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위험한 아침 (2)
* * *
"허어어어어억!"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다시 숨이 쉬어지고, 블랙아웃됐던 시야가 돌아왔다.
"하아, 하아……."
나는 하숙집의 식당에 앉아 있었다.
방금까지 사슬로 목을 졸리고 있었기에, 나는 통증이 사라진 뒤였지만 다급하게내 목 언저리를 손으로 더듬더듬만져보았다.
'죽으면 중요 분기 전으로 돌아온다고 했던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하숙집의 식당에는 아무도 없다.
그 말은, 지금 시점은 내가 맨 처음에 이 식당에 식사를 하러 왔을 때로 돌아왔다는것이다.
아직 오연주나 형민이형은 도착하지 않은 때다.
"하, 씨발. 이렇게 죽어버리다니."
나는 국그릇 옆쪽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이마를 받쳤다.
그때 못보던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이 종이는 뭐야."
나는 이마를 받치지 않은 손을 뻗어식탁위에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을 떼었다.
거기에는 볼펜으로 쓴 손글씨가 있었고 나는그것을 읽었다.
[목숨은 이제
4개가 남았네요.
아쉽네요 방금 그게
마지막 목숨이었다면
그대로 시체가 되어버리는 건데..]
그것을 읽고는, 욕을 내뱉으며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이런 씨발! GM 앱솔루트 빠구리!"
나는씩씩거리며, 찍어버린 종이를식탁 한쪽에 휙던져 놓았다.
그리고 나는 턱에 손가락을 괴며 잠시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한 번 죽을 줄이야.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죽었다.
내가.
원코인으로 클리어를 했던 내가, 죽음을 맞이했다.
전혀 생각 밖이었다.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가는 게 사는 길이었다니……!
원작에서 나는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두려움 없이달려들었다.
언뜻 보면 위험한 선택지.
그러나 그게 사는 길이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거였다.
전혀 몰랐다.
가보지 않은 길이 이렇게 뒤에서 일격을 맞고 바로 죽어버리는 엔딩일 줄은.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슈퍼 할머니를 구하러전력질주로 뛰쳐나간 탓에, 오연주가 내 뒤에서 다가왔지만 나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 다음은, 나는 할머니에게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하는 데에 전력을 다했기에 뒤를 돌아볼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를 죽이기 위해 뒤에서 오연주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기에 내가 뛰어든 다음에도 사람들이 더 몰렸었다.
그 뒤로는, 오연주는 어떻게 됐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단 수저를 들었다.
죽기 전에 맛있게 먹었던 고추장 양념 닭구이를, 한 수저 가득 뜬흰 쌀밥에 올려서 야무지게 먹어본다.
"우물우물……."
맛있었다.
죽으면서 배불렀던 것도 리셋이 돼서 음식의 첫 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식사를 하다 보니 이번에도 오연주가 도착했다.
그녀는 긴 생머리를 나풀거리며, 이번에도 흰 티에 파란 청바지 차림으로 식당에 등장했다.
'왔구나.'
이번에도 예쁘긴 했다.
방금 전에 오연주가 나를 죽였음에도, 그녀의 몸에 나는 저절로 눈이 갔다.
그녀가 밥솥에서 밥그릇에 밥을 뜰 때에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뚫여져라 쳐다봤다.
꽉 끼는 그녀의 청바지……. 나는 그 튼실한 엉덩이를 바지를 벗겨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오연주와의 섹스는바로 실행에 옮길수도 있는 일이다.
목숨 1개를격리소 엔딩으로 죽는 것으로 버린다고한다면.
'그래도 시발, 존나 섹시하긴 하네. 이렇게 죽을 거였으면, 차라리방금 전판에 오연주하고 떡 한 번 시원하게 존나 치고 감염돼서격리소 엔딩 가는 건데…….'
방금 날려버린 1목숨이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오연주의 몸을 보고 있는 동안, 오연주는 밥과 국을 떠서 내 옆으로 와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나는 오연주의 몸은 오연주가 등장하고 난 다음에 잠시 동안만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원작을 했을 때하고 똑같이 가야 되는 건가?'
확실히 오늘 아침의 경우에는, 원작하고 똑같이 가기가 나름 부담이 있었다.
원작하고 똑같이 가려고 하면 나는 슈퍼에서 그 칼든 미친년을 맨몸으로 상대해야 됐다.
'만약에 내가 먼저 무기를 준비한다면?'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형민이형을 구하면 주는 아이템 2종 중에서, 자물쇠를 고른다면?
일단 자물쇠를 들고, 식당에서 오다 보면 떨궈져있는 사슬도 오연주보다내가 한발 먼저줍는다.
그런 다음에사슬 끝에 자물쇠를 달아서유성추를 만드는 거다.
사슬을 붕붕 돌리면서 슈퍼 할머니를 괴롭히는 칼든 알몸녀에게 달려가면 두려움 Down!
사슬 자물쇠로 미친년의 머리통에 팍!
아! 그러면 나는 과잉 방어로 감옥에 gogo!
집안에 도둑이 칼을 들고들어와도 때리면 감옥인데 내가 제3자이면서 공격까지 한다면 충분히 감옥 엔딩 가능!
이런 씨발……. 아니야.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다.
역시 그냥 맨몸으로말리는 수밖에 없나.
슈퍼 전까지는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것 같고, 슈퍼에서 어떻게 넘어가야 되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옆에서 식사를 하던 오연주 누나가 내 쪽으로 조금 가까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는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반찬 어때?"
이 전 회차에서는 내가 오연주의 유방을 흘끗흘끗 봤었고, 오연주는 자신의 유방을 본 게 아니냐며 말을 걸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오연주의 유방을 보고 있지 않자 다른 방식으로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바로 옆에서 노골적으로 관심을 표하듯 내게 몸을 좀들이대며 말을 걸어오는데, 확실히 예쁘긴 예뻤다.
방금 나를 죽였던 여자인데도 떡을 치고 싶을 정도면 말 다 한 거긴 했다.
나는 속마음으로는 식탁의 반찬을 쫙 엎어버리면서,"씨발, 반찬 다 필요없고 누나만 있으면 돼요. 누나, 다 알아요. 실 바이러스 감염자여서 떡 존나 치고 싶죠? 그래요. 식탁 위에 올라가서 일단 바지 벗고 팬티까지 벗은 다음다리 벌리세요. 청바지 벗고 대음순 양쪽으로 벌리고 계시면 바로 제 좆 들어갈게요." 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다섯 목숨을 죽으면 나는 끝이다.
그런데 벌써 한 목숨을 날렸다.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에서 여대생들만 나오고 아직 싸이코 교수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원작을 깼을 때와 똑같이 해 나간다면 4목숨은 보전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도 확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처럼 사소한 변수 하나로, 아무리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지만전화 한 통 하다가 목숨이 골로 가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목숨은 최대한 지켜야 된다.
이런 곳에서 시체가 되어 영원히 남아있고 싶지 않으면.
그리고, 목숨이 많이 남아있을수록 그 'absolute892'는 나에게 더 좋은 선물을 준다고 했었다.
그것도 나름 기대가 되고.
나는 섹스에 대한 욕망을 생존과 선물에 대한 욕망으로 누르며 오연주를 돌아보았다.
"반찬이요? 뭐, 하숙집 치고는 존나 맛있는 편이죠. 차라리 여기가 현실이었으면 좋겠네요, 씨발. 싸이코 교수 처리한 다음에,여대생들이랑 떡 존나 치고."
"뭐?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뭘 친다고?"
"아. 혼잣말이에요. 제가 꿀송편을 좋아하고요, 저희 엄마는 쑥떡을 좋아하세요."
"뭐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오연주는,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더니 그 손을 자연스럽게 내려 나의 허벅지 위에 올린다.
"저기, 근데, 그, 상훈이, 맞지? 김상훈."
"네."
나는 오연주의 물음에 대답하고는 덧붙여 말했다.
"음. 여튼 고맙네요. 형민이형은 이름 모르는 것 같더니, 제 이름은 아시는군요."
"형민……?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오연주는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나의 허벅지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그리고, 오연주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번에는 상체를 조금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나의 팔짱을 가볍게 끼고 들어오는 듯 하며 말했다.
"저……. 근데 상훈아."
"네?"
"식사도 거의 다 한 것 같은데, 누나랑 올라갈래?"
오연주는 고개를 내 시선 쪽으로 빼꼼 숙여 오면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했다.
"누나가……. 실은 요즘 좀 외로워서…….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인상도 좋았고, 이야기 좀 해 보고 싶었어."
오연주 누나는, 이번에는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해 오면서 발로도 내 다리를 슥 만지기도 했다.
'멀티태스킹 지리네.'
나는 이번에도 동일하게선택지가 뜨기 전까지 오연주의 이런 육탄공세를 즐기기로 했다.
"누나도 식사하셔야죠."
"난 오늘 좀 입맛이 없네?"
오연주 누나는 내가 자신의 유혹에 거의 걸려들어왔다고 생각한 듯, 이제 몸을 내 쪽으로 완전히 밀착하면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가자……!"
그녀의 말과 함께 선택지가 발생했다.
[오연주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간다]
[거절한다]
나는 오연주의 말을 듣고는 그녀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연주가 워낙 나에게 다가왔기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와 나의 얼굴이 상당히 가까웠다.
나는 오연주에게 말했다.
"아, 누나. 제가 학교갈 시간이 다 돼서 어떡하죠? 근데, 걱정 마세요. 조금 있다가, 진짜 잘생긴 형 밥 먹으러 올 거거든요? 그 존잘 형하고 시간 보내시면 좋을 것 같은데."
"진짜?"
아니, 가짜다.
식사를 하면서 조금 시간이 지나자 형민이형이 식당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형민이형은 낡은 옷에 지저분한 피부와 머리를 하고 동일하게 하숙집의식당으로 들어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중에서는 외모로는 형민이형이 최악일 것이다.
작은 키에 머리가 큰, 폐인 그 자체의 모습인형민이형은 식당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자 눈치를 보듯조심스레 주춤주춤 밥솥 쪽으로 갔다.
나는 오연주 누나를 보았다.
내가 존잘 형이 올 거라고 농담을 한 것에 대해 오연주 누나가 나에게 어떻게 반응할 지를 한 번 보고 싶었다.
과연 오연주 누나는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며 고개를 사선으로 한 번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쪽으로 가까이 잠깐 붙어서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상훈아. 누나한테 혼날래? 존잘남 온다며."
"아, 그, 뭐, 더 올 수도 있죠. 하숙집에 사람도 많이 사는데."
"흐응……. 나 정도 되면 누구라도 한번에 꼬실 수 있긴 하지만."
오연주 누나는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오연주 누나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혼잣말을 했다.
"그치만 더 기다릴 순 없어. 지금 너무 급하단 말이야."
그녀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형민이형은 밥과 국을 다 떴고, 그는 이번에도내 앞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