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변수의 변수 (3)
* * *
구급차에서 옆에 타고 있는 한민국 교수에게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교수실은 내 모든 연구 자료가 있는 곳이야. 상담을 하러 온 학생이 아니라면 내가 그곳을 열 이유가 없네."
싸이코 교수의 말도 맞다.
사실 교수가 그렇게 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타인이 개입되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사무실에서 싸이코 교수와 내가 상담을 나눈 시간은 예정보다는 길어졌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교수는 아무에게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처럼 나하고 같이 상담을 했던 싸이코 교수가 유소은을 죽이려고 할 수도 없기도 했는데, 그로서는 또 유소은을 해치지 않을 존나 큰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싸이코 교수가 나와의 상담을 마치고 유소은을 협박해서 섹스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와 유소은의 전략으로 사실은 유소은은 섹스하는 게 아닌 컴퓨터 본체를 들고 도망치려고 한 거였지만.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싸이코 교수로서는 나와의 상담을 마치고 유소은과 존나 섹스를 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싸이코 교수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유소은을 공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일단은……. 병원으로 가서 유소은을 회복시키자.'
구급차는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큰 병원에 도착을 하게 됐다.
병원에 도착한 다음에는 유소은은 우선은 치료를 받으러 들어가게 됐다.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나는 그래서 싸이코 교수와 같이 밖에 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큰 병원에서는 병원 냄새가 났다.
병원 냄새는 뭔가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이질감을 준다.
그러면서도, 왠지 치료를 해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안도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싸이코 교수는 대기를 하는 곳에서 나에게 말을 남기고 좀 돌아다니기도 했다.
"귀찮은 일에 휘말려 버렸군. 내 시간이 얼마 짜리인데……."
싸이코 교수다운 말이었다.
병원에는 인적이 나름 좀 있었다.
간호사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따금씩 돌아다녔다.
싸이코 교수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회차에서는 나는 싸이코 교수와 그렇게 적대 관계가 되지도 않았다.
이전 회차에서는 내가 싸이코 교수를 문수경의 칼로 기습하려고 했었고, 그러다 보니까 싸이코 교수 또한 나에게 전기충격기와 테이저건을 가지고 맞섰다.
내가 유소은과 손을 잡고 사실은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리려고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싸이코 교수와 내가 싸울 일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상담을 통해서 싸이코 교수와는 좀 더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선택지를 잘 고른 것도 있겠지만, 분명 싸이코 교수는 나에게 깊게 공감했다.
외모 때문에 좆밥 취급을 당했던 나.
이보람을 좋아했지만 이보람의 보지에 자지를 존나 쑤시기는커녕, 나는 그녀에 의해 거세된 남자 취급을 당했었다는 이야기를 싸이코 교수에게 건네며 상담을 했었다.
그 때, 싸이코 교수는 분명 나에게 깊이 공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싸이코다.
원작의 원제 자체가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이다.
그래서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싸이코라고 하면, 공감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나와 한민국 교수가 유소은의 자결시도를 보고 처음 했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가장 먼저 유소은을 살리기 위해 지혈을 하고, 구급차를 부르게 하고, 그녀를 업고 달렸다.
그런데 싸이코 교수는 복도에서 내게 가장 처음으로 건넨 말이 '왜 내 교수실에서 그런 일을 했는가'였다.
나 또한 유소은이 왜 그런 것에 대한 궁금증은 강하게 일어난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가 됐던 것은 유소은을 살리는 것이었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싸이코 교수는 유소은의 안위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일처리를 하듯이 유소은을 대했다.
내가 유소은을 구하려는 것을 단순히 소소하게 돕는 정도의 일을 하고, 유소은에 대한 우려보다는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에 관해 신경이 무척 쓰여하는 듯했다.
싸이코 교수는 유소은의 안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커녕, 유소은을 못마땅해하며 "귀찮은 일에 휘말려 버렸군. 내 시간이 얼마 짜리인데……."와 같은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 싸이코 교수가, 나에게는 틀림없이 강하게 공감했었다.
여자만을 존나 밝히고 여러 학과 여대생들한테 자지를 쑤셔오고 있으며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싸이코 교수인데도 말이다.
그것 또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 유소은이 자결을 시도한 이유
2. 싸이코 교수가 나를 신뢰하는 이유
이 두 가지가, 지금의 나로서는 쉽사리 이해가 되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소은의 치료를 기다리는 그 일정한 시간 동안에는 특별한 선택지는 뜨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동안, 싸이코 교수 또한 앉아 있는 시간이 좀 되기는 했지만 서성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내기는 했다.
그렇게 유소은의 치료를 기다리며 시간을 좀 보낼 때였다.
의사가 나왔다.
싸이코 교수는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나만이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대기를 하는 의자에서 일어나 의사에게 다가갔고, 의사는 장갑과 마스크를 벗으며 나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선생님! 어떻게……. 됐나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게 답했다.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응급처치를 잘 해 주셨습니다. 하마터면 과다출혈로 인한 저혈량 쇼크사까지도 가능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비도 넘겼고, 지금은 잘 치료 마치고 수면하면서 안정을 취하고 있고요, 내일 정도에는 이야기 나누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의사에게 인사를 했다.
"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사는 친절했다.
살다 보면 많은 의사를 만나게 되는데, 어떤 의사는 환자를 돈으로 보고 대충대충 해서 보내려고 하기도 하는데, 어떤 의사는 그래도 환자가 궁금할 만한 내용을 잘 알려 주기도 한다.
다행히 이 의사는 후자에 해당하는 듯했고, 내가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것들도 나름 잘 알려 주었다.
한 숨 돌렸다.
나는 다시 대기실의 의자에 잠시 앉았다.
"후우."
유소은이 괜찮다는 말에 긴장이 좀 풀리면서 몸이 조금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병원 대기실의 의자는 나름 편한 편이었는데, 나는 여기에 좀 앉아 있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음……. 가는 게 맞나?"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조금 생각을 했다.
아직 여전히 선택지는 뜨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서는 딱히 그렇게 바로 해야 될 일이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
나는 유소은 루트를 타고 있다.
그런데 유소은이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는 동안 멀리 가서 그냥 자기도 좀 그랬다.
그럼 그냥 이 병원에서 날을 새는 게 나으려나?
딱히 뭔가 할 일이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문수경 누나도 떠올랐다.
문수경 누나는 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기 때문에 유소은을 만나러 나오기 직전에 내 자취방 화장실에 잘 묶고 입에 테이프도 붙여서 보호를 시켜 두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 밤에 무조건 싸이코 교수하고 승부를 본다고 생각을 하고 문수경 누나를 그렇게 묶어놓……. 아니, 보호시켜 놓고 왔는데."
문수경 누나가 떠올랐지만, 나와 유소은이 합동으로 펼친 전략이 실패로 돌아간 이상 문수경 누나를 당장 어떻게 하기도 조금 애매하긴 했다.
그래도 뭐……. 두세 끼 굶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괜찮기는 할 것이다.
정 싸이코 교수와의 승부가 늦어지게 된다면, 그래도 굶어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실 바이러스 격리소로 보내야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 전에 최대한, 그러니까 오늘 아니면 내일 오전 정도까지만 그래도 싸이코 교수하고 결착을 낸다면, 문수경 누나를 격리소에 보내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아.
그렇다면,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문수경 누나보다도, 어쩌면 싸이코 교수에게 걸었던 작전이 완전히 깨져버린 지금 시점에서 플랜 B를 준비해서 실행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택지가 뜬다면 그 선택지에 맞춰서 플랜을 준비할 수 있어서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선택지가 뜬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넓게 생각을 해 봐야 돼서 좀 더 어려운 점은 있었다.
내가 문수경 누나와 싸이코 교수와의 결착에 대한 플랜 B에 관해 생각을 하다 보니, 통로 쪽에서 싸이코 교수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뚜벅, 뚜벅…….
병원의 복도를 걸어서 싸이코 교수는 내 주변까지 왔다.
그리고, 교수는 내 옆자리에 와서 털썩 앉았다.
"크음~."
교수는 대기실에서 내 옆자리로 와서 앉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내 쪽을 보고는 말을 했다.
"자네는 오늘 남은 시간 일정이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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