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소고기 사주는 예쁜 누나 (2)
* * *
밝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문수경이 내 말을 듣고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앗……! 그래?"
나는 내가 대답을 해 놓고도 참 좆같이도 말을 했다 싶었다.
오늘 세상이 멸망하면 뭘 하고 싶냐는 말에, 섹스라고 대답을 하다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문수경에게 그렇게 대답한 게 그렇게 큰 영향은 없기는 할 것이다.
중요 선택지에 대답을 한 거였으면 좀 쫄았을 텐데 어쨌거나 선택지 질문은 아니었다.
내 그런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듯 문수경은 이후로의 대화를 지금까지처럼 자연스럽게 이어 왔고, 나와 문수경은 별 일 없다는 듯 학교 정문과 가까운 소고기집으로 갔다.
소고기집에 도착하자, 가게 내부의 풍경은 수업이 없는 학생들이 일찌감치 와서 몇몇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쪽에 앉을까?"
문수경이 자리를 잡고 앉으려니 또 다른 테이블들에서 남자들의 시선이 쏠린다.
여자하고 같이 온 테이블에서도 문수경을 보고 있을 만큼, 어지간히 눈에 띄는 미소녀인 건 맞다.
'하긴, 문수경은 히로인 중 한 명이니까 존나 예쁘긴 하지.'
처음에는 문수경이 나한테 섹스를 갑자기 하자고 해서 실 바이러스 감염자는 아닌가 조금 의심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녀와 섹스를 하면서 내 자지로 그녀의 처녀막을 찢고 그 이후로 존나 박고 나서는, 그녀가 감염자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실 바이러스는, 내가 알기로는 분명 섹스로만 감염되는 거니까.
문수경은 메뉴판을 펼치고는 조금 보다가 말을 했다.
"이건 어때? 상훈아, 너 꽃등심 좋아해?"
소고기집의 테이블에서 나와 마주앉은 문수경이 메뉴판을 보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말을 했다.
그녀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즐거웠다.
문수경 외에 다른 히로인들도 물론 존나 예쁘긴 했지만.
"네! 좋죠."
"그래? 그럼 이걸로 일단 3인분 할게!"
문수경은 내 의견을 듣고는 벨을 눌렀다.
'문수경 루트는 어떻게 돼 가는 걸까. 지금으로서는 딱히 위험요소는 없어 보이는데. 조교라 교수하고 친분이 있으니, 김아영 때처럼 설득으로 평화적인 엔딩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문수경 루트에 관해 조금 더 생각을 했고, 곧 문수경이 말을 걸어와서 그녀와 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바생이 카트를 밀고 와서 꽃등심과 다른 반찬들을 세팅했다.
문수경은 익숙하게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워 주었다.
나는 구워지고 있는 고기를 보면서도, 옅은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그녀의 가슴 쪽으로 시선이 한 번씩 갔다.
"이쪽은 적당히 구워졌다, 얼른 먹어!"
"이럴 땐 먼저 한 쌈 싸드려야죠?"
문수경이 소고기 꽃등심을 구워주고, 나는 문수경의 붉은 입술 쪽으로 쌈을 하나 싸서 가져갔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앞으로 내밀어 내 쌈을 받아먹었다.
입안 가득 쌈을 씹는 문수경은 내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잠시 집게를 내려놓고 손으로 입을 조심스레 가렸다.
'나도 이제 먹어볼까? 존나 맛있겠는데?'
나는 꽃등심에 소금기름장, 그리고 파채, 마늘을 젓가락으로 한꺼번에 집어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우물우물……. 대박이네.'
나는 문수경과 둘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소고기를 폭풍 흡입했다.
꽃등심은 육질이 상당히 좋아서 입안에 넣고 씹을 때 고기가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꽃등심에 된장씨개, 묵사발, 계란찜 등 다양한 반찬과 밥, 그리고 탄산음료까지 맛있게 먹었다.
특히 또 문수경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기를 먹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비싼 집 같은데 더 맛있게 느껴졌다.
대학가 주변은 보통 싼 음식점이 많지만, 가끔은 튀어 보이는 이런 집도 드문드문 있어서 경제적 여력이 있는 커플의 발길을 끈다.
"아, 진짜 배부르게 먹었어요, 누나."
나는 고기를 실컷 먹고는 콜라까지 시원하게 마신 다음 컵을 내려놓았다.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 세계에서는 먹을 것은 전반적으로 잘 주는 것 같다.
하숙집 음식도 세팅이 좋은 편이고, 여기 소고기 가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응……."
그런데 정말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는데, 문수경은 고개를 살짝 떨구고 조금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나는 문수경에게 장난스럽게 물어봤다.
"어! 뭐에요, 누나. 설마 이제 와서 지갑이 과사무실에 있는 것 같다, 뭐 그런 건 아니죠?"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의 원작에서 주인공을 매번 호구 잡고 뜯어먹으려고 하는 동기인 이보람 정도면 모를까, 문수경은 그럴 타입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그냥 진짜 장난으로 말을 한 거였다.
그런데 내 농담에도 문수경은, 그렇게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아니……. 음식값은 미리 계산했어. 중간에 화장실 갈 때."
"아, 장난이죠, 누나. 왜 그래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문수경이라면 원래 늘 웃고 있는 듯한 얼굴인 편이라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었다.
"그게……."
문수경은 시선을 내리깐 채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왜 그러는 거야? 설마, 똥 마려운데 화장실 오래 갔다오기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기라도 한 건가?'
나는 잠시 문수경을 보며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해 주기를 기다렸다.
조금 뒤에서야, 그녀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탈칵
문수경이 식사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은 다름아닌 식칼이었다.
"칼……?"
나는 문수경이 식사를 마친 테이블 한곳에 올려놓은 식칼을 보았다.
이걸 왜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건지,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존나 잘 드는 칼인데 나한테 팔려고 한다……. 는 건 아닐테고.
문수경이 칼을 꺼내 놓자 선택지가 떴다.
[칼을 챙긴다]
[그대로 둔다]
[휴지통에 버린다]
이번에는 시간제한의 모래시계가 짧은 편이었다.
칼을 챙길지 말지 고민하다가 뒤질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바로 선택하기로 했다.
서늘한 느낌이 드는 칼의 손잡이를 집어들어 나는 그걸 우선 내 자리 옆쪽의 빈 곳에 내려놓았고, 놓아둔 가방 안에 칼을 집어넣었다.
지익
내 목숨을 구한 적이 있던 가방의 지퍼를 닫고는 나는 한 숨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 칼은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문수경을 직시하며 말했다.
"말 해 줘요, 누나. 이 칼은 뭐에요?"
내가 물었고, 문수경은 조금 더 망설이고 나서야 대답했다.
"사실 나……. 실 바이러스 감염이 됐어."
문수경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까, 문수경의 말은 지금 내 생각으로는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하, 누나, 표정관리 하면서 장난 엄청 잘 치시네요. 아니, 그래도 실 바이러스 감염자라니, 뭐 그런 장난을 쳐요? 칼은 뭐고요."
내가 문수경에게 말을 할 때, 문수경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살짝 훌쩍였다.
존나 예쁜데 울고 있으니까 달래주고 싶어진다.
"나……! 감염자 맞아, 상훈아."
내가 봤을 때는, 문수경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
실 바이러스는 섹스를 통해서 전파되는데, 문수경은 나와의 섹스가 처음이었다.
문수경을 막 만났을 때에 그녀가 나하고 바로 섹스를 하고싶어해서 나도 의심하기도 했었는데, 섹스를 하고 나서 그녀가 처녀라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처녀이기 때문에 감염자가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을 했다.
그래도 나는 일단 문수경이 뭔가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해서 좀 더 들어 보기로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기분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어. 그냥 치마 속으로 손이 가고 나도 모르게 막 만지고……. 근데 그런 기분이……. 점점 더 강해졌어."
문수경은 한 손으로 눈물을 한 번 더 훔치면서 내게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기도 하고, 그리고 동성을 죽이고 싶어지는 마음도 생겼어."
문수경은 내가 방금 식칼을 집어넣은 내 가방 쪽으로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 칼도, 그래서 챙겼던 거야. 동성을 보면 죽이고 싶어져서. 그래서, 엠티에서 요리할 때 썼던 칼을 학회실에서 찾아서 가져온 거라고."
확실히 문수경의 말을 듣고 보니, 증상의 발현은 실 바이러스의 증상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성을 보면 섹스를 하고싶어지는 마음이 강하게 들고, 그리고 동성을 죽이고 싶어지는 것이 실 바이러스의 증상이다.
"그리고 네가 오기 전에 그 칼로, 처음 보는 여자를 위협해서 그 여자를 쫓아냈어. 처음 보는 여자였어. 보통은 과사에는 아는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특이한 일이었지."
처음 보는 여자?
내가 오기 전 시간에?
그 시간은 김아영이 건물 주변을 배회하던 시간…….
내가 추측을 함과 거의 동시에 문수경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내가 칼로 위협해서 도망친 그 여자가, 네가 찾는 김아영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게 이렇게 되다니.
내가 자명종을 던져 버려서 늦잠을 자서, 특정한 장소에 있던 김아영은 나를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싸이코 교수를 만나기 위한 정보를 얻으러 과사무실에 갔다.
진엔딩 루트라면 김아영은 아마도 나와 같이 좀 더 이른 시간에 문수경을 만났을 테고, 그랬다면 나와 김아영이 만났을 문수경은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나 없이 좀 늦은 시간에 문수경에게 갔었기 때문에 그녀는 문수경에게 칼로 위협받고 도망쳐 버리게 된 것이다.
문수경의 이야기로 인해 나는 내가 김아영을 왜 만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치만, 너하고 하고 싶었던 건 정말이야. 그래서 네가 오기 전에 과사무실에 기범이가 왔을 때도, 해성 오빠가 왔을 때도 나는 섹스를 하자고 하지는 않고 참았었어. 어쩌면 내 맨 정신일 때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잠자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랑 꼭 하고 싶었어. 널 좋아하니까. 나한텐 유일한 한 번의 경험이 될 테니까, 그걸 너하고 나누고 싶었어."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분명 문수경은 처녀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문수경에게 말을 했다.
"누나.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요. 지금 멀쩡하지 않아요? 섹스!"
문수경에게 말을 하다가, 나는 왠지 나부터가 멀쩡하지 않은 것 같은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