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새로운 시작 (1)
* * *
*
나는 어느 순간 눈을 떴다.
"……?"
깨어나자마자 나는 확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살피고, 나는 내가 비상계단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어난 직후에 나는 눈에 띄는 것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누워있던 비상계단 중간의 공간, 그 옆쪽의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하나.
나는 앉은 채로 그 종이를 떼어서 글씨를 읽었다.
[이제
목숨은
3개가
남았네요
화이팅하세요^^]
나는 실소를 지으며 사정없이 종이를 구겼다.
그의 메시지다.
absolute892.
"이런 씨발. 좆같네, 거의 다 깼던 건데……!"
죽었기 때문에 이전 중요 분기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구겨버린 종이를 휙 던지고는 그대로 앉은 채 손을 바닥에 짚고 조금 쉬었다.
바닥은 좀 차가운 편이었는데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꺠어나니 방금까지 자지를 박았던 민혜지가 떠올랐다.
나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말했다.
"아, 그래도혜지 보지는 존나 좋았다."
혜지의 미끈한 보지속에 박아가던 내 자지의 감촉이 생생했다.
방금 전에 일어난 것만 같았다.
아니, 방금 전까지 혜지의 보지에 자지를 박고 있었던 게 맞다.
1층 비상계단 중간의 공간에 좀 앉아 있으려니 선택지가 떴다.
[밤에 유소은과 동행한다]
[밤에 이보람과 동행한다]
[문수경에게 가서 김아영의 행방을 묻는다]
내가 돌아온 중요 분기의 지점이 비상계단에서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 오자마자 알게 됐고, 이 선택지가 나올 거라는 건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이전 회차에서는 여기서 3번을 갔었지.'
이전 회차에서는 나는 어떻게든 김아영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이전 회차에서 내가 직접 경험을 하면서, 나는 문수경이 과사무실에 찾아온 김아영을 칼로 위협해서 쫓아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이미 진 히로인인 김아영은 만날 수가 없다라는 것을 알아버린 거다.
그래서 나는 김아영 루트를 타려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히로인들인 문수경, 그리고 민혜지 루트를 타게 된 거다.
그리고 이전 회차의 경험으로, 나는 문수경 루트가 좆빡세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씨발, 싸이코 교수한테 존나 좆될 뻔 한 걸 역전하고, 역전하고, 또 역전해서 전기지짐이까지 후려 줬는데도 결국 클리어를 하지 못했다.
그 경험상, 나는 웬만하면 문수경 루트는 피해서 다른 히로인의 루트로 들어가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당연히 들었다.
그렇다면 3번 문수경 선택지를 제외했을 때 고민되는 건, 1, 2번, 유소은, 이보람 루트다.
둘 중 누구를 데려가야 될까.
두 캐릭터 모두 장단점은 있다.
유소은의 장점은 일단 단발머리가 존나 잘 받고 꼴리게 생겼다는 것……. 이 아니라, 성격이 좋다는 것이다.
요조숙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유소은은 같이 다녔을 때 트러블 없이 함께 계획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있다.
반대로 그녀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운동신경이 좋을까에 대한 의문이 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를 빼돌린다고 했을 때 충분히 시간을 끌어줄 수 있을 만큼 말주변이라든지 이런 게 있을 수도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보람의 장점이라고 하면 역시 그녀는 내가 컴퓨터를 빼돌릴 때 교수한테서 어그로는 잘 끌어줄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나하고 이야기를 할 때도 보면 이년은 같이 있을 때 절대 심심하지는 않을 년이다.
그런데 단점으로 이보람은 나하고 같이 계획을 수행한다고 했을 때 내 말을 잘 들어 쳐먹을 것인지가 조금 난해하다.
주인공을 존중하는 유소은과 반대로 이보람은 주인공에게 막대하는 캐릭터다.
장단점을 생각해 보니까, 유소은하고 이보람은 어쩌면 완벽하게 정 반대로 갈리는 애들이다.
아니 씨발, 근데, 이런 유소은하고 이보람은 왜 베프 설정인 건데?
존나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 이 두 명의 여자애들이 왜 절친한 지는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의 마스터인 앱솔루트 빠구리한테 한 번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어쨌든 지금 나로서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내 선택은……!
"선택지 형님, 이번에는 유소은하고 가겠습니다."
나는 선택지를 보고 대화하듯이 말을 했다.
물론 이걸로 선택이 되는 건 아니고 내가 직접적으로 행동에 옮겼을 떄 선택이 되는 건데, 그냥 한 번 말 해 봤다.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고는, 톡을 켜서 연락처에서 유소은을 찾아 그녀와에 1:1 대화창에 메시지를 입력했다.
[소은아]
[너하고 보람이 중에서 누구하고 같이 교수한테 쳐들어갈까 고민해 봤는데]
[네가 좋을 것 같아]
[괜찮아? 같이 갈 수 있어?]
"이만하면 되겠지."
나는 메시지 전송을 하자마자 폰을 내려놓고는 다시 바닥에 손을 짚고 고개를 들어 좀 멍하게 쉬었다.
예쁜 여자한테 메시지를 보내는 거라 그런지 이상하게 조금 썼다 지웠다 하면서 존나 신중하게 쓰게 됐고, 메시지를 보내자 선택지의 시간제한의 모래시계는 사라졌다.
나는 잠시 앉아서 유소은의 답을 기다렸다.
바로 답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시간은 수업시간이니까.
그런데, 의외로 내가 내려놓은 휴대폰이 바로 울렸다.
나는 조금 고개를 돌려 휴대폰을 보는 것만으로 미리보기로 뜨는 유소은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응!]
[같이 가자 상훈아!]
'오. 왔다.'
스토리 전개상 유소은은 웬만하면 나를 거절하지 않고 같이 하겠다고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왠지 유소은을 곧 만난다고 생각을 하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역시 볼 때마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이보람 씨발년을 선택하는 것보다, 존나 참하고 여성스러운 유소은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 싶었다.
추가적인 선택지가 여기서 더 뜨진 않았다.
그런 것으로 봤을 때는, 유소은의 루트에서는 싸이코 교수와 상담 약속을 잡을 때 내가 연락을 하든, 유소은이 연락을 하든 별 상관은 없는 듯했다.
이전 회차에서 문수경하고 같이 있었을 때는 싸이코 교수를 유인해 낼 때 내가 유인을 하느냐, 문수경이 유인을 하느냐 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하긴, 그 때하고 지금은 다르다.
그 때는 싸이코 교수를 모텔로 유인을 해야 되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교수 대 학생으로 상담신청을 하는 척 교수실로 가는 약속을 잡는 거니까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유소은한테 교수하고 상담신청을 하는 약속을 내 몫까지 같이 받아달라고 하기로 하고, 나는 곧바로 다시 폰을 들어 유소은에게 추가 메시지를 보냈다.
[전에 말했던 대로]
[컴퓨터를 가지고 나와야 되니까 눈에 띄지 않게 밤에 갈 거야]
[네가 한민국 교수하고 상담약속 잡아]
[시간은 밤 시간대로]
[한민국 교수는 늦게까지 연구실에 자주 있으니까 수락할 가능성이 높아]
[나하고 같이 가겠다고 꼭 말하고]
[만약에 교수가 너만 상담하겠다고 하면]
[내 상담 빨리 끝내고 너 좀 길게 혼자 남아서 하면 안되냐고 설득해]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하면 유소은이 확실하게 싸이코 교수를 설득할 수 있다.
싸이코 교수가 처음에 남자를 굳이 상담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었다고 해도, 나를 빨리 상담해서 보내 버리고 여대생하고 뒤늦게 남아서 놀겠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싸이코 교수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막상 상담을 받으러 가게 되면, 먼저 보내려고 했던 나 대신에 유소은이 먼저 교수한테 따로 나가서 상담을 하자고 할 테니까.
그러면, 교수실에는 나 혼자 남는다.
그리고 나는 계획대로 싸이코 교수의 컴퓨터 본체를 들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해서 유소은에게 메시지들을 완벽하게 보낸 나는, 슬슬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마무리했다.
[시간 여유 좀 있는 상태에서 나한테 연락줘]
[미리 만나서 회의도 좀 하게]
유소은은 이번에도 또 바로 답이 왔다.
[웅웅!]
[알겠어 상훈아]
[수업 끝나면 교수한테 바로 연락해서]
[야간 시간으로 상담 잡아볼게!]
[너 먼저 상담받고 그 다음에 내가 받는 걸로!]
유소은은 내가 한 말을 바로 이해한 듯 내게 답을 해 왔다.
나는 그녀의 답문을 보고는 만족스러워하며 1:1 대화창을 닫았다.
1:1 대화는 서로 할 말을 해서 다 잘 됐는데, 1:1 대화창을 닫고 나서 친추 목록으로 나오니까 확실히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띄었다.
'유소은……. 존나 예쁘긴 하다.'
나는 유소은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맑게 미소짓고 있는 유소은의 얼굴 셀카 프로필 사진 이외에도, 나는 몇 장의 사진을 더 볼 수가 있었다.
나는 시간도 남겠다 유소은의 사진을 넘겼고, 추가로 올려져 있는 사진 중 첫 번째 사진에서부터 시선이 고정됐다.
그 사진은 벚꽃놀이를 하러 간 듯한 사진이었다.
사진의 배경은 전체적으로 옅은 분홍빛의 벚꽃나무들이 가득했다.
그림처럼 가득 피어 있는 벚꽃은 햇빛을 받아 더 화려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진의 주인공은 두 명의 여자였다.
둘다 존나 예뻤다.
오른쪽은 유소은. 그리고 왼쪽은 유소은하고 닮기도 했고 이미지는 거의 비슷했다.
쌍둥이는 아닌데 얼굴이 살짝 닮아 있고, 유소은이 단발머리인 것과 달리 언니로 보이는 여자는 긴 머리였다.
어떤 머리를 해도 별로 관계없을 만큼 둘다 존나 예쁘긴 했다.
둘이 사이는 꽤 좋아보이는 듯했다.
'꽤 닮았는데, 친언니인가? 유전자 개쩌네.'
나는 사진을 몇 장 더 넘겨 보았다.
다른 사진들도 여기저기 경치 좋은 자연이 배경이었는데, 사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 친언니인 듯한 여자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거였다.
누가 보면 연예인 자매나 이런 걸로 헷갈릴 수도 있을 정도로 둘다 존예여서 나는 사진들을 여러 번 보게 됐다.
사진들을 보다가, 나는 언제까지 비상계단 쪽에 있기보다 이제 일어나자고 생각을 했다.
휴대폰을 다시 끈 뒤에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