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상담을 받다 (3)
* * *
'예쁜 여자와의 관계가 있었던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아서 늙어 버린 뒤에 돈과 명예가 충분하다면 그것은 행복한 인생이냐고?'
싸이코 교수를 테이블에서 마주보며 그의 질문과 함께 뜬 [그렇다]와 [아니다]의 선택지에서 ,나는 고민했다.
답이 뭘까?
나는 답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연령대에 맞게 예쁜 여자와 잘 섹스를 해 가는 것의 가치, 그것을 싸이코 교수는 높게 생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돈과 명예를 나중에 가진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운명적이든 필연적이든 예쁜 여자를 만나서 섹스를 하지 못한다고 하면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게 싸이코 교수가 원하는 답일 것이다.
나는 일단 싸이코 교수와 시간을 끌어야 되기 때문에 정답을 말해야 했다.
그래야 그와 좀 더 대화를 이끌어 시간을 보내게 돼서 유소은이 계획을 실행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답과는 별개로, 나는 싸이코 교수의 질문을 듣고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닌 그냥 나라면 어떤 답을 했을지도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돈과 명예.
그것은 중요할 것이다.
돈을 가져야만 한다.
일정 돈을 가지지 못하면 개좆밥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일정 돈을 가지면 비참한 삶에서는 그래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면 대우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면 존경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명예 또한 마찬가지다.
돈만 많이 번다면 졸부 정도의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돈에 명예까지 있다면, 가령 돈이 많은데 CEO로서 회사도 잘 경영하거나, 돈이 많은데 사회 고위층 인사라면, 그는 더이상 졸부가 아니다.
돈에 명예가 더해지면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우러러보일 정도의 사람이 될 것이다.
이처럼 돈과 명예를 가지면 존나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돈과 명예를 가졌다고 해도, 싸이코 교수의 말처럼 예쁜 여자와 섹스하지 못하고 노년을 맞이하게 됐다면?
답을 떠나서, 그건 존나 슬플 것 같다.
돈은 왜 버는가?
명예는 왜 얻으려고 하는가?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수없이 많은 이유들 중 가장 큰 것 하나는 가족의 행복 아닐까?
가족은 두 종류다.
내가 선택되어진 부모님과 내가 이루는 가족이 첫 번째고, 내가 선택하는 아내와 자식과 더불어 이루는 가족이 두 번째다.
그 중 두 번째인, 내가 만들어가는 가족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쁘고 착한 아내다.
예쁘고 착한 여자와 가족이 돼서, 섹스하려고 침대에서 다 벗고 좆 박고 끌어안았을 때 가까이에서 본 그 얼굴이 사랑스러움을 느끼면서, 2세도 그 예쁘고 착한 여자와 나를 반반씩 닮은 아들딸을 낳아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존나 좋은 거 아닐까?
만약 돈과 명예를 다 가졌어도, 여자는 좆도 못 만난 인생을 살았다면?
혹은 늙은 이후에 돈과 명예는 있는데 나이를 먹어버려서 여자를 못 만나고 있는데, 나보다 돈과 명예가 좆도 없는 어린 애들은 예쁜 여자들하고 존나 섹스하고 다니고, 그런 걸 보면 더 존나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지 않을까?
그러면 돈과 명예가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리고 원래 싸이코 교수가 원하는 답을 하기로 생각했던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아니요. 예쁜 여자가 없다면, 돈과 명예가 있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있는 교수를 보며 말했다.
"사람마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각자의 목적이 있을 겁니다. 저한테 있어서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하면, 이후에 제가 만들어갈 저의 가족입니다. 따라서, 그 가족 형성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쁘고 착한 여자야말로 그 목적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저의 관점으로는, 아무리 노년기에 돈과 명예를 크게 얻는다 해도 전여친이나 그 이후에 생기는 와이프 등 다른 예쁜 여자들을 제대로 안아보지 못했던 삶을 살았다면, 저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교수는 내 말을 전부 진중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
싸이코 교수는 나의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싸이코 교수의 모습은, 나를 보며 뭔가를 떠올리는 듯 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싸이코 교수를 바라봤다.
"……."
"……."
잠시 서로를 보며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나도 잠시 녹차의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싸이코 교수를 다시 보았을 때는, 싸이코 교수는 한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크게 훔쳤다.
기분 탓인지 붉어진 눈시울에 맺히려고 하는 눈물을 닦아내려고 한 것 같기도 한 느낌도 들었다.
싸이코 교수는 잠시 말이 없다가 조금 뒤에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처럼…….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교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조금…….'을 말할 때의 싸이코 교수의 목소리는 터져나오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것 같았다.
교수는 왼손의 손등으로 눈의 땀을 닦듯 지나친다.
정장 차림인 싸이코 교수의 손목의 커다란 알이 박힌 명품 시계가 하얀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인다.
그 때, 또 하나의 선택지가 떴다.
[상담을 종료하고 교수와 함께 교수실로 간다]
[상담을 종료하고 혼자 집에 돌아간다]
[교수의 말을 기다려 상담을 지속한다]
나는 선택지를 보며 이게 뭔가 싶었다.
'아니, 씨발, 상담 도중에 이건 또 뭐야?'
아직이다.
아직 유소은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유소은이 컴퓨터 본체를 들고 교문까지 가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선택지가 나오는 거지?
상담을 종료하고 교수실로 가는 선택지?
조금, 아니, 상당히 어이없는 선택지다.
상담을 종료하고 교수실로 싸이코 교수와 함께 교수실로 가는 선택지가 있고, 상담을 종료하고 혼자 집에 가는 선택지가 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은 꽤 끌었는데, 유소은한테서는 아직 연락이…….'
언뜻 보면 상담을 지속하는 것을 고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아직 유소은한테 연락이 안 왔으니까.
유소은한테 연락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 선택지에도 의미가 있는 걸까?
유소은한테 아직 연락도 안 왔는데 교수하고 같이 교수실로 가는 선택을 하거나, 혹은 혼자 집으로 가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고?
그런데 그러한 선택지들이 의미가 있다고 해도, 지금 내 상황에서 상담, 즉 시간을 끄는 것을 종료하는 두 개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설령 유소은이 교문을 넘어 본체를 가지고 돌아간 뒤라서 그녀가 역할을 다 수행한 뒤라고 해도, 여기서 시간을 더 끄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래서 당연한 선택을 했다.
'상담을 더 이어간다.'
교수가 잠깐 말이 없었을 때에도, 나는 급작스럽게 상담을 마치면 안 되겠냐는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고 싸이코 교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교수의 말을 기다려 보자.'
길지 않은 제한시간이 지나간 이후였다.
교수는 다시 내게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나이가 들었어. 부모는 돌아가신 지가 좀 됐다네."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난 혼자 살고 있지. 이혼한 지는 십 년이 좀 넘었고, 아내는 딸의 친권을 가지고 해외로 나간 지 오래야."
교수는 테이블보다 조금 위에서 두 손바닥을 위쪽을 향하게 하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무슨 소용인가. 돈과 명예가 있어도, 나를 자랑스러워할 부모가 없고, 나를 평생의 동반자로 생각할 아내가 없고, 나를 존경할 자식이 없는데. 돈과 명예는,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의 말이 모두 맞네. 아무 의미 없어. 여자가 없이는,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이는, 돈과 명예는 무의미해. 하지만……. 시간은 돌이킬 수가 없지."
교수는 그리고 한 손의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된 것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외모가 아닐까 싶네. 만약 못생긴 게 아니라고 한다면, 돈 없이도 여자를 만날 수 있는 20대 때 순수한 사랑을 해서 순수한 결혼을 하고, 그 이후에 만든 행복한 가정을 지키며 살아가면서, 추후 거둬들일 돈과 명예를 기쁘게 가족 구성원들과 공유할 수 있을 텐데."
교수는 그리고 나를 보고 말했다.
"자네는 못생겼기 때문에 신뢰가 가면서도, 생각이 아주 많이 열려 있어. 그런 자네가, 마음에 드네."
뭔가 좀 이상한 칭찬이긴 했다.
'아니 씨발……. 생각이 열려 있다는 말을 들은 건 교수한테 맞춰서 내가 잘 선택지를 고른 것 때문이라 쳐도, 못생겨서 신뢰가 간다는 칭찬을 받다니……!'
나는 일단 적당히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는 나를 보며 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 혹시 조교가 되어보지 않겠나."
"네?"
싸이코 교수는 내가 상당히 마음에 든 듯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선택지에서 한 번 정도는 실수를 했던 것 같은데 대부분의 선택지에서 싸이코 교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그것이 영향을 준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조교 자리에는 문수경 누나가 있는데……."
교수는 별 일 아니라는 듯한 투로 대답했다.
"그래. 학과 조교는 문수경이가 맡고 있지. 거기에 내가 입김을 넣어서 학과 조교를 더 뽑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조교는 그 조교하고는 조금 다르네.
"그럼 어떤……."
"내 전속 조교가 되는 거야."
"전속 조교요?"
싸이코 교수는 나를 보는 그대로 말을 했다.
"음. 자네는 몰랐을 수도 있겠군. 조교는 두 종류가 있어. 학과의 일을 맡는 조교가 있고, 교수의 연구를 돕는 조교가 있네. 후자의 경우에는 주로 대학원생이 맡기 때문에 학부생은 모를 수 있고. 돈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사적으로 고용해서 돈은 부족하지 않게 줄 수 있네. 그리고……. 자네와는 아주 뜻이 잘 맞아. 함께 해 봐도 좋을 것 같네. 해 볼 생각이 있나?"
교수가 말을 하고, 선택지가 발생했다.
[전속 조교를 할 생각이 있다]
[전속 조교를 할 생각이 없다]
[모르겠다]
이 선택지에서는 당연히 전속 조교를 할 생각이 있다고 해야 시간을 더 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선택지를 고르기로 했다.
"예. 교수님의 전속 조교, 한 번 해 보고 싶습니다."
내가 싸이코 교수의 제안대로 전속 교수를 할 생각이 있다고 하자 그가 내게 말했다.
"그러면 내가 딱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싸이코 교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다른 것에 관해서는, 나하고 생각이 아주 잘 맞겠다는 걸 알았어. 그런데 그래도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네."
"예."
그는 한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며 여전히 내 쪽을 응시하는 채로 말했다.
"자네한테 만약, 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힘이 생긴다면, 그런데 만약 그 힘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악이라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정의롭지 않은 힘이요?"
싸이코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에 자네가 엄청난 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고, 엄청난 힘을 가지는 그 바이러스의 힘을 오직 자네만이 컨트롤할 수 있다면, 그 힘으로, 자네는 세계를 지배하겠나, 아니면 국가에 그 자료를 넘겨 아무런 대가 없이 사회 발전에 환원하겠나?"
싸이코 교수는 내게 가정을 하는 척 하면서 상당히 직접적으로 물어왔다.
'내가 바이러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싸이코 교수로서는 물론 내가 실 바이러스에 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지만, 그래도 그렇지 존나 대놓고 나한테 물어보고 있는 거였다.
교수가 바이러스로 인한 힘을 가졌을 경우에 관해 내게 묻고 나자 선택지가 등장했다.
[힘을 내가 지배한다]
[힘을 대가없이 국가에 환원한다]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어떤 힘이냐에 따라 다르다]
나는 또 싸이코 교수가 원하는 '정답'이 뭔지를 생각해 봤다.
바이러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내가 가지게 될 경우라고 한다면, 그것은 싸이코 교수와 손을 잡을 경우에 그 힘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를 내게 물어보는 것과 같다.
이런 때에 만약 내가 3, 4번처럼 애매하게 대답을 하거나 2번처럼 힘을 반납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싸이코 교수는 절대 나하고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지키면서 시간을 더 끌기 위해서는 1번을 선택해야 된다.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리고는 싸이코 교수에게 답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 힘은, 결코 새어나가는 일 없이 제가 지배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과연 싸이코 교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호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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