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탈취 (2)
* * *
선택지는 다름아닌 교수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냐는 서유정의 말에 어떻게 대답할 지 고르는 것이었다.
[교수의 후계자로서 교수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
[교수가 악인이지만 그도 하나의 생명으로서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카드키를 가지고 교수실에서 물건을 찾으려는 것 뿐 교수를 살릴 의도는 없다]
[교수의 지금 상태는 이미 죽은 것 같아서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야 마무리까지 될 것 같다]
사실 내 마음은 3번 선택지였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드키를 가지고 교수실에 내가 혼자 들어가는 것으로 교수의 컴퓨터를 빼 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래서 교수실에서 물건을 찾으려는 것 뿐 교수를 살릴 의도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나의 원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될 거였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는 선택지들 중에서 고르기가 용이한 선택지와 그렇지 않은 선택지가 명백하게 갈리기도 했다.
지금은 내가 봤을 때 싸이코 교수는 죽거나 크게 다친 상황이라 당분간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서유정의 편으로 서는 듯한 선택지를 골라야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서 1번 선택지인 후계자로서 교수를 살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2번 선택지인 생명 존중의 정신으로 교수를 살리겠다고 하는 것도 극도의 흥분 상태인 서유정에게는 충분히 거슬릴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3번과 4번…….
3번은 사실 교수가 죽든 말든 카드키를 가지고 교수실에서 물건을 찾는다고 하는 것이고, 4번은 교수가 이미 죽은 것을 가정하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은 3번이었다.
그러나, 서유정에게 말을 할 때에는 나는 4번의 선택지가 가장 무난할 것 같았다.
나는 처음부터 서유정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서유정에게 그녀의 편도 아니고 싸이코 교수의 편도 아닌 쪽에서 중립적으로 관계를 이어 왔었다.
그랬기에 나는 교수실에서 내가 찾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서유정에게 알려 주는 3번의 선택지도 끝까지 고르기보다는,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싸이코 교수의 편에 선다라고 보기 어려운 선택지인 4번이 가장 괜찮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그러한 생각으로 서유정에게 말을 했다.
"선배."
"……."
서유정은 여전히 피가 흐르는 깨진 병을 들고 있는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교수님은 분명히 죽었을 겁니다.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서유정은 전혜경이 붙들고 있는 싸이코 교수를 한 번 보고는 나에게 대답했다.
"아마도……."
나는 바로 뒤이어 그녀에게 말을 했다.
"제가 봐도 교수님은 이미 운명을 달리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편도 아니고, 선배의 편도 아닙니다. 단지 저는 그저 교수님이 그래도 이렇게 가셨는데, 최소한 그래도 유족이 이 사실을 먼저 알고 장례 절차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전화를 하려는 겁니다."
"……."
나는 거기서 서유정에게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어차피 제가 연락하지 않아도 곧 이 룸의 매니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이루어지게 될 일들입니다. 뭐……. 정 원하신다면 저도 보호자에게 연락은 하지 않아도 되고요."
나는 서유정에게 싸이코 교수의 지갑에서 꺼낸 명함을 다시 넘겼다.
물론 나는 카드키는 주머니에 넣은 채로, 나에게 하등의 쓸모가 없는 명함만을 서유정에게 건넨 것이었다.
서유정은 나에게서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제서야 서유정은 내 말에 설득되었는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지. 이 사실은 바로 알려질 테고, 네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서유정은 내가 건넨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나에게서 싸이코 교수는 이제 죽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어느 정도는 흥분이 가라앉은 듯해 보였다.
내가 서유정에게 막 명함을 건넸을 때 사람들이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탁탁탁탁탁!
탁탁탁탁탁!
"여기에요, 여기!"
달려온 사람들을 보고 나는 조금 의외여서 놀랐다.
'오, 최수아 선배, 처음에 그냥 도망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마음을 좀 추스르고 나서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네.'
나는 최수아 선배가 그냥 도망쳐 버린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다.
최수아는 곧바로 사람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간 뒤에 유니폼을 입은 남자 종업원, 그리고 이곳의 가드로 보이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을 네 명 씩이나 데리고 돌아왔다.
최수아를 비롯해서 네 명의 남자들은 룸 안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럴 수가!"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룸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단지 우리 쪽 룸에서 나는 소리만으로 이 일이 알려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많은 룸들에서 다 어느 정도의 소란 속에서 놀기 때문에 우리 룸만 특별히 시끄러운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종업원이 오다가다 우리 룸 내부를 보게 되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룸에서는 섹스 등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인지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종업원이 뭔가 서비스를 가져다 주러 문을 열고 들어와서 보게 되는 것이라면 섹스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종업원이니까 봐도 별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면 문을 활짝 열고 이 상황을 지나치는 사람이 보게 하거나, 혹은 이렇게 사람을 직접 데려오는 것만이 우리 룸 안에서 벌어진 일을 확인할 수가 있을 거였다.
최수아는 네 명의 남자를 데려와서는 서유정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여자가 이렇게 했어요!"
서유정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
서유정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도 했고, 그녀 스스로도 경찰에 가서 자수한 뒤에 자신이 한 일을 밝히겠다고도 했었다.
그것과 더불어 싸이코 교수가 했던 일도 함께 말이다.
나는 이 일이 이대로 일단락되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선택지는 하나가 더 발생하게 되었다.
[교수는 내가 쳤다고 한다]
[교수는 서유정이 쳤다고 거든다]
[슬쩍 빠져나간다]
선택지를 보고, 나는 이번에도 내가 고를 선택지는 바로 고를 수가 있겠다 싶었다.
1번 선택지인 서유정의 죄를 내가 뒤집어쓰는 건, 누가 봐도 유소은 루트에서 벗어난 서유정 루트와 연관이 있는 선택지로 보인다.
2번 선택지는 결과적으로는 최수아를 거들어서 행동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아마도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 루트 중에서 싸이코 교수가 먼저 죽고 내가 온전히 그 후계를 승계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행보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나는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나는 물론 3번의 선택지를 고르기로 했다.
슥…….
사람들이 서유정에게 시선이 몰려 있는 사이에, 나는 모두의 뒤로 조용히 몸을 뺐다.
내가 조용히 빠져나가는 선택지를 행동으로 옮기면서 눈앞의 선택지를 고르는 홀로그램은 나의 선택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열린 문 틈으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나가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은 모두 서유정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서유정은 목적을 이루고 난 뒤의 자신이 하려고 했던 행동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듯 깨진 병을 내려놓으며 두 손을 비우고 모두에게 말을 했다.
"붙잡으세요. 어차피 경찰에 자수하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녀가 무기를 버리자, 그제서야 최수아가 데리고 온 가드 중 한 명이 좀 더 적극적으로 서유정에게 달라붙었다.
"같이 가시죠!"
그리고 네 명의 남자는 분주해졌다.
"너는 선생님 부축해서 나와!"
"잠시만요! 일단 지혈 하고, 그리고 호흡부터 확인해 봐야죠!"
"구급차! 구급차 불러!"
"상태가 너무……. 숨을 안 쉬는 것 같은데요? 이미 돌아가신 것 같기도……!"
"다시 한 번 봐! 호흡이 약하신 걸수도 있잖아! 야! 여기 심폐소생술 하는 애 있어?"
다들 소리를 지르며 더욱 난리통이 됐다.
서유정을 경찰에 넘길 때까지 일단 잡아두려는 남자, 휴대전화로 구급차를 부르는 남자, 싸이코 교수의 상태를 확인하는 남자, 주변에서 최수아와 이야기하며 방금 일어난 일의 정황을 묻는 남자까지…….
상황은 복잡해졌고, 내가 빠져나가기에는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대로 머뭇거리다가는 나 또한 무슨 참고인이니 뭐니 해서 경찰서로 가게 될 수도 있었다.
내가 만일 최수아와 뜻을 같이하는 선택지를 가게 되는 것이었다면 그런 경찰 참고인 조사 이런 것까지 받고 서유정이 이 사건에서 보였던 일을 증언하는 등의 일을 더 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교수실에서 컴퓨터를 빼돌리는 것이 가장 큰 급선무다.
이제는 카드키까지 있다.
준비는 완벽하다.
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싸이코 교수는 사경을 헤매는 상태.
나는 이제 이 모임의 장소인 룸만 빠져나가면 교수실에 도착해서 카드키로 문을 개방하고 컴퓨터를 빼돌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유소은이 누워 있는 병원으로 가서 컴퓨터를 전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소은 루트는 클리어에 가까워질 것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룸의 복도를 걸었다.
최대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저벅, 저벅…….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 서 있던 마담은 아마도 다른 손님에게 안내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잠시 비운 모양이었다.
어쩌면 싸이코 교수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는 경찰이나 관리자 등에 연락을 취하러 갔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남자 웨이터가 잠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그곳을 지나치기로 했다.
"결제는 일행이 할 겁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웨이터와 마주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세요."
"살펴 가십시오, 사장님!"
그렇게 해서 카드키를 가지고 룸에서 나온 다음에는, 나는 잔뜩 급해진 마음으로 입구 앞쪽의 주차장을 빠르게 달려 가로질렀다.
탁탁탁탁탁탁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