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89화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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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신들의 추종자들.
이미 오래전에 뒈져서 잊힌 신들을 추종하는 정신 나간 놈들.
잊힌 신들의 사도.
그 정신 나간 놈들 중에서도 특급으로 정신 나간 것들.
놈들과 나의 악연은 얕지 않았다. 내가 이세계에 오고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놈들과 엮인 큰 사건이 벌써 두 개다. 그 사건들은 하나 같이 내게 이 세계가 만만치 않다는 것과 그렇기에 이 세계가 즐거울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내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놈들은 쓰레기 테러리스트 새끼들이었다. 놈들에게 죽은 사람들이 대체 몇이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것들이다.
…뭐, 사실 그런 인간은 지구에도 제법 있었다. 위정자쯤 되면 조직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것도 선택지 안에 들어가기 마련이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도 말이야.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특별시 해서 분노를 불태울 필요도 없다. 그런 거에 일일이 분노하고 증오했다간 나는 진즉에 전부 불타 버렸을 거다. 세계를 불태우고 나도 불탔겠지.
그래도 짜증 나는 건 짜증 나지!
아, 씹! 그 새끼들은 왜 내가 가려는 곳에 나타나고 지랄이야! 또 나하고 부딪쳐서 대판 깨지고 싶은 거냐? 마조야?
내가 대놓고 똥 씹은 표정을 짓자 유리는 피식 웃었다.
“그대도 놈들은 껄끄럽군?”
“껄끄럽기 보다는 귀찮은 거죠. 어째 가는 곳마나 있는 것 같은 느낌야. 진짜.”
내 푸념에 유리는 더욱 웃었다. 하지만 시르와 라냐는 웃을 수 없었나 보다. 라냐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고, 시르는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자들이 이계형 던전이 나온 곳에? 무엇을 노리는 걸까요?”
“그건 가보면 알겠지. 그런데 용케도 놈들을 찾았군요.”
쉽게 발견되는 놈들이었으면, 옛날에 박멸되었을 것들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몸을 숨기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거다. 그런데 이번에 걸렸다는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 유리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지. 야천랑이 우리 도시에서 퇴치당했다는 걸 알게 된 토론토라의 영주가 던전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라고 했다더군. 그리고 위병 중 한 명이 자주랑으로 보이는 자를 목격했다더군. 그 사실이 이틀 전에 우리에게도 공유가 되었어.”
“흐음. 그런 이유라….”
정말로 운일까?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운이 아니라는 쪽에 돈을 걸 수 있었다. 놈들은 일부러 모습을 보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게 나라고 생각하는 건 자의식 과잉인가?
응~ 아니야. 놈들에게 나는 가장 먼저 없애야 할 적이잖아? 놈들의 계획을 벌써 두 번이나 방해했고, 간부놈들의 얼굴을 네 명이나 알고 있다. 나 같은 변수를 그냥 두는 비밀조직이 과연 있을까?
거기다가 시기를 보면… 모험가 길드 쪽에서 정보가 새어나갔을까? 그들을 의심하는 건 의미 없는 짓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놈들에게 내 목적지가 전달된 것은 틀림없다.
그래도 내가 레리레스트에서 악신의 칼날을 박살 낼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겠지. 놈들도 지금쯤 계획을 다시 짜고 있지 않을까? 설마, 세상만사가 다들 자기들 계획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갔을 때 한 번 찾아보긴 해야겠네요. 그런 놈들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면 던전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질 테니.”
“안 그래도 토론토라의 영주도 던전 출입구를 단단하게 봉쇄했다더군. 이미 도착한 모험가들의 신분도 다시 확인하고 있다는 모양이야. 그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지만 말이다.”
그리 말하며 유리는 옅게 웃었다. 그야 자기네 영지를 씹창냈던 재앙을 박살 내고 연이어서 잊힌 신의 사도 놈들을 작살냈던 나를 의심하는 건 금치산자들이나 하는 짓이겠지. 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의심하거나 시험할 수든 있겠지만, 그거야 가서 겪어봐야 아는 일이다.
무례한 정도에 따라서 나도 행동을 달리하겠지만, 어지간한 수준이면 적당하 넘어가줘야지. 원수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을 때 이상한 원망이 품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상수니까. 그런 사람들을 그냥 나한테 덤빈다고 죄다 박살 내 버리는 건 내 성품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얘기는 그거로 끝이래요? 거기 영주가 뭐 더 얘기한 거 없나요?”
“특별한 건 없다. 다만, 그대와 만나는 걸 아주 기대하고 있더군.”
유리는 그리 말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기대, 기대라. 그래. 나도 꽤 기대된다. 과연 그 영지에서는 어떤 신박한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기대감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거 기대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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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이어진 얘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와 우리들의 모험 얘기를 좀 더 상세하게 나눴을 뿐이었다. 얘기를 들을수록 황당해하는 유리를 보는 건 꽤 재미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해어질 때, 유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말했던 보상의 준비가 거의 끝났다. 조만간 소개해주도록 하지.”
“오. 드디어? 기대하고 있죠. 던전에 가기 전에 준비되면 좋겠네요.”
유리가 말한 보상이란, 지난번에 약속한 집이다. 집. 내 개인 주택.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가 내 집 마련이 아닌가? 나는 이세계에서도 내 집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 오고 아직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지.”
“부탁해요.”
유리하고는 그 얘기를 끝으로 해어졌다. 그녀에겐 길드 마스터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야영의 피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기에 곧바로 길드를 나서서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은 간단한 의뢰를 하나 하자. 라냐도 모험가다운 일을 하고 싶지?”
“…솔직히 이번에 했던 모험이 워낙 굉장해서, 다음 의뢰는 어떻게 될지 좀 걱정이에요. 또 이런 난리가 벌어지는 건 아니겠죠!”
“후훗. 매번 그런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라냐 양. 저도 시그 님과 함께 평범한 의뢰를 수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보름 만에 그런 일들을 겪으신 거죠?”
“……그건 영웅의 운명이라는 것으로.”
“거봐요!”
“아니, 시르. 거기에선 부정해줘야지!”
그런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숙소로 들어온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나야, 당연히 시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라냐는 뭘 하려는 걸까?
“마법 공부 할거에요. 이번 모험에서 나름대로 얻은 게 있거든요.”
“그래? 그거 대단하네. 라냐는 그렇게 많이 싸운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누구 씨가 너무 대단해서 나설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칭찬해도 뭐 안 나와.”
“뭘 바라고 한 말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하여간, 이 사람은 장난을 안 치면 죽는 병이라도 있나…. 흥. 시그 님이 싸우는 걸 보고 좀 생각해 볼 게 있어서요. 악신의 칼날이 사용한 힘도 마법적으로 해석해보고 싶고.”
“학구열이 굉장하네. 그런 사람이 성장하는 법이지. 내가 도와줄 게 있으면 말만 해. 내가 마법을 쓰지는 못해고 이론은 꽤 알고 있으니까.”
“…그게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마법서를 30분 만에 독파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아니, 그런 사람이 왜 마법을 못 쓰는 걸까…. 정말 신기하단 말이에요.”
그건 나도 최근까지 의문이었지. 하지만 잘나신 신께서 너 마법못씀. ㅅㄱ 라고 해버리는 바람에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심각한 건 기공도 못 쓸 것 같다는 거지. 하아. 모처럼 이세계에 왔는데 강해지는 게 쉽지 않네.
어쨌든 라냐는 공부를 위해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라냐에겐 마법 공부가 쉬는 거란다. 지구에도 저런 애들이 있었지. 공부하는 게 나름 대로의 휴식인 애들. 라냐는 딱 봐도 범생이다.
그리고 우리는….
“후우…. 후우… 시, 시그 님. 저, 정말로 하실 생각인가요?”
“물론이지. 그러니까, 그런 준비를 시킨 거잖아?”
사랑하는 남녀가 단둘이 방에 있으면 할 게 뭐가 있겠냐?
당연히 섹스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섹스다!
안 그래도 이번 의뢰를 하면서 여러모로 쌓였다. 어제 야외 섹스를 하긴 했지만, 평소만큼 즐기진 못했으니까. 그건 임시변통이다. 시르를 만난 이후로 시들기는커녕 하루가 멀다하고 성장하고 있는 나의 성욕은 지금도 풀가동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드디어 그걸 하는 날이다. 야외에서 시험해보고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그걸! 내가 가진 성벽. 솔직히 꽤 메이저하다고 할 수 있는 성벽을!
정말 시르가 그쪽에 소질이 있어서 다행이야. 연인과 성벽이 맞지 않는 건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내쪽에서 참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도 즐겁고 연인도 즐거운 편이 100배는 낫지 않은가?
시르는 새하얀 나신을 드러낸 채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이제 알몸을 보이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인데도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리고 오른손은 자신의 배에 왼손은 엉덩이에 향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했던 준비를 생각하면 시르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섹스를 위해서 관장을 하는 건 난생처음이겠지. 아니, 애초에 시르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처녀였으니, 의미 없는 얘기군.
우리는 지금부터 애널 섹스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