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86화 귀갓길
* * *
“하아.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떠나네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이지.”
“……아니, 지금 상황에서 쓸 말이 아니지 않나요?”
저 멀리 보이는 라리레스트를 보고 한숨을 내쉬던 라냐는 내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라냐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옆에 있는 시르를 봤다.
“뭐, 그래도 나쁘지 않은 이틀이었어. …체감상으로는 한 달 보름은 머문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짧지만 긴 시간이었습니다.”
시르는 방긋 웃으면서 대답하고는 조금 생각에 잠긴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용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내가 그쪽 길을 걷지는 않더라도, 엮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게요. 이것저것 사건이 많았죠. 가는 중에 몬스터 부대가 습격해 오질 않나, 오밤중에 악신의 칼날들과 싸우지를 않나. 마지막에는 천신교의 용사님과 대련까지 하시고. …시그 님. 사실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나신 거 아닌가요?”
라냐는 어린애답게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장난 반 진담 반의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불행의 별이라니. 여기서도 그런 관용구가 쓰이네~ 라고 태평하게 생각하면서 라냐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아, 아! 그, 그만! 그만하세요!”
“어휴. 이 귀여운 것. 그렇게 나하고 놀고 싶어요?”
“누, 누가 놀고 싶다고 그래요! 시그 님이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그런 거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정말 그래.”
라냐는 그리 진지하게 한 말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이 세계에 느닷없이 전이 된 것부터가 대형 사고가 아닌가? 그 뒤에 한 달도 안 되어서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세상이 나를 잡아 죽이려고 작정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 차라리 알기 쉽게 용사 같은 거로 소환했다고 하든가. 그냥 초원 위에 떨궈 놓고는 이렇게 사건 사고를 몰아넣으면 어쩌라는 건지. 내가 그 일들을 박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면 진즉에 스러졌을 거다.
……그래도 시르를 만났으니 단순한 불평 선에서 끝내줄 수는 있다. 그것조차 없었으면 나를 여기 떨군 존재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을 거다.
내가 전이된 게 단순한 사고여도 말이야.
그 사고를 일으킨 존재가 있을 거잖아?
뭐, 번역 치트를 생각하면 단순한 사고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능이 없는 곳에 소환된 인간의 무쌍기 같은 거를 보고 싶은 괴짜 신이라도 있는 거려나. 뭐가 됐든 간에 단시간에 밝혀낼 수 없는 문제다. 그래도 1년은 넘기지 않을 거지만.
나는 살짝 힘을 주어서 라냐의 머리를 누르며 웃었다.
“뭐,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 이래저래 엮이기는 했지만, 그런 사건들이 발생한 원인이 나인 건 아니니까. 오히려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사건들이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다는 거지.”
“긍정적인 마인드네요.”
“당연하지.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았잖아? 멋진 일이지.”
“………….”
라냐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를 올려보았다. 그 얼굴에 떠오른 감정들을 보고 나는 피식 웃고는 머리에서 손을 땠다. 그러자 타이밍을 맞추듯이 시르가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역시 시그 님이십니다. 그야말로 세계의 구원이십니다.”
“아니, 그건 너무 과장이지…. 뭐, 내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잘난 인간이긴 해.”
지구에서도 세계를 구했다고 장담할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문제를 해결했고 해결하고 있었다. 이세계는 아직 그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지 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시르는 순수하게 기뻐하며 손뼉까지 쳤다.
“네. 저는 시그 님이라면 틀림없이 그럴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타라스트로 귀환하는 길은 평화로웠다. 애초에 라리레스트와 타라스트 사이의 길은 그렇게까지 위험한 길이 아니었다. 몬스터 군단을 만난 것은 이례 중의 이례라고 할 정도로.
꼬박 하루를 걸어가는 동안 우리를 습격하는 몬스터나 도적 같은 것은 없었다. 애초에 도적은 이 근방에 별로 없었고, 몬스터들은 몬스터 군단이 휩쓸었던 영향인지 가도 근처에선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 평화로운 귀환길이었지만, 우리는 하루 만에 타라스트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다,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
“그러게 평소에 단련을 게을리 하지 말았어야지.”
“……마법사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입니다아아아….”
시르의 품에 안겨서 앓는 소리를 내는 라냐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나나 시르는 이 정도 산행은 종일 해도 큰 문제가 없는 신체였지만, 순수한 마법사인 라냐는 아니었다. 시르의 회복마법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한계에 다다르기 전까지 크 불평 없이 따라온 정신은 칭찬할 만하군.
보통 애들처럼 마법사인 내가 왜 이렇게 걸어야 하냐면 징징 거렸다면 체인지를 고려해봤겠지만, 라냐는 이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 잠시 쉬어가자고 말하는 것말고는 불평을 내뱉지 않았다.
내가 별말없이 계속 걷기만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납득했기 때문이겠지. 역시 머리가 좋고 현명하다. 계속 같이 다닐 이유가 충분해.
마침 해가 지기도 해서 우리는 적당한 장소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타라스트와는 직선거리로 30km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어차피 성문은 닫혀 있을 테니 괜한 민폐를 끼치기보단 하루 정도는 야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들어가겠다고 하면 경비병이 철통같은 원칙주의자가 아닌 이상에야 어이쿠! 어서 들어가십시오! 할 테니까. 하지만 이런 밤중에 원칙을 어기고 문을 열게 만드는 건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다.
그렇게 야영 준비를 하고 침낭을 깔자마자 라냐는 “안녕히 주무세요오오오오…….”라는 말만 남기고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그야말로 신속. 첫 야영인데도 잘 자는 걸 보면 전사의 자질이 있다.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뭐, 행군은 익숙하지 않으면 꽤 고생이니까.”
완전히 잠든 라냐를 보고 시르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맞장구쳐주면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나뭇가지를 좀 더 집어넣었다.
“결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드니, 시르도 쉬어.”
“저는 괜찮습니다. 시그 님이야말로 쉬셔야 되지 않습니까?”
자애로운 미소가 내게 향한다. 나는 옅은 미소로 대답해주고 가만히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았다. 시르도 말없이 불타는 장작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이렇게 야영을 하는 건 처음이네.”
“네. 그동안은 도시에서 멀리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지. 조만간 찾아갈 이계형 던전도 그렇고. 시르도 타라스트에만 머무르는 건 재미없지?”
“후훗. 저는 시그 님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궁해지잖아. …뭐, 나도 시르와 함께라면 어딜 가든 문제없지만.”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확실히 그동안 우리에겐 이럴 시간이 적었다. 타라스트에선 밖에 나가는 시간보다 숙소에서 섹스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이번 외출은 사건의 연속이었으니까.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의외로 적었던 것이다.
확실히 일반적인 연인관계하고는 다르다. 애초에 처음 만난 날 서로에게 반하고 악신의 추종자들을 때려잡고 도시로 돌아와서 고백하고, 곧바로 숙소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섹스를 한 사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이 정도로 급진적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원나잇인 것도 절대로 아니고.
나는 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시르를 보면 어쩌면, 정말로 운명이란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정확히는 내가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
……사랑은 극복의 대상인가? 내가 목표로 삼은 자리에 가기 위해선 이겨내야 하는 감정인가?
아니다. 만약 시르가 내 발목을 잡는 사람이었고, 내가 그런 사람에게 반했다면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겠지만, 시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더욱 높은 곳으로 올려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구에서는 만나 본 적 없는…. 내가 반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렇다면 이것은 극복해야 하는 운명이 아니다. 애초에 운명조차 아닐 수도 있다. 시르와 나는 어디까지나 우연히 만난 것이고 살아오면서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쌓아 올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만남과 사랑은 필연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나는 어느센가 시르의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 작은 어깨를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시르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내 가슴에 몸을 기대었다. 그 작은 몸에서 전해지는 열기와 흥분이 섞인 숨결이 내 심장을 거칠게 두들겼다.
시르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를 바라듯이 나를 올려보았다. 나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먼저 입을 열은 것은 시르였다.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오래간만에 시그 님의 온기를 느끼고 싶습니다.”
“어디로?”
“……모든 곳으로.”
사랑스러운 그녀와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도 그녀도 오래간만에 서로의 온기를 몸속 깊은 곳까지 느끼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하읍… 하앗.”
정열적으로 키스하면서 야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풀숲으로 이동했다. 어른 몸통만 한 크기의 나무 뒤로 이동한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를 강하게 껴안고 원하면서 체온과 체액을 주고받았다.
며칠 만의 본격적인 행위는 모든 것을 새롭게 했다.
그녀의 온기도. 그녀의 향기도. 그녀의 촉감도. 그녀의 맛도.
“후훗… 후후후.”
30분 동안의 얽힘을 끝내자 잔뜩 상기되고 잔뜩 흐트러진 시르가 작게 웃었다. 에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표정과 그 웃음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얇은 옷을 거칠게 벗겨냈다. 그리고 드러난, 작지만 아름다운 가슴의 봉오리를 거침없이 물고 빨았다.
“하앗… 시간은 많으니… 좀 더 천천히…. 하읏.”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혀를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리는 그녀의 육체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어느새 가랑이 사이로 이동시킨 손에는 시르의 애액이 흥건했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이순간을 기다려왔다는 증거였다.
“음란해.”
“시그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으로 야외에서 하는 건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네. 정말.”
“……시그 님도 원하시지 않았습니까.”
조금 토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시르에게 나는 정답이라는 듯이 그녀의 작은 가슴을 희롱했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오래간만의 손님을 맞이하는 계곡 사이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흐읏… 흐읏… 히읏… 하앗…!”
시르는 라냐를 신경 써서인지 신음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었지만, 이미 녹아내리는 얼굴과 계속해서 반응하는 육체가 지금 그녀가 느끼는 쾌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나는 그렇게 30분 정도를 시르의 몸을 달구는데 쏟고 드디어 폭발할 것 같은 나의 자지를 꺼내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자 쾌락에 빠진 시르는 입술을 한 번 핥더니 무릎을 꿇고는 내 하반신에 얼굴을 고정했다.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한 나는 흥분으로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벨트의 잠금장치만 풀고 시르가 마음대로 하기를 기다렸다.
“…괴로워 보이십니다. 제가 풀어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시르의 작은 손길이 내 벨트를 풀고 바지의 단추를 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도 안에 남은 검은색 타이즈로 가려진 내 자지를 보고 점점 거칠어진 숨결을 내뱉은 시르는 타이즈마저 아래로 벗겨냈다.
불쑥.
그러자 드디어 등장한 나의 분신. 나의 자존심.
그것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시르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이미 익숙한 자지일 텐데도 시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친 숨을 내쉬면서 녹아내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상기된 얼굴과 황금색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이 나를 미치게 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핥아줘.”
“네. 시그 님.”
시르는 사랑스러운 보물을 만지는 것처럼 내 자지를 만지다가 조심스럽고 사랑스럽게 내 자지를 핥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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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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