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계획 수립 (1)
* * *
문수경을 기절시키자 선택지가 발생했다.
[문수경의 칼을 챙긴다]
[칼을 챙기지 않는다]
이것도 내가 문수경 루트를 한 번 다녀왔기 때문에 나오는 선택지인 듯했다.
문수경 루트를 갔었던 나는, 문수경이 가방 속에 칼을 챙겼다는 걸 알고 있다.
지난 회차에서는 그 칼로 싸이코 교수에게 맞섰다.
결과적으로 그 칼로 싸이코 교수를 담그지는 못했지만, 뭔가 칼로 인해서 양상이 달라진 것은 있기는 했었다.
이번 회차에서도, 이 칼이 분기를 가를 수 있을까?
나는 일단 칼을 챙겨놓기로 했다.
일단 방문을 닫고 와서, 문수경의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그리고 그 칼을 내 가방에다가 챙겨 넣었다.
선택지가 선택되었고, 시간제한의 모래시게는 스르르 사라진다.
그 다음으로 할 일은 테이프를 쓰는 일이었다.
"새건데 모자라진 않겠지?"
나는 미리 준비한 테이프를 집어들어서 쭉쭉 뽑았다.
트트트트트트트특
나는 뽑은 청테이프로 기절해있는 문수경을 속박했다.
문수경의 등 뒤로 돌린 손목, 가지런히 모은 발목을 테이프로 꽁꽁 두르고, 입에도 테이프를 붙이기로 한다.
은근히 시간이 좀 걸리는 작업이었다.
나는 이렇게 시간을 써서 묶어놓은 문수경을 잠시 들쳤다.
그래서 내 방 안에 딸려 있는 작은 화장실로 그녀를 데려갔고, 화장실에서 변기에 한 번 더 고정시켰다.
이동 범위는 변기에 그녀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해 줬다.
내가 싸이코 교수를 물리치고 오는 시간은 하루가 채 되지 않는다.
그 정도의 시간 동안이라면, 먹지 않아도 죽지는 않겠지만 일단 싸기는 해야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수경을 화장실에 감금……. 아니, 보호하려고 하는 거였다.
테이프질을 존나 한 뒤에, 나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휴, 이 테이핑도, 존나 일이잖아?"
나는 다 묶어놓은 문수경을 보았다.
내 방에 딸린 화장실에 잠들어 있는 문수경을 보며, 나는 꼴렸다.
왠지 귀갑 묶기나 별 묶기 등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투박한 청테이프로 칭칭 속박시켜 놨는데도, 문수경은 꽤 섹시했다.
"새근새근……."
나에 의해 입에 청테이프가 발리고 손발목이 묶여 변기에 고정된 문수경은, 잠든 듯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존나 예뻐서 나는 그녀와 떡을 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문수경은 실 바이러스 전파자다.
만약 그녀가 실 바이러스에 전파되지 않았다면, 그녀 또한 나한테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와 섹스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 회차의 경험상 문수경과 섹스를 하면 내가 바이러스 전파자가 돼서 상당히 불리해진다.
나도 문수경과 같이 실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경우에도 분명 어디엔가 돌파구는 있을 거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전 회차에서의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그 돌파구를 찾는 건 존나 어려웠다.
나는 문수경을 잘 속박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문을 닫으면서, 나는 하늘색 블라우스와 하얀 치마를 입은 채로 화장실에 묶이고 입도 테이프가 발린 문수경을 한 번 더 보았다.
"아, 누가 보면 내가 납치라도 한 줄 알겠네. 격리소에 잡혀가지 않게 보호해 주는 건데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화장실 문을 닫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기절한 문수경이 꺠어나게 되면 내 방 안의 화장실에서라고 해도 읍읍거리는 소리가 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컴퓨터로 음악도 켜 놨다.
이제 문수경은 해결됐다.
나는 내 가방 속에 잠깐 넣어 놨던 칼을 꺼내서 신문지로 싸고는, 그걸 품 속에 집어넣고 테이프를 써서 외투 안쪽에 고정했다.
또 챙겨야 될 게, 종이하고 펜.
종이하고 펜 같은 경우에는 밖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리 챙겨가는 게 더 편할 것이다.
챙길 것들을 이것저것 챙긴 나는, 자취방에서 나와서는 밖으로 나갔다.
밝은 밝다.
나는 밖을 나와 세상을 보며 걸었다.
저벅, 저벅…….
날씨가 진짜 존나 좋았다.
이 낮 시간이 문수경 루트에서는 숨막힐 정도로 빡셌었다.
문수경하고 같이 도망을 가야 되나 교수하고 싸워야 되나를 고민했었고, 교수하고 존나 전력으로 싸웠었다.
문수경 루트에서 낮 시간에 달렸던 때와는 달리, 유소은 루트로 가게 된다면 그녀와 함께 교수실로 쳐들어가는 시간은 밤 시간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처럼 낮과 오후 시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원래 이 학교 주변의 거리는 그렇게까지 다닐 만한 일이 없는 곳이었다.
플레이어였을 때의 나는 김아영과 같이 싸이코 교수를 설득하러 갔었고, 특별히 이 대학교 주변의 거리를 걸을 일은 없었다.
문수경 루트로 갔을 때는 워낙 정신이 없이 교수하고 맞서느라 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있지 않기도 했다.
그 때들과는 달리, 지금은 좀 시간이 남았다.
이번 회차에서는 휴식 시간도 있고 해서 좋았다.
"여자 구경 하면서 맛있는 거나 좀 사먹어야겠다."
나는 대학가 주변을 돌며 여자들을 봤다.
대학가 주변이기 때문에 원룸촌과 학교를 오가는 여대생들이 많았다.
남자와 여자 몇 명씩 모여서 식사를 하러 가는 사람들도 꽤 됐는데, 겉으로는 선후배나 동기인 척 해도 사실은 그들 중에서도 서로 섹스를 하고싶어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나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패스트푸드점 카운터의 종업원이 상당히 예뻐서 섹스를 하고 싶었지만, 역시 경찰서 엔딩은 사양이다.
"1869번 고객님, 불고기버거 세트 나왔습니다!"
섹스하고 싶은 종업원이 준 햄버거세트를 받아서 포장으로 밖으로 나왔다.
학교하고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까지 포장된 버거 세트를 가져가서, 나는 캠퍼스 곳곳에 있는 벤치들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고 주변은 밝은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여기서 먹자."
야외 피크닉 느낌으로 잠시 즐기는 것도 좋을 듯했다.
나는 먼저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존나 시원하고 맛있었다.
햄버거 세트에서 감튀를 콘샐러드로 교체한 게 있어서 나는 햄버거를 먹으면서 콘샐러드를 함께 준 플라스틱 수저로 떠먹으며 콜라도 함께 먹었다.
"우물우물……."
햄버거를 먹고 난 뒤에는 벤치 주변에 있는 커다란 은빛 금속의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렸다.
그리고 소화를 시킬 겸 캠퍼스를 좀 돌다가, 나는 학교를 빠져나가 PC방에 갔다.
PC방은 남자들로 즐비했다.
현생의 나같은 인기없는 부류의 동지들이 여자들과 섹스를 하지 못하고 도피처로 속속 모여들어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섹스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다.
나는 어두우면서도 깔끔한 인테리어의 PC방에서, 또 핫바 하나와 뚱뚱한 사이즈의 탄산음료를 하나 서서 자리를 잡고 먹으며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어느새 시간은 밤이 됐고, 유소은과의 약속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게임을 적절하게 마무리하고 PC방을 나섰다.
"오, 씨발. 캄캄해졌네."
PC방에 들어갈 때는 존나 밝았는데, 나올 떄는 어두워져 있다.
같은 거리를 걷는 거라도 낮과 밤은 느낌이 좀 다르기는 하다.
옷 속에 칼을 챙기기 위한 목적으로 외투도 챙겨 입고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춥진 않았고, 밤공기가 딱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괜찮게 느껴졌다.
PC방에서 나와서 나는 유소은과의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약속장소가 PC방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곧 도착했다.
유소은과 만나기로 한 곳은 대학교 주변의 한 카페 앞이었다.
작전 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작전을 결행할 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여유 시간을 두고 나는 유소은과 만나기로 했다.
"상훈아!"
내가 약속시간에 살짝 빨리 나왔는데, 유소은 또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유소은을 보자마자 나는 또 놀라게 됐다.
유소은이 존나 예뻐서였다.
이번에 유소은이 입고 나온 옷은 하얀 셔츠에 빨간 카디건이었다.
치마는 상당히 짧은 까만 치마였다.
사실 그녀가 뭘 입어도 존나 미소녀기 때문에 말도 안 되게 화사해 보이긴 할 거다.
그런데 확실히 메인 히로인 중 한 명이어서 그런지 얼굴이나 몸매도 그렇고 의상도 상당히 신경쓴 듯한 모습이다.
"어, 소은아, 왔어?"
내가 말을 하자 유소은은 나의 옷소매를 살짝 잡으면서 내게 말했다.
"들어갈까?"
"아아."
나와 유소은은 그렇게 카페로 들어가게 됐다.
내가 유소은과 이야기를 좀 나누기로 한 카페는 건물의 2층이었다.
유소은이 먼저 계단으로 올라갔고, 그녀는 아슬아슬한 길이의 까만 치마를 손으로 가리면서 계단을 올랐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카페에 들어가니 생각보다는 사람이 그래도 좀 있었다.
밤 시간대의 카페는 이제 커플들이 자취방으로 가서 섹스를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잠시 밖에서 이야기를 좀 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메뉴를 주문하고 유소은과 한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역시 유소은하고 같이 카페에 가니까 다른 테이블들에서 은근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유소은이 존나 예쁘기 때문에 남자들이 안 보는 척 하면서 한 번씩 유소은의 얼굴과 몸을 보는 것이다.
그들도 유소은과 섹스하고 싶겠지만, 미안하지만 유소은과 섹스를 하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유소은과 같이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우쭐했다.
유소은과 같이 자리를 잡은 쪽의 의자는 약간 나와 유소은 쪽 모두 2인용 그네 의자같이 생긴 곳이었다.
조금 궁전 풍의 인테리어가 된 카페여서, 의자들이 다 그런건 아닌데 일부 열의 의자는 조금 특이했다.
나와 유소은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리는 것에 관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 회의를 하면 된다.
유소은은 긴장이 되는지 두 손으로 커피잔을 잡은 채로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이제 1시간 30분 뒤면 하는 거지……?"
유소은이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보여서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섹스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단은, 나는 먼저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일인 이번에 싸이코 교수를 무너뜨릴 계획에 관해서 먼저 회의를 하는 것으로 그녀와의 이야기를 시작을 해 보기로 했다.
"소은아. 전반적인 계획은 그날 술 마시면서 말 했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왔어. 같이 한 번 보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