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92화 (92/93)

〈 92화 〉 92화 던전 준비

* * *

마법약 실험의 지원자를 모집한다고 의뢰를 낸 마법사의 이름은 미란다였다. 그 이름을 듣고 어떤 음료수를 떠올린 나는 나쁘지 않다.

어쨌든, 라냐는 모르는 마법사였는데, 접수원에게 물어보니 이곳 마탑 출신이 아니라 외지에서 온 마법사라고 했다. 1년 전에 왔다고 하고, 마법사로서는 그다지 유명하진 않다니 라냐가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 미란다 마법사의 가게는 외각에 가까이 있었다. 이런 외진 곳에 가게를 내면 장사가 되나? 싶었지만, 접수원의 말에 의하면 모험가들에게 제법 평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마법사로는 별로지만 장사 수완은 꽤 좋다나?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처럼 미란다의 가게는 눈에 확 띄는 외향을 가지고 있었다. 간판에 달린 고깔모자와 약병은 여기가 어떤 가게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었고, 글씨 모양새도 눈에 확 들어오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가게의 외형도 깔끔하고 음침한 느낌이 조금도 없어서 방문자에게 아무런 거부감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도 느껴지는 포근한 향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아. 이거 [리토네게스의 바람]네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는 마법이에요.”

진짜로 마법이었네? 아니, 그런데 그걸 이렇게 대놓고 써도 되나?

“아니, 그런 걸 써도 되는 거야? 그런 마법이 있다면 모든 가게는 리토네게스의 바람을 쓰지 않겠어?”

“사람을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별로 강하진 않아요. 정확히는 가게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쪽에 가깝죠. 그리고 리토네게스의 바람은 다른 냄새에 쉽게 묻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점에선 쓰기 힘들어요. 기껏해야 쥐덫의 효과를 좀 더 좋게 하는 정도? 아니, 마법약 가게면 더 쓰기 힘들텐데, 요령이 좋은 마법사군요.”

마법에 관해선 역시 라냐가 제일 전문가다. 경지는 시르가 더 높기지만, 감각파이다 보니 이런 전문적인 지식은 조금 떨어졌거든. 그래서 시르도 나와 마찬가지로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믿을 만한 실력이라는 거군. 하긴, 모험가 길드에 의뢰를 낼 정도의 가게인데 신뢰도가 낮을 리가 없다. 내가 본 길드는 현대수준의 합리성과 공정성으로 돌아가는 조직이다. 누군지 몰라도 상층부가 꽤 제대로 된 인간들이야.

안심한 나는 가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리토네게스의 바람 냄새가 아닌 상쾌하고 청량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가게 내부는 상당히 깔끔했다. 마법약이 올려져 있는 선반의 배치도 손님의 눈에 확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지구와 비교하면 세련된 빵집의 인테리어와 비슷했다.

일반적인 상점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야. 마법약 상점은 다들 이럴까? 아니면 여기가 특별한 걸까?

그때 가게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전형적인 마법사 복장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활달한 타입의 미인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앗!! 설마, 당신은 드래곤 슬레이어?!?!”

성격도 외모대로로군. 나는 고성이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은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인기 많은 이유를 알겠네.

“안녕하세요. 미란다 씨. 저는 옥석 등급 모험가 시그입니다. 마법약 실험 의뢰를 하셨죠?”

“와! 진짜였네요! 이런 유명인이 내 가게에 찾아올 줄이야…! 아, 아니지. 내 정신 좀 봐! 네! 맞아요! 제가 그 의뢰를 냈어요! 그런데 드래곤 슬레이어가 올 줄은 몰랐네요!”

정신없는 사람이다. 보기로는 20대 초반이지만 실제 나이는 그것보다 훨씬 많을 것 같군. 붙임성 좋은 아줌마를 만나는 기분이야. 입밖으로 내진 않겠지만.

“마법약 실험이라는 거에 흥미가 있어서요. 그래서 어떤 마법약인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다다다닷! 쿵, 쿵, 쿵! 쾅! 쾅! 쾅!

미란다는 다급히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뭔가 뒤집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신없는 소란에 시르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굉장히 활발한 분이십니다.”

“…그러게요. 가게는 차분한 이미지인데 말이죠.”

라냐도 같은 심정인지 똑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들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고는 선반에 나열된 마법약들을 살펴보았다.

마법약은 박X스 병부터 1.5L 페트병까지의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병에 담겨 있었다. 병에는 해당 약의 효과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이 신체 능력 강화, 체력 회복, 마력 회복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마법약 종류가 꽤 많네.”

“그러게요. 저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마법약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어요.”

“던지는 용도도 있습니다. 이건 연막탄…?”

시르와 라냐도 처음 보는 마법약들이 많이 있나 보다. 두 사람 다 마법약 쪽은 전공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그러고 보니 약 같은 걸 들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없었지.

“그러고 보니 둘 다 마법약은 안 쓰네. 만들기 어려운 걸까?”

“어렵다기보다는, 제가 만들 수 있는 마법약은 전투에는 효용이 없거든요. 비상용 약은 가지고 다니기는 한데, 이제까지 쓸 일이 없었죠.”

“저도 그렇습니다. 보조용 약은 가지고 있지만, 이제까지 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 대다수 전투는 그냥 내가 끝냈구나. 하긴, 마법약도 다 돈이니 쓰지 않을 수 있으면 안 쓰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 이번에 갈 이계형 던전은 나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예감이 들었거든. 잊힌 신의 사도 놈들이 있는 게 결정적이다. 이곳 주인장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적당하면 여기서도 몇 개 구매하는 게 좋겠어. 돈이야 썩어날 정도로 넘쳐나니 말이야. 마탑에서도 구매해보고.

“첮았다! 찾았어! 이야~ 많이 기다리셨죠? 여기! 실험용으로 사용할 약들입니다!”

그때 미란다가 약상자를 들고 나왔다. 약상자에는 다양한 크기의 약병이 15개나 들어있었다. 저 약들을 전부 먹어보고 효능을 확인하는 건가. 아예 못 써먹을 걸 가지고 오진 않았겠지만 건강에 나빠보이네.

그 이전에 확인해 볼 게 있지만.

“꽤 많군요. 그런데 잠시, 이 신체 강화약의 효능을 한 번 확인해 봐도 될까요?”

“네? 그건 시판품이라서 실험해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제가 마법약을 써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실험하기 전에 이런 약이 신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인이 필요해서 그래요.”

“헤에. 처음이시군요. …어. 오히려 좋네요! 시판품과의 효능 차이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고요! 맹점이었어요!”

미란다는 “이건 무료입니다!”라고 상쾌하게 말하면서 마법약을 내밀었다. 나는 마법약의 뚜껑을 열고 그 안의 냄새를 맡았다. 이 세계의 약재 냄새를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약이 쓰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약이라기보다는 향수 같은 냄새였다.

이건 꽃향기인가? 마실 때 거부감이 들지 않는 냄새다. 내가 냄새를 맡자 미란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은 향기죠? 본래 이런 마법약의 냄새는 고약하기 마련이라서, 저는 그런 냄새를 개량하는데 크게 힘썼답니다! 평판도 좋아요!”

“이런 향기라면 먹기도 편하겠죠.”

“와아. 정말 좋은 향기인데요? 마법약은 고약한 냄새가 특징인데….”

“이런 향기를 낼 수도 있었습니까…. 제가 이제까지 만들어온 마법약과는 전혀 다릅니다.”

시르와 라냐도 감탄했다. 그 반응을 보니, 두 사람이 왜 이제까지 마법약을 쓰지 않았는지 진짜 이유를 알겠다. 나도 먹을 일이 없어서 다행이야. 아니, 시르가 만든 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

어쨌든 좋은 향기가 나는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다. 라냐의 말을 들어보면 마탑의 마법약은 안 그런 것 같으니까. 마탑의 마법약과 성능 차이가 심하게 나지 않는다면 나도 여기서 마법약을 사야겠다. 지금은 이 마법약의 효능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나저나 도핑이라. 지구에 있을 때는 손도 대지 않은 약품인데, 이세계에서는 꽤 손쉽게 손에 댔네. 뭐, 마법적인 효과로 버프를 주는 거니, 지구의 약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야니까 크게 상관은 없지.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마법약이 내게 효과가 있는지 여부다.

그 신이 말해 준 것처럼 나는 영혼육백의 밸런스가 완벽해서 기도 마력도 성력도 다루지 못한다. 거기에 기와 마력, 성력에 대한 저항력까지 가지게 되었다. 특히 마력 저항력이 가장 높다.

그럼 마법약은 어떨까? 마법약은 일종의 버프 마법을 약을 먹는 거로 발현시키는 거다. 내게 이로운 마법도 저항력은 여지없이 발휘된다고 하니, 마법약의 효과도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해봐야지. 이번 의뢰를 고른 것은 던전 준비를 위한 것도 있지만, 마법약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다.

나는 작은 병 안의 액체를 단숨에 들이마셨다. 맛도 향만큼이나 괜찮았다. 약간 단맛이 나는 걸 보면 꿀이라도 섞은 걸까?

자아, 그럼 효능은 어떠려나.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도 어떤 반응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내 저향력이 어던 매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 확인도 하고 싶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내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났다.

그 반응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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