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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코인 클리어한 야겜에 빙의했다-79화 (79/96)

〈 79화 〉 직접 대면한 컴퓨터 (2)

* * *

"교수님, 그럼 저, 따로 같이 나가셔서 상담 가능하실까요? 상훈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교수님하고 따로 나가서 상담하고 싶어요."

이보람이 말했다.

'잘 한다, 그래! 가라, 이보람!'

이보람이 싸이코 교수에게 말을 한 뒤에 교수의 눈치를 보자 그는 뭔가를 조금 생각하는 듯했다.

"흐음……."

"교수님, 왜요? 저, 지금 교수님하고 빨리 상담받고 싶은데……. 생각하실 일이 많으신 건가요?"

이보람은 살가운 말투로 교수에게 말했다.

"크크,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럼 가볼까?"

"네! 교수님."

싸이코 교수가 생각에 잠길 만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원래 나를 먼저 상담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에 혼자 남겨진 이보람에게 상담을 하면서 실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것이 최적이었을 것이다.

이보람의 연이은 권유로 먼저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교수로서는 마음에 걸리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할 거였다.

나라는 눈엣가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걸리는 일일 것이고, 이보람이 자신에게 너무 상담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흐뭇한 일일 수 있었다.

이보람이 아양을 떨며 교수를 보채자 싸이코 교수는 그녀와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을 확정짓는 듯했다.

싸이코 교수는 일어날 듯 하다가 잠시 멈추면서 이보람에게 말했다.

"아, 그런데 말이야. 이보람 양."

"예, 교수님."

"우리가 상담 시간이 길어지면, 김상훈 군은 먼저 가 봐야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싸이코 교수의 말에 나는 어금니를 한 번 물었다.

'이런 망할 노인네!'

나는 싸이코 교수에게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한 마디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보다 이보람이 먼저 교수에게 다급하게 말을 했다.

"그건 안 되죠, 교수님! 제 상담도 중요하지만 상훈이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게 되면 제 마음이 너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아! 교수님! 이건 어떠세요?"

"음?"

이보람은 교수님에게 바로 대답했다.

"저하고 상담하다가 길어지면, 그 때 중간에 잠깐 끊고 상훈이 봐 주시고 다시 저하고 상담 해 주시면 완벽할 것 같은데요?"

이보람의 말에 싸이코 교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이보람이 꺼내든 전략은 확실히 좋았다.

싸이코 교수 입장에서도 이보람을 상담이 끝난 뒤에 바로 보내지 않고 기다리라고 하고……. 그다음에 나를 잠깐 봐 주고 보내고는 다시 혼자 남은 이보람에게로 가게 되는 거니까.

물론 이보람의 그 말은 페이크다.

싸이코 교수는 전반부의 이보람 상담까지밖에 할 수 없다.

그 이후에는 내가 이미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리고 나서 전반부의 이보람 상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데리러 갈 테니까.

자신이 완전히 전략에 말려든 것을 알 리 없는 싸이코 교수가 이보람을 보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껄껄! 그럼 과사무실로 가 볼까?"

"아, 교수님! 저 바깥 바람도 조금 쐬고 싶어서 그러는데……. 건물 앞에 잠깐 걸으면서 말씀 나눠도 될까요?"

"그럼~!"

잔뜩 기분이 좋아 보이는 싸이코 교수와 함께 이보람은 교수실을 나서게 됐다.

먼저 교수실을 나가는 싸이코 교수의 뒤를 따르던 이보람은, 잠깐 한 번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눈짓을 했다.

아마도 "컴퓨터 제대로 빼돌려!"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싸이코 교수는 내가 혼자 교수실에 앉아 있는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이보람에게만 모든 관심이 다 쏠려 있었다.

원래 그런 인간이기는 했다.

이전 회차에서는 내가 싸이코 교수와 상담을 하는 동안에 그와 어떻게 연결 고리가 생기게 되면서 후계자 루트로 가다 보니까 그가 나에게도 제자를 키워서 바이러스를 함께 전파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지만, 사실 기본적으로 그는 여자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편이었다.

두 사람이 교수실에서 나간 다음 문이 닫히고, 둘이서 이야기를 하면서 복도를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차츰 멀어졌다.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이제 끝이다……!'

이보람은 싸이코 교수를 1층까지 데리고 갈 것이다.

싸이코 교수가 처음에 언급했던 과사무실에서 상담을 했다면 조금은 더 불리했을 것이다.

위치상 과사무실이 4층 중앙계단 근처이고 한민국 교수의 교수실이 비상계단 쪽이라 중간과 끝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같은 층이다 보니까 눈에 띄여 발각될 수도 있을 뿐더러 돌아오는 시간도 짧다.

그런데 이보람은 나가기 전에 싸이코 교수를 1층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고, 싸이코 교수도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원했는지 1층으로 가자는 이보람의 말에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두 사람의 대화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조금 멀어질 때까지.

그 둘이 복도를 지나는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을 때 복도를 걷던 소리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로 미세하게 소리가 바뀌었을 때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이제 바로 컴퓨터 본체를 손에 넣는다!'

나는 주저없이 싸이코 교수의 의자 쪽으로 갔다.

바퀴가 달린 고급 의자를 치워 내고, 나는 바로 컴퓨터 본체 쪽으로 와서 쪼그려 앉았다.

컴퓨터 책상 위에는 모니터가 있고, 본체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컴퓨터 책상이 그렇게 되어 있듯이 컴퓨터책상의 우측 아래에 세워져 있는 구조로 보였다.

아름답게 세워져 있는 본체.

무게도 가벼워 보인다.

이제 그걸 꺼내기만 하면 됐다.

나는 컴퓨터 본체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하하하하! 자, 됐다, 이제……!"

­덜컹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런 씨발……! 이게 뭐야?"

컴퓨터를 빼낼 수가 없는 구조였다.

바로, 책상 때문에.

컴퓨터 책상이, 보통의 책상의 구조와 달랐다.

싸이코 교수의 책상은 마치 컴퓨터를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기라도 하듯 각진철근으로 된가로 창살에 컴퓨터가 막혀 있었다.

그게 정면만 그렇게 돼 있으면 괜찮은데, 정면은 그나마쇠기둥으로 막힌 거라 나은 편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뒤쪽을 비롯해서 위쪽, 아래쪽, 옆쪽은 완전히 책상과 일체로 된 두꺼운 철로 다 가로막혀 있었다.

"와, 씨발……! 책상이 이렇게 돼 있다고? 이래서는 본체를 꺼낼 수가 없잖아……!"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이건 뭐 어쩌라는 거야?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 본체를 꺼내서 도주를 해야 계획이 완성이 되는데…….

기껏 이보람과 손을 잡고 싸이코 교수를 바깥으로 보내 놨는데, 컴퓨터를 빼돌릴 수가 없다.

"씨발!"

­덜컹! 덜컹!

손으로 흔들어 봤지만 당연하게도 철근이 꿈쩍할 리는 없었다.

"와……. 시간이 없는데……!"

이보람이 시간을 끌어준다고는 해도 하염없이 내가 여기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싸이코 교수 입장에서는 이보람의 전반부 상담을 빠르게 마치고 나하고 또 간단하게 상담을 해서 보낸 뒤에 마지막으로 혼자 남은 이보람과 상담을 하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이보람이 처음 상담에서 시간을 그렇게 길게 끌어줄 수는 없다.

원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컴퓨터 본체를 가지고 도망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본체를 앞으로 쭉 꺼내서 선 몇 개 쫍고 그대로 달려서 1층 사이드의 비상계단 쪽에 컴퓨터를 놓고, 그리고 중앙계단 쪽으로 나가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는 척을 하면서 이보람을 데리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싸이코 교수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갑자기 둘 다 간다고 하니까 보내지 않을 명분이 없고, 특별히 마찰이 생긴 건 아니기 때문에 교수 입장에서는 훗날을 도모하려고 할 거였다.

교수가 다시 교수실로 되돌아온 다음에는 까무라칠 일이겠지만.

원래의 계획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이 각진 철창살 때문에 컴퓨터 본체를 이 책상 아래쪽에서 빼 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다시 한 번 살펴 봐도 뒤, 옆, 위, 아래, 다 막혀 있었다.

나는 컴퓨터 본체를 빼내지 못해 절망하다가 문득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설마……!"

그것은 바로 유소은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일이었다.

이보람 루트로 오기 전에, 유소은 루트에서 내가 플레이를 했었을 때.

그 때에는 입장이 반대였다.

유소은은금전적인 필요성 때문에컴퓨터 본체를 자신이 가지기를 원했고, 나 또한 유인과 컴퓨터를 빼돌리는 역할이 반대로 되는 것을 수락했었다.

유소은의 목적은 돈.

그리고 내 목적은 싸이코 교수의 악의 결과물인 실 바이러스가 완전히 해독되는 것.

역할이 바뀌어도 서로의 목적을 향해 가는 것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시간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끌어 줬는데도, 심지어는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가 될 뻔 하기까지 했는데도, 유소은은 혼자 있던 교수실에서 컴퓨터 본체를 빼돌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결 시도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유소은은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때 유소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절호의 기회에서, 대체 왜?

그 이유를, 나는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됐다.

유소은은 나하고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딱 한 번 밖에 만들 수 없는 절호의 기회에서,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편으로 이전 회차에서 가장 큰 의문점으로 남았던 것을 지금 알게 되어서 시원한 감은 있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 시원함보다 내가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떠올리는 게 먼저였다.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보람이 끌어줄 수 있는 길지 않은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 동안방법을 떠올리던 도중이었다.

나는 조금 전에 유소은의 일을 떠올린 것에서 이어진 생각의 꼬리를 잡았다.

'이보람 루트에서 유소은의 비밀이 밝혀졌다. 이것은 곧……. 시나리오들의……. 연관성이 강할 수 있는…….'

연관성.

다른 시나리오에서 어쩌면 힌트가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쪼그린 자세에서 앉는데, 문득 주머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뭐야."

꺼내 보니, USB 세트였다.

"아……!"

USB는 플레이의 상당히 초반부에 퀘스트를 하다가 얻은 것이었다.

"연관성……! 이 USB를, 여기서 쓰면……!"

길이 보였다.

이 USB는 그냥 잡템이 아니었다.

이 엄청나게 중요한 시점에서, 내가 컴퓨터의 본체를 들고 나를 수 없는 이 시기에, 정말 정확하게 적용해서 쓸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나이스!!!"

나는 USB 세트의 케이스를 거칠게 뜯어 내고는 컴퓨터에 꽂고 본체의 전원을 부팅했다.

하지만 컴퓨터의 전원이 켜졌을 때, 나는 쾅 하고 컴퓨터 책상을 후려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씨팔!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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