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탈취 (5)
* * *
싸이코 교수가 내게 말을 더 걸어 오는 동안에도, 사실 나는 좀 더 생각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위기다.
총을 가진 그가 위협을 가하는 상황.
이대로는 위험하다.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일단 뭐라도 말을 던져 보기로 했다.
두 손을 든 채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나는 싸이코 교수에게 이야기했다.
"그게, 저……. 교수님이 제가 교수님의 컴퓨터를 노렸다고 하시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교수님의 컴퓨터가 고가의 컴퓨터인 것 같아서요, 중고마켓에 팔면 비싸게 팔릴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제가 사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등록금 낼 형편이 안 되다 보니……. 한 번만 봐 주시면 안 될까요."
싸이코 교수는 나의 변명에 코웃음을 쳤다.
"흥. 내 컴퓨터를 팔아서 돈을 벌려고 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금 순간적으로 떠올렸답시고 이야기를 하는 건가? 정 돈이 필요했으면 나와의 모임에서 내가 아무 스스럼없이 준 카드를 썼겠지. 그것도 아니지 않았나. 자……. 말해 봐. 진실이 뭔지……."
싸이코 교수는 역시 내 즉석 변명에 쉽게 넘어갈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나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단지 나는 시간을 싸이코 교수에게 뭔가를 생각하게 해서 시간을 좀 끌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의도와는 달리 시간도 좀처럼 벌기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나는 일단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싸이코 교수는 분명 서유정에게 병으로 두 방이나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런 그가 왜 여기에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또 다른 것도 나는 생각을 해야 했다.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가 필요했던 이유…….
여기서 다른 것 때문에 교수실로 왔다고 말을 돌려야 될까? 아니면 컴퓨터가 필요한 다른 이유에 관해서 말을 해야 할까?
그런 여러 생각이 필요한 시점에서 내 눈앞에는 선택지가 나왔다.
[연구 자료를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실 바이러스 해독제에 관한 정보 때문에]
[서유정이 부탁을 해서]
[유소은이 부탁을 해서]
이번에는 시간제한의 모래시계가 할당하는 시간이 상당히 적었다.
이번 선택지는 넷이었다.
나는 빠르게 눈앞에 떠오른 녹색 홀로그램의 선택지를 훑어야 했다.
일단 2번이 가장 확실한 진실을 말하는 선택지이다.
나는 실 바이러스 해독제에 관한 정보를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로부터 빼내기를 원했다.
그리고 3번은 거짓 선택지였다.
서유정은 교수를 처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 컴퓨터에 대해서는 내게 언급을 한 것이 없다.
1번과 4번은 조금 애매한 선택지들이었다.
1번 선택지인 연구 자룔르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라고 하면 내가 만약 유소은에게 컴퓨터를 넘겼을 경우에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완전 거짓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여기서 진실과 제일 가까운 것은 그래도 2번이었다.
그리고 4번의 선택지 또한 내가 컴퓨터 본체를 유소은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진실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유소은은 응급실에서 깨어났는 지도 불분명해서 싸이코 교수에게 유소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도 어렵다.
'사실을 말해야 될까? 실 바이러스의 해독제를 찾고 있다고…….'
그런데 현재로서는 사실을 말하는 것도 이 위기에서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을 보장해줄 수 없다.
오히려 내가 그의 컴퓨터에 있을 해독제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더 추궁당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번과 4번 선택지는 애매하고, 2번처럼 굳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3번만이 남는다.
서유정이 나에게 컴퓨터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것.
이 선택지 또한 위험부담은 있다.
만약에 서유정도 교수와 한 패라면…….
그러면, 나는 완전히 답이 없어지고 만다.
뭔가 다른 선택지가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 선택지의 모래시계의 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깊게 생각을 하면서 선택지를 고를 수가 없었다.
나는 서유정 쪽을 몰아가기로 했다.
"잠시만요, 교수님! 다 말씀드릴게요! 서유정 선배! 서유정 선배가 컴퓨터 본체를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싸이코 교수는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이유는?"
"그게……. 이유는 몰라요! 근데 일단 그걸 가져다 주면 돈을 주겠다고 해서요! 아까 교수님이 룸에서 자리 비우셨을 때에도 쭉, 서유정 선배가 저를 회유했고……!"
나는 최대한 서유정 쪽으로 화살을 돌리려고 했다.
내가 거기까지 말을 했을 때였다.
싸이코 교수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
그의 웃음은 뭔가 확신에 찬 듯한 것이었다.
내가 싸이코 교수와 그렇게 대면을 하고 있을 때에,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내가 돌아보자 거기에는 서유정 선배가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다름아닌 강의실의 앞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싸이코 교수의 교수실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강의실의 맞은편에 있었는데, 그 강의실의 앞문에서 서유정이 나온 것이었다.
"상훈아."
서유정 선배가 거기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것을 직감했다.
멀쩡한 싸이코 교수가 나보다 더 먼저 교수실에 도착해 와 있고.
그리고 그런 싸이코 교수를 공격해서 쓰러뜨렸던 서유정 선배가 싸이코 교수와 함꼐 나를 앞뒤에서 포위하는 형태로 복도로 나온다.
'와……. 이거 좆 된 것 같은데?'
서유정 선배는 무심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너한테 컴퓨터 같은 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그녀를 돌아본 상태에서 입술이 말라 침으로 입가를 적셨다.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기라도 하다는 듯 그녀는 표정이 없던 얼굴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놀랐어?"
그녀는 몇 걸음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실은, 다 연기였어. 네가 봤던 그 맥주병도 소품용 설탕 병이었고, 교수님 머리의 피도 가짜."
나는 마지막까지 혹시라도 서유정이 아직 싸이코 교수와 적대 관계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이나마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서유정으로부터 그런 말을 직접 듣고 나자, 이 상황은 이제 정말 빠져나갈 곳이 없음을 알게 됐다.
서유정은 나에게 조금 더 말을 해 왔다.
"아! 진짜도 하나 있다. 내가 처녀였다는 거. 내가 그 정도는 해야 네가 확실하게 믿을 거라고 교수님이 지시하신 일이야. 내가 처녀인 채로 너하고 했던 것도."
그건 뭐,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덕분에 처녀하고 섹스를 잘 했다.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제 이번 회차는 거의 박살이 난 것 같은데, 그래도 서유정이 말했던 그런 것에 있어서는 좋았던 점도 있기는 했던 것 같다.
처녀였던 유소은, 그리고 서유정과의 섹스.
섹스는 두 번 다 좋았다.
그녀들의 보지들이야말로 정말 나의 자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쉽게 됐다.
이번 회차에서 내 자지에 보지를 박았던 여자 중 유소은은 내가 봤을 때 곧 깨어날 것 같지만, 또다른 나의 자지에 보지를 박았던 여자인 서유정이 나를 방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싸이코 교수가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두 손은 들고 있는 채로 서서히 몸의 방향만 싸이코 교수를 등지고는 서유정 쪽을 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그럼 택시가 원래보다 더 시간이 걸렸던 것도……."
"그렇지. 음, 택시를 좀 나가서 타지 그랬어."
서유정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때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싸이코 교수와의 모임이 있었던 룸 앞에서 택시를 타느냐, 혹은 큰길로 나와서 택시를 타느냐, 그리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느냐, 하는 선택지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유정은 나에게 말을 이었다.
"뭐, 거기서 시간이 덜 끌렸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긴 하겠네. 네가 다른 택시 잡는 시간도 고려가 되고, 또 우리는 이래봬도 신호위반까지 하면서 왔으니까. 음……. 그리고 실은 우리도 엄청 빨리 출발했어. 거의 네가 뛰쳐나가자마자. 그래서 학교에서 교수님은 씻고 옷 갈아입으시고, 나도 옷 갈아입고 나온 거야."
서유정은 그렇게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나에게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래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싸이코 교수와 서유정, 그리고 최수아와 전혜경, 모두 나를 타겟으로 완벽하게 연기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유정의 동기였다.
나는 그래서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서유정에게 말을 했다.
"무슨 일인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선배는 대체 왜 교수님한테 협조하는 건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