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낮술 (2)
* * *
나는 유소은에게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이것 또한, 나는 원작과 일치를 시키기로 했다.
유소은을 외면하는 선택지를 고를 경우가 궁금한 건 있었다.
그래도 어차피 내일이면 김아영을 만날 거고 그 뒤로는 그녀와 함께 싸이코교수를 만나러 가서 진엔딩을 보면 되는데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유소은을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녀가 훌쩍이며 내게 말했다.
"흑흑……. 상훈아, 실은 나 오늘, 인터넷 뉴스에서 네 기사 봤거든. 그래서 이렇게너 따로 보자고 해서 부탁해 보려고 했던 거야."
인터넷 뉴스?
아, 맞아. 별로 신경쓰일 일은 아니었지만 기억났다.
원작에서도주인공이 아침에 할머니를 구했던 게 인터넷 뉴스에 떴었다.
유소은은 그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청초하게눈물 젖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검도 선수였다면서? 사시미 칼을 맨손으로 잡으면서도엄청 쉽게상대를 제압했다는 목격담이 기사에 실렸더라고."
"엉?"
나는 순간 내가 무슨 칼날을 맨손으로 잡는 차력사가 된 게 황당하게까지 느껴졌다.
소문이 아무리 눈덩이처럼 불어난다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된다고?
그렇지만 뭐 어찌 됐든 간에 내가 칼 든 미친년을 제압한 건 사실이기도 했고, 미소녀인 유소은에게 영웅처럼 보이는 것도 나름 좋으니 별 상관은 없었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탕수육을 하나 집어먹었다.
"우물우물……. 음, 내가 그랬었나."
바삭하면서도 육즙이 풍부한 탕수육의 식감을 즐기며 달달한소주를 한 모금 마시다보니 유소은이 내게 말을 이었다.
"너한테 다 해달라는 거 아냐, 상훈아. 이야기는 내가 교수님한테 직접 해 보려고 하는데, 그동안 날 지켜주기만 하면 나는너무 고마울 것 같아."
나는 탕수육을 젓가락으로 하나 더 집었다.
그러면서 소스를 찍고, 거기에 간장까지 찍어서 한 입 먹으면서 유소은에게 말을 하려던 찰나, 선택지가 생성됐다.
[유소은과 같이 가기로 한다]
[혼자 간다]
플레이어일 때의 나는 여기서는 유소은과 같이 가는 선택지를 골랐었다.
씨발, 그래도 명색이 19금 게임인데 히로인도 없이 혼자 가는게 말이 돼? 라는 생각에서 바로 내려버린 판단으로 고른 선택지였다.
근데 내가 유소은과 동행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 선택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는 걸 나는 다음날에 알게 된다.
어차피 김아영하고 같이 싸이코 교수를 만나러 가게 되면 다른 약속들은 무산된다.
"그래, 소은아. 교수님 만나러같이 가줄게."
나의 대답에 유소은은 그대로 나에게 안겼다.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온몸을 던지듯 나에게 확 안겨 오는 유소은이었다.
"고마워, 상훈아!"
유소은이 나에게 안겨오자 그녀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다.
또한 나를 끌어안은 그녀의 몸을 느낄 수 있었고, 유소은이 나를 안고 있는 동안 그녀의 옆얼굴이 나의 얼굴에 닿는 것도 좋았다.
'오! 시발…….'
이대로 떡을 치는 것도 상당히 좋겠는데…….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순간의 판단이 경찰청 쇠철창살 엔딩을 불러올 지도 모른다.
나는 두려움에 떠는 유소은이 나를 실컷 안고 있게 해 줬고, 그동안 나 또한 얇은 상의를 입고 있던그녀의 체온을 마음껏 느꼈다.
유소은이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데다가술에 좀 취해서체온을 나눈 시간이 한참 지났을 무렵, 그녀의 헨드폰이 테이블 위에서 진동했다.
우웅, 우우웅.
그제서야 유소은은 나를 너무 오래 끌어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조금 쑥스러운 듯 살며시 나와의 포옹을 풀었다.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소은은 내 쪽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통화를 이어 나갔다.
"응. 어? 응."
나는 유소은이 통화를 하는 동안 다시 탕수육을 하나 집어서 소스와 간장을 찍어서는 맛있게 먹었다.
"우물우물……."
나는 지금 유소은이 누구와 어떤 통화를 하는지 다알고 있다.
유소은은 지금 이보람과 통화를 하고 있다.
처녀 빗치년 이보람……. 바로 그녀다.
유소은과 이보람은 베프다.
원작을 했던 나는 이 상황도 기억이 났다.
통화 중에는 문득문득 유소은이 놀란 듯한 표정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이보람 또한 싸이코 교수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유소은에게 털어놓아서이다.
유소은은협박을 받은 뒤에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나였고 이보람은 유소은이었던 것이다.
유소은은 내가 활약했던 인터넷 뉴스를 봤었기에 나에게 연락해 온 거고, 이보람은 유소은과 가장 친한 데다가 혹시나 그녀도 똑같은 협박을 받았는 지를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전화를 마치고 나면 유소은이 나에게 이 자리에 이보람도 와도 되냐고 물어본다.
과연 조금 뒤에 통화를 마쳤고, 유소은은 나에게 이보람 이야기를…….
"저기……. 상훈아."
"음?"
"탕수육 맛있어?"
내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유소은이 해 와서 나는 마음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원작의 주인공보다 내가 안주빨을 존나 세웠나 보다.
"우물우물……. 어. 진짜 맛있긴 한데? 이건 무슨 술안주 탕수육이 중국집 탕수육보다 더 낫네."
"그래? 하나 더 시켜줄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이 정도면 충분하긴 해."
탕수육의 양은 적당한 정도였고 유소은이 별로 먹지 않아서 나 혼자 먹기에는 충분했다.
이야기가 좀 심각한 쪽인데 뷔페를 온 마냥 음식을 존나 더 시키기도 그렇고 말이다.
그리고 유소은은 원래원작에서 봤을 때도 이렇게 친구들과 돈과 정성을 아낌없이 베푸는 편이었다.
주인공에게 이런 부탁을 하려고 할 때가 아니라도 다정다감하게 주변을 챙긴다.
모성애가 느껴지는 청순한 년.
이런 애들한테는 내가 얻어먹기보다 오히려 사주고 싶어진다.
"상훈아."
"음."
"근데 여기, 보람이 와도 돼?"
"어, 그래. 너만 괜찮으면."
"그게, 보람이도 같은 협박을 당하고 있대. 어차피 나는 상훈이 너한테 털어놓기도 했으니까, 셋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탕수육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조금 타이밍에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원작처럼유소은이 나에게 이보람의 합석에 관해 허락을 구하는 선택지가 나왔다.
[이보람의 합석을 허락한다]
[유소은과 둘이서만 이야기하는 게 낫다]
이것도 원작을 했었을 때, 나는 이보람도 부르는 것을 허락했었다.
"어, 그래, 소은아. 셋이서도 이야기 한 번 해 보자."
나는 유소은과 이야기를 좀 더 나누며 탕수육과 소주를 더 먹었다.
상당히 좋은 조합이었다.
점심 식사와 술을 함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만족감이 들었다.
곧 유소은이 부르게 된 이보람과도 낮술을 함게하게 되었다.
룸 밖에서 확인한 듯한 이보람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룸의 문이 꽤나 세게 열려서 나와 유소은의 시선이 이보람 쪽으로 쏠렸다.
"유소은!"
이보람은 늘 텐션이 올라가 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인사도 생략하고는,빠르게 유소은의 옆쪽으로 와서는 자리를 잡았다.
이보람은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존나 예뻤다.
얼굴도, 몸도.
이보람은 유소은의 옆으로 잔뜩 밀착해서 앉았고,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서 앉을 때에그녀의 치마가 약간 말려올라가며 매끈한다리가 거의 노출되어 보였다.
이보람은 나를 공기 취급하는듯 유소은에게만 말을 걸었다.
"전화로 한 말 진짜야? 너도 협박 받았어?"
"응."
"근데 왜 김상훈 같은 믿을 수도 없고쓸데도 없는 놈한테까지 이야기했어?"
"상훈이, 믿을 수 있는데?"
"아니, 너는 지금 의지할 데가 없어서 어딴 새끼한테 의지하는 거야?"
음……. 이보람 씨발년, 역시 한결같다.
나는 이보람이 대놓고 유소은에게 나를 까고 있는 동안 휴대폰을 켜서 인터넷 뉴스 기사를 찾았다.
나는 아까 유소은이 나에게 보여 줬던, 아침에 내가 슈퍼 할머니를 구한 것에 관한 기사를 띄워서 내 폰을 이보람 쪽에 흔들었다.
"야, 이보람."
"……."
이보람은 유소은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조금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그녀는 내가 폰을 건네자 일단 내 폰을 받아들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들며 눈짓으로 폰을 가리키면서 이보람에게 말했다.
"이거나 읽어 봐."
이보람은 자세를 조금 고쳐 앉고는 내가 폰에 띄워준 기사를 확인했다.
검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기사를 본 이보람은, 기사를 다 봤을 때쯤에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이건……!"
나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고는 주먹 안쪽으로나 자신의 가슴팍을 두어 번 툭툭 때리며 말했다.
"그래. 이게 바로 나야."
이보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기사 속의 사진과 내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게 진짜 너야? 칼을 맨손으로 잡고 상대를 가볍게 제압했다고? 그것도 실 바이러스 감염자를?"
"크흠."
놀랐나?
그럴 만도 하지. 씨발년.
이래봬도, 내가 좀 한다고.
"말도 안 돼, 좆밥 찐따인 줄만 알았는데 그런 능력이 있었어?"
이보람이 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을 보고 나는 당당하게 그녀에게말했다.
"그래. 야, 씨발, 너나 소은이혼자 교수 만나러 갔다가 무슨 일 당할 줄 알고? 내가 있으면 존나, 어? 힘으로는 절대 교수가 안 되지."
이보람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 똑똑한 소은이가 개나 소나 이 일에 끌어들이진 않았겠지. 휴, 한 숨 돌렸네. 오는 내내 김상훈한테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해서 식겁했었는데."
이보람이 그렇게 말을 해서 나도 한 마디 하려던 참에, 선택지가 떴다.
[이보람도 유소은과 똑같은 협박을 받았는지 확인한다]
[그냥 넘어간다]
이것도 특별히 중요한 선택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원작을 했을 때와 같이 이보람의 대화내역을 확인하는 것으로 가기로 했다.
"야. 이보람. 너도 그럼, 유소은하고 똑같은 협박당한 거 맞아? 어디 한 번 봐 봐. 대화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