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직접 대면한 컴퓨터 (1)
* * *
나는 이보람과 함께 학교 건물에 들어서기 전에 잠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여기를 다시…….'
이전 회차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대학교의 건물 앞에 도착을 했다.
까만 밤, 가로등으로 학교 밖에 빛이 있고, 그리고 안에 일부 켜져 있는 백열등들이 학교 내부를 비추고 있다.
이보람은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집에 있는 컴퓨터에 다 써 놓고 왔어. 내가 오늘 어디에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 잡힐 거야."
나름 귀여운 모습이었다.
나하고 있으면 맨날 싸우면서 지랄지랄해대는 이보람이 이렇게 겁먹은 모습이라니.
그렇게 말을 하는 이보람의 머리칼이 바람에 스쳤고, 나는 옆에서 그녀의 향기를 조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의 향기를 느끼며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옷을 입고 있어도 사이즈가 제법 되는 유방임을 알 수 있었고, 치마 아래로 보이는 새하얀 다리를 확인을 수도 있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낮에 있었던 선택지인 [가기 전에 보지에 박겠다고 한다] 선택지가 약간은 아쉬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시나리오를 잘 진행하기만 하면 이보람과의 섹스는 어차피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섹스는 이후에 해도 충분할 것으로 스스로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보람은 얼굴에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그런 약간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표정도 아름다웠다.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에 이목구비며 몸매가 전혀 빠지는 것이 없었다.
이보람이 불만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물론 여기에 유소은을 내보내려고 했었는데 자신이 나왔기 때문일 것인데, 그래도 역시 예쁘니까 그런 표정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이보람의 얼굴과 몸을 보자 그녀가 내게 물었다.
"뭘 그렇게 봐?"
나는 시치미를 뗐다.
"학교 건물 봤는데?"
"무슨 학교 건물을 봐? 내 다리 보고 있었잖아~."
"아니 뭐, 학교가 앞에 있고 네가 옆에 있으니까 번갈아 가면서 보고 있었지."
"아, 진짜. 교수님보다 네가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야. 이보람 네가 더 심하면 심했지. 오늘 내가 유소은하고 가는 걸로 하면 입으로 빨아서 빼준다고 한 게 누구였더라?"
"그……. 그건……!"
이보람은 얼굴을 붉히며 무안한 듯 먼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얼른 가기나 해~!"
"쿡쿡……. 알겠어."
나는 웃으며 이보람과 함께 학교로 들어섰다.
지금은 웃고 있었지만 사실 이보람이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더 염려스러운 마음이 클 수밖에 없기는 할 거였다.
저벅, 저벅…….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동안 싸이코 교수와 맞닥뜨렸던 일들이 떠올랐다.
물리적으로 붙는다면 이기기가 매우 어려운 상대다.
머리로 이겨야 된다.
남은 목숨은 2목숨.
될 수만 있다면 이번에 클리어를 하는 게 당연히 좋고, 만약 클리어를 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된다.
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일단 한 번 해 봐야 됐다.
나는 이보람과 같이 학교에 들어선 다음 중앙 계단으로 올라갔다.
중앙 계단을 통해 4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긴장감 때문인지 이보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진짜……. 컴퓨터 최대한 빨리 가지고 나와야 돼? 알겠지?"
"맡겨 둬."
"너 진짜 컴퓨터 분해 빨리 할 수 있는 건 맞아?"
"컴퓨터를 분해하는 게 아니라고. 코드만 뽑으면 된다니까? 난 금방 하지."
"믿어도 돼?"
"어."
나는 웃음을 지었다.
이보람도 어지간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이보람은 다시 한 번 더 내게 불안감을 표현했다.
"만약에, 네가 컴퓨터 해체해서 그냥 컴퓨터 가지고 집으로 가면 나는 어떡해? 나만 큰일나는 거잖아!"
"아~, 진짜. 내가 너냐? 하, 컴퓨터를 가지고 왜 혼자 도망을 가?"
이보람하고 그런 평소같은 실랑이를 하자 조금은 긴장감도 완화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튼 이보람도 특이한 편인 듯하다.
만약에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에는 이런 스타일이 정말 두고두고 피곤한 타입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에는 이렇게 이보람 같이 성적 매력이 빼어나고 골때리는 성격도 상당히 재미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곧 한민국 교수의 교수실에 도착했고, 나와 이보람은 교수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내가 문을 두드리자 교수실 안에서 싸이코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들어와.
이전 회차와 비교했을 때 데리고 온 여자는 다르지만 일단 컴퓨터를 탈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루트로, 여기에서의 싸이코 교수의 반응은 같았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됐다.
내 앞으로 이를 질끈 깨문 이보람이 교수실 안으로 먼저 들어갔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싸이코 교수는 교수실의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별 표정 변화 없이 나와 이보람을 응대했다.
"음. 왔는가."
이보람과 나는 교수실로 들어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희끗한 머리에 정장 차림의 싸이코 교수.
아마도 그는 안주머니에 테이저건과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있을 거였다.
이전 회차에서 싸이코 교수가 가지고 있던 권총은 내 예측으로 봤을 때에는 그가 나에 대한 경계심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따로 가져온 것일 듯했다.
아직까지는 그는 권총은 쓰지 않고 테이저건, 그리고 전기충격기를 쓸 때라고 볼 수 있었다.
싸이코 교수는 교수실 입구 쪽에 평소에 비치되어 있는 듯한 몇 개의 의자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거기 일단 앉게."
이보람과 나는 그 의자들에 앉았다.
그리고 싸이코 교수는 의자에 나란히 앉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 왔다.
"상담을 하고 싶다고?"
싸이코 교수의 말에 이보람이 대답했다.
"네."
내가 대답을 할 때, 싸이코 교수는 이보람 쪽으로 시선을 한 번 던진다.
그는 은근히 이보람의 젖, 치마, 다리를 지나 발목까지 그녀의 몸을 훑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이보람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지는 듯 했는데,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찰나 정도였다.
이보람이 평소 성격이 꽤나 막나가고 까탈스럽기는 한데 이 순간에는 그녀 또한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싸이코 교수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흐음, 시간이 늦어졌구만. 내가 이 시간밖에 시간이 안 돼서 자네들을 좀 늦은 시간에 불렀군."
"호호, 아니에요, 교수님께서 좋은 말씀 해 주시는 건데 저희가 시간에 맞추는 건 당연하죠."
이보람이 교수의 말을 받았다.
이보람의 살가운 말이 듣기 좋았던 듯 싸이코 교수의 표정이 약간 풀리는 듯했다.
싸이코 교수는 풀린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했다.
"그럼, 어느 쪽이 먼저 할 텐가?"
교수의 물음과 함께 선택지가 나왔다.
[먼저 한다]
[나중에 한다]
나와 이보람의 계획상, 이보람이 먼저 상담을 한다고 하고 싸이코 교수와 함께 나가야 내가 혼자 남아서 컴퓨터를 탈취하게 된다.
반대로 여기서는 내가 먼저 상담을 한다고 하면 나와 이보람이 세웠던 작전은 모두 어이없게 무산될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당연히 내가 싸이코 교수와의 상담을 나중에 한다고 하고 이보람을 먼저 보내는 선택지를 고르기로 했다.
"상담은 제가 나중에 받아도 되겠습니까?"
"음……."
내가 말을 하자, 싸이코 교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그가 내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상담은 둘이서 조용하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한 명씩 상담하기로 하고, 자네는 다음 번에 상담을 하는 게 어떤가."
싸이코 교수는 이전에는 유소은하고만 상담을 하려고 나를 보내버리려고 했었는데, 이번에 또한 그는 이보람만 남기기 위해서 나를 먼저 보내고자 하는 듯했다.
그러한 예상은 이전 회차에서는 확률이 높은 예상이 되었었고, 이번 회차에서는 확신이 되었다.
"저, 교수님!"
이보람은 다급하게 싸이코 교수를 부르며 한 손을 살짝 들었다.
"오면서 물어봤는데, 얘 시간 많대요. 교수님, 오늘 날이 너무 선선하고 좋던데 저하고 먼저 잠깐 나가서 상담 해주시면 안 돼요? 그 다음에 얘 해 주시고요."
그녀가 따로 상담을 받는 것으로 하고 내가 뒤에 남아서 상담을 받는 것이 어떻냐고 하자, 싸이코 교수는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따로 상담을 하고 싶다는 말이지……. 내 생각에는 여학생을 나중에 상담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싸이코 교수는 아마도 내가 먼저 상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보람을 요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이미 나와 이보람이 낮 시간에 작전에 대한 의논을 하면서 예측되는 반응 중에 있었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보람은 거기에도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있었다.
"제가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교수님한테 먼저 상담을 받고 싶어요. 음……. 저 상담 먼저 해주시고 상훈이 잠깐 보셨다가 또 이어서 저 해주셔도 되고요."
"자네는 이름이 뭔가."
"아, 저는 이보람이에요, 교수님. 이 쪽이 김상훈이고요."
"남학생 이름은 안 물어봤는데……."
이보람이 미리 준비했던 먼저 상담을 해 달라는 멘트를 치자, 싸이코 교수는 여지없이 먹혀들었다.
"음……. 그럴까……. 자네 먼저 상담을 해 주는것도 좋겠군. 그럼 그렇게 하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