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위험한 아침 (1)
* * *
하숙집 식당에서 나와서, 형민이형은 오연주로부터 도망치라는 나의 말에 대답했다.
"뭐? 내가 왜 도망쳐야 돼? 연주가나한테 멋있다고 하면서 같이 이야기 좀 하자는데……."
여기서 원작의 주인공은 형민이형에게상당히 착하게설득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팩폭을 날릴 생각이었다.
"형. 솔직히 그게 말이 돼요?"
내가 쏘아붙이는 어조로 말을 하자 형민이형은 조금 긴장한 듯이 되물었다.
"뭐, 뭐가?"
"오연주 누나, 솔직히 존나 예쁘잖아요. 그런 누나가, 형한테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기 방으로 가자고 하면서 접근하는 게안 수상해요? 평소에는 한 마디도 안 걸다가?"
"그건……."
형민이형은 잠깐 생각하다 나에게 대답했다.
"그래도 수상할 것까진 없지 않아?사람마다 취향이 있는데, 연주 취향이 나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럴 수는 없어요, 형. 형이 한 100조 있으면 모를까?"
"큭! 그, 그건 너무한 거 아냐? 아무리 나라도 100조까지는 아니고 한 100억 정도면……."
"아뇨. 솔직히 형은 100억으로는 힘들어요."
나는 슬슬형민이형에게 본론을 이야기했다.
"형. 실은, 오연주 누나, 실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돼요.아무 이성하고나 섹스하고 싶은 상태일 수 있다고요."
내가 말을 하자 형민이형은 희망회로를 돌리며 답했다.
"의심? 그러면 아직 모르는 거 아냐? 실 바이러스 감염자라는 확진을 받은 것도 아니네, 그럼 굳이연주 방에서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놓칠 수는……."
"그럼 한번 연주 누나하고떡 쳐 보실래요?"
"어?"
"감염된 다음에 후회해도 이미 늦어요. 실 바이러스는 아직 치료제도 없고, 일단 감염자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형민이형도 알 것이다.
실 바이러스의 감염자는 감염의심이 되면 경찰에 체포되어국가에서 설립한 격리소에 격리된다.
그리고 그 격리소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직까지는단 한 명도 없다.
내가 격리소 이야기를 꺼내자 형민이형이 말했다.
"격리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 격리소에서는 남녀가대규모로 알몸으로 격리돼서 매일 서로가 원해서 섹스만 하게 되잖아……."
개소리다.
지금형민이형은오연주 누나의 미모에 흔들려서 잠깐 이런 헛소리를 하는 것 뿐이다.
격리소에 가게 돼도 상관없다는 건 형민이형의 본심은 아니다.
그는 결국 주인공의 설득에, 못이긴 체 오연주에게서 도망치는 겁많은인물이다.
나는 그를 더 설득했다.
"그래요. 격리돼서 섹스 무한으로 하는 것까진 괜찮을 지도 모르죠. 근데 격리소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식주 비용은 자비 부담인거 아시죠? 통장에 돈 떨어지면 격리소에서 일을 해야 되죠. 그런데 섹스에 대한 욕망은 하면 할수록 더 심해져서 일할 수 없게되고, 그러면 격리소에서죽죠. 형, 돈 많으신가 봐요? 격리소에서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내가 거기까지 몰아붙이자, 역시나형민이형은 잔뜩 쫄아버리고 만다.
"어? 그……. 그건 아닌데……!"
나는 형민이형의 어깨를 잡으며 그의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럼 빨리 튀세요."
그 때였다.
형민이형은천천히 내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후드티 주머니에서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이거……."
나는 형민이형이 꺼낸 물건들을 보면서 이런 선택지도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아, 맞아. 주인공이형민이형을 구하니까 뭘 가지라고 줬었지.'
형민이형이 꺼낸 물건들은 두 가지였다.
선택지가 발생했다.
[USB와 OTG젠더 세트]
[자물쇠와 열쇠 세트]
[받지 않는다]
하나는 손바닥만한투명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USB와OTG젠더 세트.
다른 것은작은 종이 박스에 담긴자물쇠와 열쇠 세트다.
"그래도 이렇게 날 구해줬는데, 고마워서 주는 선물이야. 아침에편의점 들렀다가 필요한 일이 생길까 싶어샀던 건데……. 둘중에 하나는 너 써."
내가 플레이어였을 때, 나는 두 가지 중에USB와 OTG젠더 세트를 골랐었다.
전자기기에 관련한 물품들이다 보니 뭔가 좀 더 좋아 보여서.
그렇지만 결국 나는 김아영의 진엔딩을 볼 때까지 그걸 쓸 일이 없었다.
'흠.'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이거 쓸게요."
나는 이번에도 USB와 OTG젠더가 들어있는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를 골랐다.
어차피 형민이형이 주는 아이템들은 둘 다 내가 진엔딩 스토리를 진행하는 데 딱히 필요한 일이 없는 것들이다.
원래 이렇게 고르기도 했었고.
내가 물건을 고르자, 형민이형은 내가 고르지 않은 자물쇠와 열쇠 세트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자신의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난 이만……."
"들어가세요, 형."
나는 원작을 플레이할 때와 동일하게 고른 USB와 OTG젠더 세트를 주머니에 넣었다.
형민이형을 보내고 나서 나는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스윽 닦았다.
"후우."
그리고 다음선택지가 떴다.
[학교 쪽으로 간다]
[아무래도 아쉽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오연주와 섹스를 할까…….]
이 선택지도, 나에게는 존나 쉬운 선택지였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서 오연주와 섹스를 하게 되는 순간, 나는 감염자가 되어 격리소 엔딩을 맞이할 것이다.
"학교 가자."
나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식당에서 학교 쪽으로 가는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도 선택지의 시간제한을 무난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식당 앞쪽에서 나는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발을 딛었다.
탁, 탁…….
내가 사는 방은 1층, 그리고 하숙집의 식당은 2층에 있다.
2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달 때 보이는풍경은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의 게임에서 봤던 모습과 같다.
계단 중간에 공간이 있는 곳에는 큰 화분이 하나 있는데,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나름 줄기가 굵고 잎사귀가 큰 식물이 심어져 있는화분이 하나 있다.
그리고 화분 옆으로는 옥상 문고리를 고정할 때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 쇠사슬이 놓여져있다.
딱히 생각할 것 없지 지나칠 만한, 너무도 일상적인 풍경이다.
별 일 없이 계단에서 내려와, 나는 대학교 쪽으로 걸어간다.
저벅, 저벅…….
지금까지는 모두 순조롭게 해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내가 어제 잠들기 전에 이 아침을 두려워했던 이유.
그것은 다름아닌, 곧내가 학교를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될 슈퍼에서의 사건 때문이었다.
나는 걸어가면서,그 사건을 생각하며 마음을 졸였다.
'시발, 진짜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 동안 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슈퍼와 점차 가까워져 갔다.
나의 발걸음은 슈퍼와 가까워질수록 느려졌다.
그러나 사건을 피할 수는 없다.
내가 슈퍼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알몸으로 칼을 들고 슈퍼 할머니에게 괴성을 지르며 뛰어든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콰르르!
소리지르며 칼을 들고 뛰어든 알몸의 여자는 슈퍼 앞쪽 진열장에 몸을 부딪쳐 잠시 쓰러진다.
진열되어 있던 것들이 무너지고, 할머니는 알몸의 학생 쪽으로 다가간다.
"학생! 학생! 왜 이래! 학생!"
나는 그 모습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보게 된다.
알몸의 여자는 진열되어 있던 물건과 부딪쳐 넘어졌음에도 칼을꽉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할머니를 보며 분노에 가득찬 눈빛을 한다.
"동성은 다 죽인다……! 죽어……. 죽어어어어어어어어!"
그렇게 다시금 소리치며, 알몸의 여자는 칼을 번쩍 들어 할머니를 찌르려 한다.
할머니는 필사적으로 알몸의 여자의 손목을 두 손으로 잡지만, 곧 뒤로 넘어진다.
"학생! 아이고!"
그리고 할머니의 위에 올라탄 알몸의 여자, 그리고할며니의 힘싸움이 이어진다.
"아이고! 살려! 사람 살려!"
바로 여기다.
나는 어제부터, 여기서 뜰 선택지를 두려워했다.
'시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한다]
[경찰에 신고한다]
[못본체 하고 등교한다]
원작을 플레이했었을 때, 나는 이 상황에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저 미쳐 날뛰는여자 감염자에게팔을 베어 상처를 입게 되지만, 무사히 할머니를 구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 때는 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게 존나 쉽게 가능했었던 거였다.
게임이니까, 정의로운 일을 하면 뭔가 좋은 일이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선택지를 보자마자 나는 아주 쉽게 저 칼든 미친년을 제지하는선택지를 고를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실로 찾아온다면?
사실 쉽지 않다.
칼을 들고, 그것도 실 바이러스로 인해 제정신이 아닐 뿐더러 힘까지 강한 그녀가 칼을 휘두르는 곳에 맨몸으로뛰어든다는 것은 존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가슴이 뛰고 손발이 벌벌 떨렸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결정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원작과는 다른 선택지를 고를 것을.
'그래, 게임이면 몰라도, 여기서는 오히려 칼든 미친년한테 뛰어드는 게 미친 짓이다. 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섹스에 필사적이 되어 방해자를 향해 가하는 힘도 상상을 초월한다는데……. 지금은 이게 맞다.'
나는 이번에는 할머니를 구하러 뛰어들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못본체 하고 등교하는 건 심했다.
내가 고를 선택지는, 2번.
경찰에 신고한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1, 1, 2를 차례대로…….
그렇게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막 눌렀을 때였다.
"커헉!"
탁!
내가 손에서 놓친 휴대폰이 땅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는 목이 졸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꾸윽……."
차디찬 무언가가 내 목을 조여왔고, 나는 뒤늦게 두 손으로 그것을 풀기 위해잡아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점점 더 나는 뒤쪽으로 끌려갔고 몸의 균형을 잃으며 몸을 휘청했다.
그리고 나는 오연주가 뒤에서 내게 은밀하게 접근해서사슬로 내 목을 졸랐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하아……. 하아……! 이 씨발 새끼……! 감히……. 감히 네가 내 섹스를 방해해……!"
목이 졸려가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오연주는 나의 목을 더욱 세게 졸랐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내 섹스를 방해하는 건, 살려둘 수 없어! 죽어! 죽어어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껙……. 께……."
오연주에게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오연……. 주…….'
나는 정신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