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서민의 욕심 (1)
* * *
모텔은 고요했다.
틀어 놓은 TV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왠지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그리고 섹스를 마치고 함께 씻고 나온 유소은도 옆에 누웠다.
유소은은 알몸으로 내 옆에 누워있는 게 부끄러운지 이불을 덮었다.
하얀 색으로 맞춰져 있는 모텔의 침대 시트와 이불이 고슬고슬하다는 기분이 든다.
섹스했다.
그것도, 존나 섹스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잘 진행해 나가고 있다 싶었다.
메인 히로인인 유소은과의 섹스는, 확실히 내가 유소은 루트로 잘 진행을 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직 시간은 꽤 있었다.
나와 유소은은 대략 싸이코 교수와 만나기 1시간 반 정도에 만났고, 회의를 짧게 마치고 바로 모텔로 왔기 때문에 아직 학교로 갈 시간은 상당히 남아있는 것이다.
나도, 유소은도, 잠시 말없이, 그냥 틀어놓은 TV를 봤다.
그런 섹스 이후의 휴식 같은 적막감을 깬 것은 나도 유소은도 아닌, 바로 선택지였다.
[계획의 변경에 관해 묻는다]
[그냥 넘어간다]
'이건……!'
선택지에서는, 내게 유소은이 작전을 왜 변경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볼 것인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나도 궁금하기는 했던 거였다.
짐작되는 이유는 있었다.
내가 만약 컴퓨터를 빼돌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경우 유소은은 싸이코 교수를 직접 상대하며 시간을 끌어야 되는데, 아무래도 싸이코 교수가 있는 쪽이 더 위험해 보이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그게 조금 미심쩍었다.
내 느낌상으로는, 유소은이 그렇게 싸이코 교수를 무서워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나는 이건 풀고 가야 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분명 미심쩍은 면이 있는데도 그냥 넘어가는 건, 이후에 어떤 변수를 만들 수 있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유소은과 작전에 관해 낱낱이 이야기를 해 봤으면 했다.
그리고, 나와 유소은은 방금 섹스를 했다.
섹스 이전의 유소은은 작전 변경에 관해 상당히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듯 했지만, 섹스 이후에 나와 유소은은 한창 가까워졌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지도 몰랐다.
나는 선택지에서 계획의 변경에 관해 물어보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이부자리를 조금 치우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으며 유소은을 내려다보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소은아."
유소은은 이불로 알몸을, 그리고 코 아래쪽까지를 덮어 가리고 누워 있는 상태로 나에게 대답했다.
"응?"
나는 완전히 직접적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궁금해서 말이야. 한민국 교수 상대할 때 나하고 네 역할을 바꾸자고 한 거, 이유 알려줄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묻자, 유소은은 시선을 피했다.
내 말을 분명히 유소은은 들었겠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조금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유소은은 말하지 않았다.
유소은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나처럼 앉으며, 이불로 젖과 몸을 가리고는 시선을 피했다.
나는 조금 더 유소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보니까, 유소은은 대답 대신 내 쪽에서 고개를 돌린 채 눈물짓고 있었다.
'울어?'
유소은처럼 존나 예쁜 애가 울고 있으니까 마음이 약해졌다.
나는 일단 유소은을 달래 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녀에게 왜 우냐고 손을 대려고 했다.
그렇게 내가 유소은 쪽으로 손을 뻗으려고 할 때, 선택지가 떴다.
[더 추궁한다]
[계획 변경은 상관없다고 한다]
선택지에서는 작전 변경에 관해서 유소은에게 더 물어볼 것인지 여기서 발을 뺄 것인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원래는 달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지만, 선택지를 보자 추궁을 해야 된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굳이 이렇게 작전 변경에 관해 묻는 선택지가 이어서 나올 리가 없다.
시나리오를 진행할 때 그런 것에 유의해야 된다.
중요한 것을 모르고 시나리오를 진행하게 되면 당장은 괜찮을 수 있는데 필요한 순간에 뭔가가 비어버릴 수가 있다.
정보력은 때로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그걸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에 따라 나중에 엔딩을 가를 때 영향을 미칠 정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야겜을 어느 정도 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추궁했다.
"알려줘, 소은아. 뭐라고 안 할게. 왜 역할을 바꾸자고 한 거야?"
나는 추궁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소은은 내게 별로 대답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나와는 다른 쪽을 보며, 앉아서 이불을 감싸안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택지대로 더 추궁을 해 봤지만, 일단은 유소은은 내게 작전 변경에 관한 걸 말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선택지가 떴다.
[더 추궁한다]
[누워서 쉰다]
나는 마음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씨발, 나랑 해보자는 거야?'
무슨 씨발 유비의 삼고초려도 아니고 3번까지 똑같은 선택지를 밀고 나갈 것인가를 묻는 것에 대해,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추궁을 선택하기로 했다.
"저기, 소은아."
나는 유소은의 맨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나는 유소은의 시야의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고는 그녀와 좀 더 가깝게 다가간 다음 그녀에게 말을 했다.
"말해줘."
유소은은 애처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단발머리에 청순한 얼굴로 눈가에 눈물이 맺힌 유소은이 이불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남자라면 이 모습을 본다면 무조건 보호본능이 존나 넘쳐흐르게 될 것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선택지에 따라 유소은을 연속으로 추궁하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그렇게 3번을 물었을 때였다.
유소은은 내 손을 툭 쳐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마치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완전 호구 새끼는 아니네, 이거."
나는 그런 유소은을 보고 존나 심장마비가 올 정도로 존나 놀랐다.
'어?'
나는 원작에서도 유소은의 모습은 존나 차분한 모범생같은 모습밖에 보지 못했었고, 내가 주인공이 된 지금까지의 모든 회차에서 나는 유소은을 조신하고 얌전한 요조숙녀의 모습으로만 봤었다.
그래서 유소은이 내게 약간 썩소를 지으며 나한테 일침을 가하는 그런 모습은 내게 놀라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평정심을 찾으며 말했다.
"그치, 뭐. 나 호구 졸업 했어, 소은아. 옛날의 나로 보지 말아 줄래?"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원작의 주인공이 오랫동안 호구짓을 해 온 것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쩄든 내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유소은은 지금까지 내게 보여줬던 불쌍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상당히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페에서 안 바꿔주면 집에 가겠다고 그렇게 세게 나왔는데도, 아직도 그게 그렇게 궁금해? 너도 참 독하다. 내가 세게 나온 것 뿐만이 아니라 울기까지 했는데."
나는 유소은에게 대답했다.
"안 바꿔주겠다는 거 아냐. 네 말대로 교수하고는 내가 시간 끌어 줄게. 단지, 이유가 궁금할 뿐이야. 그거하고 그건 다른 문제잖아?"
유소은은 내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감싸고 있는 이불을 조금 바로잡았다.
유소은은 늘 뭔가 겁먹은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던 평소의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시니컬한 얼굴과 몸짓을 했다.
그렇게 내가 3번을 추궁한 끝에, 유소은은 내게 말했다.
"그래, 씨발. 작전인지 뭔지, 깨려면 깨. 그래, 나, 사실 한민국 교수의 컴퓨터, 나 혼자 들고 도망가려고 했어."
그녀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엉?"
그렇게 되면, 좆될 뻔 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유소은에게 물었다.
"아니, 소은아, 그러면, 네가 혼자 컴퓨터 들고 나르면, 남겨진 나는 한민국 교수하고 둘이서 씨발, 그냥 한없이 있으라는 말이야?"
나와 유소은의 계획은 한 쪽이 시간을 끌고 나서 컴퓨터를 다른 곳에 옮겨놓고는 시간을 끌고 있는 교수 쪽으로 가서 둘이 합류를 한 다음에 돌아가는 계획이다.
따라서 만약 유소은이 컴퓨터를 그냥 혼자 가지고 내빼버리고 나 혼자 남게 된 상황이 왔다면…….
그랬다면 나는 한없이 싸이코 교수하고 둘이 시간 끌면서 유소은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한민국 교수와 같이 교수실로 올라갔다가 컴퓨터가 없어진 상황을 맞이해야 됐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나는 씨발 2회차에서는 그래도 기습으로 유리하게 싸웠던 전기충격기 씬을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하며 지져지게 될 뻔 했다.
내가 유소은에게 너혼자 컴퓨터를 들고 나르면 나는 어쩌라는 것인가에 관해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너는 왜 그렇게 착해? 바보같이."
"뭐가?"
나는 갑자기 유소은이 나한테 착하다고 하는 게 뭘 말하는 건지 순간 알 수 없어 물었다.
그러자 유소은이 내게 말했다.
"너는 실 바이러스의 치료제 자료가 담긴 한민국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리면, 국가 기관에 넘겨서 치료제를 만들려고 했잖아?"
그건 당연한 말이었다.
"어. 바이러스 전파자들은 정말 어려운 상황이잖아, 끝없이 섹스만 해야 되고."
말을 해 놓고 보니까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하고 섹스만 해야 된다는 말하고 앞뒤가 왠지 좀 안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그게 사실이기는 했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하자 유소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그러니까 네가 진짜 너무 착해 빠졌다는 거야, 네가 무슨 천사야?"
"치료제 만드는 게 왜?"
"그래, 치료제 만들어야지. 근데, 왜 그걸 국가 기관이 공짜로 받아서 치료제를 만들게 해야 되냐는 거야."
유소은의 눈이 반짝였다.
"팔아야지! 어? 나라가 해 주는 게 뭔데? 너처럼 착해 빠진 고위층도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꽤 많은 사람들은 다들 세금 잔치 하면서 자기들은 잘 먹고 잘 살고, 밑에만 힘들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들 잘 살면서 자기 욕심 채우는 정책만 만들어대고, 아무런 관심도 없잖아! 개 씹새끼들이!"
판다?
치료제를?
그건 실제로 생각해 보지 않은 거였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
내 목적은 어차피 싸이코 교수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실 바이러스로 섹스만 하게 된 사람들을 치료제로 구하는 것이다.
무료로 국가 기관에다가 자료를 넘기든, 유소은의 말처럼 돈을 받고 치료제에 관한 자료를 넘기든, 그건 나에게는 관계없다.
그렇게 생각을 할 때, 선택지가 떴다.
[유소은의 생각에 동의한다]
[유소은의 말을 부정한다]
나는 무료든 유료든 관계없다.
그래서, 나는 웃음을 지으며 유소은에게 말했다.
"그래, 팔아."
그렇게 내가 말을 하자 이번에는 유소은 쪽이 당황한 듯해 보였다.
"……?"
유소은은 잠깐 커진 눈으로 나를 보다가, 조금 뒤에 나에게 말을 했다.
"무슨 속셈이야? 팔아도……. 된다고? 내가? 넌……. 무슨 생각으로……!"
나는 유소은에게 있는 대로 말을 했다.
"나라에 무료로 넘기든 유료로 넘기든 어차피 그 사람들이야 세금으로 하는 거니까 돈 안 아낄 거고, 일단 치료제만 어떻게든 나오면 사람들을 구하는 건 똑같잖아."
나는 격리소의 모습을 실제로 봤다.
온통 섹스를 하는 사람들…….
그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음……. 고생한다고 하기는 좀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사람들을 구해야 된다.
목적은 그것뿐이고 유소은이 중간에 돈을 챙기는 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닌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관해 말을 하자, 그제서야 유소은은 표정을 풀고는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바보……."
나는 유소은의 생각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선택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제는 그녀가 돈을 컴퓨터를 빼돌려서 혼자서 먼저 돌아가는 방향으로 작전을 수정해 보기로 했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그런 거라면. 그럼 이제, 작전을 수정해 보자고! 와, 우리 소은이, 부자 되겠는데?"
유소은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못내 미안한지 알몸으로 이불을 가리고 앉은 채 내 눈을 피하며 힘없이 웃었다.
내 선택은 이번에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만약 유소은을 추궁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갑자기 없어져버린 컴퓨터 앞에서 싸이코 교수에 의해 전기구이가 될 뻔 했는데, 완벽한 선택으로 그 결말을 피해, 나는 새로운 국면으로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