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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천재가 가면-84화 (84/93)

〈 84화 〉 84화 귀갓길

* * *

타다닷!

에밀리아와 나의 거리는 약 20m. 그 거리를 에밀리아는 다섯 걸음 만에 줍혔다. 아마 성검으로 추정되는 새하얀 칼날이 올곧은 궤도로 찔러 온다. 노리는 것은 가슴인척하면서 옆구리. 페인트조차도 정직하다. 그걸 보고 나는 옅게 웃으면서 검면을 손바닥으로 살짝 쳤다. 마치 벌레를 쫓는 듯한 동작에 검이 크게 흔들리면서 에밀리아의 균형도 흐트러졌다.

“………!!!”

설마 이런 식으로 공격을 막을 줄 몰랐는지,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손을 뻗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검 손잡이를 꽉 쥐고 있던 손을 그대로 위로 들어 올린다. 본래 가슴으로 향하던 검날이 하늘로 올려지고 에밀리아의 몸통이 텅 비었다.

그 중심을 향해 가볍게 잽.

퍼엉!

“컥!”

짧은 비명과 함께 에밀리아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돌진해오던 속도도 있었기 때문에 그 거리를 길지 않았지만, 내부에 가해진 충격은 더욱 컸다. 잠시 공중에 떴다가 착지할 때, 바닥에 쓰러지거나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휘청거리면서 간신히 자세를 잡는다. 내가 일부러 놓아준 손으로 잡은 성검을 똑바로 세우면서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었다.

나와 그녀의 사이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단 한걸음에 거리를 없애고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하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난다. 허둥지둥 휘두른 검은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가볍게 오른손으로 붙잡고 왼손으로 에밀리아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옆으로 회전시킨다.

휘릭 퍼억!

“크윽!”

마치 장난감처럼 공중에서 회전한 에밀리아는 간신히 낙법을 취하긴 했지만, 충격을 완전히 흘려내진 못했다. 거기다가 너무나도 형편없이 몸의 제어권을 빼앗겨서인지 정신적인 충격이 커 보였다. 곧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멍하니 나를 올려보는 모습에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발을 들어올려 그녀의 몸을 밟았다.

“큭!”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에밀리아는 재빠르게 바닥을 굴러서 발을 피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세를 잡는 대신 곧바로 내게 달려들면서 검을 휘둘렀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 이제야 진심이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처음의 찌르기는 너무 형편없었지.

연속해서 날아오는 공격들을 막거나 잡는 대신 몸을 슬쩍슬쩍 움직이면서 피한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이 빗나가자, 에밀리아는 조바심이 났는지 더욱 빠르고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페인트도 들어갔지만, 너무 뻔해서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정직한 검술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자기보다 더 빠르고 강하고 기술까지 뛰어난 상대에겐 너무 쉬운 먹잇감이다.

“허억…! 허억…! 허억…!”

그렇게 공격을 피하기만을 3분. 에밀리아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본래 체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첫 충돌에서 겪은 압도적인 실력 차이와 지금도 계속 보여주고 있는 종이 한 장의 회피는 몸도 마음도 급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체력을 가파르게 소모했고 정신력도 그에 못지않게 소모됐다.

그 결과, 에밀리아의 검술은 30초도 더 지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빈틈 투성의 형편없는 검술. 용사답지 않은 검술이다. 그 틈에 손을 밀어 넣어서 단번에 멱살을 잡고 그녀의 몸을 끌어당긴다.

“으악!”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면서 내게 끌려온 에밀리아를 그대로 한 바퀴 회전시켜서 뒤로 집어 던진다. 의지가 없는 인형처럼 날아간 에밀리아는 앞으로 꼴사납게 넘어지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그 뒤에 힘겹게 바닥을 집고 몸을 일으켰다.

훈련장은 고요했다. 몸을 일으키면서 비틀거리는 에밀리아의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구경하고 있는 네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 표정은 제각기 달랐지만, 느끼고 있는 감정은 같을 것이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잡으려는 에밀리아를 보면서 툭 내뱉었다.

“장난하냐.”

“………….”

에밀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혼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가 맨손으로 싸우려고 하니, 뭐라고 했으면서. 너야말로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잖아. 성법은 어디 갔냐? 까놓고 말해서 네 검술은 리에스만도 못하잖아?”

“그걸 어떻게….”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의문을 내뱉는 그녀에게 나는 다시 한숨을 쉬면서 답해줬다.

“평소 자세와 걸음걸이. 느껴지는 기세만 봐도 알지. 그런데도 네가 용사이고 네가 가장 강한 건 검술 외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그것까지 포함해야 네 강함이잖아?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지? 나를 놀리는 거냐?”

“그, 그런건… 아니에요.”

부끄러운지 에밀리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럼 뭔데?”

“…대, 대련에 거기까지 하는 건….”

“실력을 보기 위한 대련인데, 네 실력을 감추면서 싸우는 게 대체 무슨 의미냐? 그리고 너 지금 혹시 나 걱정하냐?”

“………….”

에밀리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본연의 힘을 다 쓰면 내가 다칠 거라고 진짜로 걱정했던 것 같다. …아니, 얘가 진짜. 착한 건 알겠는데, 상대와 자신의 역량 차이를 모르는 거야? 저러다가 훅 가는 수가 있다.

“하아. 에밀리아. 너, 지금 내가 엄청 봐주고 있는 거 알아?”

“……아, 알아요.”

“첫 일격에 네 배를 뚫어버릴 수도 있었어.”

“…………꿀꺽.”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살기를 담아 말하자 에밀리아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나는 다시 팔짱을 끼고 말했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걱정하는 건 오만이다. 그것도 네 목숨을 앗아갈 치명적인 오만이지. 그리고 모욕이야. 나야 엄연히 사실을 가지고 너를 평가한 거지만, 너는 사실이 아닌데 나를 평가한 거잖아? 걱정하지 마. 네가 전력을 다해서 나를 죽이려고 해도 내 몸에 상처하나 낼 수 없으니까.”

“읏…….”

아무리 그래도 이 말에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를 앙다물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간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왜 저런 표정으로 피하는 건지 모르겠군. 음. 조금 전에 한 행동이 굉장히 한심한 짓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아서 그런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각오를 다졌는지 에밀리아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으로 외쳤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하겠습니다앗!!!”

파아아앗!

동시에 에밀리아의 몸에서 휘황찬란한 광휘가 뿜어져 나왔다. 성법. 그것도 아마, 신체 능력을 강화하고 저 빛이 방어막 효과까지 하는 종류일 거다. 이 자식. 이제까지 버프 마법도 안 걸고서 나하고 싸우려고 했단 말이야? 괘씸하긴 했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재미있을 것 같으니 봐주마.

진심을 발휘한 에밀리아의 버프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새하얀 검날에 더욱 빛나는 빛이 휘감겼다. 그 빛 속에는 마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은색 광류가 있었다. 이어서 에밀리아의 날개 죽지 쪽에서 빛이 터져 나오더니 새하얀 물감을 칠한 것 같은 날개가 튀어나왔다. 그것도 한 쌍이 아니라 세 쌍, 여섯 장이나 되는 날개였다.

광휘. 광류. 광익.

호오. 이제야 진짜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답구만! 그래! 용사라면 이 정도 이펙트는 있어야지!

초록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한 눈동자로 나를 직시하며 에밀리아는 성스러운 기운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진심으로 가겠습니다!]

“오냐. 이제 똑바로 좀 해봐라.”

내 대답이 끝난 순간 에밀리아의 모습이 팟! 하고 사라졌다.

오! 한순간이지만 내 시야에서 벗어나다니! 진짜 빨라졌네! 하지만 내가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방법은 눈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옆으로 슬쩍 물러났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에밀리아의 검이 내가 있던 장소를 갈랐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일격. 조금 전까지의 에밀리아였다면 방어도 회피도 안 하는 내게 이런 망설임 없는 일격을 날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닌 단순한 대련인데도, 에밀리아는 진심으로 죽일 생각의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단순하고 솔직하게 좋은 녀석이다. 그래. 답답하기만 한 것보다는 이런 쪽이 더 낫지. 역시 이 녀석은 오래 살아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미 준비해뒀던 공격기를 날린다. 에밀리아의 공격을 예상했기에 할 수 있는, 회피와 동시에 쏟아지는 일격.

진괘?? 천둥

콰앙!

“………!”

회피와 동시에 행해진 공격은 에밀리아의 얼굴에 정확하게 꽂혔다. 그녀의 머리가 살짝 뒤로 밀려났지만, 큰 타격은 없어 보였다. 몸을 휘감은 광휘가 위력을 감소시킨 것이다. 내 영혼육백은 마력은 확실하게 분쇄하고 기에도 효과가 있었지만, 신성력에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악신의 칼날의 기운을 숨기는 성법에도 반응하지 못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신성력이 마력과 기보다 효과가 없는 이유에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리고 한 번이 먹히지 않으면, 여러 번 날리면 그만이기도 하고.

에밀리아가 잠시 멈칫한 순간, 세 발의 천둥이 그녀의 얼굴에 쏟아졌다.

“큭…!”

아무리 그래도 연속 세 번은 타격이 있었는지, 짧은 신음을 내뱉고 에밀리아는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가볍게 뒤로 물러나서 피하고 검날이 끝에 도달하는 순간 앞으로 나오면서 앞차기를 날렸다.

쾅!

“흠!”

빠르게 뒤로 갔다가 앞으로 오는데 에너지를 많이 썼기 때문에 위력도 약하고 속도도 느렸다. 그래서 에밀리아도 빈 팔로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 반동을 이용해서 좀 더 뒤로 이동해 에밀리아의 반격을 사전 차단한 나는 살짝 몸을 숙였다. 그 위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에밀리아의 검이 가르고 지나갔다.

확실히 이전보다 힘도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순수한 스펙만 따지면 처음 싸웠던 악신의 칼날의 일반 모드보다도 위. 폭주 모드와 비교하면 60% 정도? 거기다가 성법으로 막강한 방어력과 추진력을 얻었으니 폭주 모두하고도 그럭저럭 싸울만하다. 순간 속도와 최고 속도는 더 위이고. 그래도 나와 자주랑에 비하면 스펙은 떨어졌다.

…뭐, 나는 강화복 기능을 풀로 활성화한 기준이지만. 지금 나는 강화복 기능을 켜지 않았다. 그래서 단순한 스펙만 보면 에밀리아보다 확실히 아래. 그런데 나는 에밀리아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무리 에밀리아가 빨라도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속도와 힘이고, 기술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스펙 차이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공격이 빗나간 순간 쏘아진 천둥이 에밀리아의 턱을 후려쳤다.

“커흑?!”

깔끔하게 들어간 일격은 에밀리아의 뇌를 흔들어서 순간 몸의 기능을 빼앗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서 대지를 박차고 하늘을 꿰뚫을 듯한 일격을 날렸다.

이게 마지막이다.

건괘?? 승천??

콰앙!

“…………!!!”

강렬한 올려차기에 명치를 직격당한 에밀리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소리가 되지 못한 숨을 토해내고 몸이 공중으로 2m가량 솟구쳤다. 그녀의 몸을 보호하는 광휘도 지금 일격을 완벽히 방어하지 못했다. 아니, 그 광휘가 없었지만, 지금 공격으로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고 내장이 모조리 짓뭉개졌을 거다.

강화복 기능을 쓰지 않은 신체 스펙의 전력을 다한 일격.

그 일격은 용사에게도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털썩.

약간의 상승이 끝나고 이어진 추락에도 에밀리아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야 당연하다. 의식을 잃었으니까. 그 증거로 등의 광익이 사라지고 검을 휘감던 광류도 사라졌다. 그래도 몸을 보호하는 광휘는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의식을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부류인가 보다. 시전자의 육체를 보호하는 기능이 더 커서 그런 걸까. 성법은 편리하구만.

그래도 기절한 건 기절한 거다.

내가 이겼다.

“어이, 에밀리아.”

나는 쓰러진 에밀리아를 내려보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에밀리아는 작은 신음만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광휘의 효과를 믿었다.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에밀리아. 일어나. 어서 일어나셔요. 일어나라고.”

“……으, 으으으으. ……으?!”

신음하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에밀리아가 눈을 번쩍 떴다. 다시 녹색으로 돌아온 눈으로 그녀를 내려보는 내 얼굴을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순간적으로 상황파악을 못 하는 모습에 나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 지금 전력의 20%도 안 썼어.”

“………….”

“어때? 더 할래? 아니면, 여기서 끝?”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에밀리아는 이내 눈을 감으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처럼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졌습니다!”

“오냐.”

나는 여전히 웃으면서 에밀리아에게 손을 뻗었다. 그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에밀리아는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용사와의 대련은 나의 완승으로 끝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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