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협상 (3)
* * *
나는 교수에게 최대한 자신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인터넷 화면을 보여줬다.
싸이코 교수가인터넷 화면을 다 보기에는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어느 정도 거리에서도 충분히인터넷 화면처럼 보이는 나와 이보람의 휴대폰 화면을 확인할 수는 있었을 것이고, 그는 테이저건을 겨누고 있던 손을 부들거렸다.
"이런 미친……!"
나는 폰을 보여주면서싸이코 교수에게 더 말을 했다.
"이미 생각하고 있으시겠지만, 저를 제압하시려는 거라면그만두시죠. 저희는 둘이니까요. 테이저건은 한 번에 한 사람한테밖에 못 쏘실 텐데, 한 사람이 당하면 나머지 하나가 예약 업로드를 걸어놓은 걸 즉시 업로드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싸이코 교수가 어금니를 물었다.
"네놈……!"
그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들고 있던 테이저건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탁!
싸이코 교수는 사자후를 내지르듯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왜!!!"
학교 건물에 싸이코 교수의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복도를 포함한 학교 전체에 걸쳐 울리는 교수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싸이코 교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내게 더 언성을 높였다.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거냐! 도대체 왜! 이제 내 계획이 올바른세상을 만들날이 오고 있는데!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올바른 세상?
나는 싸이코 교수가 만들려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교수님이 바꾸려고 하는 세상이 옳습니까? 사람들을 다 실 바이러스의 전파자로 만들어서, 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섹스하도록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게 맞나요?"
싸이코 교수가 대답했다.
"그게 내 정의다."
싸이코 교수는 짤막하게 한 마디를 한 다음에 잠깐 멈췄다가 다시말을 이었다.
"섹스, 그걸 권력삼아 되지도 않는 갑질을 하고 살아가는 년놈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너도 모르지 않을 텐데? 너 또한잘생기지 않았으니까. 그런 모든인간들이 섹스로부터모두 평등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옳게 된 세상이 아닌가?"
그의 생각은 이전에 해봤던 회차들 중 싸이코 교수 후계자 루트 쪽에서 접한 적이 있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못생긴 외모로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전에 했던 그 싸이코 교수 후계자 루트 쪽에서도 못생긴 나에게 그가 동질감을 느끼며 후계자로의 시험을 거치게 하기도 했었다.
나는 거기서 그의 후계자가 되지 않고 싸이코 교수와 싸우는 선택을 했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싸이코 교수에게 맞셨다.
"모든 사람이 섹스 앞에 평등한 세상을 만드시려고 한다는 건가요?"
"그렇다."
"평등한 것 같지같은데요?"
"뭐?"
교수의 말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등한 것에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권력자들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한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준다고 하고, 자신은 그 살기 좋은 세상의 일원이 아닌 그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까 놓고 보면 살기 좋은 세상이란 하향 평준화된 세상이었고, 소수의 군림하는 사람들만이 모든 이득을 독점한다.
매번 똑같은 수법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똑같은 수법에 한없이 당하며 살아간다.
이번에는 진짜 잘 살게 해 주겠지.
이번에는 진짜 소수가 군림하는 이들이 이권을 다 가져가는 것이 아닌, 정말 많은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게 해 주겠지.
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싸이코 교수 또한 자신만이 실 바이러스 치료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곧 권력이다.
얼핏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섹스하게 해 주겠다고 하는 그는, 알고 보면 소수의 군림하는 특권층으로 살아가는 그들과 같다.
나는 싸이코 교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려면, 교수님이 해독제, 즉 실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가지지 말았어야죠. 그래야 모두가 평등한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치료제를 가진 사람이 기득권자가 되는 겁니다."
나는 싸이코 교수에게 말을 이었다.
"교수님은 실 바이러스도 만들고, 자신만 실 바이러스 백신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극소수의 상류층에게비싸게 백신을 파시겠죠. 그러면 결국 교수님 본인만이 기득권을 가지게 되거나 혹은 그것을 살 수 있는 상류층만이 새로운 기득권자가 되겠죠."
아마도 싸이코 교수의 성격상 혼자서만 실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인정받은 만큼 돈이라면 많을 테고, 그가 원하는 것은 돈도 좋지만 그보다 자신이 만든 실 바이러스를 통한 정복이 더 목적성이 큰 것 같으니.
"교수님, 늘나누겠다부르짖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말로 사람들을 선동해요. 그렇지만 정작 나눔을 원하는 사람은 없고, 교수님이 실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처럼단지 그 뒤에 숨어서 정의로운 척 포장하고 실제로는 자신이 기득권이 되려는 모습만 있는 게 아닐까요?"
나의 말에 싸이코 교수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크큭……."
그리고 그가 다시 입을 뗐다.
"자네, 제법 세상을 아는군."
싸이코 교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말로는 기득권을 타파하겠다 하지만 사실 자기가 기득권이 되는 것임을 그는 더이상 위선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제는 까놓고 말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네는 계속 그러고 살 건가? 자네는 그냥 평생 돈에 쫓기고, 섹스에 억압받는, 그런 비참한 노예로 그렇게 살다가 늙어죽는 삶을 원하는가? 나야말로 묻고 싶네. 자네는 나를 기존 기득권을 갈아엎으려 하는새로운 기득권자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자네는 그러면 기득권을 평생 가지지 않고 영원히 그들의 종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가?"
나 또한 물론 노예의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노예에서 벗어날 때 정당하게 벗어나고 싶다.
싸이코 교수는 자신만이 군림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 그런 방식은 정의를 떠나 정당하지가 않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내 눈앞에 선택지가 홀로그램 글씨로 나타났다.
[그의 말이 맞다]
[그의 말이 틀렸다]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두 번째 선택지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교수님, 당신은 틀렸어. 기득권을 엎는 건, 정당한 수단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기존의 그 괴물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싸이코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당한 수단이라는 것의 규정 또한 이전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만든 것. 그런데 그걸 따르면서 엎어라? 왜기득권만 그냥 뛰고 나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어야 되지? 기득권을 일단 가져와야 된다. 그 이후에정당하지 않았던 그 수단을 정당화시키면 끝이다."
싸이코 교수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고수했다.
우리는 달랐다.
나는 정당한 방법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싸이코 교수는 위로 올라가고 나서 자신의 방법을 정당한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나로서는현재는교수와의 협상으로 내가 이보람과 같이 여기서 일단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도, 이보람도, 지금은 실 바이러스의 전파자가 된 상태이다.
싸이코 교수가 이보람을 자신의 차에서 실 바이러스에 먼저 전파를 시켰고 나 또한이보람과의 섹스로 인해 실 바이러스에 함께 전파가 됐다.
여기서는 내가 협상을 통해 싸이코 교수에게 치료제를 얻어낸 다음 우리가 가진 자료를 통해서 그를 처단해야 된다.
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그의 무기를 무력화시킨 것에 대해서는 성공을 했고, 나는 그가 우리의 가짜 인터넷 화면을 보고 던져버린 테이저건 쪽으로 흘끔 시선이 갔다.
그 때 싸이코 교수가 나에게 말했다.
"얼마를 원하나?"
"예?"
"원하는 만큼 돈을 주지. 학교 안에 있는 내 비밀 금고에 현금도 있으니. 원하는 만큼 줄 테니까 그 조건으로 예약 업로드를 삭제하고 자료를 다시 가져와라."
싸이코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시선이 닿아 있었던 테이저건을 발로 찼다.
탁
촤아아!
나는 내 발치에 온 테이저건을 집어들었다.
스윽…….
내가 테이저건을 집어드는 것을 보면서 싸이코 교수는 두 팔을 벌리고는 내게 말했다.
"자, 이제 믿을 수 있겠지."
만약 그에게 총이 있었다면처음에 극도로 화가 난 것에 의해 총을 먼저 들었을 것이었다.
그러면 총은 아직 차에서 꺼낸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는 하나의 무기가 더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전 회차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뇨, 하나 더 있으시잖아요. 전기충격기."
"……!"
싸이코 교수는 잠시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는 그것을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탈칵
"그래. 이것도 넘기지."
그는 이번에도 발로 전기충격기를 차서 밀었다.
탁!
전기충격기 또한 내 쪽으로 밀려왔고 나는 그것을 또 집어들어 챙겨 뒀다.
싸이코 교수는 자신의 무기들을 내게 넘긴 후에 내게 말했다.
"거래를 하자는 거야. 나는 이 세계를 지배할 권한을 얻는다. 그리고 자네는 내 학교 내 비밀금고에 있는돈을 가지고. 아, 걱정 마. 치료제도 넉넉하게챙겨 줄 테니. 지금 이보람 양도 치료를 하고, 또나중에 실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혹여라도 전파가 된다면 치료가 가능할 만큼, 충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