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계획 수립 (3)
* * *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유소은을 붙잡는 것, 혹은 다른 여자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선택지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유소은은 가방을 들고 일어나서 가려고 했는데, 일단 나는 테이블에서 바깥쪽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비키지 않고 잠깐 시간을 벌어봤다.
"옆으로 나와 줄래?"
"잠깐만. 잠깐만 생각 좀 해 볼게."
선택지의 시간제한이 있는 동안에는 충분히 고민을 해 볼 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차분하게 분석을 해 보기로 했다.
한 걸음 차이로 클리어까지는 닿지 못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빠른 분석력과 판단으로 많은 위기들을 넘겼다.
'일단 유소은을 잡는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갈까?'
이번 선택지에서 어떤 게 나한테 더 유리할 지를 분석적으로 판단해 본다면, 둘 중에 유소은을 붙잡는 게 나로서는 더 유리한 판단이라고 본다.
이유는 확실하다.
이전 회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을 해 보면,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메인 히로인에서 멀어질수록 시나리오 진행이 좆같이 된다는 점이다.
이전 회차에서 나는 총 3명의 루트를 시도했었다.
김아영, 문수경, 민혜지.
이전 회차에서 나는 진 히로인인 김아영을 만나지 못했고, 김아영을 제외한 메인 히로인도 만나지 못한 가운데, 서브 히로인인 문수경을 만났고, 문수경보다 좀 더 서브 히로인인 민혜지를 만났다.
거기서 나는 서브로 갈수록 이상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김아영의 진엔딩이야 내가 플레이어였을 때 봤으니까 알고 있는데, 존나 쉽다.
서브인 문수경은 김아영 루트에 비해 판단이 더 쉽지 않았고, 정말 싸이코 교수하고 맞닥뜨려서 전쟁은 졌지만 그래도 전투는 이긴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서브인 민혜지 루트의 경우에는 무슨 군부대에서 총기를 탈취해서 탈출해야 된다.
군부대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무슨 특수부대 최정예 요원급의 전투 승리라도 만들어야 되는 건가? 그것도 나도 민혜지도 감염자인 상황에서?
이렇게 보면 답은 나온다.
서브로 밀릴수록 불리하다.
최대한, 메인에서 결판을 내야 된다.
유소은에게서는 일단 의심의 여지는 보이기는 한다.
그녀는 왜 굳이 나하고 역할을 바꿔서 하자는 걸까?
거기에 관한 의문점은 존재한다.
그녀가 싸이코 교수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역할을 피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하면 편하지만 뭔가 그것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석연치 않은 마음은 있다.
그러나 어쨌든 유소은도 메인 히로인에 속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여기서 유소은을 놓치고 다른 새로 접하게 될 서브 히로인의 루트로 가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쉽지 않아질 수 있다는 게 내 분석의 결과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선택지 시간제한의 모래시계가 다 되기 전에 유소은에게 말을 건넸다.
"하하, 아, 소은아. 앉아 봐."
나는 유소은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는 일어나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소은아.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무조건 안 바꾼다는 게 아냐. 원래대로 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소은이 네가 강력하게 원한다고 하면, 나도 바꾸는 쪽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지. 그게 회의잖아? 서로의 의견을 반영해서 작전을 만들어 보는 거."
나는 유소은의 뜻대로 작전에 있어서 나와 그녀의 역할을 바꾸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자 유소은은 나를 보며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바꿔줄거야?"
나는 유소은이 무슨 생각인지 조금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유소은의 감동어린 얼굴에 경계심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와, 씨발. 이렇게 예쁜 애가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얼굴을 하니까 하니까 존나 좋네.'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마음을 다시 다잡으며 기회가 되면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은 이 석연치 않은 기분을 떨쳐낼 수 있는 걸 알아내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쨌거나 우선은, 유소은을 한 번 더 붙잡으면서 내가 제시한 대로 작전의 역할은 둘이 바꾸는 걸로 한다.
"응. 바꿔, 소은아.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교수를 유인하고, 네가 컴퓨터를 빼돌리는 걸로!"
"고마워, 상훈아."
"하하, 일단 앉아 보라고. 우리, 이렇게 되면 원래의 작전 계획에서 조금 보완해야 될 게 있는지도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으니까."
"응!"
유소은은 이제는 내 말에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작전 설명을 했던 종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봤을 땐, 우리 역할이 바뀐다고 해도 특별히 바꿔야 될 점은 없는 것 같아. 컴퓨터 선 뽑는 법은 알지?"
"응. 나 데스크탑 쓰는데, 조립으로 컴퓨터도 내가 직접 맞춰. 선 뽑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오, 진짜? 대박인데? 조립으로 하면 직접 맞출 때 어렵지 않아?"
"연습했어."
"아, 해본 적 있구나."
일단 중요한게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인데, 컴퓨터 본체의 선들을 뽑는 건 원래 상당히 간단하다.
그런데 아예 해본 적이 없으면 약간 헤맬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수행해야 되는 작전인 만큼 바로바로 선을 뽑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소은이 나 이상으로 컴퓨터하고 친해 보여서, 나는 꽤나 안심했다.
선을 뽑는 것을 훨씬 넘어서서, 컴퓨터를 조립할 수도 있다니.
유소은은 나와의 대화를 더 이어갔다.
"솔직히 요새는 좀만 찾아보면 다 나오잖아. 못한다고 하는 건 그냥 찾아보기 귀찮은 것 뿐인 게 아닐까 싶어."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좀 아끼고 싶었거든."
그 말이 맞다.
조립을 하면 동 성능의 컴퓨터의 경우에 유명 메이커나 완품으로 나온 것에 비해 더 싸다.
"음, 물론 싸면 좋지."
"그래. 싸면 좋지."
유소은은 내 말을 똑같이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혹시……. 나한테 다른 것도 싸 보지 않을래?"
나는 이번에는 유소은의 말을 듣고, 유소은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지금까지 나와 유소은은 컴퓨터의 가격이 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싸다.
그래. 싸다. 그런데, 너한테 다른 걸 싸?
나는 언뜻 생각나는 게유소은의 보지에 정액을 싸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인 유소은이 그런 말을 했을 리는 없고…….
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소은과의 대화를 다시 이어갔다.
"하하, 아, 그래. 여기 카페니까, 네가 뭐, 싸 가고 싶은 게 있다는 거지? 포장? 어, 쿠키? 조각케익?"
내가 커버를 치자 유소은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싸 가는 거 말고 싸는 거."
"그니까. 싸는 거."
나는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음……. 뭐지? 그……. 랩으로 싸?"
내가 쿠키를 싸가는 것에서 랩으로 싸가는 것까지 이야기를 하자, 유소은은 마치 장난을 들킨 아이처럼 맑게 웃었다.
"호호호! 김상훈, 너 뭐야, 왜 보람이한테 하는 거하고 나한테 하는 게 그렇게 달라?"
"어? 내가 뭘?"
내가 묻자 옆자리의 유소은이 내게 답했다.
"이보람이 만약에 다른 것도 싸 보지 않을 거냐고 했으면, 너는 아마 '너한테 싸 주기에는 내 단백질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지. 단백질 보충제라도 비싼 걸로 사다 주면서 무릎 꿇고 제발 싸 주세요, 라고 해야 한 번 생각해 볼 만 하고, 안 그러면 어림도 없어, 존만한 년아.'라고 했을 것 같은데."
유소은의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진짜 아마도 이보람이 싸는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그런 반응을 이보람에게 보였을 것이다.
"하하하, 아, 왠지 그랬을 것도 같네? 아, 그 대사를 소은이 너한테 들으니까 왠지 재밌기도 한데?"
내가 웃으며 말하자 유소은은 웃음이 지나간 뒤의 미소 짓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끔은 부러웠어. 너하고 이보람의 그런 관계."
유소은은 존나 예뻐서, 이렇게 바로 옆자리에서 미소지으면서 나를 보기만 해도 솔직히 존나 설레기는 했다.
또 이 물리적인 거리라는 게, 진짜 무시할 수가 없다.
바로 옆에서 이렇게 예쁜 여자의 몸이 있으면, 자지가 그녀의 몸에 반응해 버린다.
"나하고 이보람의 관계가 부럽다고? 허구한 날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데."
내가 대답하자 유소은이 말했다.
"이 아무런 걱정 없는 캠퍼스에서 평범하게 낭만을 즐기면서, 시덥지 않은 농담에 서로 웃을 수 있는 거. 그런 모습이 부러워. 나는 그렇게 웃을 수가 없거든."
"왜?"
"난, 남들처럼 평범하지 않으니까."
유소은은 스스로 평범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봤을 땐 유소은이 오히려 평범한 것 보다 더 좋은 조건이지 않나 싶은 생각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소은이 너는 예쁘고, 공부도 잘 하고, 성격도 좋고, 그래서 졸업하면 충분히 좋은 데 취직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려워 보이진 않는데."
그런 내 말에 유소은은 조금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일이 있어. 그냥, 내가 살면서 봐왔던 것 때문에 그래. 옛날부터."
거기까지 말한 유소은은 나에게 말을 이었다.
"근데 너는, 이보람하고 있을 때가 참 잘 어울려 보이긴 해. 보람이 옆에 있으면, 네가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내가 그렇게 보인다고?"
"응. 아마도 그건, 네가 이보람한테 말은 막 해도 속마음으로는 보람이한테 호감이 있어서 내가 너희를 보면서 그렇게 느껴지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 원래 그렇잖아,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 앞에서 빛나게 되잖아."
유소은은 나와 이보람의 관계에 관해 다시 이야기했다.
그 때였다.
선택지가 떴다.
그리고 선택지는, 이보람에서 유소은으로 이어지는 듯한 선택지였다.
[맞다. 이보람을 좋아한다]
[사실 이보람이 아니고 네가 좋다]
[CC는 포기했다]
[너는 개소리를 장황하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선택지는 보자마자 답을 알 것 같았다.
답은 2번.
이건 너무 쉬웠다.
선택지에는 때로 정보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이번 선택지에서는, 지금이 내가 유소은에게 이성적으로 다가갈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유소은은 나한테호감이 있었지만자신의 베프인 이보람 때문에 나한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선택지를 보고 나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됐다.
유소은이 자꾸 이보람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에서 이런 선택지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것은 확실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와 이보람의 이야기를 자꾸 꺼내 오는 유소은에게, [사실 이보람이 아니고 네가 좋다] 쪽의 이야기를 하며 그녀 쪽으로 더 다가가게 되는 것이 바로 유소은 루트의 시나리오 진행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기도 했다.
"소은아."
"응?"
"너, 내가 빛나 보인다고 했지."
"응."
"그건 어쩌면, 내가 보람이 앞이어서 빛나는 게 아니고, 그냥, 네가 나를 볼 때 내 모습이 빛나 보였던 거 아냐?"
"……!"
유소은은 정곡을 찔린 듯 놀랐다.
나는 여세를 몰아 선택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 보람이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내 말을 들은 직후에는, 유소은은 상당히 당황하는 듯해 보였다.
"뭐……! 장, 장난 하지 마!"
나는 진중하게 말을 했다.
"아니. 진짜야."
나는 옆에 앉아 있는 유소은의 허벅지 위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번엔 꼭, 네 엔딩을 보고 싶어. 나를 빛나는 사람으로 봐줬던 너하고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것은 내 진심이기도 했다.
나는, 이번에는 반드시 유소은 루트로 가서 클리어를 하고 싶었다.
이렇게 내 고백이 있고 나서, 유소은은 나를 감동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유소은의 눈빛이, 그녀의 예쁜 얼굴이, 풍만한 유방이, 그녀의 잘 빠진 몸이, 모든 것이 나를 취하게 했다.
술을 먹지 않아도 나는 그녀의 몸 전체에 취하는 것 같았고, 곧 나와 유소은의 입술이 겹쳐졌다.
"쯉……."
"쯀끕……. 쮸릅……."
사람이 그래도 좀 있는 카페라는 사실도 잊은 채, 우리는 옆자리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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