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승부 (4)
* * *
서유정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 보니 시간은 잘 갔다.
역시 예쁜 여자하고 술을 먹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마시게 되는 듯하다.
나는 술을 조금씩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저 쪽 편에 앉아 있는 싸이코 교수는 확실히 술이 좀 된 듯한 모습이었다.
"아. 이제 조금 취하는군."
싸이코 교수의 한 마디에 최수아와 전혜경은 그의 양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여전히 애교를 떨고 있었다.
"앗, 교수님, 괜찮으세요?"
"교수님! 아앙, 제 가슴 만지고 술 좀 깨세요!"
가슴 만지면 술이 조금 깨는 걸까.
왠지 좀 그럴싸하다.
"껄껄! 이만하면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음, 여기서는 이 정도로 하고 내 집에서 한 잔 더 해도 될 것 같은데."
"저희 둘만 가는 거죠?"
"그럼."
"꺄아~! 교수님, 오늘 잠 안 재울 거에요!"
"누가 할 소리!"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보며 서유정은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서유정은 그녀가 말했던 대로 결코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싸이코 교수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일어나면서 약간 몸을 휘청였다.
"크흠, 이제 일어나야지……."
"아, 교수님! 조금 취하셨어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저도요!"
싸이코 교수는 두 여자의 몸을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나와 서유정 쪽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거기."
나는 싸이코 교수를 보며 대답했다.
"예?"
싸이코 교수는 확실히 취기가 드는지 눈을 제대로 뜨려고 몇 번 시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래. 김상훈이."
그가 나에게 물었다.
"더 놀 건가?"
"녜? 음……."
싸이코 교수의 말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한 번에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지금 술값은 다 계산하고 나갈 건데, 더 놀 거면 아예 내 카드 중에 한 장 주고 가고."
싸이코 교수가 내게 그런 더 놀 것인지의 여부를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했을 때, 내 눈앞에는 선택지가 떴다.
[더 마신다]
[지금 간다]
선택지가 뜨고 난 뒤에는 나는 서유정을 보았다.
서유정은 내 쪽을 보고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더 마시겠다고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서유정은 나한테 더 마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술을 진짜 더 마실 생각은 아니겠지. 우리가 더 마시겠다고 하고 자리에 남으면 싸이코 교수가 먼저 나가게 되고,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지금 시점에 서유정이 싸이코 교수의 뒤에서 공격을 한다면 교수는 무방비……!'
지금까지는 화장실 등으로 룸을 들락거려도 술에 취하진 않았었지만 지금은 교수는 꽤나 취한 상태다.
기회다.
싸이코 교수와 같이 지금 룸에서 나간다고 하면 그는 나에게 부축을 맡길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는다고 하면, 나와 서유정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술에 취한 교수의 뒤를 제대로 노릴 수 있다.
나는 내가 내린 판단과 서유정의 신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싸이코 교수에게 대답했다.
"저는 오늘 술이 좀 잘 받아서 조금만 더 마시고 가겠습니다."
내가 말을 하자 교수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음. 그래. 카드는 여기 올려놓지."
교수는 카드를 테이블의 자신의 자리 위에 올려놓고는 두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룸의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교수님! 조심조심~!"
"껄껄! 그래!"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서유정.
스윽…….
서유정은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서유정의 뒤에서 그녀를 지켜봤다.
'서유정…….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데……. 성공할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까?
이전 회차에서 나는 배드 엔딩을 보기는 했지만 싸이코 교수와의 대결에서는 이겼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어려웠다.
싸이코 교수는 보기에 비해 운동을 꽤나 한 듯 힘도 나름 강했고, 거기에 무기들까지 가지고 있었다.
칼로 기습을 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내가 역습을 당해서 하마터면 내가 끝장날 뻔 한 것을 정말 가까스로 뒤집었었다.
지금은 싸이코 교수가 술에 상당히 취해 있다고는 해도, 서유정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그래도 지금의 나는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그 이후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서유정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럴 때, 싸이코 교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예상치 못한 싸이코 교수의 행동에 서유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싸이코 교수를 치려다가 딴청을 피우며 테이블에 있는 안주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 저거 너무 맛있어 보이는데 거리가 좀 머네~!"
서유정은 먹고 싶은 안주가 멀리 있어서 일어난 척 하면서 안주 접시가 놓인 자리를 교체했다.
싸이코 교수는 서유정의 그러한 대처에 의해 수상함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채로 출입구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그럼 이만 먼저 가 보겠네. 음, 내일 오후쯤에 시간 되나?"
"예? 예."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싸이코 교수는 두 여자가 붙잡아 주는 상태에서 취기로 인해 감겨오는 눈을 힘겹게 뜨듯이 하면서 나를 보고는 말했다.
"그럼 내일 오후에 후계자 미팅을 잠깐 잡도록 하지. 향후 우리 모임의 발전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 보고 싶군. 크크……. 아, 이거……. 술을 너무 마셨나."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후계자 미팅이라…….
말은 일단 후계자 미팅인데, 오늘의 이 모임이라는 것을 통해 추측해 봤을 때에는 그 미팅이라는 것에서도 또다른 여대생들을 불러서 섹스 파티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 같았다.
만일 내가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 루트를 제대로 진행시키려고 하는 입장이었다면 이 미팅들이 이어지는 것들을 통해 후계자 구도를 굳혀가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써는 나는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싸이코 교수는 술에 취해 내 대답을 제대로 들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고, 다시 고개를 돌린 뒤에 두 여자의 부축을 받아 다리를 조금 헛짚으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교수님! 저 잘 잡으세요!"
"교수님, 카운터까지 일단 가서 대리 부를게요!"
"끌끌, 그래, 그래."
최수아와 전혜경의 말에 싸이코 교수는 취기어린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내 옆자리의 서유정이 안주 그릇들을 옮기던 그대로 멈춰 서서는 이를 악물었다.
"죽여버릴 거야……."
서유정은 바로 옆자리인 나조차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입모양만 보일 정도로 그런 말을 했다.
예쁜 여자가 독기를 품은 듯한 모습을 보이니 그것도 나름대로 귀여웠는데, 그런 느낌도 있기는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긴장감이 드는 것이 먼저였다.
서유정은 미리 신발도 벗어두고 맨발인 상태였는데, 그녀는 테이블과 소파 사이를 지나기 시작했다.
슥……!
서유정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선택지가 떴다.
[서유정을 뒤에서 포박한다]
[소리지른다]
[일어나 합류를 준비한다]
[앉아서 술을 더 마신다]
'선택지……!'
나는 서유정이 드디어 싸이코 교수를 뒤에서 치려고 움직인 것만 해도 긴장감이 들었는데, 거기다가 선택지까지 뜨니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슥……!
나도 일어났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은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네 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 냈다.
시간제한의 모래시계는 짧았고, 네 개 중에 내가 고르고 싶었던 것이 완벽하게 있어서 나는 마침 그것을 즉시 선택할 수가 있었다.
서유정을 뒤에서 잡는 것, 소리지르는 것, 일어나서 합류를 준비하는 것, 앉아서 술을 더 마시는 것…….
그것들 중에서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당연히 세 번째, 일어나서 합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서유정을 뒤에서 잡거나 소리를 질러서 싸이코 교수를 구한다고 하면 후계자 루트에 좋을 것이고, 일어나 합류를 준비를 하는 것은 싸이코 교수를 적대하는 서유정 쪽으로 서는 선택지가 될 것이었다.
그 중에서 앉아서 그냥 술을 더 마시는 것은, 싸이코 교수보다 더 싸이코같은 선택지였다.
나는 세 번째 선택지인 [일어나 합류를 준비한다]를 선택한 대로 일어나서 서유정을 백업할 준비를 했다.
눈앞의 선택지의 홀로그램 글씨가 사라지고, 서유정은 맨발로 싸이코 교수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탁탁탁탁탁탁!
테이블과 소파 간의 거리도 나름 좀 있었기 때문에, 서유정은 그대로 싸이코 교수의 뒤에서 그에게 뛰어들 수가 있었다.
서유정은 달리는 도중에 테이블 끝에 있던 맥주병을 순간적으로 양 손에 하나씩 두 개를 집어들었다.
타탁!
'……!'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솔직히 서유정이 유도를 꽤 했다고 해서 유도 기술로 싸이코 교수를 던져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기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싸이코 교수의 양쪽에 그를 부축하고 있는 최수아와 전혜경이 있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싸이코 교수만 집어던지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서유정이 맥주병으로 싸이코 교수를 노리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역시 운동을 배우면 몸을 쓰는 게 다른 걸까?
서유정은 진짜 보기에는 매우 여리여리하게 생겼고 나와 함께 섹스를 하면서 옷을 벗고 보지와 자지를 박을 때에는 천상여자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녀는 싸이코 교수의 뒤에서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은 모습이어서 나는 그녀가 승기를 잡거나 유리할 때 들어가려고 보고 있다가 우연찮게 그녀의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나는 처음에 그녀가 싸이코 교수의 상대가 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까 다를 수도 있을 듯했다.
"죽어버려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서유정은 싸이코 교수의 뒤에서 마치 야구의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위에서 아래로 오른손을 내리는 것처럼 맥주병을 풀 파워로 위에서 아래로 교수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파아아악!!!
정타였다.
싸이코 교수는 술에 취해 두 명의 여자에게 부축을 받으며 느릿느릿 걷고 있었고, 서유정은 그런 싸이코 교수의 뒤에서 정수리를 정확하게 맥주병으로 가격했다.
정말 맥주병은 시원하게 터지듯이 파편이 날렸다.
안에 들어있던 맥주도 터져 나왔다.
첫 맥주병이 터짐과 함께 싸이코 교수의 피도 맥주병의 조각, 그리고 맥주와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피가……!'
싸이코 교수는 맥주병을 맞고 크게 휘청였다.
"크악……!"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유정은 처음에 맥주병을 들 때에 양손에 하나씩의 맥주병을 들었고, 첫 번째 맥주병을 싸이코 교수의 머리에 후려친 뒤의 연타로 맥주병을 오른손으로 고쳐 잡은 다음에 한 번 더 싸이코 교수의 정수리를 노렸다.
"죽어버려! 쓰레기이이이이이이이!"
이번에는 오히려 첫 번째보다 더 쉬울 거였다.
맥주병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싸이코 교수는 무릎을 꿇으며 몸의 높이가 약간 내려왔고, 서유정은 그녀의 정수리를 맥주병으로 한 번 더 쳤다.
파아아악!!!
정말 입이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맥주병이 박살이 나면서 맥주가 튀는 것과 함께 싸이코 교수의 피가 튀었고, 이제는 싸이코 교수는 정신을 잃은 듯 비명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 싸이코 교수의 양쪽에서 그를 부축하던 최수아와 전혜경이 놀라며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