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70화 (70/93)

〈 70화 〉 70화 악신의 칼날

* * *

이 도시에 숨겨져 있는 악신의 추종자들의 아지트는 어떤 상단의 창고로 위장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상단도 악신의 추종자들과 연관된 놈들이다. 그것들도 박살을 내줘야겠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니다.

이보쇼. 한스 상단주. 당신이 떡상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마련해주겠어.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댁의 선택이라고?

어쨌든 나는 미리 파악해둔 길과 길드에서 본 라리레스트의 지도로 아이르세르가 알려준 장소를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기에 바로 들이닥치지는 않고 잠시 주변을 살폈다.

창고의 입구는 단 하나였다. 그 거대한 문을 문지기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창고 문지기치고는 제법 좋은 장비를 걸치고 있는 중년 남성들. 배는 툭 튀어나오고 자세도 엉망이어서 조금도 강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놈들에게는 숨길 수 없는 추잡한 기운이 느껴졌다.

익숙한 기운이다. 흑마법사와 야천랑을 때려죽이고 발견한 악신의 추종자에게서 느껴지던 기운과 똑같다. 즉, 최소한 저 놈들은 악신의 엠블럼을 가지고 있을 놈들이라는 소리다.

이걸로 확정이군. 악신의 추종자들을 문지기로 쓰는 창고? 이게 아지트가 아니면 뭐겠나. 우연히 뽑은 문지기가 둘 다 악신의 추종자일 가능성도 없다.

자아. 그럼 쳐들어가 볼까.

안에서 대체 얼마나 추잡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아! 봐봐. 내 주먹도 안쪽을 빨리 보고 싶다고 안달이 났잖아? 그걸 너희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어?”

나는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얼빠진 소리를 낸 문지기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어줬다. 콰직! 시원한 소리와 함께 이빨이 몽땅 박살이 나고 놈이 몸이 뒤로 젖혀졌다. 그 기세를 줄이지 않고 더욱 앞으로 달려나가 이제야 이쪽을 돌아보는 다른 문지기의 턱을 후려쳤다.

퍼억! 깔끔하게 들어간 일격이 놈의 턱뼈를 부수고 정신까지 앗아갔다. 평생 죽만 먹고 살아라. 추가로 팔다리도 못 쓰게 만들어야겠군.

콰직콰직. 세심하게 양팔과 양다리의 관절을 조져 놓은 뒤에 놈들을 한구석에 치웠다. 소음을 최소화해서인지, 안쪽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나오려는 기색은 없었다.

혹시 아무도 없는 걸까? 그렇다면 조금 작전을 바꿔야하기에 조심스럽게 문에 다가가 귀를 댔다.

안쪽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내용까지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계획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는 확실하게 들렸다.

응. 확정.

나는 주저하지 않고 거대한 문을 발로 뻥 깠다.

콰앙!

단번에 문이 박살 나면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뚫렸다.

“모두 엎드려! 움직이면 팬다!”

모순적인 말을 외치면서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내부의 풍경을 빠르게 파악했다.

우선, 창고 안에는 열세 명이 있었다.

그중 여섯은 정면의 테이블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여섯은 그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쌓아놓은 상자 위에서 등을 보이고 앉아있었다.

저 새끼가 가장 강하군. 단순히 느껴지는 기운 만이 아니라, 본래 이런 자리에서 저런 식으로 혼자 앉아있는 새끼가 제일 강한 법이다. 소년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모습이다.

제길! 저런 식의 폼잡기는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거였는데! 미친 사이비 새끼가 선점하다니!

“뭐, 뭐냐?!”

“누구야?!”

회의를 하던 놈들은 경악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호위들도 곧바로 몸을 돌려서 나를 봤다. 그중 가장 가까이 있던 녀석은 몸을 돌리면서 검을 뽑았는데 동작이 매끄러운 게 제법 실력이 있었다. 그리고 13명 중에 9명에게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의자에 앉은 두 명과 호위 두 명. 악신의 추종자는 아니지만, 틀림없이 이놈들과 협력하는 것들이다. 전부 패버려도 상관없는 것들.

나는 검을 뽑은 호위에게 곧바로 달려들었다. 놈은 발검술로 나를 베려고 했지만, 허리를 숙여서 가볍게 피하고 갈비뼈에 주먹을 꽂았다. 기공을 익힌 것 같지만, 신체를 강하게 보호할 수준은 못 된다. 굳이 태극팔궤도를 쓸 것도 없군.

뻐억! 콰직!

“컥!”

단번에 파고든 내 주먹이 갈비뼈를 시원하게 부쉈다. 호위는 피를 토하면서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갔고, 나는 곧바로 다음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지금 처리한 녀석만 한 센스가 없는지, 이제야 검을 뽑고 있었다. 볼 것도 없어서 턱을 올려 찼다.

빠악! 부웅!

턱을 부수고 공중으로 날려버린 뒤에 그 힘을 이용해서 백덜블링을 해서 다른 호위와 거리를 좁혔다. 순식간에 두 명을 쓰러트리고 뒤로 회전하며 날아오는 것을 본 호위는 멍하니 내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놈은 기본도 안 됐네!

회전하는 속도를 약간 줄여서 내려찍기로 정수리를 찍었다.

퍼억! 쿵!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놈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이걸로 호위의 절반을 쓰러트렸다. 남은 건 셋. 그리고 이쯤 되니 놈들도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전부 무기를 꺼내들고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야아아앗!”

놈은 쓸데없이 큰 기합을 내지르며 내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힘만 많이 들어간 어설픈 공격. 이딴 실력으로 호위를 하고 있었다니, 인재가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살짝 몸을 숙여서 피하고 동시에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서 면상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이번에도 이빨이 몽땅 부서지면서 주먹에 피가 튀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놈의 몸이 뒤로 한 바퀴 회전했다.

쯧. 신체 중심조차 못 잡냐. 이대로 두면 뒤통수부터 떨어져서 죽겠군.

가볍게 주먹으로 옆구리를 쳐서 죽는 것은 피하게 해준 뒤에 달리는 속도를 이용한 필사의 찌르기를 응시했다. 이를 악물고 검을 내밀며 달려오는 호위의 각오는 훌륭했지만, 기술이 형편없다.

검날이 내게 닿기 전에 발로 손을 올려치고 그대로 진각을 밟으면서 팔꿈치로 명치를 후려쳤다. 뒤로 붕 날아간 녀석은 마지막 남은 호위의 진로를 방해했다.

“어엇!”

얼빠진 소리를 내며 동료를 찌르는 것을 피한 호위는 이어서 날아온 내 앞차기에 면상을 걷어차이고 코피를 뿜으면서 뒤로 날아갔다.

그걸로 모든 호위가 쓰러졌다.

쯧. 가장 처음 상대했던 녀석이 가장 실력자였잖아. 거듭 말하는 거지만 이런 실력을 호위로 두다니…. 이놈들에 대한 기대감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래서야. 오밤중에 온 보람이 없잖아. 어휴.

“………무, 무슨….”

“너, 너너너너! 누, 누구냐! 웬 놈이야아아!!!”

“으, 으으으으!”

“누, 누가 보냈지?!”

“내, 내 호위가…!”

“으, 아아아아.”

테이블에 모여있던 인간들은 순식간에 호위들이 쓰러지자 단체로 페닉에 빠졌다. 딱 봐도 잡어들이다. 느껴지는 기운도 별 볼 일 없고. 말 그대로 일반인들이다. 그저 품에 가지고 있는 엠블럼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질 뿐인 것들.

뭐, 호위놈들도 대체로 그랬지. 그러고 보니 가장 실력이 좋았던 놈은 악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었지. 자신의 호위가 당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도 악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일단 입을 다물게 할 것들도 아닌 것들은 구분 되었군.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악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하나 같이 중년 이상의 남자들. 아무런 무술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중년남들 중에 내 손을 피할 수 있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순식간에 네 명을 기절시키자, 남은 두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상황을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4초.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는데는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

그래. 이제야 상자 위에서 몸을 돌린 저 폼만 잡는 녀석처럼 말이야.

“어라. 벌써 끝이야? 너무 빠르잖아.”

녀석은 정말 의외라는 듯이 그렇게 말하곤 히죽 웃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다. 단련된 육체를 드러내는 딱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고 허리춤에는 큼지막한 도를 차고 있는… 만화에서 초반에 등장하는 강한 적의 전형인 모습이었다.

놈은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역겨운 얼굴로 미소지으면서 마찬가지로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푸른색 머리카락을 비비 꼬았다. 토하고 싶어졌다.

“후훗.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녀석이 왔잖아? 이거, 고마워해야겠는 걸?”

아니, 이 새끼는 왜 말하는 게 저따구지? 존나 쎄보이잖아! 시발놈아! 그거 내가 언젠가는 써먹고 싶은 말이었다고!

“훗!”

엿같은 웃음소리와 함께 놈은 상자 위에서 뛰어내렸다. 족히 3m는 되는 높이였지만,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곤 곧바로 도를 꺼내 들었다. 제법 재질이 좋은 도다.

놈은 자세를 잡았다. 일단, 기본은 제대로 되어 있는 자세였다. 하지만 놈은 무슨 절세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존나 무섭네.

“어디의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부디 나를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네. 아. 내 이름은 류케스야. 네 이름은?”

나는 대답 대신 달려들었다. 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자세를 바꿨다. 중단. 하지만 근육의 형태, 관절의 방향, 칼날의 각도로 노리는 것이 내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키얏!”

거리가 가까워지자 기괴한 기합성과 함께 놈의 도가 내 다리로 날아들었다. 너무나도 예상대로의 공격이었기 때문에 나는 타이밍을 맞춰서 점프해서 공격을 피하면서 놈의 턱을 걷어찼다.

뻐억!

“………?!?!”

고개가 뒤로 젖히면서 놈의 눈에는 온갖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분명 베어졌어야 하는 다리가 턱을 후려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 망상병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그리고 망성병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충격요법이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놈의 양 무릎을 발끝으로 걷어찼다. 무릎 관절이 파열된 놈의 몸이 휘청거릴 때 빠른 연타로 놈의 가슴을 연달아 후려쳤다. 얼굴을 칠까 했지만, 개기름 때문에 그만뒀다. 만약 이런 효과를 노렸다면, 참으로 참신한 방어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커, 커흑!”

이제 폼도 잡을 수 없게 된 놈은 망연자실한 눈으로 피를 토하면서 나를 봤다. 그런 놈을 나는 자비롭게 배를 걷어차서 공중으로 띄운 뒤에 회전 돌려차기로 옆구리를 갈겨서 날려버렸다. 놈은 상자 무더기에 부딪쳐서, 그대로 무너진 상자더미에 깔렸다.

뭐, 죽지는 않았겠지. 기공도 익혔고. 꽤 튼튼한 놈이었으니까.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고… 놈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킹받게 하지 않았다면 좀 더 싸워볼 만한 실력이기는 했다.

아니, 씨발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저딴 놈에게 하수 취급을 받다니!

“좆밥새끼가. 어디서 깝치고 지랄이야. 뒤질라고.”

뭐, 이젠 깝치지 못하겠지. 허세충에겐 참교육이 필수다.

자아, 그럼 이제.

“우리 조금 진중한 얘기를 해볼까요?”

“…무, 무슨…!”

“류, 류케스를 어린애처럼!”

당황해서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어깨동무했다. 두 사람은 내가 다가갈수록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다가 내가 어깨동무를 하자 새하얗게 변했다. 표정 개그 좀 할 줄 아는군.

나는 그들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면서 말했다.

“당신들 이 도시의 중역들이지? 일단, 상인은 아닌 것 같고. 귀족도 당연히 아니야. 그럼 시청의 고위 공직자? 분명, 이 도시는 알레르스크 자작의 소유였지?”

“………으, 으음.”

“………으, 으윽.”

두 사람은 신음성을 흘릴 뿐이지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명의 고위 공직자에. 한 명은 알레르스크 자작이라는 말에 반응했으니까.

이걸로는 자작도 악신의 추종자와 연관이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작이 이 도시에 파견한 감시관이 악신의 추종자와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래. 댁은 고위 공직자고. 댁은 알레르스크 자작이 파견한 감시관이군? 그런 위치에 있는 인간들이 이 오밤중에 악신의 추종자 새끼들이랑 회담을 가져? 잘하는 짓들이다.”

“……다, 당신은 누구요?”

내 말에 감시관은 아예 죽을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만, 고위 공직자는 되려 내 이름을 물어왔다. 제법 배짱이 있네. 그래봐야 쓰레기의 배짱이지만.

“보면 몰라?”

“모, 모르오.”

“그럼 계속 모르고 있어.”

“………….”

멍하니 입을 벌린 그를 보고 피식 웃은 나는 두 놈의 목덜미를 쳐서 단번에 기절시켰다. 고위 공직자와 감시관이 연관되었지만, 이 도시 자체가 악신의 추종자들과 협력한다고 보긴 힘들다. 그러기엔 양지에서 놈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창고도 아이르세르의 정보가 없었다면, 나라도 찾기 힘들었을 거다. 워낙 외진 곳이고 겉으로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창고니까.

마침 이놈들이 회담하고 있던 것? 그건 그냥 내 개쩌는 운빨이다. 나도 설마, 이 정도로 거물들이 하필이면 오늘 회담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운이 좋군.

그래도 이만한 놈들이 엮였으니,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어. 일단, 내 신분과 타라스트에서 있었던 일들을 밝히고 악신의 추종자들을 발원본색해서 쓸어버리기까지 하려면 며칠은 걸릴 거다.

잘못하면 타라스트로 돌아가자마자 토론토라 영지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는 것도 찜찜하니….

흠. 시르와 상담해야겠군. 이번에는 혼날 각오를 하고 어쩔 수 없이 혼자 움직였지만, 본래는 이러면 안 되니까. 되도록 조용히 끝내서 두 사람이 크게 엮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런 거물들을 잡았으니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지.

그럼 이것들을 묶어 놓고 옮길 수 있는 마차를 찾아볼까. 일단, 상단의 창고로 쓰이는 곳이니까. 최소한 수레 정도는 있겠지.

일단, 그렇게 결론 내리고 악신의 추종자들과 그에 협력하는 자들을 따로 분류했다. 그리고 적당한 밧줄을 찾아서 놈들을 한꺼번에 묶었다. 허세충은 특별 취급 해줘서 혼자만 따로 묶어줬다. 그리고 수레나 마차를 찾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 나를 향해 검은빛 검기가 대지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씨발!!!!

다급히 몸을 옆으로 날려서 공격을 피하자, 거대한 검은색 검기는 단번에 창고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검기가 지나간 길에 있던 사람과 물류도 같이.

…하필이면 허세충이 반으로 잘렸군. 명복을 빈다. 류뭐시기.

짧게 명복을 빌어주고 자세를 잡았다. 두 번째 검기는 날아오지 않았다. 기습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거냐. …솔직히 조금 간담이 서늘했어. 설마, 이런식의 원거리 공격이 올줄은 생각도 못했거든.

마법이었다면 멀리서 날아왔어도 눈치챌 수 있었을 거다. 마력을 다룰 수는 없어도 느끼는 감각만은 예민하니까. 하지만 기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느낄 수는 있지만, 마력에 비하면 둔하다.

더군다나 지금 날아온 일격은 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기척을 최대한 억제한 것이었다. 즉, 상당한 실력자… 달인이라 불릴 실력자의 공격이라는 소리!

…여명의 사도?

자주랑과 동급의 실력자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 새끼가 주먹을 써서 그렇지, 검을 들었다면 건물 하나는 능히 갈라버릴 수 있는 새끼다. 뭐, 주먹으로 천공탑 파괴에 집중했다면 충분히 파괴할 수도 있었을 테고 말이지.

강적이다.

나는 눈을 반개해서 검기가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곳에서,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달빛과 별빛에 빛나는 곡도를 천천히 흔들면서, 밤의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불길한 검은색 기운을 온몸에서 뿜어내면서. 뒤집어쓴 후드 사이에서 보이는 붉은색 안광에서 소름 끼치는 살기를 빛내면서.

놈은 나에게 다가왔다.

저놈이 누구인지 알겠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놈이지만, 정체는 알겠다.

아이르세르가 알려줬다.

악신의 추종자들이 박멸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성기사들을 무더기로 썰어버린 살육머신의 이야기를.

악신의 추종자들이 가진 진정한 전력을.

악신의 칼날.

씹새끼 중에서도 독보적인 씹새끼가 내 앞에 나타났다.

…싯팔. 칼 놓고 왔는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