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85화 귀갓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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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명성에 비해 관객이 극단적으로 적었던 대련이 끝나고, 우리는 간단하게 반성회를 시작했다. 물론, 나는 반성할 게 하나도 없었기에 사실상 에밀리아의 반성회였다.
“아무리 스펙이 높아졌어도, 굳이 근접전을 벌인 이유를 모르겠네. 너,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잖아?”
“그, 그게 말이죠….”
“에밀리아는 그런 부분에서는 고집스럽거든요.”
“리에스!”
리에스가 짓궂게 웃으면서 대신 대답하자 에밀리아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하지만 친구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리에스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말했다.
“시그 님이 맨손으로 싸운다니까, 자기도 주특기를 어느 정도 봉인하고 싸운 거예요.”
“호오. 쉽게 말해서 나를 봐줬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새빨개진 얼굴로 필사적으로 손을 휘젓는 그녀를 보면서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입을 가리면서 웃던 파리에가 말했다.
“에밀리아는 꽤 다재다능해요. 근접전은 리에스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지만, 다양한 원거리 공격 기술을 가지고 있죠. 평소에는 리에스가 정면에서 적의 시선을 끌거나 공격을 막고, 에밀리아는 중거리나 원거리에서 공격하거나, 틈을 파고들어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싸웠죠.”
“그런데 나와는 그냥 정면으로 싸웠다는 거잖아. 왜 그랬어?”
“…그, 그게… 그러니까….”
부끄러운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에밀리아를 보고 이번에도 리에스가 피식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정정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하고 싶었던 거죠.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괜히 앞으로 나서서 싸우려고 했었거든요. 이번에는 그 버릇이 튀어나온 거고.”
“리에스…! 그 얘기를 하면 어떻게! 시그 님이 오해하시잖아!”
“오해고 자시고 그냥 사실이잖아. 아까 머리 잘못 맞았어? 왜 헛소리를 하고 그래.”
“리에스. 에밀리아는 원래 당황하면 아무 말이나 하잖아요. 그만큼 부끄럽다는 거겠죠.”
“어이구. 그랬어? 그렇게 안 부끄러워해도 되는데. 뭐, 그런 면모가 그렇게 나쁜 덕목인 것도 아니고. 다만, 그런 걸 추구하기 위해 동료를 위험에 빠트리면 안 돼.”
“당연하죠! 애초에 그 버릇은 이미 몇 년 전에 고쳤습니다! 지금은 순전히… 그, 시, 시그 님의 실력을 몸으로 겪어보고 싶어서!”
“거기까지. 왠지 놔두면 굉장히 위험한 소리를 할 것 같아!”
슬쩍 시르의 눈치를 살핀 내 제지에 에밀리아는 자신의 말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호오. 곧바로 거기까지 사고가 이어지는 걸 보면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구나?
리에스와 파리에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 이상 놀리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숙소로 돌아가면 밤새도록 놀리지 않을까?
그때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시르와 라냐도 대화에 참여했다.
“정말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와. 저는 중간부터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좀 천천히 싸울 걸 그랬나?”
“그럼 대련이 안 되잖아요.”
“아니, 적어도 나는 더 느리게 움직였어도 되었어.”
“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깜짝 놀라는 에밀리아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이걸로 왜 거짓말을 하겠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러고 보니 시그 님의 움직임은 저보다 느렸죠? 어떻게 저보다 느린데 제 공격을 전부 다 피할 수 있었던 거죠?”
“둔?의 묘리입니다.”
그녀의 질문에 답한 것은 시르였다. 시르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에밀리아와 그에 못지않게 놀라고 있는 리에스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느린 것이 빠른 것을 이긴다. 시그 님이 익힌 무술의 핵심 사상 중 하나입니다.”
“…느린 것이 빠른 것을 이긴다? 동방의 말입니까?”
리에스는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밀리아는 아예 이해 못 하겠는지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라 있는 이미지가 보일 정도였다. 나는 시르가 그녀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 말을 꺼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귀여웠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고 대답해줬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말이기도 하지만, 무술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이치야. 뭐, 그걸 여기서 말로 설명하는 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가르쳐줘도 너희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요? 자기보다 빠른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기술인데요?”
라냐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라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라냐는 조금 싫은 기색이었지만, 불만 대신 궁금증을 담은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그 시선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그런 단순한 얘기가 아니니까. 그리고 무술의 사상은 익힌다고 무조건 도움이 되는 건 아니야. 오히려 기존에 익히고 있던 기술과 충돌하면서 역량이 떨어지기도 하지. 그것마저 극복하고 모든 것을 통달하고 합칠 수 있다면 더욱 높은 곳으로 비상하겠지만, 그건 무도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길이지 용사의 길이 아니야. 에밀리아나 리에스나, 그런 복잡한 길 보다는 이미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걸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게 제일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마법도 그런 면모가 있죠.”
무술은 몰라도 마법은 잘 아는 라냐는 제대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법에도 통하는 이치가 있겠지. 하지만 에밀리아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검도??를 걷는 리에스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이해한 얼굴이었다. 파리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시르만이 내가 말한 무술의 이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고작 며칠을 가르쳐줬음에도 시르의 무술은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뭐, 여전히 원거리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강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에밀리아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도 가볍게 지도해줄 수는 있는데. 조금 전의 대련에서 당장 고쳐줄 수 있는 부분이 보였거든.”
“…아, 앗! 그,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에서 빠져나온 에밀리아는 손까지 번쩍 들으면서 환호했다. 리에스는 그런 에밀리아를 부럽다는 눈으로 보았고, 파리에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보고 작게 웃었다가, 시르의 묘하게 차가운 시선을 받고 곧바로 정색했다.
이건 어디까진 순수한 의도야! 나한테는 시르밖에 없다고! 믿어줘!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에밀리아를 간단하게 지도해주고 그 길로 해어졌다. 슬슬 자기네끼리의 회의를 끝냈을 사제들이 용사나 우리를 찾으러 다닐 만한 시간이 되었고 나도 오늘 내로 끝낼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에스는 내가 에밀리아를 가르치는 광경을 보고 자기도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거절하자 엄청나게 낙담했다. 그게 불쌍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어울려 주겠다고 하자 눈을 반짝이면서 손을 붙잡았고,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면 그녀가 너무 불쌍해서 피하지 않았던 나는 시르와 라냐의 조금 싸늘한 눈초리를 감수해야 했다. 그걸 보고 파리에는 피식 웃었다. 이 자식.
“다음 번에는 저희가 시그 님을 찾아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이번엔 내가 너희를 찾아온 것 같잖아. 뭐, 타라스트에 오면 같이 식사 정도는 해줄게.”
“식사 약속 언질 받았습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다음 번에는 저도 지도해 주시길!”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그 님. 그럼 나중에 또 다시.”
세 사람의 환영을 받으면서 우리는 천신교의 신전에서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시르와 내 귀에 우리를 찾는 사제들의 소리가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자기네끼리 나눈 회의에서 무슨 얘기가 나와서 우리를 찾았는지 몰라도, 이 이상 그들과 엮이는 건 사양이었다. 이제 몇 가지만 더 하면 이 도시에서 할 일은 끝이라고. 댁들과 이 이상 엮이는 건 사양이야. 진짜.
“세분 다 정말 좋은 분들이셨어요.”
“괜히 용사가 아니지.”
“네. 다들 훌륭하고 아름다운 분들이셨습니다.”
“시르만큼은 아니지만.”
“…시그 님.”
“…시르.”
“……그런 건 나중에 둘만 있을 때 해주시겠어요? 그리고 이제야 말하는 건데, 저도 있는 곳에서 애정행각은 적당히 하세요! …옆에 있는데 동침까지 하는 건 너무하잖아요!”
“…미, 미안합니다. 라냐 양.”
“역시 깨어있었구나. 언제 지적하나 했다. 안미안미.”
“알면서 그랬어요?!”
“알고 계셨습니까?!”
두 사람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한스 상단의 라리레스트 지부였다. 2층 석조 건물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옆에 비슷한 크기의 물류창고를 가지고 있어서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 도시에서 손꼽히는 상단이었던 레르크 상단만큼은 아니지만, 한스 상단도 이 도시에서 그럭저럭 잘나가는 상단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두 개의 도시에서 가장 잘나가는 상단이 될 천고의 기회를 잡았다.
“어서 오십시오! 시그 님! 시르 님! 라냐 님!”
상단 직원에게 우리가 찾아왔다는 말을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 그대로 버선발로 튀어나온 한스 상단주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를 반겼다.
처음부터 나를 향한 호감도가 높았던 사람이지만, 지금 가히 생명의 은인을 만난 수준의 반응이었다. 뭐, 몬스터 군단에게서 구해줬으니 생명의 은인에 가깝기는 하다.
거기다가 이런 시기에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건, 내가 그 이상을 해주러 왔다는 걸 모를 사람도 아니니까. 물론, 당연히 내가 마냥 그가 예뻐서 찾아왔다고 생각할 사람도 아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한스 상단주는 우리를 호화로운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이 도시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화려하고 비싼 음식점이었는데, 나름대로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나조차도 진심으로 감탄할 정도의 요리가 나오는 곳이었다.
나보다 이런 요리를 접한 경험이 적을 시르와 라냐의 경우에는 잔뜩 긴장하면서 식사할 정도였다. 저래선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데 말이지.
그걸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래간만에 마시는 제대로 된 와인의 맛을 즐기며, 그런 우리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한스 상당주와 대화를 나눴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한스 상단주님.”
“으하하하. 별말씀을! 시그 님 같은 분을 모시려면 이정도 식당은 되어야지요.”
“그렇게 띄워주실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굉장히 좋은 곳이군요.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역시 알아주시는군요. 혹시 이런 곳을 자주 오셨습니까?”
“제 고향에도 비슷한 수준의 식당이 여럿 있습니다. 맛은 한 손에 꼽을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상위권이군요.”
“호오. 동방에 그런 지역이…. 아니, 동방은 미식으로도 유명한 곳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군요. 허허. 나중에 동방에도 가게 되면 꼭 들려보고 싶습니다.”
“후후.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두시죠. 그리고 제 고향은 워낙 먼 곳에 있어서 상행은 힘드실 겁니다.”
“그건 아쉽군요. 하긴, 동방은 워낙 머니 말입니다.”
“저도 오느라 고생했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만.”
조용히, 예의 바르게, 고급 요리들을 즐기면서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식사 중에 얘기하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사업가를 상대론 어쩔 수 없다.
지구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협력 업체와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친목을 다지고 사업 얘기를 하고 그랬다. 어느 수준 이후부터는 내가 그들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내게 맞춰줘야 했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한스 상단주도 내가 조금 굽혀줬다고 기어오르는 멍청하고 무례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매우 드물게도 야망 있고, 똑똑하면서도 예의를 알고 인내심이 있는 사업가였다. 그래서 굳이 그를 찾아온 거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나는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 실업자가 대거 발생했다더군요.”
“…저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마치 남 일처럼 꺼낸 얘기에 한스 상단주는 똑똑하게 반응했다. 나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얘기하는 거 좋아해.
“다들 하나 같이 유능한 인재들인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다 보니, 한번 불미스러운 일에 역이면 그 뒤로도 고역이더군요. 이럴 때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의 존재가 아주 고맙죠.”
“허허허. 그렇지요.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죠.”
“네. 거기다가 능력도 있고 신의도 있는 사람은 더욱 찾기 힘듭니다. 세상에 한스 상단주 같은 분이 많지 않지요?”
“으허허허. 저를 그렇게나 높게 평가해 주시는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렇게나 저를 신뢰해주시니, 저도 무언가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선뜻 승낙하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들과 가족들을 두 달만 맡아주세요.”
“…두 달만요? 어째서입니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대답이었는지, 한스 상단주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들은 내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 것을 남에게 오래 맡기지 않죠.”
“………허, 허허허.”
감탄이지 당황인지 모를 웃음 소리를 흘리던 한스 상단주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정색하면서 말했다.
“시그 님께선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한스 상단주에게도 아주 좋은 일.”
“제가 이 이상 할 수 있는 일은요?”
“당신이라면 내가 하려는 것을 알자마자 무엇을 해야 할지 바로 깨달을 겁니다.”
“…허허허. 그럼 그때까지 지금까지처럼 하면 되겠군요.”
“역시 한스 상단주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시그 님만 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운이 좋을 뿐입니다.”
“운도 계속 되면 실력이죠.”
“동방의 말입니까?”
“고향의 말입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으하하하! 아직 요리는 많이 남았으니 다들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의 분위기는 마치 환상이었다는 듯이 다시 즐겁게 웃는 한스 상단주를 시작으로 우리는 즐거운 저녁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즐겁게 상단으로 향하는 한스 상단주와 헤어진 우리는 숙소로 향하면서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무겁거나 어색해진 건 아니고, 시르나 라냐나 내가 보인 새로운 일면에 놀라서 말을 못 하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시르는 눈을 토끼처럼 뜨고 있었는데, 정말 귀여웠다. 후우. 빨리 타라스트로 돌아가고 싶네. 그래야 시르를 귀여워해줄 수 있는데!
그런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라냐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작은 소녀는 고개를 살짝 기우리고선 물어왔다.
“…시그 님은 고향에서 대체 뭘 하셨나요?”
“이것저것. 다양하게. 최고였지.”
“으음…. 얄밉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게 더 열받네요.”
라냐는 끄응 신음을 내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저거 나한테 배운 버릇인가? 역시 어린애라서 주변 어른의 행동을 따라하는 구나.
시르도 당황에서 벗어났는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의 당황은 생소한 상황과 내 새로운 일면이 결합 되어서 뇌에 병목현상이 일어나 나온 표정이었나 보다. 지금은 내 행동의 의미를 전부 이해한 거겠지. 그리고 나에 대한 이해도도 더욱 올라갔을 것이다.
이게 게임이라면 시르에게 [시그에 대한 이해도가 10 상승했습니다] 같은 메시지가 떴을 거다. 나? 나는 시르의 이해도 100을 이미 찍었기에 상관없다.
자아, 그럼 이제 내일 타라스트로 귀환할 준비한 마치면 되겠군. 실제로는 고작 이틀이었지만, 일주일은 여기에 머문 기분이다. 만약, 다른 도시에 갈 때마다 매번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세계에 온 뒤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았으니까.
그런 불길한 예감을 다시금 느끼며 나는 시르와 라냐의 손을 잡고 숙소로 귀환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런 문제도 없이 라리레스트를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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