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위험한 아침 (3)
* * *
"오빠?"
오연주는 형민이형을 불렀다.
형민이형이 숟가락을 들려고 하자마자 이번에도 오연주는 그를 유혹할 참이다.
형민이형은 설마 오연주가자신을 불렀겠어 싶었는지, 당황어린 표정으로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오연주는 그 모습을 보고 형민이형에게 말했다.
"호호! 오빠요, 여기에 오빠가 오빠밖에 더 있어요? 상훈이는 저보다 어리고."
오연주는 형민이형에게 그렇게 말하며, 형민이형을 유혹하려는 듯이긴 생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다.
형민이형은 수저를 내려놓고는 오연주의 말에 집중했다.
"그, 그래? 나? 왜, 왜?"
오연주는 형민이형을 보며 말했다.
"오빠. 오빠 쭉 보다 보니까, 멋있는 면도 있는 것 같아서요."
"내가?"
"네. 오빠 엄청 신비주의같고, 오빠를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진짜?"
형민이형은 또 홀린 눈빛이 됐다.
오연주는 형민이형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 혹시 지금 많이 배고파요?"
"엉? 조금 배고프긴 한데……."
"그래도, 식사 조금만 있다가 하면 안 돼요?"
"왜?"
"음……. 오빠하고 언제 이렇게 식사 시간에 마주칠 수 있으면 그 때, 꼭 오빠하고 같이 이야기 나눠 보고 싶었거든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오연주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에이. 단둘이 조용히, 제 방에서 대화 좀 나누고 싶어서 그러죠."
"다, 단 둘이? 네 방에서? 헉……. 여자 혼자 사는 방인데……. 내, 내가 가도……. 될까?"
형민이형은 거의 덜덜 떨며 말했다.
그는 언뜻 보면 망설이는 것처럼 말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누가 봐도 오연주에게 200% 넘어간 상태다.
오연주는 선해 보이는 맑은 눈으로 형민이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요! 딱, 오빠만 허락해 주는 거에요."
어쩌면 내가 오연주를 몰랐다고 한다면, 나도 오연주의 이 투명하게 빛나는 눈빛에서 한치의 거짓도 읽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했다.
미녀가 유혹을 해 오면, 아닌 걸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고, 믿을 수 없지만 믿게 되는 걸까? 잠재의식의자의로써?
음, 내 생각엔그것보다, 그냥 진짜로 내가 속아주려고 속는 게 아니라 정말 믿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형민이형처럼 말이다.
'선택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오연주 누나의 감염이 의심되니 형민이형을 그녀로부터 떼어놓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식사를 마무리하고 등교한다]
나는 나까지 홀려 버릴 듯한 오연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는, 고개를 좌우로 한 번 세차게 저었다.
'존나 이쁘지만, 현혹되지 말자.'
끼익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는 옆쪽 의자에 두었던내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내가 식사를 마친 그릇을 씽크대 위에 올려놓은 다음 형민이형 쪽으로 가서 자연스럽게말을 걸었다.
"아, 형민이형! 잠깐 저하고 담배 하나만 피우시면 안 돼요?"
"어? 나 지금 밥 먹으려고……."
"에이! 저 지금 학교 가려고 하던 참이라 그래요. 형도 아직 식사 시작 안 하셨잖아요. 3분만요!"
나는 형민이형의 팔을 끌며형민이형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오연주는 다 된 떡에 콘돔을 뿌리는 듯한 나의 행동에 '이 새끼 뭐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나는 그런 오연주에게태연하게웃으며 말했다.
"연주 누나, 저, 형민이형 3분만 빌릴게요!"
"이……. 잠깐……!"
오연주 누나는 당황한 나머지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당황해 있는 오연주 누나의 바로앞에서형민이형을 빼돌리면서, 이번에도아주 잠깐만빌리는 척 하기로 했다.
"아, 금방 올 거에요! 집 앞에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요!"
나는 식사를……. 아니, 섹스를 하려던 형민이형을 붙들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식당 밖으로 나가고 나자, 형민이형은 나에게 말했다.
"야. 상훈아. 밥 먹으려고 하는데 왜 그래?"
"할 말이 있어서요. 잠깐이면 돼요."
"어? 어. 너 담배 피울 동안 같이 잠깐 이야기 하자는 건줄 알고 일단 따라나왔긴 했는데……."
나는 형민이형에게 곧장 본론을 이야기했다.
"형. 실은, 오연주 누나, 실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돼요.아무 이성하고나 섹스하고 싶은 상태일 수 있다고요."
내 말에, 형민이형은 오연주와의 섹스에 머릿속이 어느 정도 잠식된 상태에서 나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의심? 그러면 아직 모르는 거 아냐? 실 바이러스 감염자라는 확진을 받은 것도 아니네, 그럼 굳이연주 방에서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놓칠 수는……."
나는 형민이형의 말을 바로받아쳤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연주 누나한테 실 바이러스 검사를 먼저 받게 하면 되잖아요? 의심자 신고 해서요.그래서 확진이 아니면, 형이 연주 누나하고 같이 방에 들어가서 물고 빨든, 마음대로 하시면 되잖아요?"
"어? 그런……."
형민이형이 망설이는 틈에 나는 그를 더 몰아붙였다.
"하, 사실 형도 알잖아요, 연주 누나 같은 사람이 형하고 떡 치고 싶어할 리 없다는 걸. 우연한 취향? 설마 희망회로 돌리면서 그딴 소리 할 건 아니죠?"
형민이형은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건 그래.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리고 상훈아. 나도 실은, 뉴스 봤어. 이 근처에 실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 듯한 형민이형은자신의 후드티 주머니에서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이거……."
형민이형이 물건을을 꺼내며 내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날 구해줬는데, 고마워서 주는 선물이야. 아침에편의점 들렀다가 필요한 일이 생길까 싶어샀던 건데……. 둘중에 하나는 너 써."
선택지가 발생했다.
[USB와 OTG젠더 세트]
[자물쇠와 열쇠 세트]
[받지 않는다]
선택지의 모래시계의 시간제한은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생각했던 '자물쇠와 사슬로 유성추를 만들기' 전략은 감옥 수감 엔딩을 불러올 것 같으니 폐기했고.
그러면, 다른 방식으로 이 아이템들을 어떻게 쓰는 방법이 있나?
조금 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눈이 확 떠졌다.
'이게 돼?'
나와 형민이형은 식당에서 나와서 문과 가까운 쪽에 있었다.
그런데 보니까 식당의 문은 기본적으로는 열쇠로 열 수 있게 되어 있는 구형의 목조도어인데, 문 중간에 못으로 박아 수동으로 만들어 놓은 자물쇠 고리가 있다.
그것을 발견한 나는 마음속으로 희열을 느꼈다.
'자물쇠를 고르면, 오연주를 식당 안에 감금시켜 버릴 수 있는 거였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형민이형의 손에서 자물쇠와 열쇠 세트가 들어있는 작은 종이상자에 손을 댔다.
그랬다가, 나는 종이상자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 USB는 뭐야? 자물쇠의 용도는 알겠는데, USB는?그냥 자물쇠 선택을가리기 위한 연막에 불과한 건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자물쇠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만, 자물쇠를 선택함으로써 내가 원작에서 선택했던 USB를 가지지 않게 되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둘 다 가지고 싶었다.
자물쇠는 여기서 쓰고, USB는 뭔지 모르지만 일단 들고 다녀 보기로 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
내가 분명 진 히로인인 김아영 루트를 원코인으로 클리어했었을 때는 USB와 자물쇠 둘 다 쓸 일이 없었기는 했다.
그런데 쓸모없어 보였던 자물쇠를 이렇게 유용하게 쓸 일이 생겼다는 건, USB도 어쩌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되지만 쓰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아이템인 지도 모른다.
'둘 다, 가지고 싶은데…….'
그리고 나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이건, 도박이지만.
나는 형민이형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에요, 형민이형. 저는……. 형민이형을 구한 것만으로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최대한 애잔하게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려노력하며 형민이형에게말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이 세상 어떤 일보다 더 가치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런 물건은 저한테 필요없어요. 형을 구했다는 것만으로 저는 너무 좋고, 제 마음에 충분한 보상이 되었으니까요."
선택지가 사라졌다.
나는 세 번째 선택지인, 형민이형이 자신을 구한 것에 대한 답례를[받지 않는다]를 선택한 것이다.
이건 진짜 그야말로 도박이다.
이런 선택지는 선택지마다 다를 수가 있어서이다.
보통은 이런 때는, 받지 않는다고 하면 진짜 아무것도 갖지 않고 다음 스토리가 전개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선택지가 나왔을 때 욕심을 버리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올 때도 있다.
확률적으로는 더 적지만.
현실적으로는 이제는 사용처를 알게 된 자물쇠를 가지는 게 훨씬 낫기는 하다.
이렇게 둘 다 가지고 싶어서 이상한 수를 썼다가 진짜로 형민이형이 나에게 아이템을 아무것도 주지 않기라도 한다면……!
나는 불리한 도박을 걸고 나서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형민이형은 곧 나에게 대답을 해 왔다.
"상훈아……."
형민이형은 고개를 떨궜다.
"큭……. 내가 생명의 은인한테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인데, 이렇게 고르라고 하고나 있고."
그리고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내 손에 'USB와 OTG젠더 세트', 그리고 '자물쇠와 열쇠 세트' 두 개를 모두 쥐어 주었다.
나는 확률 적은 도박이 먹혀들어갔음을 감지했다.
'씨발, 성공, 성공이다!'
나는잘 안 될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에 성공을 해서인지씨발 존나 기뻤다.
그렇지만 애써 티는 내지 않았다.
형민이형은 나에게 말을 이었다.
"상훈아, 이거 둘 다 가져. 그리고……. 오늘 정말 고맙다. 일단 나는 방에 틀어박혀서 문 제대로 잠그고 신고부터 할게. 실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가 하숙집에 있다고."
"그래 주실래요?"
나는 아이템을 챙겨 들고 있는 채로 형민이형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 형, 저는 수업 들으러 가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그래, 상훈아. 고맙다."
형민이형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방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형민이형이 멀어져가는 동안, 나는USB 세트와 자물쇠 세트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앗싸, 씨빨! 아이템 두개 다 얻었다!'
오연주를 가둬 놓는 데에 필요한 자물쇠, 그리고 어디에 쓰는지 알 길이 없는 USB, 이 두 가지 아이템을 모두 얻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USB와 OTG젠더 세트를 주머니에 먼저 넣었다.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있는 거라 주머니에 쉽게 들어갔다.
아이템을 챙기다 보니 선택지가 떴다.
[학교 쪽으로 간다]
[아무래도 아쉽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오연주와 섹스를 할까…….]
선택지는 내가 죽었던 방금 전 회차에서 똑같이 봤던 거였다.
나는 선택지에 대답하듯 말을 하며 종이상자를 열어 자물쇠와 열쇠를 꺼냈다.
"학교 가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이 년 가둬 놓고요."
나는 하숙집 식당 문에 달린 자물쇠 고리를 향해 자물쇠를 쥔 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