이었다.

일단 첫 번째 향은 치료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해서 확인을 해 볼 겸이보람에게도 내 손을 내밀어서 향을 확인시켜 주기로 했다.

이보람은 하얀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고는 냄새를 맡았다.

"으음, 어……. 이거, 내가 교수 차에 탔을 때 났던 향하고 똑같아. 이건 실 바이러스가 맞아."

이보람이 두 손으로 잡은 내 손을 다시 내렸다.

불과 조금 전에 그녀가 맡았던 실 바이러스의 향이기 때문에 헷갈릴 이유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이보람에게 말했다.

"그럼 다음 걸로 갈까?"

"어."

근데 또 이렇게 손에다가 향수를 뿌리니까 다른 향수를 덧씌워서 뿌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곳에 향수를 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괜히 백화점의 시향 코너 등에서 긴 종이에 향을 묻히는 게 아닌 걸까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종이 좀 가져올게. 종이 여러 장 해서 거기에 뿌려 보자. 헷갈리지 않게."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책상에서 적당히 노트 한 권을 집어들어 길게 여러 조각을 찢어냈다.

­찌이익

­찌이익

남은 향수가 네 개니까 네 조각이면 되지만 혹시나 해서 여유분을 좀 더 준비했다.

찢은 종이들을 들고 다시 이보람의 앞쪽으로 와서 앉고, 나는 종이들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다른 향수 하나를 집었다.

"음~, 다음은 이걸로."

"그러자. 얼른 뿌려 봐."

이보람은 아직도 싸이코 교수에게 쫓기던긴장이 완전히가라앉지는 않은 듯 숨을 한 번 고르고는 내가 다른 향수병을 여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두 번째 향수를 열어서 한 손에는 향수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찢은 종이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종이에 향수를 몇 번 뿌려 보았다.

­칙, 칙…….

향수를 뿌리고 나서 나는 다시 냄새를 맡아 보았다.

당연하게도 다이번에는 다른 냄새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향을 맡아보자, 첫 번째 향수와 향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내가 먼저 향을 맡아 본 뒤에 이보람에게 향수를 뿌린 종이를 내밀었다.

"이것도 같은데?"

"어디 한 번."

이보람은 내가 건넨 향이 묻은 종이를 조심스레 받아들고는 냄새를 맡았다.

"같네."

"그치?"

"어. 이것도 똑같은 거야. 실 바이러스 향. 잠깐만! 나 조금만 더 확인해 볼게."

이보람이 재차 몇 번 더두 번째 향수의 향을 확인해 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섯 개의 향수 중 두 개의 향수는 모두 실 바이러스 향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세 개의 향수가 남았기 때문이었다.

치료제가 조금 일찍 발견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아직 남은 향들이 많으니 나머지 중에서 치료제를 찾아서 바로 이보람과 같이 사용하면 그만일 것이었다.

어차피 이 세 개의 향수들 중에 치료제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더 끌지 않고 한 번에 나머지 세 개의 향수를 써 보기로 했다.

"이보람."

"왜."

"그럼 이 세 개 중에 치료제가 있을 거 아냐?"

"그렇겠지?"

"한 번에 다 써 보자."

이보람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 빨리 찾아서 우리 치료해야지!"

우리는 함께 나머지 세 개의 향수의 뚜껑을 열었다.

둘이 같이 있으니까 소소하지만 분업도 가능했다.

뚜껑도 같이 열고, 그리고 내가 하나씩 향수를 들 때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이보람이 내가 찢은 종이를 들고 기다렸다.

나는 이보람이 들어 주는 종이에 향수들을 하나씩 뿌려나갔다.

­칙, 칙…….

세 번째 향수도 같았다.

나는다음 향수를 들었고, 이보람이 아직 쓰지 않은 다른 종이를 들어올린 것에 나는 네 번째향수를 뿌렸다.

­칙, 칙…….

네 번째 향수도 나하고 이보람이 번갈아 향을 맡아보니향이같았다.

남은 향수는 하나.

향수가 하나 남으니까 막상 조금 초조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향수의 뚜껑을 열어 들고서 뿌리기 전에 이보람을 보며 말했다.

"이건 맞겠지?"

"그, 그렇겠지?"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그치……! 이게 마지막인데……. 이게 아니면…….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그래. 무조건 이게 치료제야."

이보람하고 이야기를 조금 해 보니까 그녀 또한 나하고 마찬가지의 심리 상태인 것 같았다.

이보람의 얼굴에서도 조금씩 불안감이 스쳤다.

처음에 다섯 개의 향수를 잔뜩 들고 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 중에 실 바이러스 향수도 있겠지만 분명 치료제 향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을 텐데 이제는 그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마지막 향수병을 들었을 때 나는 바로 뿌리기가 어려웠다.

혹시라도 이것도 치료제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 되나 싶었다.

나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줄여보기 위해 일부러 이보람에게 한 마디를걸어 보기도 했다.

"그럼 이것도 뿌린다."

"응!"

이보람이 대답하며 나를 보았다.

결연한 듯한 이보람의 눈빛과 예쁜 그녀의 얼굴은 확실히 나의 감정을 조금 좋게 만들어 주는 효과는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다섯 번째의 향수를 들고 위쪽을 누르기 직전의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완전히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이것도 치료제가 아니면 정말 좆 되는 게 아닌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이 마지막 향수가 치료제가 아닐 가능성까지 미리 생각해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치료제가 맞다고 우선은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나는 향수를 들고 침을 삼켰다.

"꿀꺽."

이보람이 들고 있는 찢어진 종이가 잘게 떨렸다.

이보람도 나만큼 마음을 졸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렇게 잔뜩 긴장감 속에서 나는 마지막 향수를 분사했다.

­칙, 칙…….

향수를 뿌리자 이보람이 들고 있던 종이가 향수에 의해 젖었다.

그리고 그 향이 퍼졌다.

나는 그 향을 맡고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

퍼져 나온 향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이보람이 들고 있던 종이에 다시 한 번 더 바짝 대고 그 향을 맡아 보았다.

하지만 향수를 막 뿌렸을 때 퍼졌던 그 향과 같았다.

"이런……."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보람 또한 나하고 같은 상황에 있는 만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 또한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녀는 다급한 표정으로 향을 다시 여러 번 더 맡았다.

"킁킁, 어……!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해서 다시 다섯 개의 향수들을 더 뿌려 보기로 했다.

종이를 더 찢고, 그리고 그 종이들에 다시 향수들을 돌아가면서 분사해 나간 것이다.

­칙칙!

­칙칙!

­칙칙!

­칙칙!

­칙칙!

.

.

.

이번에는 쭉 깔린 종이들을 방바닥에다가 쭉 올려놓고는 향수를 빠르게 교체해 나가면서 향수를 뿌려갔다.

그렇지만 결과는 같았다.

다섯 개의 향수는 모두 같은 향이었다.

이보람이 싸이코 교수의 차 안에서 맡았던 실 바이러스의 향, 바로 그것과 같은 향이 다섯 개의 향수병 모두에 담겨 있었던 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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