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유혹 (2)
* * *
기다렸다.
이 선택지를.
이렇게 예쁜 오연주가 바로 옆에서 나에게 육탄공세로 해 오는 유혹은 나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기는 했다.
그래서 나는 선택지 뜨기 전까지는 잠시 오연주가 나를 유혹하는 걸 좀 즐기기로 했던 거였다.
그러다 이렇게선택지가 뜨고 나면 바로오연주를 밀어낼 생각이었다.
[오연주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간다]
[거절한다]
나는 나의 팔에서 오연주의 손을 떼어내며 그녀를 보고 말했다.
"누나! 죄송한데, 저 학교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요, 누나 방에는 다음에 가야 될 것 같은데요?"
오연주는 옆에 앉은 내 쪽으로 상당히 몸을 기울여 오고 있어서 얼굴간의 거리가 가까웠다.
그녀는 그 가까운 거리에서, 약간은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하아……. 그래, 알겠어."
오연주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제대로 앉아 식사를 깨작깨작 하기 시작했다.
'좋아. 거절을 했더니 선택지의 시간제한이 또사라졌다.'
이번에도 선택지를 완벽하게 넘겼다.
나는 잠시 오연주가 성의없이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힐끔 보았다.
오연주는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에, 식사보다도 지금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충동에 더 크게 사로잡혀 있을 것이었다.
'여기까지도 원작은 일단완벽하게 재현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원작을 플레이했을 때도 오연주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고 스토리를 진행시켰었다.
그 결과 다음 이야기도 순조롭게 이어나갈 수 있었고 말이다.
"우물우물……."
나는고추장 양념이 맛깔나게 된 닭구이 요리를 흰 쌀밥과 함께 마저 먹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에 형민이형이 식당으로 올 거다.'
나는 다음 수도 미리 염두에 뒀다.
잠시 뒤면 형민이형이 식당으로 올 것이다.
형민이형은 2층에 사는, 주인공과 오연주보다 나이가 더 많은 대학생이다.
원작에서는 나와 오연주가 식사를 하는 동안 형민이형이 식당에 도착하고, 오연주는 나를 유혹하는 것을 실패하고는 형민이형이 오자마자 형민이형을 유혹하려고 한다.
거기서 선택지가 발생한다.
형민이형이 오연주로 인해 감염되는 것을 막느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을 게임으로 플레이했을 때의 나는 이 때도 큰 생각은 없었다.
선택지가 뜨자마자 나는 주인공으로형민이형을 설득해서 그를 감염으로부터구하는 선택지를 골랐다.
굳이 감염자가 늘어나는 걸 보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이번에도 그대로 가면 된다!'
나는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 지나자, 역시나 형민이형이 식당으로 왔다.
"형, 안녕하세요!"
나는 식당으로 들어오는 형민이형에게 인사했다.
형민이형은 소극적으로 대답했다.
"어……. 그래……."
야겜 속으로 들어와서, 여캐를 쭉 만나다가 남캐를 만나는 것도 좀 신기하기도 했다.
「싸이코 교수와 여대생들」에서, 주인공인 나도 못생긴 편으로 묘사가 되기는 한다.
짝사랑하는 이보람이 절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농락만 하는 것으로도 그것은 어느 정도 알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형민이형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형민이형은 크지 않은 키에 얼굴이 크고, 피부는 더러우며,콧구멍이 크고, 안경을 꼈다.
차림새는 전형적인폐인 같은 모습이며 성격은 히키코모리 스타일이다.
내가 한 눈에 그를 파악한 것이 아니라, 원작 게임에서 그렇게 묘사가 되는 인물이다.
'조금 심한데? 근데 왠지,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캐릭터이긴 하네.'
형민이형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반찬을 눈으로 한 번 쓱 훑고는 그릇이 있는 씽크대쪽을 향해 걸어갔다.
달그락
그리고 형민이형은밥과 국을 뜨고, 내 맞은편 쪽으로 와서 의자를 당겼다.
끼익
형민이형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수저를 들었다.
탈칵
이로서 식당에는 세 사람이 식사를 하게 된다.
나, 오연주 누나, 그리고 형민이형.
형민이형이 나와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도 원작대로인데,형민이형은 원작에서나와는 가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형민이형은 오연주 누나와 이야기를 해 본 적은 전혀 없다. 하숙집 전체 모임 술자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뭐, 나도 그랬지만.
어쨌든 형민이형으로서는 간혹 이야기를 나눴던 나를 오연주 누나보다는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형민이형으로서는 충격적일 일이 벌어진다.
형민이형이 수저를 들자마자, 오연주 누나가 형민이형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빠?"
형민이형은 오연주 누나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경 속에서 눈을 꿈뻑거리더니 좌우를 둘러봤다.
오연주는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면서 형민이형에게 말을 이었다.
"호호! 오빠요, 여기에 오빠가 오빠밖에 더 있어요? 상훈이는 저보다 어리고."
오연주는 긴 생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며 형민이형을 직시했다.
오연주 누나가 형민이형에게 그렇게 관심을 보이며말을 걸자, 형민이형은 여자에게 단지 한 마디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버거운 듯 수저를 내려놓고 약간 겁먹은 듯한 눈으로 오연주를 보았다.
"그, 그래? 나? 왜, 왜?"
오연주는 여전히 형민이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빠. 오빠 쭉 보다 보니까, 멋있는 면도 있는 것 같아서요."
"내가?"
"네. 오빠 엄청 신비주의같고, 오빠를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진짜?"
오연주는 몇 마디를 그냥 가볍게 던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형민이형은 거의 오연주한테 홀서서 정신이 완전히 팔려버린 눈빛이었다.
형민이형의 반응이 그러하자, 오연주는 상체를 형민이형 쪽으로 기울이며 그에게 더 말을 했다.
"오빠. 혹시 지금 많이 배고파요?"
"엉? 조금 배고프긴 한데……."
"그래도, 식사 조금만 있다가 하면 안 돼요?"
"왜?"
"음……. 오빠하고 언제 이렇게 식사 시간에 마주칠 수 있으면 그 때, 꼭 오빠하고 같이 이야기 나눠 보고 싶었거든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형민이형이 말하자, 오연주는 하얀 오른손을 한 번 휘저으며 웃음을 짓는 얼굴로 형민이형을 바라보았다.
"에이. 단둘이 조용히, 제 방에서 대화 좀 나누고 싶어서 그러죠."
"다, 단 둘이? 네 방에서? 헉……. 여자 혼자 사는 방인데……. 내, 내가 가도……. 될까?"
오연주는 선해 보이는 맑은 눈으로 형민이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요! 딱, 오빠만 허락해 주는 거에요."
나는 그런오연주의 모습을 포고 픽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래서 겉모습만 보고는 모른다고 하는 건가?
만약 내가 원래의 현실 속에서 이런 상황에직면했다면, 저런 선한 눈빛을 하고 있으면 내 뇌가 아니라 아랫도리가 그녀를 믿어버릴 것 같다.
오연주가 그렇게 형민이형을 꼬시고 있을 무렵, 내가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선택지가 나타났다.
[오연주 누나의 감염이 의심되니 형민이형을 그녀로부터 떼어놓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식사를 마무리하고 등교한다]
형민이형은 조금 대답을 미루고 있었지만, 뚫어져라 오연주의 얼굴을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녀에게 거의 넘어간 상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나설 때가 됐다.
'나왔구나. 가볼까?'
끼익
나는 빈 의자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들며의자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마무리한 나는 씽크대 쪽으로 가서밥그릇과 국그릇을 씽크대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나는형민이형 쪽으로 가서 허리를 살짝 숙이고는 말했다.
"아, 형민이형! 잠깐 저하고 담배 하나만 피우시면 안 돼요?"
"어? 나 지금 밥 먹으려고……."
"에이! 저 지금 학교 가려고 하던 참이라 그래요. 형도 아직 식사 시작 안 하셨잖아요. 3분만요!"
나는 형민이형의 팔을 끌며 반강제로 형민이형의 식사를 중단시켰다.
나에 의해 엉겁결에 이끌려 오는 형민이형을 주시하는 오연주에게도, 나는 웃으며 말을 했다.
"연주 누나, 저, 형민이형 3분만 빌릴게요!"
"이……. 잠깐……!"
오연주 누나는 당황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연주로서는이제 형민이형에게 양념은 다 쳐놨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서 섹스만 하면 되는데 마지막에 나에게 뜻하지 않은 방해를 받았으니 좀 놀랄 만도 했다.
나는 당황해 있는 오연주 누나에게서 형민이형을 빼돌리는 한편, 그녀로부터 적대심은 최대한 사지 않도록 말했다.
"아, 금방 올 거에요! 집 앞에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요!"
이렇게 갑자기 담배 이야기를둘러대는 것은, 원작에서 내가 형민이형을 구하는 선택지로 갔었을 때 주인공이 했던 수법이었다.
나는 내가 플레이를 했을 때에봤던모든 말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각각의 사건들에서 일어났던 큰 흐름들은 이렇게 다시 맞닥뜨리게 되면곧잘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형민이형을 식당 밖으로 빼돌리자 형민이형은 나에게 말을 했다.
"야. 상훈아. 밥 먹으려고 하는데 왜 그래?"
"형 비흡연자죠?"
"어? 어. 너 담배 피울 동안 같이 잠깐 이야기 하자는 건줄 알고 일단 따라나왔긴 했는데……."
"담배는 안 피울 거고, 할 이야기는 있어요."
나의 그런 말에 형민이형은 잠시 얼빠진 얼굴을 했다.
나는 그런형민이형에게 말했다.
"도망쳐요, 형민이형. 형 방이 됐든, 학교가 됐든요. 오연주 누나하고는 절대마주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