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처녀 빗치 (3)
* * *
'무섭냐고?이 실 바이러스사건이? …….이것도……. 그래,똑같이 대답하면 될 것 같기는 한데, 아, 씨발, 이거 은근히 쫄려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내가 플레이었을 때와 달리,이보람이 내게 물어본 것에조금씩 망설임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같으면 존나 대수롭지 않은 선택지다.
단지 이보람이 대화 도중에 휴대폰을 보여 주면서 가볍게 물어본 것뿐이고 이게 게임 자체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선택지니까 말이다.
나는 그래서 원래는 별 생각없이바로 선택을 했었던 선택지다.
원래 야겜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데, 그 선택지 중에서는 존나 중요해서 게임의 흐름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는선택지가 있고그렇게까지는 중요도가 크지 않은선택지가 있다.
이 선택지 같은 경우에는 딱히 그렇게 엄청난 판도를 바꿀 것 같은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지가 거듭될수록, 나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두려움이 생겨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플레이어였던 내가가보지 않았었던 길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플레이를 했을 때에는 적당히 이러면 되겠지 하고 쭉쭉 넘겼던 선택지들이 연속해서이어져갈수록, 지금의 나에게는만약 그게 아닌 다른 걸 골랐을 때 내가 혹시어떻게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만약 맨처음의 선택지에서내가 그냥 잔다를 선택했다면?
이보람이 내 자취방 창문을 벌컥 열었을 때 그녀를 집에 들이지 않는 선택지를 골랐다면?
그러면 설마, 나는 죽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목숨을 건 도박은 하지 않기로 한다.
사실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선택지가 아닐 지라도 말이다.
'시발, 그래. 영향이 큰 선택지든 아니든, 똑같이 가면 된다!'
나는 같은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이 편이 가장 안전한 것은 당연하다.
[무섭다]
[그렇지 않다]
"무서워."
원래였으면 별 생각없이 택했던 선택지인데 약간 고민했다.
원작에서는무섭다를 선택한 뒤에, 주인공이 이보람에게 이어서 했던 말이 가관이었다.
정확한 멘트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만약에라도 보람이네가 실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네가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내가 어떻게든 널 구해 볼게. 실 바이러스로 인해서 정신을 잃어갈 것 같으면, 나한테 연락해 줘. 바로 뛰어갈게."같은 말을 했었다.
거기에 이보람은 "미친놈아! 내가 감염자한테 걸려서 섹스라도 하길 바래? 내가 그걸 왜 걸려!"라고 하면서 주인공의 팔을 또 때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같은 스윗물소 호구가 아니기 때문에, 선택지는 동일하게 골랐지만 뒤이어 하는 말은 좀 다르게 하기로 했다.
"근데 보람아,니 얼굴이 더 무서워. 걱정하지마."
내가 이보람을 보며 그렇게 말하자, 이보람은 폰을 내려놓으며 어이없다는 얼굴로나를 보며 말했다.
"하, 씨발놈. 지 얼굴은 생각도 안 하지? 내가 지나가는 개의 똥찌꺼기 묻은 항문하고딥키스하는 한이 있어도, 김상훈네 얼굴 보면서는 절대 뽀뽀 못 하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하여튼 씨발년, 학과 사람들이 너를다 조신한 줄 아는데, 내가 진짜 죽기 전에 네 이런 미친년같은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다."
우리는 그런 무난한 대화들을 했고, 시간이 흘러갔다.
"상훈이 너 혜지랑 친해?"
"아니?"
"호호호!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걔 요새, 완전 장난 아니잖아."
"혜지? 왜?"
"맨날, 목덜미랑 이런 데 키스자국 해 가지고 온다고. 다들 뭐 학교는 대충 다니지만, 남친 자취방에서 섹스는 그렇게 열심히 할 수가 없다니까?"
"혜지 남친이 누구였지?"
"유성민왜, 일주일 굶은 화가같이 생긴 애. 혜지 만나러우리 과에도 한 번씩 오잖아!"
이보람과의 대화는 왠지 즐거웠다.
이보람은 특유의 밝음이 있다.
천성이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될 수가 없을 것 같다.
덕분에 이보람하고 노는 동안에는 나도 평소와 달리 나름 신나게 낄낄거리며 놀 수 있게 된 것 같다.
맥주 한 캔을 비우고도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 이보람은 한참 놀고 난 뒤에 일어나게 됐다.
"야. 우후, 잘 놀았다! 나 그럼 갈게."
나는 턱을 매만지며, 일어나는 이보람에게 말했다.
"자고 가도 되는데?"
"엿 먹어."
이보람은 일어나며 나에게 자연스레 빠큐를 날렸다.
나는 이보람이 일어나는 모습을 머릿속에 담을 듯이 바라보았다.
플레이어로 내가 이보람을 만났었을 때는 이쁘긴 한데상당히 제정신이 아닌처녀 빗치년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주인공이 돼서 겪은 건 좀 달랐다.
솔직히 끌린다.
왜 주인공이 이보람을 짝사랑하는 설정이었는지 이해가 될 만큼, 그녀에게서는 세련미 넘치는 귀여움이 가득했다.
내가 그녀의 막말을 종일 받아치고는 있었지만 사실 나는 이보람과 존나 떡을 치고 싶었다.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나~."
일어나서 잠시 폰을 보는 이보람을 보고,나의 아랫도리의육봉이 오토 반응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큰 키에 좋은 비율, 겉에서 티날 정도로 좀 되는 유방, 잘록한 허리에, 사이즈 좋은 골반, 매끈한 다리…….
이보람의 전신을 이렇게 단 둘 뿐인 나의 자취방에서 마주하고 있는 동안, 나는이보람과박고 싶었다.
하늘하늘한 저 이보람의 블랙 시스루 원피스를 벗겨버리고 그녀를 엎드리게 한 뒤에 그녀의팬티를 제끼고존나 박고 날을 새서라도 떡치고싶었다.
그러나 물론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참아야 된다. 잘못하다 죽는다. 그리고 나는 어차피……. 무조건 김아영 진엔딩루트로 갈 거다.'
나는 이보람의 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보람이 나를 불렀다.
"야."
말을 할 때는 미친년처럼 말을 하는 이보람이지만, 역시 저렇게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으니 진짜 떡을 치고 싶긴 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보던 시선을 조금 돌리며 대답했다.
"뭐."
이보람은 나에게 재차 말을 걸어왔다.
"나 간다니까?"
나는 그제서야 다시 이보람을 보았다.
"어. 꺼져."
이보람은 목소리를 높이며 서 있는 채로 내게 소리쳤다.
"어어? 야!안 바래다 줘? 택시 타는 데까지!"
"가깝잖아, 굳이 바래다 줄 필요까지 있어?"
"위험하잖아! 나 혼자 거기까지 가라고? 실 바이러스 감염자라도 나타나면 어떡해!"
나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앉은 자세에서 두 다리를넓게 뻗으며,이보람을 올려다보면서 그녀가한 말을 똑같이 되갚아서 해 주었다.
"그럼 나 혼자 거기서 여기까지 되돌아오라고? 실 바이러스 감염자라도 나타나면 어떡해?"
나의 말을 들은 이보람은 홱 돌아섰다.
"하, 미친놈, 진짜. 야. 됐어! 나 갈래!"
"빠이!"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런데 사실이보람이 나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솔직히이보람이 끌리기는 했다.
이보람이 방문까지 몇 걸음 걸어가는 그 동안에도 나는 이보람의 원피스를 입은 엉덩이,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다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탈칵!
이보람이 방에서 나가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돌렸다.
"헉, 헉……. 이보람, 씨발 존나 쌔끈하네. 아니 씨발 무슨, 진 히로인도 아닌데 저렇게까지존나 떡치고 싶게 생겼어? 술먹으면서 허벅지 보면서 미치는 줄 알았네."
이보람이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을 때의 허벅지 아래쪽이 훤히 보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주인공 놈, 이걸 끊임없이 참아낸 거냐?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이보람은 세련된 계열의미소녀인데, 게임으로 볼 때하고 실제로 볼 때는 그 포스가 완전 넘사로 달랐다.
마음이 진정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시간이 늦었다. 자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잘 준비를 하려고 이보람이 왔을 때 걷었던이부자리를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잘 준비를 하면서 나는 그래도 이보람을 혼자 보내기를 잘 했다 싶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이 똑같은 상황 속에서 이보람을 택시 승강장까지 바래다 줬다.
딱히 그게 택시승강장으로 확실하게 되어 있는 곳은 아닌데, 아무래도 대학가 근처이다 보니 술을 퍼먹고 늦게 돌아가는 애들이 많으니까 큰길 앞쪽에 택시들이 쭉 서있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원래의 주인공은이보람이 간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그녀를 뒤따라 헐레벌떡 따라나가서는 그녀를 그택시타는 곳까지 바래다주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인공은 택시승강장에서 이보람에게 택시비까지 내 준다.
"어유, 씨발. 호구 주인공 새끼였어. 이번에는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주인공과 달리, 나는 이보람을 적당히 보내기만 하고 따로 바래다 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바로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작을 플레이했을 때, 주인공이 이보람을 바래다주고 택시비를 내 주는 건 특별한 선택지 없이그냥 쭉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이었다.
즉 중요한 분기점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음 선택지는 뭐가 있었더라? 막상 보면 딱 떠오를 텐데, 이렇게 되짚어서 하나하나 다 떠올리기는 쉽지 않겠는데? 하긴……. 그러고 보면 내일 선택지도 그렇게 어려운 건 없었던 것 같고."
이 하루는 일단 무사히 마치게 되었고 이제 내일이 되는데, 내일 있을 다음 선택지를 나는 이부자리를 펴면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단 진 히로인인 김아영과 만나는 것은 내일 모레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내일 맞이할 선택지는 대체로 무난한 것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맞이할,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선택지를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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