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소고기 사주는 예쁜 누나 (1)
* * *
'돈까스, 소고기, 떡튀순? 이런 씨발 떡 같은 선택지가…….'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시간제한의 모래시계 여유가 있어서 좀 더 생각을 해 보고 나는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그러다가, 나는 존나 깨달았다.
'그런가.'
나는 선택지가 떠 있는 것을 보며 좀 더 생각했다.
'이번 선택지는, 얼핏 보면 미친놈 같은 선택지다. 그런데 이 선택지가 나한테 분명하게 알려주는 게 있지.'
이 선택지가 알려주고 있는 단서는, 바로 이제는 진엔딩이 아닌 다른 엔딩을 공략해야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김아영을 찾는 것에 관한 선택지만을 골랐는데도, 결국에 문수경의 정보력으로도 김아영을 찾을 것에 이를 수 없었고 이제는 문수경과 식사 자리로 가는 것에 관한 선택지들만이 나오게 됐다.
그 말은, 이제는 김아영 루트에서 벗어나 다른 루트에서 선택을 하면서 진행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다른 히로인들의 가능성들도 남아있기는 하다.
원작에서 김아영 루트로 갔었을 때 잠깐 스쳐지나갔던 문수경이었는데 이번에는 문수경과 섹스까지 하게 된 것처럼, 지금 이 진행 방향에서도 다른 히로인들을 또 다른 방향에서 만날 수가 있다.
따라서 아직 완전히 100% 문수경 루트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라고는 볼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지금으로서 내가 가장 발을 많이 걸치게 된 방향은 문수경 루트가 맞기는 할 것이다.
씨발, 물론 이렇게 되면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김아영 루트가 아니기 때문에 빡세지는 건 있을 것이네.
나는 시발, 김아영 루트밖에 클리어 안 해 봤다.
그럼 이제는 순수 실력으로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을 플레이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씨발. 그래도 한 번 해 보자. 한 번 깼는데 두 번 못 깨겠어?'
나는 어이없는 선택지를 보고도 루트 이동에 대한 단서를 얻어낸 것에, 마음속으로 나는 사실 존나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면, 이제는 선택지를 고를 차례였다.
나는 내 쪽으로 돌리고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문수경을 바라보면서, 곧 아점을 함께 먹는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최대한 신중하게 고르기로 한다.
선택지는 돈까스, 소고기, 떡튀순.
문수경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메뉴 중에 정답을 선택해야 된다.
일단 돈까스를 먼저 고려해 본다.
사실 나는 지금 돈까스가 제일 먹고 싶기는 하지만, 돈까스 같은 경우에는 남자들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메뉴이지만 여자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다.
성별에 따른 상대적 선호도를 고려해서 돈까스를 배제했을 때, 다른 선택지들 중에서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는 바로 3번 떡튀순.
지금까지 경험상 떡볶이를 안 좋아하는 여자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소고기도 여자들이 좋아할 수 있다.
대학생이 아닌 조교의 신분인 문수경이기 때문에, 또 그녀로서는 소고기를 어쩌면 떡볶이보다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달라고 하는 입장에서 선뜻 비싼 걸 사달라고 하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조교 누나하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데 내가 내겠다고 해도 분명 누나가 사줄 것이기 때문에 소고기는 고를 수 없다.
사달라고 하면 사주기는 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올바른 선택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완전히 무의미한 선택지는 아닌 것 같다.
돈까스와 떡튀순 사이에 굳이 삽입되어 있는 이 선택지를 보면 분명 소고기도 의미는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따라서 아마도, 이렇게 될 거라고 나는 예측했다.
내가 떡튀순을 사 달라고 하면, 아마도 문수경이 먼저 그런 것보다는 소고기를 먹자고 하지 않을까?
그러면 문수경으로부터 호감도 얻을 뿐만 아니라 소고기도 먹을 수 있다.
나는 그런 선택지 분석에 따른 계산하에 문수경에게 대답했다.
"누나, 혹시 떡볶이 좋아하세요?"
내가 말을 하자 문수경은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 응, 좋아하지."
"그러면, 떡튀순 어떠세요? 저는 떡볶이에 대한 생각은 그냥 보통인데, 왜, 여자들은 떡볶이 많이들 좋아하잖아요. 학교 앞 분식점 가시죠?"
내가 문수경에게 떡튀순 선택지를 고르는 답을 하자 선택지와 시간제한의 모래시계는 사라졌다.
문수경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미소 띤 얼굴로 내게 대답했다.
"뭐야. 너 지금, 내 지갑 걱정해 주는 거야?"
문수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컴퓨터 앞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래도 나 조교잖아. 월급도 받는다고!"
문수경은 컴퓨터 책상 옆쪽에 놓아 두었던 가방을 들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로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문수경은 가방을 챙기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문수경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소파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 어쩌면 왜요? 그 뒤에 잘 안 들렸는데."
문수경은 조금은 당황한 듯 내게 말했다.
"어? 그게……!"
잠깐 문수경은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평소의 그 미소 짓는 듯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녀는 내게 말했다.
"가자! 떡튀순 말고, 음, 누나가 소고기 사줄게!"
문수경이 내게 그렇게 말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씨발! 깰 수 있다. 김아영 루트가 아니더라도, 할 만 해. 내가 괜히 원코인으로 진엔딩을 클리어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마. 이 앱솔루트 빠구리 씨발새끼야.'
방금 나는, 선택지를 보고 짧은 시간 안에 단번에 분석해서 완벽한 답을 냈다.
보아하니 문수경의 루트로 넘어오게 된 것 같은데, 나는 이 길에서도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문수경과 함께 과사무실을 나서게 됐다.
과사무실에서 나오면 바로 왼쪽 측면에 중앙계단이 보인다.
내가 먼저 중앙계단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문수경은 중앙계단을 올라가려고 했다.
"어? 누나, 왜 올라가세요?"
"아, 잠깐만!"
문수경은 빠른 걸음으로 반 층을 올라갔다.
나는 계단의 아래쪽으로 진입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딱히 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문수경이 급하게 뛰어올라가며 그녀의 나풀거리는 하얀 치마 속을 볼 수가 있었다.
하얀 치마 속 그녀의 팬티.
팬티다.
단지 나도 입고 너도 입는 팬티일 뿐인데, 팬티를 보는 것은 왜 이렇게 좋은 걸까.
뭐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팬티를 벗기며 박고 인류는 더 이어져 가는 거겠지.
'섹스…….'
그 때 잠깐, 머릿속에 섹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웃어넘겼다.
'아, 씨발. 방금 섹스를 했는데 이렇게 바로 또 섹스라니.'
반 층을 올라갔던 문수경은, 내가 올려다보니 커다란 화분 하나를 잠깐 들추었다가 그 아래에 열쇠를 넣었다.
곧 문수경은 다시 반 층을 내려와 내 옆으로 왔고, 그녀는 나와 같이 계단을 걸어내려가기 시작하며 내게 말했다.
"과사무실 열쇠 좀 놓고 오느라고!"
"아, 네."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서서, 학교 정문으로 걸어간다.
문수경하고 같이 캠퍼스를 걸어가니까, 한 번씩 지나치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느껴진다.
문수경은 얼굴과 몸매 모든 게 다 되기 때문에, 이렇게 그냥 걸어가기만 해도 많은 시선을 받는 것이다.
지나는 사람 중 여자 둘로 되어 있던 한 무리는 우리 옆을 지나며 둘이서 문수경과 나의 이야기인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방금 봤어?"
"어! 대박 아니야?"
"그러니까. 저런 여자가 왜 저런 남자랑 같이 다니지?"
"돈이 엄청 많나?"
그녀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이상하지만 이건 좋아해야 되는 게 맞긴 한 것 같기는 했다.
그냥 지나가면 나는 그냥 '저런 남자'가 되겠지만, 문수경하고 같이 다니니까 '돈이 많은 저런 남자'가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걷다 보니 문수경은 내게 말을 걸어 오기도 했다.
"저기, 상훈아."
문수경이 앞을 보고 걸으면서, 옆에서 걷는 내게 이야기를 건네 왔다.
"네."
내가 대답하자 문수경이 걸으며 말을 했다.
"너한테 내가 했던 말 있잖아."
"네."
"그거, 음, 조금 과장한 면이 없진 않은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야."
"어떤 거요?"
문수경은 걸어가는 동안에 내 쪽을 잠깐 보며 미소지었다.
"그거. 너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맘에 들었단 거."
"하하, 아, 진짜요?"
문수경의 나는 조금 쑥스러워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아니, 여러 루트로 가 보고 볼 일이다.
주인공을 좋아하는 히로인도 있었다니.
하긴, 그런 캐릭터도 하나쯤 있는 편이 좋긴 하다.
보통 야겜에서는 진 히로인이 주인공을 애절하게 좋아하는 캐릭터로 나오거나, 혹은 소꿉친구가 사실 남몰래 주인공을 좋아했다는 스토리가 존나 많다.
진 히로인인 김아영이 주인공을 짝사랑했던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 문수경처럼 의외의 주인공을 짝사랑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는 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걷는 도중 문수경에게 말을 다시 붙여 보았다.
"누나처럼 예쁜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수가 있나?"
"왜, 너도 괜찮은데."
"하하, 진짜, 심하신데? 제가 뭐 괜찮은 정도는 아니죠, 누나의 취향하고 우연하게 맞은 걸 수는 있겠지만."
"네가 어때서? 누가 뭐래? 야, 다 데려와. 완전 혼내줄 테니까!"
"아, 아니에요, 그런 일이 있어요!"
처음에는 좀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가, 교문을 나설 때 정도에는 문수경은 조금 분위기를 잡는 듯했다.
"저, 상훈아."
"네."
"만약에, 오늘 세상이 멸망하게 되면, 너는 지금 뭘 할 거야?"
문수경의 질문은 다소 특이하기는 했지만, 친구들끼리도 그런 말들을 충분히 하면서 놀 수 있기 때문에 특이하면서도 생소하지는 않았다.
나는 문수경 쪽을 보고는 대답했다.
"섹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