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77화 용사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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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밤이 끝나고 해가 떠올랐다. 햇살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제각기 새로운 날을 맞이한 사람들은 이전과 같거나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시작했다.
다만, 그것은 도시의 중심지에서 벗어난 지역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새벽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을 잠들지 못하게 만든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자들은 도저히 평소와 같은 일상을 시작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제대로 잠을 잔 사람조차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연히 나는 그중에 꼽히지 않았다.
관청의 휴게실에서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면서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쉬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랑스러운 시르가 그렇게 걱정스럽게 물어볼 정도로 내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연달아 이어진 격전과 이어진 뒤처리로 인해 강철 같은 내 육체와 정신도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다. 지구에서는 이것보다 더 피곤한 일들도 여러 번 겪었다.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고 익숙해져서도 안 되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괜찮아. 그러는 시르야 말로 쉬지 않아도 되겠어?”
“저는 괜찮습니다.”
시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걱정하는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시르는 볼을 약간 붉게 물들이고 내 손등 위에 손을 포갰다.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금세 끝낼 수 있어. 내일까지는 타라스트로 돌아가자.”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차하면 여기 분들에게 전부 맡기지 않겠습니까? 본래 그분들의 일이지 않습니까?”
시르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잔혹한 말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애초에 나는 의뢰 때문에 이 도시에 잠깐 들린 모험가이고. 도시 안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들을 해결해야 하는 건 본래 그들의 몫인 건 맞으니까. 그래도 여기까지 얽힌 이상 어느 정도 마무리는 지어줘야 나중에 쓸데없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도시에 만약 ‘여명’의 끄나풀 같은 거라도 있다면 이대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다.
그래도 시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순전히 나를 걱정해서라는 걸 뼈가 시리게 알 수 있었기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았어. 할 수 있는 곳까지는 해보고 결정할게. 여기 사람들도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더라고. 교단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큰 문제도 없을 테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다른 교단들…. 새벽부터 그분들의 요구대로 도시를 돌아다니신 것도 저는 과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시비가 걸리시진 않으셨습니까?”
시르는 다른 교단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들 중에 나를 경계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존경과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경계하는 사람들도 대놓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르는 처음부터 다른 교단 사람들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걸 그들에게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은 시르가 그들을 불편해한다는 걸 알아차렸을 수준이었다.
단순히 믿는 신이 달라서? 시르가 그렇게 편협한 사람인가? 아니다. 단순히 눈에 콩깍지가 씌인 평가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시르와 교단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물어보기에 그리 좋은 때가 아니다. 시르가 먼저 스스로 얘기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이지만 있고.
“그런 일은 없었어. 설사 그런 일이 있어도 내가 그냥 당해줄 사람이야? 그날로 걔네들 교단이 망하는 날이지.”
“…후후. 네. 괜한 노파심이었습니다.”
시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궁금해 미치겠네. 스스로 말하게 하는 건 포기해야 하나? 아니, 그냥 지금 물어봐? 자연스럽게 물어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시르는 그런 의도를 눈치 못 챌 정도가 아니다. 이미 지은 죄가 있는 나는 시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말을 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마침 잘 됐군. 선택장애가 왔을 때는 잠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이지.
“시그 님. 시르 님. 마탑분들이 찾으세요.”
휴게실로 들어온 라냐는 많이 피곤한 얼굴이었다. 새벽부터 잠도 안 자고 마탑의 조사에 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라냐는 처음에는 다른 도시의 마탑 사람들과의 교류에 기뻐했지만, 그게 울상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같은 마법사이면서도 그들이 극성맞다는 걸 몰랐던 걸까?
악신의 칼날이 사용한 마법을 설명하라고 득달하는 그들에게 라냐는 금세 질려버렸다. 그래도 성실하게 그들의 말에 대답한 결과 라냐는 지금까지 붙들리고 만 것이다.
그거로도 모자라서 우리들까지 필요한 모양이군.
물론, 나는 방긋 웃으면서 거절했다.
“싫어. 궁금한 게 있으면 자기들이 올 것이지, 누구보고 오라고 명령이야?”
“저도 시그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단호한 거절에 라냐는 잠깐 멍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울상이 되었다.
“자, 잠깐만요! 그렇게 하시면 저는요!”
“너도 거절하면 되잖아? 애초에 그때 왜 그 인간들의 말에 그렇게 성실하게 대답했던 거야?”
“좋아서 했던 게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전부 들어주기에 본인 의지라 생각했습니다만….”
나는 반쯤 놀리는 느낌이었지만, 시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천연인가. 그리고 우리의 말에 라냐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이내 울컥하며 외쳤다.
“그, 그러면 도와주시지! 왜 그냥 보고만 계셨나요!”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모습에 나도 진심으로 대답했다.
“나도 이것저것 일이 많다 보니까 그 정도 일은 너한테 맡겨도 될 것 같더라고. 진짜 힘들었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멈췄을 거다. 도와달라고 했으면 도와줬어. 뭐, 덕분에 마탑까지 상대하지 않게 된 거는 고맙게 생각해. 아니, 진짜 고맙다.”
“죄송합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 고생하셨습니다. 라냐 양.”
“…훌쩍.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잖아요.”
우리의 해명에 라냐는 빠르게 납득하고 글썽거리던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성실하고 남의 부탁을 함부로 거절 못 하면서 정작 아싸에 가까운 성격. 아직 어리숙하고 감정적이지만, 지금처럼 감정에 휘둘리다가도 금세 이성을 찾는 모습도 보였다.
귀여운 녀석. 이것도 일종의 사회훈련이라고 생각해라. 마탑에만 틀어박혀 살 생각이 아니라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지.
“그래.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좀 쉬어. 애초에 왜 네가 그것들에게 그렇게 쩔쩔 매는 거야? 같은 마탑 소속도 아니잖아?”
“…그래도 선배들이신데.”
변명이 궁색했다. 마탑은 각기 독립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마탑의 마법사를 존중할 수는 있어도 상하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라냐는 이곳 마탑의 마법사들을 상사처럼 대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 부분을 지적했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그치들이 너를 마음껏 부하처럼 부려 먹고 있는 거야. 라냐.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건 매우 훌륭한 마음이고 태도야. 하지만 예의를 지키는 것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건 별개의 문제야. 이건 네 어리숙함을 이용한 그것들이 가장 큰 문제지만,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버린 네 태도도 고칠 필요가 있어.”
“………….”
라냐는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 귀여운 반응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마무리 지었다.
“네 가치는 절대로 낮지 않아. 너와 함께하는 우리들의 가치도 낮지 않지. 그러니 그것들이 네게 부당한 요구를 한다면 단호하게 거절해. 용기를 내. 너는 할 수 있어.”
“……그, 그걸로 저를 해코지 하면요?”
라냐는 총명한 아이다. 내 말을 곧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그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도 바로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애의 그런 불안을 해소해주는 게 어른이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면 스스로 이겨내야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당연히 우리에게 얘기해야지. 설사, 마탑주라고 해도 감히 너를 그렇게 취급하면 내가 당장 그놈의 엉덩이를 걷어차 줄게.”
“시그 님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니, 저도 한몫 보태겠습니다.”
상냥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던 시르도 말을 보탰다.
“……우, 우으으으.”
우리의 말에 라냐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눈물을 흘렸다.
…아니, 왜 갑자기 울어? 그렇게 감동적인 얘기는 아니었지? 그렇다면 이런 말에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그 자식들이 험하게 대했다는 건가? 대체 얼마나 부려 먹은 거야?
선 넘네. 개빡치는데?
“엉덩이를 걷어차는 정도로 끝내면 안 되겠는데?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다음에 마탑에 거꾸로 매달아 버릴까?”
“매달릴 사람은 마탑주 한 명으로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 관청에 온 사람들을 전부 매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아니에요! 그렇게 심한 일은 당하지 않았다고요!”
라냐는 울음을 뚝 그치고 당황하면서 우리를 말렸다. 그런데 그 말인즉, 심한일을 당하긴 했다는 거잖아?
“호오. 어쨌든 심한 일을 당하긴 했다는 거네? 그래. 이참에 들어보자. 그것들이 너에게 무슨 일들을 시켰어?”
“저도 궁금합니다. 이곳 마탑의 마법사 분들은 대체 무엇을 그렇게나 듣고 싶어하셨던 겁니까?”
“……그, 그게 말이죠.”
우리의 서슬 퍼런 기세에 라냐는 두려워하면서도 묘하게 기뻐하면서 이곳 마탑의 마법사들이 시킨 일들을 차근차근 세세하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제가 본 마법의 현상을 설명해달라고 했어요.”
“그 정도는 괜찮지?”
“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얘기해줄 수 있었죠. 하지만 현상을 설명해주자 곧바로 그때 발생한 마력량이 얼마나 되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뭐, 직접 보지 못했으니, 물어볼 수도 있나?”
“…그게 사실, 마법사끼리 그런 부분을 물어보는 건 조금 무례한 일이거든요.”
“호오. 처음부터 마법사 간의 예의를 어겼다?”
“그, 그게… 하, 하지만 악신의 칼날이 사용한 마법이잖아요? 호기심이 폭발해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래. 네가 그렇게 납득했다면 됐어. 그래서 그 뒤에는?”
“……그런데 그 뒤에는 영창이나 마력의 흐름까지 물어보더라고요. 영창은 애초에 그들이 말하지도 않았고, 마력의 흐름은 어느 정도는 알았지만… 그걸 알아내는 방법이나 해석하는 방식은 제 개인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말해 줄 수 없었어요.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져서는… 저한테 후배가 되어서 그런 식으로 선배들을 농락하냐는 등의 말을 하면서 강압하는 바람에… 결국 다 말해 줄 수밖에 없었어요. …훌쩍.”
“좋아. 그 새끼들 지금 어디있어?”
“갑시다. 시그 님.”
“아, 아니… 자, 잠깐만요! 우, 우와아아아앗!”
말을 하다가 서러워졌는지 울먹거리는 라냐를 보니 그 이상 들을 것도 없어졌다. 나와 시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라냐는 화들짝 놀라면서 우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나는 라냐의 작은 허리를 한팔로 감아서 내 어깨 위로 올렸다.
갑자기 어깨 목마를 타게 된 라냐는 귀까지 빨개져서는 마구 날뛰었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빨리 내려주세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보면 어때? 사이 좋음을 과시하는 게 뭐가 문제야? …아. 시르. 이건 좀 봐줘.”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도 나중에 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얼마든지요.”
자애로운 시르는 이 정도 장난은 가볍게 넘어가 주었다. 정말 자애롭다. 상냥해.
“그, 그런 게 아니라요! 제, 제가 부끄럽거든요!”
“괜찮아. 괜찮아. 금방 익숙해질 거야.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저는 부럽습니다. 모두의 앞에서 친분을 과시할 기회가 아닙니까?”
“이런 기회 필요 없거든요?! 제 나이가 몇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10살?”
“17살이잖아요! 17살! 일부러 그러는 거죠!”
“시그 님. 그거 너무 낮습니다. 13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아. 그렇지? 우리 동네 기준으로 생각했네. 라냐는 앞으로 13살이야.”
“왜 제 나이를 제멋대로 정하시는 건데요?! 두 분 다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하하하하하.”
“후후후후후.”
“웃지만 말고요! 왜 이렇게 호흡이 잘 맞아?!”
라냐는 부끄러움과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날뛰었지만, 내 어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 앙증맞은 주먹은 어디를 때리든 아프지도 않았고, 발길질도 본인 다리만 아플 뿐이었으니까. 거기다가 마법사답게 체력도 약해서 날뛰기 시작하고 고작 3분 만야 라냐는 완전히 지쳤다.
“허억. 허억. 허억. 진짜아아… 왜 그러냐고요오오오.”
“오. 이제 포기한 거야?”
“우씨…. 겁나 튼튼해서는…. 하긴… 그러니까, 악신의 칼날을 그렇게 때려잡을 수 있었겠죠.”
체력이 떨어진만큼 흥분도 떨어졌는지 고분고분해진 라냐는 뚱한 얼굴로 나를 내려보았다.
“정말. 시그 님은 대체 어떤 수련을 했기에 그렇게 강하신 거예요? 마법을 그렇게 간단하게 찢어버리다니….”
“내가 좀 많이 잘나긴 했지.”
“…그렇게 말해도 잘난 게 사실이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재수는 없지만.”
“훗. 질투를 받는 건 잘난 사람의 숙명이지. 참고로 라냐도 앞으로 많이 받게 될 거야. 그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면 신경이 못 버티니까, 지금부터 대범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해.”
“………시그 님처럼요?”
너도 잘났다는 말에 라냐는 뭔가 말하고 싶어서 간질거리는 얼굴이었지만, 이어진 내 말에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뭘 그리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뭐, 나는 그런 부분도 워낙 잘난 인간이니, 따라오기 힘들면 두세 단계 낮은 부분까지만 목표로 해.”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뻔뻔함은 조금 본받고 싶기는 하네요.”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라냐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내 금쪽같은 조언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 눈치다. 그래.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조언이야. 잘난 사람은 멘탈도 좋아야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시그 님의 당당함은 모든 사람이 본받아야 할 장점입니다.”
“그렇지? 이런 부분에선 굽히고 살 필요가 없어. 자신이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시르다운 말에 내가 신나서 떠들자, 라냐는 이 바보 커플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눈으로 우리를 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윽. …진짜로 하실 거예요?”
“당연하지. 얘네는 선을 넘었어.”
“정당한 응징입니다.”
불안해하는 라냐에게 우리는 당당하게 말했다. 조금도 거리낄 게 없는 행동이다. 내 마음에 한점의 흐림도 없음!
“그, 그래도 마탑을 적대하는 행동은….”
“먼저 적대한 건 저쪽이고, 나는 여기 마탑의 보복이 조금도 무섭지 않은 사람이거든. 꼬우면 악신의 사도를 세 마리나 잡은 내게 해코지를 해보든가.”
“그렇습니다. 시그 님은 이미 이 도시의 영웅이나 다름없는 분. 마법사들은 이미 어리석은 선택을 했습니다. 마땅히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우, 우와아아아아.”
우리의 말에 라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나는 그런 라냐를 어깨에서 내려서 시르의 품에 안기게 하고 곧바로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방의 문을 힘차게 걷어찼다.
쾅!
“으아아악!”
“뭐, 뭐야?!”
“습격?!”
갑자기 문이 힘차게 안으로 날아들자 거기에 얻어맞은 마법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고, 다른 마법사들도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봤다. 그 숫자는 일곱. 얻어맞고 날아간 한 놈을 포함한 여덟이 우리 라냐를 괴롭힌 놈들이다.
남녀노소가 고르게 섞인 그들을 한 번 둘러본 나는 활짝 웃어주었다.
“안녕. 여러분. 나는 예절주입기야!”
“뭐, 뭐?!”
“이 미친놈은 뭐야!”
“라울이!”
마법사들은 분개하면서 일부는 지팡이를 들었고 일부는 아예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 가장 행동이 빠르고 나이가 많은 마법사에게 달려들어서 목덜미를 붙잡았다.
파앙!
“커흑!”
접촉한 것만으로 노인이 준비하던 마법을 깨트린 나는 경악으로 입을 쩍벌린 마법사들에게 방긋 웃어졌다.
“지금부터 예절을 주입할 건데, 연공순으로 할게. 거기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
그 뒤에는 일방적인 전개였다.
때리고 부수고 던지고 휘두르고 돌리고 얼씨구 지화자 좋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절주입기를 자청한 만큼 내 교육은 아주 효과적이었고, 마탑의 마법사들은 아주 공손하게 라냐에게 자기들의 무례를 사과했다.
그걸 받은 라냐는 황당 반 경악 반의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지만, 그 입꼬리는 약간이지만 위로 솟아 있었다. 좋으면서 내숭은.
어때. 나한테 아주 좋은 거 배웠지?
무례한 놈들은 대가리에 도끼가 꽂히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니 대가리에 도끼를 꽂아주면 예의가 주입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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