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72화 (72/93)

〈 72화 〉 72화 악신의 칼날

* * *

선공은 놈이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리치 차이가 너무 현격하니까. 길이 10m 짜리 검기라니. 다시 봐도 제정신이 아니야.

저게 전부 강철로 만들어진 거였다면, 솔직히 나라고 해도 자신이 없었겠지만 검기로 만들어진 거라면 리치 차이만 조심하면 그만이다. 10m짜리 강철 검을 휘두르는 근력이라니. 이 세계에는 거인이 존재하니 실제로 가능할 법한 존재가 있다는 게 엽기적이지만….

그런 잡념을 뒤로하고 하늘을 가르며 내려오는 검기의 대검을 옆으로 훌쩍 몸을 날려서 피했다. 경비대원들과는 반대 방향이었는데, 이 뒤에 날아올 공격에 그들이 죽지 않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예상대로 놈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서 횡베기로 날렸다. 10m짜리 검기의 방향이 곧바로 휘는 광경은 압도적이었지만, 빈틈은 많았다. 몸을 바닥에 기듯이 숙여서 공격을 피한 나는 양팔의 힘도 더해서 땅을 박차 놈에게 쇄도했다.

“흥!”

놈은 되지도 않는 콧김을 내뿜더니 곧바로 검의 방향을 바꿨다. 실제로 10m짜리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곡도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곡도가 약간만 방향을 바꿔도 검기의 궤도는 크게 변했다.

어둠의 칼날이 공간을 난도질했다.

그 틈에서 나는 춤추듯이 움직이며 모든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놈에게 접근하는 속도가 대폭 줄어들었다. 처음 놈과 나의 거리는 7m. 하지만 아직도 거리는 5m 이내로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초조하지 않았다. 이게 어느 정도 연출된 장면인 것도 있지만, 어둠이 걷히고 완전히 드러난 놈의 얼굴에 떠오른 초조감이 아주 잘 보이는 것도 있었다.

놈은 전력을 다해 자신의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검기의 폭풍을 내가 여유롭게 피하자 손이 점차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역시 이만한 검기를 계속 내뿜는 건 꽤 무리인가 보다.

쯧쯧쯧. 그러게 이거 비효율적이라니까. 그야 대군 상대로군 이만한 게 없겠지만, 1대1에서 쓰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하물며 상대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라면..

한 발자국 놈에게 다가갔다. 다시 공격을 피하고. 다시 한 발자국. 다시 공격을 피하고 다시 한 발자국.

“……큭!”

이제 놈과 나의 거리는 고작 2.68m. 코앞이나 다름없다. 녀석의 초조감이 더해진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검을 휘두르는 팔의 움직임은 더욱 필사적으로 변한다. 그 결과, 틈은 더욱 벌어지고 단번에 놈에게 이어지는 길이 생겨났다.

바람처럼 길을 따른다. 벼락처럼 주먹을 내지른다.

진괘?? 뇌격?

태극팔괘도의 18번. 주력기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기술이 다시 한번 놈의 가슴을 때렸다. 태을천강 강화복을 발동시킨 후의 위력은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콰아아앙!

“크아아아악!”

포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색 기운이 유리창처럼 깨져나가고 비명이 터졌다. 놈의 몸은 끈이 끊어진 연처럼 형편없이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뼈가 부러지는 느낌은 없었다. 애초에 노린 것도 내부에 타격을 쌓는 거지 어딜 부러트리는 게 아니기도 했고.

막강한 출력을 뽐냈지만, 결국,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 약한 공격이라도 확실하게 명중시켜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법이다. 그게 아니면 명중률이 의미 없을 정도의 화력을 쏟아붓든가.

어느 쪽도 아닌 놈이 내게 쳐맞는 건 당연한 수순!

“크으윽!”

끝도 없이 날아갈 것 같던 녀석은 발바닥으로 땅을 긁으면서 몸을 멈춰 세웠다. 그래. 얻어맞는 타이밍에 맞춰서 몸을 뒤로 날리는 건 좋았지만, 생각보다 위력이 강했지? 나도 네가 그렇게 피할 것을 가정하고 날린 공격이야.

그래서 곧바로 추가타가 가능하지.

발바닥의 한점에 힘을 집중시킨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뼈와 근육과 관절을 용수철처럼 이용한다. 단번에 끌어올려서 모은 힘을 단번에 폭발시켰다.

하늘을 날았다.

2m 가까이 뛰어오른 채로 그대로 앞으로 번개처럼 쏘아진다. 발바닥에 모인 힘을 폭발시키는 순간 다리는 앞으로 뻗었다. 반대쪽 다리는 내뻗은 다리에 힘을 싣기 위하 구부러졌다.

그것은 그야말로 용의 모습.

드래고오오오오온! 키이이이이이익!!!

진괘?? 뇌룡?!

콰아아앙!

폭음이 터지고 일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내 일격에 이은 일격에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기운이 완전히 부서졌다. 그리고 놈의 몸은 형편없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칼을 놓치지 않는 근성만은 봐줄 만하다.

뭐, 그래봤자 사악한 악당의 근성이다. 썩어빠졌지.

그 증거로 데굴데굴 굴러간 놈은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설 시늉조차도 안 하는 걸 봐선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쯧쯧쯧. 여명의 사도에 준하는 전력이라고 했는데, 자주랑과 비교하면 차이가 심하네. 그놈이라면 저 녀석과 동급인 녀석 세 명과 싸워도 여유롭게 쳐죽일 수 있을 거다. 오히려 나보다 더 쉽게 잡을 것 같은데?

이렇게 보니 여명이 존나 쎄긴 쎄구나.

자주랑은 혼자서 타라스트의 모든 병력과 싸워도 이길 수 있었다. 청자경은 짜증나는 공간이동만으로도 엄청나게 위협적이다. 비행에 강력한 원거리 공격에 공간이동까지 가능한 홍마창. 본연의 전투력은 약하지만 강력한 몬스터를 강화하고 사역할 수 있는 적마희.

거기다가 막강한 위장 능력을 가진 천의 가면.

…거기에 숨겨져 있는 전력들이 없을 리가 없다. 아이르세르가 알려준 사도들은 천의 가면을 제외하면 직접 만나본 녀석들만이지만, 활동하지 않고 숨겨둔 사도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이거, 암만 봐도 악신의 추종자보다 여명이 더 위험하지? 아이르세르가 가지고 있던 정보량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고. 으음. 천의 가면을 제외하면 전부 한바탕 붙어본 것들이라서 내가 너무 얕잡아 보고 있던 걸까?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겠어.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하면서 멀찍이서 이쪽을 보고 있는 경비대원들을 봤다. 그들은 조금 전에 벌어진 전투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얼빠진 그들을 보니 충족감이 차올랐다. 역시 싸움은 관객이 있어야 더 흥이 오른다니까.

내가 지구에서 이벤트로 격투기 시합을 하였을 때 받았던 대전료가 1억 달러였지. 흥행도 그만큼 됐었고. 훗. 내 싸움은 그 정도로 비싸다고. 공짜로 보는 사람들은 땡잡은 거야!

…뭐, 스포츠와 실전은 다르지만.

후우. 지구 생각을 했더니 조금 우울해지는군. 이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선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으로 경비대원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주면서 외쳤다.

“이야! 이런 새벽에 고생들 하십니다!”

“…다, 당신은 누구시오!”

경비대원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외침에 나는 방긋 웃으며 더욱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네에! 저는 옥석 모험가 시그라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악신의 추종자들의 아지트를 발견해서 지금 박살 낸 참이죠! 저기 쓰러져 있는 놈은 그 간부인 악신의 칼날이고요! 거참! 이런 새벽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아, 악신의 추종자?! 악신의 칼날이라고!?”

“오, 옥석 등급 모험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팔찌를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만….”

“모, 모험가라는 게 원래 저렇게 강한 겁니까? 옥석은 밑에서 세 번째잖아요? 그런데 조금 전 그건….”

내 말에 혼란에 빠진 경비대원들이 떠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피식 웃고 쓰러진 악신의 칼날에게 다가갔다. 일단, 팔다리를 전부 분지르고 힘줄까지 끊어 놓으면 아무리 성법을 써도 쉽게 회복할 수 없겠지. 아니지. 아예 잘라버려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위기감지가 경종을 울렸다.

쿠오오오오오오!!!

“모든 엎드려!”

“네, 네?!”

“우, 우와아아아!”

내 외침에 얼빠진 반응을 보이던 경비대원들은 쓰러져 있던 악신의 칼날에게서 검은색 기운이 기둥처럼 솟아오르자 기겁하며 내 말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나또한 녀석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놈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기둥처럼 솟아오른 검은색 기둥 속에서 놈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2m 가까이 떠오른 육체가 앞으로 회전하더니 정자세로 섰다.

정면을 보인 놈의 얼굴은 지나치게 무표정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무기질을 보는 것 같은 얼굴! 붉게 빛나던 눈동자와 흰자위까지 검게 물든 눈에선 검은색 번개가 양옆으로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검은색 기둥이 점차 축소되더니, 이내 놈의 몸을 중심으로 한 구체로 변했다. 그리고 한순간 팽창하더니, 그대로 엄청난 속도로 수축해서 놈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굉장히 화려한 연출을 동반한 각성!

“별 걸 다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세를 취했다. 설마, 2페이즈가 나올 줄은 몰랐지만, 느껴지는 기운을 봐선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다. 더군다나 검게 물든 놈의 눈에선 이성의 빛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놈의 행동도 예상대로였다.

“쿠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인간 같지 않은 괴성을 내뱉은 놈은 제자리에서 마구 검을 휘둘렀다. 기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공격이었지만, 거기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검은색 검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조금 전보다 빠르고 굵고 수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다. 다만, 위력이 늘어난 결과 내가 피한 검기는 뒤에 있던 창고는 물론이고 그 너머의 건물들까지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런, 조금 전에 사로잡은 놈들은 이미 다 죽었겠는데? 거기까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지만, 그들의 최후는 짐작이 갔다. 여기서 일어난 일들이야 경비대원들이 증언하면 된다지만, 이 도시에 잠입한 악신의 추종자들을 밝혀내기는 요원해지겠어.

내가 이런 생각을 여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놈의 공격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다만, 나도 놈에게 파고들 수가 없었다. 워낙 촘촘해서 일정 거리 이상 근접하면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악신과 교신이라도 하고 있는지 놈은 지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검기만 날리는 게 아니라 마법처럼 보이는 검은색 광선이나, 내 다리를 붙잡기 위한 촉수 같은 것도 마구 쏘아내고 있었다.

그 모든 공격을 피하고 걷어차면서 나는 결국 한가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좀 더 안전한 상황에서 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네. 가끔씩은 이런 모험을 해보는 것도 좋지!

나는 신나게 웃으면서 날아오는 검기의 옆면을 손날로 후려쳤다.

쾅!

칼날의 옆면을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튕겨 나간 검기가 바닥에 기다란 상흔을 남기며 파고들었다. 그 광경에 이성이 없어 보였던 놈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오른 것 같았다.

호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잖아?

영혼육백의 완성도 때문에 마력과 기에 큰 저항력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런 식으로 간섭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실험할 시간이 없었을 뿐인데… 실전에서 증명했으니 앞으론 걱정할 게 없겠군.

나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캬아. 이제 너 어떡하냐. 주특기가 완전히 막혔는데?”

“…………!!!”

놈은 대답대신 더욱 많고 두꺼운 검기다발로 대답했다.

거참. 이런 무지성 공격은 이제 안 통한다니까! 뇌까지 시커멓게 물든 거냐!

손날을 휘두른다. 튕겨 나간 검기가 바닥에 박힌다.

주먹을 휘두른다. 튕겨 나간 검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장저를 내지른다. 튕겨 나간 검기가 다른 검기와 부딪혀 소멸한다.

손을 뻗어서 검기를 붙잡고 휘두른다. 다른 검기 세 개를 길동무로 사라졌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당!

번개처럼 움직이는 내 손에 놈의 검기 다발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튕겨 나가고 서로 부딪쳐서 소멸한다.

동시에 내 몸은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쉴새 없이 손을 움직이면서 검기의 폭풍을 뚫고 나갔다.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

“크오오오오오!!!”

그럴 때마다 놈은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더욱 힘을 쏟아냈다. 검은색 광선이 쏘아지고, 검은색 구체가 날아들었다. 검은색 창처럼 변한 그림자가 하반신을 노리고 하늘에선 검은색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놈이 뿜어내는 검기는 이젠 숫제 폭포처럼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오로지 손으로 모조리 쳐내면서 전진했다. 내 손은 두 개이기에 그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놈의 검은색 기운에 간섭할 수 있었고, 내 의지로 간섭의 정도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놈의 공격을 꺾어서 활로를 만들고, 놈의 공격을 튕겨내서 다른 공격을 막고, 놈의 공격을 손으로 잡고 휘둘러서 공격들을 쳐낼 수 있었다.

자잘한 공격은 내 몸의 저항력을 뚫지 못하고, 약간의 고통만 선사할 뿐이었다. 이 정도 고통은 수련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공격으론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놈도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는 이미 나와 놈의 거리가 3m까지 좁혀진 뒤였다.

순간, 놈의 공격이 모두 멈췄다. 달빛과 별빛 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던 검은색의 폭풍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든 기운이 놈의 칼에 집중되었다.

파캉!

기존의 칼날이 부서지고, 그 자리를 시커먼 검기가 자리 잡는다. 아니, 그건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그 농도도 집중된 힘도 단순히 검기를 압축시켰다고 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저것과 비슷한 기운을 이미 겪어본 적이 있다.

자주랑의 멸강옥.

강기.

검강.

“크아아아아아아!!!!”

검은색 검강으로 만들어진 검을 들고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나는 놈이 어째서 악신의 칼날이라 불리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저 기술이야 말로 악신의 칼날이다!

놈은 짧은 거리를 한걸음에 좁히고 필살의 일격을 내 목에 휘둘렀다.

나는 지금 틀림없이 웃고 있겠지.

이 세계에서 강기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수많은 무인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절정의 기술! 달인의 상징!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왕국과 제국에서도 만금을 주고서라도 고용할 보증 수표!

그것을 나는 보름도 안 되어서 두 번이나 접하게 되었다.

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나?

이세계의 이능을 상징하는 기술을. 그 절정의 기술을.

또 다시 깨부술 기회가 왔는데!

파지지지직!!!!

태을천강 강화복의 기능이 최대치로 작동한다. 온몸에 전류가 내달리고 신체가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정돈됐다.

악신의 칼날.

악신에게 총애받는 사도나 다름 없는 존재.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네가 악신의 사도라면.

나는 내 안에 일곱 명의 신을 품고 있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신들을.

그중 하나가, 지금 네놈을 박살낸다.

칠신기七??

뇌신雪?

내 몸에 담은 번개의 신과 악신의 칼날이 충돌한다.

모든 소리가 일거에 사라졌다.

퍼어어엉!

뒤늦게 커다란 물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주변을 뒤덮었던 검은색 기운이 일거에 흩어졌다.

나와 놈은 가까이 붙어 있었다.

내 왼쪽 주먹을 놈의 명치에 꽂아 놓은 상태로.

“커…헉!”

놈이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두 눈을 물들었던 검은색 기운이 점차 사라지고 본래의 붉은색 눈이 돌아온다. 그 눈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봤다는 듯이 크게 떠져 있었다.

“어…떻…게…?”

“사도 따위가 진짜 신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말도… 안… 되…….”

그 말만 남기고 놈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이다.

나는 천천히 명치에 꽂은 주먹을 뺐다. 의식을 잃은 놈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뇌신을 사용한 오른쪽 주먹을 봤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팔이 부러지지도 않았다. 지난번. 자주랑의 멸강옥과 부딪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 그 이유를 나는 알 수 있었다.

…자주랑. 너 이새끼 존나 쌘 놈이었구나.

강기의 총량 자체는 악신의 칼날과 멸강옥은 비슷했다. 하지만, 그 압축도… 밀도에선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체감상 무려 세 배! 그래서 오른손의 뇌신으로 악신의 칼날을 부수고도 아무런 피해가 없어서 왼손으로 놈이 명치를 갈길 수 있었다. 이미 악신의 칼날이 깨진 시점에서 놈의 패배는 정해져 있었지만, 또다시 발악이나 도망을 치면 곤란하니까.

그래. 그러니 지금 당장 팔다리를 부수자.

콰직. 콰직. 콰직. 콰직.

망설임 없이 놈의 사지의 뼈와 관절을 부수고 근육도 적당히 뒤틀어 놓았다. 추가로 입에 자살용 알약 같은 게 없는지 확인하고,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놈의 옷을 찢어서 재갈로 만들어서 채웠다. 이빨을 부수는 건 참았다. 심문해야지.

그렇게 순식간에 악신의 칼날을 병신으로 만들고 그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어서 경비대원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일부는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부여잡고 벌벌 떨고 있었고 일부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하나 같이 조금 전에 일어난 격전을 보고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음. 조금 화려하긴 했지. 자주랑보다 훨씬 못한 놈이었지만, 싸움 방식이 방식이다 보니 굉장히 화려하게 싸웠다. 아. 화려하다고 하니, 놈이 날린 검기에 얼마나 죽었는지 모르겠네. 한두 명은 살아줬으면 좋겠는데.

슬쩍 박살 난 창고 쪽을 보니, 놀랍게도 세 명이나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그것도 내가 붙잡은 고위 공직자와 감시관, 그리고 가장 실력이 있었던 호위가 살아있었다.

와. 운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다른 놈들은 다진 고기 조각이 됐는데, 가장 필요했던 녀석들이 멀쩡히 살아남다니!

특히 처음의 일격에 반갈죽 되었던 류뭐시기는 이제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다. 대체 그 녀석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렇게 처참하게 죽었어야 했던 걸까! 조금이지만 동정심이 들었다. 안녕. 류뭐시기. 지옥에서도 굳세게 살아!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멍하니 나를 올려보는 경비대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악신의 칼날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면서 방긋 웃어주었다.

“자. 악신의 추종자를 잡았습니다. 어서 공직자들과 여기 영주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시길. 한시가 급한 일입니다.”

“으,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어째서인지 경비대장은 비명을 지르면서 버둥거렸다. 그게 전염되었는지 다른 경비대원들도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거나 발버둥 쳤다.

…왜 저래?

그들의 생쑈를 보면서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사건 정리를 하는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아. 어쨌든 이걸로 내일 출발하는 건 무리네.

그런데 이거 시르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시르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좋겠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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