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69화 우당탕탕 모험가 생활
* * *
“와. 엄청 좋은 곳이네요.”
라냐는 오늘 밤 지낼 여관을 보고 감탄했다.
한 시간 만에 결정한 여관은 타르스트에서 애용하는 여관보다 세 배는 크고 열 배는 화려한 곳이었다. 하루 숙박비는 무려 3,000링으로 이십 배나 되었다.
그야말로 부자들이나 이용할 고급 여관이다.
라냐는 이런 곳은 처음 와보는지 연신 감탄하고 있었고 시르도 익숙하진 않은지 조금 위축되어 있었다. 물론, 지구에서 이것보다 더한 곳도 경험해 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여기보다 더 비싼 곳도 있었는데. 거기는 모험가 신분으로는 들어가기 힘들 것 같더라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귀족들이 많았고. 우리 같은 사람들 선에선 여기가 제일 좋은 곳이야.”
“1박 비용이 3,000링이라면서요? 한 달이면 9만…. 여기서 사는 사람들도 있을 까요?”
“거의 없을걸. 애초에 여관에서 그 정도 돈을 쓰면서 살 거면 주택을 구매하는 편이 나을 테고.”
“그렇죠? 모험가들은 여관을 집처럼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보통은 비싸 봐야 100링 정도의 여관을 쓰겠지. 참고로 우리가 쓰는 곳은 150링. 아. 그러고 보니, 라냐. 너 타라스트로 돌아간 뒤에 어디서 묶을 거냐? 마탑에서 출퇴근?”
“아뇨. 되도록 두 분이 묶고 있는 곳에 같이 있고 싶네요. …방은 따로 쓰더라도 말이죠.”
“그거야 당연하지. 뭐, 같이 쓰고 싶다면 안 될 것도 없는데?”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시그 님. 과한 농담이십니다.”
“…아, 알았어. 미안. 내 농담이 심했어.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에 여관에 들어갔다. 종업원은 옥색 팔찌와 시르의 외모를 보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제법 눈썰미가 있는 놈이군.
우리들의 신분이나 이런 걸 묻지 않고 곧바로 적당한 3인실로 안내한 직원은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원위치로 돌아갔다.
3인실은 넓고 쾌적하고 적당히 화려했다. 그 이상의 표현을 쓸 필요는 없는… 딱, 1박 3,000링에 적당한 곳이었다. 라냐와 시르는 감탄했지만, 지구의 호텔을 떠올린 나는 돈값은 한다는 생각만 했다.
짐을 정리하고 방을 조금 구경한 뒤에 우리는 곧바로 여관을 나서서 길드로 향했다.
라리레스트의 모험가 길드는 도시 중앙에서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적당히 군것질도 하고 구경도 하고 그랬다.
“시그 님! 시그 님! 저것 좀 보세요! 저게 대체 뭘까요?”
“나도 몰라. 내가 동방인인 거 잊었냐?”
“아. 맞다. 그랬지. 그런데 솔직히 시그 님은 동방인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동방인을 보면 얼마나 봤다고?”
“마탑에 동방인 분이 몇 분 계시거든요. 그분들은 언행부터가 우리들과는 다른 느낌이 강하신데, 시그 님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으니까요.”
“내가 적응력이 탁월하긴 하지. 그렇지? 시르.”
“시그 님이라면 어느 곳이든 적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강하시니까요.”
타라스트 토박이인 라냐는 사소한 차이점에도 놀라고 흥미로워했다. 이 도시는 타라스트에서 제법 북쪽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물산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거기다가 북부와 중부를 잇는 교역의 요충지 중 하나이기까지 해서 타라스트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다양한 것은 물산만이 아니었다.
타라스트에서 이종족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는데, 이 도시는 거리에서 이종족을 발견하기 매우 쉬웠다. 이세계에서 처음으로 제대로된 판타지 도시에 왔다는 실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그래. 타라스트는 인간만 지나치게 많았어.
이 도시가 이 정도의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건 지리학적 위치도 있지만, 교통이 편리한 것도 있을 거다. 타라스트와 이 도시의 거리는 직선으로 60km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110km로 두 배에 가깝다. 그래도 이것도 짧은 편이다.
지구에서도 직선으로만 30km를 이동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미국처럼 평야가 많은 지역이 아닌 이상에야 가는 중에 산도 있고 돌아가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지역도 있다. 그건 이세계도 마찬가지인데, 라리레스트는 동서남북으로 길이 편하게 뚫려 있었다.
놈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겠지.
잠시 뒤에, 길드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접수대로 향했다. 피로스와 셰라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다른 의뢰를 받고 떠난 건지, 숙소로 돌아간 건지 모르겠지만.
거리에 이종족이 많았던 것처럼 길드에서도 이종족이 상당히 많았다. 비율로 따지면 10% 정도가 이종족이었다. 다종다양한 이종족을 신기하게 여기는 건 나만이 아니어서, 라냐는 그들을 힐끔힐끔 보면서도 긴장해서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즐거워하면서 나는 가장 한가한 접수원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모험가 님.”
“안녕하세요. 타라스트에서 모험가 등록을 한 옥석 모험가. 시그입니다.”
“타라스트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팔찌를 보여주시겠습니까?”
나는 접수원에게 팔찌를 보여줬고 접수원은 작은 막대기를 팔찌에 대었다. 그러자 잠시 뒤, 팔찌와 막대기에 특수한 문장이 떠올랐다.
모험가의 등급을 나타내는 팔찌는 단순한 팔찌가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 자신이 정식등록된 모험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기도 했다. 처음 착용한 사람을 자동으로 등록하기 때문에 만약 다른 사람이 착용했다면 이렇게 확인을 할 때 문장이 뜨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마도구였지. 그럼 나한테 영향을 받아서 망가질 수도 있겠는데? 지금은 망가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영향이 갈지도 모르겠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겠어.
“확인했습니다. 옥석 모험가 시그님. 저희 라리레스트 지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러면 여기 의뢰 완료 보고입니다.”
“알겠습니다. …한스 상단의 호위 의뢰군요. 피로스 님과 세랴 님과 함께 수행하신 의뢰 맞으시죠?”
“네.”
“한스 상단주 님의 인장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두 분과 마찬가지로 한스 상단주 님이 주신 추가 보상금은 합당하다고 이미 판단이 내려졌으니, 추가로 보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도 되나요?”
“네. 여기, 의뢰비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의로비를 받고 곧바로 시르와 라냐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에게 다른 모험가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새끼들이. 사람 보는 눈은 있어서는.
“저기 봐봐. 처음 보는 여자인데?”
“그러게. 누구지?”
“옥색? 옥색 중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사람이 아닌 거 아니야? 저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봤어….”
“요정 같은데? 엘프?”
“엘프가 아니라 알브나 님프겠지. 엘프는 저렇게 안 생겼어.”
“그렇네. 엘프치고는 지나치게 가늘어.”
“예쁘다. 말 걸어볼까?”
“아서라. 같이 온 남자 있더라.”
다행히 주제도 모르고 가까이 오는 사람은 없었다. 엔토루 같은 녀석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조금 귀찮아졌겠군.
“자. 여기. 의뢰금. 지금 나눌까?”
“아닙니다. 여관에 돌아간 뒤에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네, 네. 여, 여관에 가서 하죠.”
시르는 자신을 향한 말들을 들었을 텐데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반면에 라냐는 시선이 쏠리자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다. 이런 성향을 앞으로 모험가를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노엘도 그럴 심산으로 라냐를 추천했겠지.
길드를 나설 때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시르만이 아니라 내 머리 색과 복장과 키와 덩치를 보고 놀라는 반응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여기 모험가들의 의식 수준은 굉장히 높다. 따로 교육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길드의 안목이 그만큼 탁월한 걸까? 그 엔토루 새끼도 시르에게 찝쩍거리던 걸 빼면 나쁘지 않은 놈이었지.
흐음. 이러면 생각보다 모험가 생활을 오래 해도 되겠어. 본래는 사업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길드와의 연계를 더 늘리는 쪽으로 계획을 세워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르와 라냐와도 대화를 나누며 길드를 나섰다. 그리고 좀 더 도시 구경을 한 뒤에 식당으로 향했다. 여관의 식당을 이용해도 되겠지만, 이왕이면 전문 음식점이 더 낫지.
고르고 골라 도착한 곳은 코스 요리 전문점이었다. 식문화만큼은 중세를 한참 넘어서서 근대에서도 제법 위쪽 위치인 세계이니만큼 가짓수도 다양하고 맛도 괜찮았다.
1인당 5,000링의 값어치가 있는 식사였어. 라냐와 시르는 가격을 듣고 기겁했지만, 나는 먹는 것에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이세계에 온 첫날에도 번 돈의 대다수를 식비로 썼을 정도니까. 맛있는 건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게 좋다고. 언제 굶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르니까 말이지.
윽. 이라크에서 일주일 동안 에너지바만 먹었던 기억이…!
식사를 마치고 다들 배부르고 기분 좋게 여관으로 귀환했다. 귀환에도 별문제는 없었다. 간혹 시르의 외모에 혹해 다가오려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는데, 내가 웃어주자 기겁을 하면서 물러났다. 왜 저런담. 나는 그저 다가오면 찢어 죽이겠다는 얼굴로 웃어줬을 뿐인데?
그런 나를 보고 시르는 얼굴을 붉혔고, 라냐는 황당해했다.
“오늘은 일찍 자자. 그리고 내일은 아침만 먹고 바로 타라스트로 귀환하려고 하는데. 괜찮지?”
“네. 아무래도 타라스트가 걱정됩니다.”
“그렇지? 그 몬스터 군대…. 단순한 야생 몬스터가 아니야. 그런 놈들이 예전부터 이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소문이라도 돌았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단 말이지. 무장 상태도 나름대로 괜찮았고.”
“…그들과 관련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거참. 곤란한 놈들이란 말이지.”
“무슨 말씀이세요?”
여관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씻고 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내일 일정 얘기를 하다가 ‘여명’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잠옷으로 갈아입은 라냐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얘는 몰랐지?
“지난 번에 도시를 습격한 놈들 말이야.”
“악신의 추종자들 말이죠? …그때는 정말 놀랐어요. 그들을 막은 게 시그 님과 시르 님이었다는 건 더 놀라웠지만요. 새삼스럽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새삼스럽네. 그래도 감사 인사는 잘 받을게.”
“헤헤. 그런데 그것들과 그 몬스터 군단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거죠? 설마, 악신의 추종자들이 일부러 저희를 노리고…?”
대외적으로 그 습격은 악신의 추종자들이 벌인 짓으로 되어 있었기에 라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굳이 ‘여명’에 대해서 말해줄 필요는 없었기에 나도 수긍하고 라냐의 의문에 답해줬다.
“아니. 딱히 우릴 노리고 덮친 건 아닐걸? 다만, 놈들이 키우던 놈들이었을 확률이 높아. 잘 알려진 건 아니지만… 내가 길드 마스터와 테르시아 영애를 구하러 갔을 때, 몬스터를 사역하던 인간이 있었거든.”
“아. 그럼 그 사람이 키우던 몬스터들이었다는 거군요? 그런 대군을 숨기고 키웠다니…. 으으.”
놈들의 강력함을 느끼고 가볍게 몸을 떠는 라냐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우두머리던 오우거와 트롤 정도만 놈들이 키우던 거였을 거야. 놈들의 아지트를 조사한 모험가들도 대규모의 몬스터를 사역한 장소는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놈들이 도망치면서 몬스터들을 풀었고, 놈들이 버리고 간 장비를 챙긴 오우거가 약한 몬스터들을 모아서 군대를 만든 거겠지. 오우거는 장군기질이 강한 놈이잖아?”
“그렇죠. 그래서 오우거가 나타나면 보통은 군대가 출동해요. 이미 몬스터 군대가 만들어져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시그 님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상식이지만요.”
오우거는 몬스터들의 장군이라 불리는 식인괴물이다. 개인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기회만 되면 약한 몬스터들도 군대를 만들기 때문에 위험도가 매우 높다. 트롤은 오우거보다 약하지만, 이놈도 제법 머리가 있는 놈이라 몬스터 군단이 만들어지면 부지휘관이나 중대장 정도의 역할을 맡는다.
아마, 그 오우거는 적마희가 사역하던 오우거의 스페어정도였을 거다. 적마희의 오우거가 그 오우거보다 훨씬 강하기는 했지만, 그건 오우거 자체의 강함보다는 마법이나 약물 등으로 강화된 것이었을 테니까. 내 감이니 거의 확실하겠지.
안 그래도 강한 몬스터를 더 강하게 만드는 능력이 적마희에겐 있는 것이다. 그 정도 특기가 없었다면 여명의 사도가 되긴 힘들었겠지. 본인의 전투능력은 자주랑이나 홍마창보다 훨씬 떨어지니 말이지.
“그래. 문제는 과연 오우거가 한 마리만 있었냐는 거야.”
“아!”
“많이 있지는 않았겠지만, 한두 마리쯤은 더 있었을 수 있어. 오우거는 동족끼리 무리를 짓는 경우는 없지만, 그렇다고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놈들은 아니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자신의 군대를 만들었다면…. 타라스트 주변 마을들이 습격당할 가능성도 있어.”
“그, 그런…!”
사태를 명확히 깨달은 라냐는 경악했다. 그리고 이내 암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몬스터 군대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는 마을들을 걱정하는 거겠지. 나는 그게 기특해서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안 해도 돼. 확실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타라스트에 정보가 들어간 이상, 도시도 행동에 나설 거야. 우리의 길드 마스터는 유능하거든.”
“…그, 그렇겠죠?”
내 의뢰에 라냐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밝아졌다. …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다.
왜냐면 타라스트에는 지금 테르시아 자작과 그 영애가 있고, 테르시아의 군대는 놈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으니까. 몬스터 군대가 타라스트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면 곧바로 대처에 나설 수 있을 거다.
…어쩌면 그 테르시아 영애가 직접 칼을 빼들고 오우거를 잡으러 갈지도 모르겠군. 평범한 오우거라면 테르시아 영애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러고도 남을 성정이고.
“테르시아 영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라냐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봐봐. 나랑 시르도 걱정은 하고 있지만, 그렇게 암울하게 보고 있지는 않잖아?”
“…네. 맞아요. 하아. 다행이네요.”
얼굴도 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무사할 거라는 말에 진심으로 안심하는 라냐는 틀림없는 선인이다.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아이는 올바르게 자라줘야지. 그래야지 세상이 더욱 아름답고 발전할 수 있다.
뭐, 애초에 마법을 배우면서 그 보답으로 나도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려고 했었으니까. 라냐는 미래에는 틀림없이 올바르고 강인한 마음을 가진 대마법사가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마.
그 뒤에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해가 완전히 뜨고 별과 달이 뜬 늦은 밤이 되어서야 각자의 침대에서 잘 준비를 했다. …시르와 같은 침대를 쓰고 싶은 욕망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라냐가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대신, 라냐가 보지 않을 때 재빨리 시르의 허리를 껴안으면서 키스했다. 시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내 목덜미에 키스했다. 그리고 재빨리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라냐가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응. 라냐도. 잘자.”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소등.
우리 모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뒤. 나는 눈을 떴다.
고개를 살짝 돌려서 양쪽을 살폈다. 시르도 라냐도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혹여라도 그들이 깰까, 천천히 움직여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역시 소리를 내지 않고 코트를 입고 신발을 신고 미리 열어둔 창문으로 다가갔다.
밤이 내려앉은 라리레스트는 고요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 도시 어딘가에서 사악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을 악신의 추종자들의 추잡한 환호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이르세르가 부탁해서가 아니다.
지구에서도 나는 사이비 종교를 아주아주 혐오했다. 극혐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사이비 종교를 박살 냈다.
재력이든 무력이든 언론이든 여론이든.
놈들은 세상에 무익한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가만히 놔두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무책임하게 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놈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능력이라도 없었다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능력이 있는데 안 쓰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록… 이 세계가 나의 세계는 아닐 지라도. 지금은 살아있고 나에게 소중해진 사람들도 있는 세계이다.
그 세계를 위해서 밤 중에 담을 넘고 개 같은 놈들 죽어라 패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 지금처럼.
아지트를 지키던 놈의 이빨을 몽땅 부숴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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