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93화 던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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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배탈이 나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현상. 이 뜨거움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종류였다.
…설마, 이게 마력인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런 효과가 없을 가능성을 90%. 효과가 대폭 깎일 가능성을 9%로 잡았는데, 그 외의 가능성 1% 중에서도 가장 낮게 잡았던 현상이 일어났다.
마법약이 내 안에서 순수한 마력으로 변했다!
이럴 수가! 설마, 내 위장이 마력원심분리기였을 줄이야…!
뭐, 영혼육백의 작용 때문에 이렇게 된 거겠지만. …그래도 이건 기쁜 오산인 걸? 나한테 너무 유리하기 때문에 일부러 가장 확률을 낮게 봤었는데, 그게 당첨된 거잖아?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이런 심정일까?
이 뜨거운 기운… 마력을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을까? 마력을 다루는 기초이론을 떠올리며 그대로 행하자, 뜨거운 기운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훌륭한데? 마력을 다룬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이거라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어! 드디어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마법약을 먹어보는 거였는데! 뭐, 그동안의 시간이 의미 없지는 않았지. 지금 바로 마법을 쓸 수 있는 지식은 그 시간이 없었으면 쌓지 못했다.
마력을 다루는 부위는 영혼??. 그중에서도 영?이다. 그동안은 영을 다룰 수 있어도 정작 마력을 못 만들어서 마법을 못 썼지만, 지금은 다르다! 쌓아온 지식으로 마력을 움직이고 술식을 만들었다. 지금 마력으로 큰 마법은 쓰지 못한다. 쓸 필요도 없고.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현상!
“염?.”
화륵~!
짧게 내뱉은 말에 따라 검지 끝에 의지가 구현되었다. 작은 화염이 허공에서 생성되더니, 이내 야구공 크기로 확장되었다. 화염은 원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회전했다.
파이어볼.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마법. 그것이 내 검지 끝에 구현되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드디어 마법을 썼어! 꿈에도 그리던 마법을 썼다고! 이게 마법을 쓴다는 감각이구나! 젠장! 이런 걸 몰랐다니! 인생의 절반 손해 봤어요오오오!
“…시, 시그 님?! 그, 그건 대체…!”
“에엣?! 시그 님이 마법을?!”
“응? 왜 갑자기 마법을 쓰세요? 아니, 그리고 왜 다들 반응이?”
내 사정을 모르는 미란다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시르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감동한 얼굴로 나를 올려 보았고, 라냐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와 파이어볼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대답해주는 대신 씨익 웃었다. 그 순간 마력이 다 떨어진 파이어볼이 자동으로 소멸했다. 그것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 순간은 짧았다. 이어서 찾아온 것은 온몸을 짜릿하게 감싸는 충족감이다.
나도 이제 마법을 쓸 수 있다.
“하하하! 이거 최고인데! 좋아! 이 가게의 마법약 전부를 사겠어!”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바로 구매를… 소금화 여섯 개면 살 수 있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갑자기 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시그 님! 대체 무슨 수를 쓴 건가요?! 지금 먹은 약에 특수한 효과라도 있던 건가요!”
“있었지! 정확히는 내 몸에! 아싸! 이걸로 나도 마법사! 으하하하하! 앞으로 도핑 메지션이라고 불러다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
이 의뢰를 받길 잘했어! 이젠 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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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후후후후!”
“아까부터 계속… 그렇게 좋으세요?”
“당연히 좋지! 마법이라고! 꿈에도 그리던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기쁘지 않을 소냐!”
“우후후. 시그 님이 기뻐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역시 시르 밖에 없어! 사랑해! 시르!”
“아이 참… 이런 곳에서 그러시면 조금….”
“기쁘지!”
“기쁩니다!”
“…이 바보 커플을 어쩌면 좋지.”
라냐의 싸늘한 말을 들으면서도 내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미란다의 가게에서 잔뜩 구매한 마법약 상자를 들고 있었다. 총 50병.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는 횟수나 다름없다.
“…그런데 마법약을 몸 내부에서 순수한 마력으로 분리할 수 있다니. 시그 님의 몸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가요?”
“몇 가지 생각해둔 이론이 있는데, 나중에 얘기해줄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이제까지 마법을 쓰지 못하던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거야.”
“마력을 얻으시자마자 곧바로 마법을 쓰실 수 있던 걸 보면, 역시 재능이 출중하셨습니다. 마력을 정제하지 못하던 문제만 해결되면 틀림없이 최고의 마법사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 시르. 다만, 그건 스승의 가르침이 좋았던 덕분이야. 감각적으로는 시르에게, 이론적으로는 라냐에게 배웠으니까.”
“…아무리 이론을 알고 계신다지만, 마력을 다루자마자 2위계 마법을 쓰다니. 시그 님은 여러모로 규격 외세요. 정말.”
두 사람은 내가 마법을 사용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감탄하고 있었다. 시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라냐도 말 곳곳에 배려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평소 인망이라는 거지.
“내가 좀 규격 외의 남자이긴 하지. 그런데 어때? 자주 이용해도 될 가게일까?”
나는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의뢰는 시르와 라냐가 해결했다. 두 사람 다 뛰어난 마법사이기 때문에 평가는 굉장히 객관적이었고, 미란다도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마법사가 평가해주기를 바랐던 기색도 있었다.
“솔직히 조금 얕보고 있었어요. 마탑이 아닌 민간에서 파는 마법약이 그렇게 품질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제 안목을 넓히는 일이 되었네요.”
“훌륭했습니다. 그만한 효과에 그 정도 가격이라면 모험가분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합니다. 저희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냐는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호평했고, 시르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호평했다. 뭐, 저 정도 자존심은 귀여운 수준이지. 오히려 자신의 인식이 틀렸음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시점에서 라냐는 훌륭한 어른이 될 자질이 있었다. 훌륭한 어른이란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하는 거니까.
“그래? 그러면 앞으로 자주 이용해야겠네. 좋아. 일단 의뢰 완료 보고하고 잠깐 성 밖으로 나가자.”
“마법 연습인가요?”
“그래. 일단 당장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확인해야지. 마법약을 여러 개 먹었을 때 마력도 그만큼 축적되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어쩌면 50개로는 모자랄지도 몰라.”
“그러면 좀 더 구매할 걸 그랬습니다.”
“우리한테만 장사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오늘만 날이 아니고. 당분간은 간단한 의뢰를 하면서 이계형 던전에 갈 준비를 하자.”
“시그 님은 마법을 연습할 생각만 하고 있잖아요.”
“당연히 내가 마법 연습하는 것도 던전 준비지! 전략의 폭이 아주 넓어진다고! 그리고 이 연습은 나한테만 좋은 게 아니야. 시르와 라냐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저에게도요? 무슨 연습을 하시려고요?”
“마법을 만들 거야. 내 전용 마법을.”
내 대답에 라냐는 말을 잇고 멍하니 나를 올려보았다. 반대로 시르는 환한 얼굴로 손벽을 쳤다.
“적은 마력으로도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마법입니까? 그거라면 저도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저에게도 도움이 되겠지요.”
“그렇지? 아무래도 마법을 쓸 때마다 약을 먹는 건 조금 그래. 정제할 수 있는 양도 적은 편이고. 기존의 술식으로는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나에게 맞춰서 효율화를 해야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돕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시그 님! 마법을 만들겠다니!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시르 언니도 너무 쉽게 납득하잖아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라냐가 태클을 걸어왔지만,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못할 것도 없지. 애초에 마력을 다루자마자 2위계 마법을 쓰는 건 현실적이고?”
“윽! …마, 마법을 너무 쉽게 보시는 거 아니에요? 마법을 만드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마탑의 마법사들이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야 당연히 쉽지 않겠지. 애초에 내가 만들려는 마법은 네가 말하는 마법이 아니야.”
“네? 그럼 뭐를….”
“조금 전에 시르도 말했잖아. 마법의 효율화라고. 그 말대로야.”
“…마법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애초에 지금의 마법은 수많은 마법사가 개량하고 개량한 술식들을 쓰고 있다고요. 수백, 수천 년의 역사를 시그 님이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내 말이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라냐는 조금 날카로운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나도 시르도 라냐의 반응에 귀엽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심전심.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르는 바로 알 수 있었으니 말로 하지 않아도 통했지만, 라냐는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야. 정확히는 술식의 일부분만 빼내오는 거지.”
“……일부분만요?”
이건 예상 못했는지 라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이 귀여워서 나는 그 작은 이마를 손가락을 툭 밀면서 말했다.
“그래. 일부분만. 나한테 필요한 것만.”
“…자, 잠깐만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애초에 술식의 일부분만 빼내면 마법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요!”
“그 부분을 해결하려고 연습하겠다는 거야. 자자. 자세한 건 조금 있다가 직접 해보자고. 지금은 의뢰부터 끝내자.”
“…알았어요. 하아. 시그 님과 함께 있으면 제 상식이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것 같아요.”
“그야 나는 규격 외의 남자이니까.”
“시그 님은 만세불출의 영웅이시니, 당연한 일입니다.”
“…진짜 싫어. 이 커플….”
투덜거리는 라냐를 보고 웃음을 터트린 우리는 길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