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변수의 변수 (2)
* * *
교수실에 들어와 보니 유소은이 쓰러져 있었다.
쓰러져 있는 유소은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중심으로 흐른 피가 교수실의 바닥에 넓게 고여 있었다.
'……!'
나는 충격에 잠시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결……!'
그어진 유소은의 손목과 주변에 떨어져 있는 문수경의 칼은 그녀가 자결을 자행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왜……?"
유소은은 옆으로 잠자듯이 누워 있었다.
그어져 있는 유소은의 손목.
그것은 내가 건넸던 문수경의 칼로 그은 것임을 말해주듯, 내가 그녀에게 줬던 문수경의 칼이 그녀의 손 근처에 떨어져 있었으며,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유소은을 해칠 사람은 그녀 자신 하나밖에 없었다.
유소은의 하얀 카디건은 이미 팔 쪽부터 그녀의 피가 배어들어 있었다.
머리가 멍한 것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유소은이 이럴 이유가 있나?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만약 선택지가 뜨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멍한 상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시간을 보냈을 지도 모른다.
[지혈하고 구급차를 부른다]
[죽게 내버려둔다]
선택지가 뜬 다음에서야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어……?'
선택지에서는 지혈을 한 다음에 유소은을 살릴 것이냐, 아니면 그녀가 죽게 내버려둘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렇다는 말은, 지금 유소은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지금이라면 유소은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얼이 빠져 있는 한민국 교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교수님! 손수건, 손수건 하나만 주시고 119에 신고 좀 해 주세요!"
내가 교수에게 소리치자 그제서야 그도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그, 그래!"
교수는 다급하게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었다.
내가 말한 손수건을 찾기 위해서였을 거였다.
나는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낮춰서, 쓰러져 있는 유소은의 코 앞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역시, 살아있다……!'
유소은은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나는 유소은을 존나 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손수건! 여기 있네! 이거면 되겠나?"
"네!"
내가 유소은의 호흡을 체크할 동안 한민국 교수는 빠르게 손수건을 찾아서 내 쪽으로 건넸다.
나는 손수건을 받아들고는, 피가 흐르는 유소은의 손목에 손수건을 사용해서 단단하게 지혈을 했다.
'씨발……. 군대에서 익힌 게 다 쓸데없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써먹을 데가 있다니.'
군대의 구급법 시간에 배웠던 지혈의 요령이 완벽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 때 배웠던 느낌 같은 것은 남아있었다.
어쩌면 그 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나는 손목에서 피를 흘리는 유소은을 보며 어떻게 해야 되나 발만 구르는 상황에서 구급차를 불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지혈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한민국 교수가 119에 신고를 했다.
"급한 일입니다! 가르치는 학생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자해를 했어요! 당장 출동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주소는……!"
나는 유소은을 지혈한 다음 교수에게 말을 했다.
"교수님, 제가 소은이 업으려고 하는데, 좀만 도와 주세요!"
"알겠네!"
나는 유소은을 업고 1층으로 달리기로 했다.
구급차는 1층 중앙 쪽에 도착할 것이다.
구급차가 도착하면 4층까지 구급대원들이 올라올 텐데, 나는 그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내 쪽에서 유소은을 업고 내려가서 미리 1층에 가 있기로 생각한 거였다.
그리고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있는 유소은을 혼자 힘으로 업는 것보다는, 함께 있는 싸이코 교수의 도움을 받아서 내게 업히도록 하는 편이 당연히 더 낫다.
유소은을 들쳐 업는 이 순간은 상당히 골때리는 순간이기는 했다.
최악의 적수인 싸이코 교수, 그와 이렇게 힘을 합치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이전 회차에서만 해도 나는 싸이코 교수와 서로 칼과 전기충격기를 맞대며 목숨을 걸고 개지랄을 하며 사투를 벌였는데, 그와 이렇게 사이좋게 쓰러진 유소은을 부축하고 있다니.
구급차는 바로 오고 있을 것이었고, 나는 싸이코 교수와 함께 복도를 가로질렀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나와 싸이코 교수의 발걸음이 바빴다.
나는 4층에서 1층까지 유소은을 업고 내려가서 중앙현관으로 갈 거였고, 싸이코 교수도 그런 나와 동행을 했다.
빠르게 가는 도중에 싸이코 교수는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해 오기도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갑자기 내 교수실에 와서 자해를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자네는 혹시 알고 있나? 이 학생,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
나도 그게 궁금하다.
"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소은이가 대체 왜……!"
나는 유소은을 업고 싸이코 교수와 함께 복도를 빠르게 걸으며 생각했다.
유소은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줬다.
원래 계획에서는 내가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 본체를 빼돌리는 역할이었는데, 실 바이러스의 치료제 자료로 한 탕을 해먹고 싶다는 유소은의 뜻대로 그녀에게 컴퓨터 본체를 빼돌리는 역할을 넘기기까지 했다.
유소은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큰 돈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녀는 컴퓨터 본체만 빼돌려서 도망치면 되는 마지막 순간에 자결을 선택했다.
그리고 유소은이 흘린 피의 양으로 봤을 때, 그녀가 자결을 시도한 시간은 바로 방금 전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됐다.
즉 내가 싸이코 교수를 유인해서 면담을 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유소은은 자결을 시도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나는 유소은이 왜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도 알게 됐다.
그런데 역시, 이유에 대해서는 나는 유소은에게 반드시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대답을 해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복도를 지나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시나리오 때문에 유소은을 살려야 되는 게 맞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도 있지만, 그녀를 살리고 싶은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는 그녀가 좋았다.
유소은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기왕이면 차분한 척 하는 그녀의 목소리보다, 본색을 드러낼 때의 차갑고 칼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발을 딛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흔들린다.
나는 몸의 무게중심을 조금 앞으로 기울여 계단을 내려가며, 그녀의 엉덩이 아래에 받친 손을 추스려 그녀를 잘 들쳐 업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빙글,
4층에서 1층까지,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반 층마다 돌면서 아래로 향한다.
싸이코 교수는 인코스를 나에게 내주고 바깥쪽으로 계탄을 타고 내려간다.
내게 밀착해 업혀 있는 유소은에게서 나는 냄새가 감미로웠다.
여자에게서는 왜 이런 좋은 냄새가 나는 걸까.
그런 그녀를 업고 1층으로 왔다.
1층에 왔을 때는 아직 구급차는 도착하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구급차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확실히 더 빨리 대학교 건물의 중앙 현관에 도착했다.
구급차는 학교의 중앙 현관 앞에 도착하자마자 멈춰 섰고, 뒷문이 열리며 한 여자 구급대원과 남자 구급대원 두 명이 동시에 내렸다.
구급차에서 내린 주황색 옷을 입은 여자 구급대원이 물었다.
"혹시 신고하신 분이신가요?"
나는 유소은을 업고 있는 중이었고, 싸이코 교수가 구급대원에게 대답했다.
"예! 제 제자가, 그만 자해를 하고 쓰러졌습니다!"
남자 구급대원과 여자 구급대원은, 내가 업고 있는 유소은을 함께 들것으로 인도하는 것을 도왔다.
"환자분 이송하겠습니다! 보호자 분들도 같이 타시죠!"
유소은을 구급차의 들것에 뉘여서 구급차 안의 한 쪽 모서리에 잘 눕게 하는 동안, 나와 싸이코 교수는 구급대원들과 함께 구급차에 탑승했다.
문과 가까이에 앉은 구급대원은 익숙하게 통으로 된 구급차 뒤쪽의 문을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휘이익, 탁!
구급차가 출발하고, 나는 상태를 체크한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저……. 괜찮을까요?"
"일단 맥박과 호흡은 정상입니다. 보니까 피를 흘리고 쇼크가 온 것 같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께 들어보셔야 돼요."
나는 구급대원의 말에 대답했다.
"네."
다행히도 당장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조금은 안도하며 구급차의 작은 의자에 앉아 가는 채로 뒤쪽에 몸을 기댔다.
구급차의 덜컹거림이 느껴졌다.
나는 구급차로 모두와 함께 병원으로 가면서 생각을 했다.
'이거 어떻게 되는 거지……. 기회는 지나간 건가? 아니……. 유소은이 깨어나면 일단 한 번 물어보자. 분명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직 유소은은 살아있다.
그렇다고 해도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유소은이 살아있다고 해도 나의 이전의 어떤 선택으로 인해 유소은의 루트에서 벗어나 다른 루트를 이미 타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싸이코 교수와 상담을 하던 중에 교수실로 되돌아갈 거냐는 뜬금없는 선택지 같은 게 정답이었을 지도…….'
아직은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나는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옆자리에 앉은 교수와 중간에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교수님."
"음."
싸이코 교수는 멍하니 깍지낀 손 위에 턱을 올리고 있다가 나를 보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교수실 카드키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교수님밖에 없지 않습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