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탈취 (6)
* * *
내가 서유정에게 교수와 왜 협력하냐고 묻자 서유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서유정에게 외쳤다.
"선배는 도대체 왜 교수님하고 같이 가려고 하는 거죠? 최수아 선배나 전혜경 선배 같은 상태도 아니잖아요!"
나는 정말 서유정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내가 봤을 때는, 서유정의 상태는 멀쩡해 보였다.
그것이 그녀가 최수아나 전혜경과는 다른 점이었다.
최수아나 전혜경의 경우에는 싸이코 교수로부터 실 바이러스와 해독제를 번갈아 사용하며 섹스를 즐기면서 실 바이러스를 사용하면서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한 중독에 빠져버린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서유정은 달랐다.
서유정은 나하고 처음으로 섹스를 하기도 했고, 그런 그녀는 당연히 싸이코 교수의 실 바이러스와 해독제라는 두 가지 물질에 아직 전혀 노출이 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내가 한 번 더 묻자 그제서야 서유정이 말했다.
"몰라서 물어?"
그녀는 다시 웃음기가 가신 얼굴로 내게 이야기를 했다.
"걔네도 다 돈 받고 하는 거 아니야? 나도 당연히 돈이지. 남 밑에서 뼈빠지게 몇 년 동안 일해야 겨우겨우 벌 수 있는 돈을 너 한 번만 테스트하는 데 협조하면 한 번에 받을 수 있는데, 당연히 해야지. 안 그래?"
돈.
그래.
돈이었나.
'몇 년 벌 돈? 몇 천 만원 단위로 받은 건가? 하긴……. 두 분야에서나 저명한 인사인 싸이코 교수의 재력 정도면, 후계자를 테스트하는 데 있어서 그 정도 투자를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닐 지도. 그리고 그 말은……. 역시 내 예상대로 서유정은 섹스에 있어서는 정상이라는 말이다. 나와 처음으로 섹스를 하기도 했고, 싸이코 교수와는 섹스하지 않았다. 서유정은, 싸이코 교수가 섹스 중독에 빠지게 하는 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나는 서유정의 말을 듣고는 그렇게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싸이코 교수는 처음부터 나를 테스트할 생각이었던 것.
둘째.
서유정은 다른 여대생들과 달리 섹스 때문에 싸이코 교수와 함께하는 것이 아닌 돈을 받고 나를 테스트를 하는 일을 잠시 맡았던 것.
이렇게 두 가지가 내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 것이다.
나는 그래서 내가 싸이코 교수와의 그 '모임'에서 발생한 다른 루트들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됐겠구나라는 것 또한 웬만큼 예측을 해 볼 수가 있었다.
먼저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 루트에 충실했다면, 나는 싸이코 교수가 서유정 및 최수아나 전혜경까지 해서 나를 테스트를 하려고 하는 것을 충성심으로 극복을 하고 그의 후계자로서의 이후 전개가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것으로 서유정 루트로 갔다면, 어쨌든 서유정은 현재로서는 실 바이러스에 전파가 된 것도 아니고……. 이전에 조교 누나처럼 서브 히로인이 전파자가 된 것에서 이어지던 시나리오보다는 비교적 더 수월하게 이후가 또 진행이 되었을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싸이코 교수 후계자가 되어 내가 빌런의 왕이 되는 루트든, 멀쩡한 서유정과의 섹스 이후에 그녀와 함께 하는 서브 히로인 루트든, 둘 다 그렇게 쉽게 클리어까지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가지게 되기는 했다.
결국 싸이코 교수 후계자 루트나, 서유정 루트나, 메인 히로인 루트인 유소은 루트에 비하면 경험상 서브로 빠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서 클리어하기가 어렵기는 할 거였다.
나는 내 입장에서는 최대한 끝까지 유소은 루트로 가려고 했던 생각을 고수했다.
다만 중간에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유소은에게로 가는 선택지가 나왔었을 때 내 입장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즉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린 이후에 유소은을 보러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면, 어쩌면 내가 할 일을 다 하기 이전에도 혹시 깨어났을지 모르는 유소은을 보러 가는 게 어쩌면 유소은 루트로 좀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정도의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래도 이렇게 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먼저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 루트로 가려고 하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싸이코 교수에게 충성심을 보일 만 한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서유정 루트로 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서유정에게 믿음을 보일 만 한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유정에게 믿음을 주는 선택지가 싸이코 교수에게 내가 좀 더 빨리 적발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을 지, 혹은 서유정이 돈을 포기하고 나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으로 작용을 하게 되었을 지, 그 결과는 모르는 것이지만 둘 중 어느 경우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래서 중간에 있었던 유소은을 만나러 가게 되는 선택지를 가지 않은 것이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성적인 선택지를 골랐다는 것에 대해 나 나름대로는 만족했다.
더군다나 내가 싸이코 교수의 모임에 나가게 된 시점에서는, 나는 유소은을 만나러 가는 것이 이미 늦었는 지도 모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 때.
싸이코 교수와 개인 면담을 하면서 유소은이 교수실에서 컴퓨터를 빼돌리는 시간을 벌어 주던 그 때, 중간에 교수실로 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그 때 내가 싸이코 교수와 시간을 더 끄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오히려 유소은이 자결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시간을 더 벌어줬을 그 때가, 어쩌면 이번 회차에서의 가장 큰 기로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양쪽에서 적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나는 이번 회차에 관해서는 그렇게 복기를 해 보는 것으로 좀 더 판단에 대한 생각으로 얻은 성장을 끝으로 할까 싶었다.
그래도 일단은 선택지는 더 떴다.
[교수에게 용서를 구한다]
[서유정에게 실 바이러스에 관해 말한다]
[서유정을 은근하게 설득한다]
이제는 유소은에 관한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뜬 선택지들의 경우에 이미 싸이코 교수 쪽으로 붙는 루트에 관한 선택지도, 혹은 서유정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선택지로 보이는 것도 딱히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 보였다.
일단 나는 선택을 하기는 했다.
1번 선택지대로 교수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 루트로 가는 것은 이미 늦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2번처럼 서유정에게 완전히 실 바이러스에 관해 공개를 하게 된다면 싸이코 교수가 당장 나를 총으로 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서유정을 은근히 설득을 하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서유정은 아직 실 바이러스에 전파되지 않았다.
교수에게 바이러스가 아닌 돈으로 매수된 것이 확실한 그녀에게 나는 돈 이야기를 조금 더 건네며 설득을 해 보았다.
"선배. 지금은 돈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선배가 생각한 것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지도 몰라요. 이쯤에서 손 떼세요. 교수님한테 더 다가갔다가는 위험……."
그러나 당연하게도, 싸이코 교수는 내가 그렇게 서유정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을 그냥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김상훈이. 거기까지 해 두라고. 바로 앞에서 험담이라니, 끌끌! 너무하지 않나?"
싸이코 교수가 그냥 말을 하는 거였다면 나는 서유정에게 더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총을 들이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유정에게 더이상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눈앞에는 다음의 선택지가 떴다.
[교수에게 용서를 구한다]
[교수를 돌파해서 비상계단으로 달린다]
[서유정을 돌파해서 중앙계단으로 달린다]
나는 예감했다.
어쩌면, 이게 이번 회차의 마지막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지금 나는 총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용서를 구해도 쉽지 않을 거고, 교수를 돌파하거나, 서유정을 돌파하거나, 이 셋 중 어느 쪽이든 총에 맞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그 중에서 하나를 일단 선택을 하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서유정을 뚫고 달리는 선택지였다.
지금으로서는 이 선택지가 가장 가망이 있어 보였다.
교수를 뚫으러 가는 것이 총을 맞기에 제일 좋고, 용서를 구하는 걸 선택하는 건 이전에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 루트에서 더 잘 하지 못한 것을 되돌리기에 어려울 것 같다.
반면에 서유정을 뚫고 달리는 거라면, 서유정이 싸이코 교수가 발포를 하는 각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어서 내가 총을 맞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상황도 발생을 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물론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고,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것은 낮은 확률인 데다가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리는 것은 이제는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나는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일단은 서유정을 뚫고 도망치려고 했다.
"교수님……. 잠시만요."
싸이코 교수 쪽을 몸의 정면으로 한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치듯 하면서 은근히 서유정 쪽으로 가까이 갔다.
"제 말을 좀만 들어 주세요. 그러니까……."
말을 하면서 시산을 분산시키며, 나는 서유정 쪽으로 뒤로 접근을 해 가면서 생각을 했다.
이렇게 뒤로 가다가 한순간에 빠르게 서유정 쪽을 돌아본 다음 그녀를 돌파해서 달아나면, 싸이코 교수의 권총이 나를 조준했을 때 일시적으로 서유정이 나를 가리는 순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됐다!'
나는 서유정과 가까워졌을 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며 빠르게 뒤를 돌아 서유정을 돌파하고 달리려고 했다.
타탁!
그런데 내가 서유정을 돌파하면서 빠르게 달리려고 했을 때였다.
"우습게 보지 마!"
서유정의 외침과 함께, 나는 서유정에게 붙잡히며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어?'
뭐라고 소리칠 사이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땅에 쳐박혔다.
콰당!
"크아악!"
대학교 건물 복도는 평범하게도 반질반질하면서도 작은 돌무늬들이 있는 돌바닥 계열로 되어 있었고, 나는 바닥에 쳐박히자마자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타아아아앙!
내가 땅에 쳐박힌 고통을 느끼게 되자마자, 반사적으로 그래도 최대한 몸을 일으키려고 고개만이라도 들어올리려고 했던 나는, 이마에 강한 충격을 받아 머리가 튕겨져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컥……!"
싸이코 교수가 쏜 권총에 맞은 것이다.
유소은과 함께, 그리고 나 혼자서, 이렇게 두 번씩이나 마지막까지 도달해 왔던 싸이코 교수의 실 바이러스 해독제에 관한 정보 탈취 작전이 있었던 이번 회차는, 아쉽게도 거의 다 왔지만여기까지가 끝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