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처녀 빗치 (2)
* * *
'이 선택지는……!'
이 선택지도 존재하는 선택지였다.
원작에서는 맥주를 가져온 숙맥 주인공을 이보람이 놀리다가 주인공이 이보람 쪽으로 넘어진다.
거의 비슷하게 됐다.
나 또한 이보람의 섹드립을 받아치려다가 넘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보람을 덮친다]
[몸을 일으킨다]
모래시계는 흘러간다.
일단 뭐라도 선택해야 된다.
나는 순간 고민했다.
'확 덮쳐?'
이보람의 바닥에 눕게 된얼굴을 보니 욕망이 솟구쳤다.
커진 눈과 살짝 벌려진 입, 입술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치아, 그리고바닥에 흩어진 머리칼과 귀에포인트로 박힌 귀걸이까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거기다 내가 이보람의 위로 넘어진 것이어서 한 손으로 짚고 있는그녀의 유방을 나의 손이 움켜쥐고 밀고 있기도 했고, 또한그녀의 몸도 나의 몸과 밀착했다.
나의 바지속 육봉 또한 이보람의 아랫배 왼쪽에 닿고 있었다.
또한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아름다운 이보람의 향기 또한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씨발……! 아니야. 그럴 순 없다. 내가 원래 진엔딩클리어했었던 선택지대로 가야 돼! 일어나야 한다.'
정말 참기 힘들었지만,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스윽……!
다행히 이번에는 모래시계의 모래 양이 약간은 여유가 남는 선택지였다.
나는 이보람의 몸 위에서 천천히나의 몸을 일으켰다.
그런 다음, 나는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머리를 긁적이며웃으면서 말했다.
"아하하! 아, 발이 미끄러저서 살짝 넘어졌네?"
이로써 이번 선택지도 원래대로 가는 것에 성공했다.
게임을 할 때의 나는, 이번에 나온선택지 같은 경우에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는 선택지라고 생각했었다.
야겜에서 그냥 스토리상나오는 섹스는 괜찮지만,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명분이 없는섹스는 보통 'GAME OVER'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보람과 섹스를 하려고 하지 않고 바로 몸을 일으켰고, 이보람도 나를 따라 다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둘 다 일어나게 되자이보람은 나의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아! 씨발놈아! 너 일부러 그랬지! 내 몸 닿으려고!"
나는 몸을 움츠리며 이보람에게 응수했다.
"아, 아니야! 미친년아! 너도 봤잖아! 나 미끄러진거!"
"짜증나아아! 더러운 김상훈의 몸이 닿았어!"
이보람은 내 팔을 한 대 때렸던 곳을, 때린 데를세 대 더 때렸다.
여자가 때리는 것치고는 조금 아프긴 한데, 미소녀한테 맞아서 그런지 왠지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다.
다시금 마주보는 자리로자리를 잡게 된 우리는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며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각자 한 캔 씩의 맥주, 그리고 가운데에 놓은 육포를 안주삼아, 우리는대화들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보람이 약간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것도 왜 그런지 알고 있다.
이보람은오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혼자서 술을 마시다가 내가 사는 자취방에 온 것이다.
즉 이보람은 2차이고, 원래는 맥주 한 캔에 취할 년은 아니지만 이미 마신 주량이 있기 때문에 취해가는 거였다.
조금 마시다 보니 이보람은 옆으로 무릎을 눕혀 꿇은 자세에서 자세를 바꿨다.
중간 즈음부터는 이보람은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자신의 두 팔로 무릎을 감싸안은 자세로, 이야기를 하다가 한 번씩옆에 둔 캔맥주를 한 모금씩 홀짝였다.
그녀는 블랙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치마가 들려서,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내 시선의 각도에서그녀의 엉덩이 아래쪽을 약간 볼 수가 있었다.
팬티는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야. 김상훈."
이보람의 목소리는 약간 취기가 있는 채였다.
"어."
"나……. 헤어졌어, 오늘."
"음. 그렇구나."
나는 원래 알고 있는 사실을 들은 것이라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러자 이보람이 육포 하나를 씹고 있는 채로, 다른 찢어놓은 육포 하나를 집어서 내 머리로 던지며 말했다.
"아! 씨발 새끼야! 나 헤어졌다고! 뭘 '음 그렇구나'야? 아, 진짜! 네가 그러니까 여자친구 한 번 없는 거거든?"
"있었는데?"
"호호호! 지랄! 없었잖아! 너 여친 한 번도 없었던 거 우리 과 사람들 다 아는데, 내기 할래?전여자친구 내 앞으로데려와 봐! 그럼 내가, 네 좆 1시간30분동안 빨아준다! 쪼옥쪽, 진공청소기처럼!"
"아아, 시발!"
나는 나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흩트렸다.
나는 주인공의 설정 때문에 존나 억울했다.
'시발! 존나 억울하네! 원래 세계에서는 나는대학교 다닐 때여자친구 있었던 적도 있는데!'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는 내가 여친이 사실 이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이보람에게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처녀 빗치 년이 좆 빠는 내기 같은소리를 하니까 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빨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는 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플레이어처럼 섣불리 선택지들을 고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보람은 나를 놀리는 것이 재미있는지 웃음을 지었다.
"야. 김상훈."
"왜."
"그래도 너랑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풀려."
"좋냐?"
"응."
"뭐가?"
이보람이 답했다.
"너 약올리는 게 좋아. 너같은 애는, 나 짝사랑만 할 거잖아. 고백한다고 해도 어차피 내가 무조건깔 거고, 넌 나랑 평생 해보지도 못하고 딸이나 칠거고. 그래도그런 것도 좋아. 쓸데없는 찐따새끼한테라도사랑받는 기분. 그게 남자로 상처받은 내마음에 작게나마위로가 돼."
존나 태연하게 나한테 극딜을 넣는 이보람이었다.
원래 주인공이었으면 헤헤 웃으며 실실 쪼갰겠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아치기로 했다.
"하아. 미친년이 까분다. 얼굴만 믿고 깝치는데, 그거 몇 년 못 가.내가 취직만좋은 데로 되잖아? 그러면너같은 애들은 그냥 한트럭으로 내 앞에 무릎꿇고 빨게 해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게 된다고. 너는 평생동안 내 불알을 빨 수 있을 때 빨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나의 응수에 이보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아, 너 때문에 내가 웃는다, 진짜."
오고가는 모멸적인섹드립속에 피어나는 우정……. 인가?
어쨌든 이보람은 나로 인해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 계획대로,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원작에서도 주인공은 이보람이 남친과 헤어지고 찾아왔을 때 위로를 해 준다.
원래의 주인공의 위로 방식은 지금의 나와는좀 다르긴 했다.
이보람이 남친과 헤어졌다고 하자 갑자기 왜 그런 일이 있었냐며, 이보람의 남친에게 나쁜 새끼라욕하며 한 판 뜰 기세로 소매를 걷어부친다.
지금의 내 입장에서 보면, 원작의 주인공은 좀 불쌍하면서도 멍청해 보인다.
이보람은 원작 주인공에게 전혀 다리를 벌릴 마음이 없었는데 주인공 혼자 마음 낭비를 하며 이보람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을 하고 앉아 있다.
소득 없는 물소새끼인 것이다.
나는 굳이 그렇게 내 여친이 되지도 않을 여자에게 쓸데 없이 공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여친한테는 잘 해주고 싶지만.
그리고 나는 어차피 진 히로인인 김아영 루트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보람과의 스토리 진행이야 어떻게 되는 관계없다.
어차피 김아영이 등장하고 나면, 이보람은 방치할 거니까 말이다.
이보람은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참, 야. 김상훈! 너 근데, 그거 들었냐?"
"뭐?"
"요즘 이 근처 대학가에서도,실 바이러스 감염자생기고 있잖아.너 몰라?"
실(Sill) 바이러스.
실은 Sex의 S, Kill의 ill의 합성어다.
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섹스를 하거나 죽이게 된다.
감염자는이성을 마주칠 경우섹스를 하려고 하게 되고,동성을 마주칠 경우죽이려고 한다.
이성과 동성을 함께 마주칠 경우 이성과의 섹스가 우선시되고, 동성이 방해할 경우 동성을 먼저 죽이고 이성과 섹스하려 한다.
연속 감염 경로는 섹스다.
감염자와 섹스를 하게 되면 감염된다.
혈액과 섹스를 통해서만 감염된다.
정액이나 애액을 손으로 받아서 마신다거나 해도 감염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직접적인섹스만 하지 않으면 감염되지 않는데, 어째서인지 최초 감염지와 동떨어진 이곳에서 감염자가 생겨나고 있다.
최초 감염 경로와 이곳에서 감염자가 추가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이유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나는 알고 있지만.
사실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지금은모르는 체 해본다.
"그거 걸리면 좆 되는 거 아니야? 이 근처에도 퍼졌다고? 이 근방은 청정 구역인 줄 알았는데."
"아유, 이 새끼. 소식이 존나 느리네. 이 누님이 알려 준다."
이보람은 자세를 고쳐 앉고는 자신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리더니 폰으로 뭘 찾았는지, 곧나를 보며 거만하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일로 와봐. 딱까리야."
"아, 건방지게 진짜. 와주세요, 해야지. 씨발년이. 손가락을 뿌셔 버릴까."
나는 툴툴거리면서도이보람의 옆으로 가서는 그녀와 같이 휴대폰을 보았다.
거기에는 기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이 학교 주변에서 사건 현장을 답사한 듯한 모습으로 기사를 보도하고 있었다.
진경대학교 주변에서 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강력 사건이 두 건째발생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A양은, 같은 하숙집에 거주하는 B양을 복도에서 마주치자마자흉기로 수차례 잔혹하게 찔렀습니다. 이 모습을 목격한 다른 학생들이 A양을 제지했지만 끝내 B양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A양을 현장 체포하어 조직검사를 해 본 결과 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실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을 강화할 것을…….
이보람이 긴장감 어린 말투로 내게 물었다.
"무섭지 않냐?"
이보람이 폰을손에 쥔 채로 옆으로 고개를 돌려나를 보면서 말했고, 선택지가 떠올랐다.
[무섭다]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