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싸이코 교수 후계자 루트 (2)
* * *
싸이코 교수는 자신의 후계자 선정에 승낙한 나를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그는 나를 후계자로 해서 '모임'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싸이코 교수와 같이 주차장으로 가자, 선택지가 떴다.
[조수석에 탄다]
[뒷자리에 탄다]
[집에 간다고 한다]
여기가 어쩌면 마지막으로 교수와 등질 수 있는 선택지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일단 교수 쪽으로 붙기로 이미 생각을 굳혔다.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옆자리에 타도 되겠습니까, 교수님?"
"물론이지."
"그럼……."
지금 상황에서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일단 교수 쪽으로 붙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카드키.
그걸 손에 넣고 도망쳐서 학교로 돌아가야 된다.
나는 교수의 차에 탔다.
차 안에서는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사과 향의 방향제 냄새가 살짝 나는 듯했다.
나는 차에 타면서 생각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카드키만 빼돌려서 도망치면 돼.'
교수에게는 카드키가 있다.
그 카드키로는 교수실의 문을 열 수가 있다.
따라서 그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유소은이 누워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에 나 혼자서 시나리오 클리어가 가능하다.
내가 카드키를 가지고 학교로 가서 교수실의 문을 열고 컴퓨터를 빼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역시 유소은과 내가 모의한 계획이 완벽하게 들어갔는데도 왜 자결을 시도하려고 했느냐인데…….
그 이유는 유소은이 깨어나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단 그녀가 깨어나고 난 뒤에야 그녀와 이야기를 하든 말든 할 수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싸이코 교수와 동행해서 틈을 노려 그의 카드키를 획득한 후 컴퓨터를 빼돌리는 게 우선이다.
교수가 주관하는 '모임'이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어떤 건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 모임에 함께 간 다음에 어떻게든 교수가 방심하는 틈을 유도해서 카드키를 빼돌릴 것이다.
"가지."
"예."
싸이코 교수는 내가 차에 탄 후에, 뭔지 모를 '모임'에 데려가겠다며 차를 몰아갔다.
싸이코 교수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한 곳가게 뒤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받치고, 싸이코 교수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며 내게 말했다.
"내리지."
"여기가 그 모임이 있는 곳인가요?"
나의 물음에 싸이코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임에 가기 전에 자네의 그 후줄근한 옷차림부터 좀 바꿨으면 해서 말이야. 그래도 명색이 내 후계자인데, 이래서야 되겠나?"
나는 싸이코 교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 옷차림을 살폈다.
흠, 좀 추레하긴 했다.
나는 내 옷차림을 보고 문득 피식 웃음이 났다.
옷이라…….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에서, 히로인들은 어떤 옷을 입어도 사실 빛이 난다.
그렇지만 나는 옷을 조금 대충 입으면 바로 후줄근해지는 것이다.
외모란 이런 건가?
기본적으로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 겉모습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빛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나는 돈을 쳐발라도 한참 밀리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싸이코 교수를 봤다.
내가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에 빙의한 이후에 본 싸이코 교수는 항상 정장 차림을 하고 있다.
싸이코 교수의 후계자 루트에 조금 발을 걸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왠지 그와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외모의 부진함을 옷, 돈, 이러한 것들로 커버해야 되는 입장, 이라고 할까.
내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자 싸이코 교수가 내게 말했다.
"내리지."
"알겠습니다."
나와 싸이코 교수는 바로 차문을 열고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서 옷가게의 뒤쪽 주차장에서 정문 쪽으로 잠시 걸어가는 동안에는 싸이코, 교수는 나에게 좀 더 이야기를 해 왔다.
"오늘 옷은 내가 다 계산하도록 하겠네. 옷가게에도 내가 따로 연락을 해서 문을 열라고 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네? 아니, 옷을 사주신다니……."
고민하는 내 눈앞에 선택지가 떴다.
[호의를 받아들인다]
[사양한다]
나는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기로 했다.
"교수님. 굳이 옷까지는 괜찮습니다. 사양하죠. 더 격식이 있는 옷을 원하시면 저희 집에 잠시 들렀다 갈아입고 와도 되고요."
차로 가면 내 자취방이 그리 멀지는 않다.
처음에 유소은을 구급차에 싣고 이동했을 때 당연히 병원은 큰 병원 중에서도 가까운 곳으로 왔기 때문에, 거기서 멀지 않은 옷가게 또한 거리가 가까운 편이었다.
내가 겸양어린 사양의 말을 전했을 때에는, 싸이코 교수는 뭐 그런 걸로 신경을 쓰냐는 듯한 얼굴로 걸음을 걸으면서 나에게 대꾸했다.
"염려하지 마. 옷같이 싼 게 없지 않나. 매일 먹고 싸는 음식처럼, 옷도 입다가 버리는 것을. 뭐……. 그 정도로 크게 생각지는 말게나."
그런가.
그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싸이코 교수는 꽤 돈이 많기는 하다.
옷값 따위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곧 나는 싸이코 교수와 같이 옷을 사러 들어가게 됐다.
싸이코 교수와 같이 옷 쇼핑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었는데 뭐 이런 일이 있나 싶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옷을 세미 정장으로 빼 입게 됐다.
옷집에서 나는, 가격이나 이런 것에는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옷 한 벌을 다 맞추고 거기에 신발이며 벨트까지 완전히 차려 입었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느꼈다.
확실히, 다르기는 하다.
내가 이렇게 제대로 차려 입어도 물론 기본적인 외모가 뛰어난 케이스를 이길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새 옷을 입기 전의 내 모습과 값비싼 옷으로 갈아 입었을 때의 나를 비교해 보면 완전하게 달랐다.
이곳으로 입고 왔던 원래의 내 옷을 전부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원래 꽂히는 옷을 사는 편이어서 옷을 사고 나오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원래 입고 왔던 곳을 종이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오면서 싸이코 교수의 옆을 걸으며 그에게 말을 했다.
"잘 입겠습니다."
"신경쓰지 말라니까."
상당히 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쓰기 어려운 것인지를 말이다.
유흥업소에 수천만원을 퍼부으며 일말의 아쉬움이 없어하는 경우에도 친구에게는 적은 돈에 아까워하는 경우를 나는 주변에서 상당히 자주 봤었다.
그래서 나는 싸이코 교수가 정말 나를 나름 특별하게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모임을 하러 가 볼까."
"예."
나는 다시 건물의 뒤편으로 가서 주차장으로 가 차에 탔다.
그리고 싸이코 교수는 다시 익숙하게 운전을 해서 그 모임이 있는 곳을 향해 나와 같이 가게 됐다.
차에 탑승해서 가는 동안 나는 이후의 루트에 관해서 조금 더 고민을 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싸이코 교수는, 적으로 만났을 때는 내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겨우 이겼을 정도의 적이었지만…….
만약 싸이코 교수가 아군이라면?
그러면 나는, 어쩌면 무적이 아닐까?
우우우우우웅.
그러나 달리는 차의 조수석에서 생각을 하던 내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게 된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적일 리가 없지.'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 외에도 나는 같은 장르의 게임을 상당히 많이 해 봤었다.
그렇기에 나는 알고 있다.
이러한 선택지가 있는 부류에서 '악의 길'로 가는 루트로 성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악당왕 같은 식으로 나름의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악 쪽으로 가게 되는 루트의 대부분은 좆같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나리오를 겪게 되거나, 혹은 도처에 깔린 배드 엔딩의 지뢰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내가 봤을 때에는 싸이코 교수와 완전히 손을 잡으면서 가는 것이 가장 강력해 보이지만 더 진행되면 개 빡세질 것임이 충분하게 예상된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래서 기존의 방침대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카드키를 빼돌려서 교수실에 있는 그의 컴퓨터를 탈취하기로 말이다.
원래의 계획을 굳힌다는 계획을 유지하며 내가 싸이코 교수와 함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 유흥가였다.
번쩍거리는 거대한 건물들이 존나 많은 곳이었다.
흔히 대학가의 유흥가라면 술집이 많고, 그 다음으로 바, 노래방, 이런 것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한 곳들에 비하면 이곳은 어른들의 유흥가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비싸 보이는 주점들이 즐비해 있는 거대한 유흥가가 무슨 단지처럼 구성이 되어 있다.
뭐, 이런 풍경은 많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기는 하다.
어디에나 유흥이 있다.
나로서는 이런 곳은 상상할 수 없기는 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일단 이러한 곳은 비싸다.
나는 싸이코 교수와 같이 유흥가에 도착하고, 그 중 어느 건물에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린 뒤 건물로 들어가게 됐다.
뚜벅, 뚜벅…….
싸이코 교수와 같이 들어간 업소는 상당히 근사했다.
건물은 외부에서 봤을 때도 엄청나게 크고 대단해 보였었는데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도 나는 업소의 내부 인테리어, 넓은 공간, 번쩍거리는 바닥, 이러한 것들 등등의 다양한 것들로 인해 꽤나 고급스러운 곳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됐다.
업소에 들어오고 나서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꽤 예쁜 여자가 싸이코 교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머, 오빠! 또 오셨어요? 오늘도 잘 모실게요!"
수십 살 차이가 나지만 오빠가 된다.
이것이 돈의 힘.
싸이코 교수는 흡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새로운 애들도 마침 있고요. 호호! 한 번 보셔야죠?"
그녀의 응대에 싸이코 교수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크크…….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오늘은 여기에서 모임을 한다고 내가 그냥 큰 걸로 룸 하나 빌리기로 하지 않았나."
싸이코 교수의 말을 듣자 그제서야 카운터에 있던 여자가 생각난 듯 눈을 좀 더 크게 뜨며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 맞다, 그랬죠? 아~, 그래서 제가 선불로 결제 받고 저희 룸들 중에서 제일 좋은 걸로 하나 빼 놨어요."
"손님들은?"
"호호호! 총 세 분 오신다고 했죠? 그 중에 두 분은 도착했고, 한 분은 아직이요."
"그렇군."
"저, 근데 누구인가요? 다들 저희 가게에서 잘 나가는 애들 이상의 외모던데……. 혹시, 오빠가 오늘 부르신 손님들은 이쪽 일에는 관심 있나요?"
싸이코 교수는 그녀의 말에 간결하게 답했다.
"아니. 방이나 안내해."
"알겠습니다!"
카운터의 여자가 활기차게 대답을 하자마자, 뒤쪽에 대기하던 유니폼 차림의 남자가 발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모셔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