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68화 (68/93)

〈 68화 〉 68화 우당탕탕 모험가 생활

* * *

해가 완전히 떠오른 시각.

상단은 마을을 떠났다.

떠나는 우리를 마을 사람들은 열렬하게 환영해줬다.

“와아아아아!”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고마워요! 모험가님!”

뭐, 그 환영의 절대 다수는 나를 향한 거였지만.

마차의 지붕 위에서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웃었다. 내 옆에 있는 시르는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찬가지로 옆에 있던 라냐는 사람들의 환호에 작게 손을 흔들었다가, 이내 부끄러워하면서 손을 내렸다.

상단의 직원들과 병사들도 주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거나 마주 환호를 지르면서 상단은 마을에서 멀어졌다. 그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야, 환호가 끝났다.

“와. 이렇게 환영 받으면서 떠나는 건 처음이야.”

“그러게. 시그 오빠랑 함께 하니, 이런 경험도 하네.”

마차를 끌던 피로스의 말에 셰라가 웃으면서 답했다. 지붕 위에서 그런 그들을 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너희도 열심히 했잖아. 배수로 공사하느라 고생했다.”

“뭘요. 시그 형님이 하신 거에 비하면 별 거 아니죠.”

“맞아요. 우와. 그 커다란 바위를 어떻게 일격에 자갈로 만들어 버릴 수 있죠?”

“그것뿐이겠어. 나는 나무가 그렇게 쉽게 뽑히는 건 처음 봤어. 거기다가 그걸 또 번쩍 들어서 집어 던지기까지….”

“삽질 몇 번에 길이 생기는 거 보고 기겁했는데.”

“그 곡도. 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예요? 무슨 휙휙 휘두르니까 나무고 바위고 땅이고 다 갈라지던데.”

두 사람의 떠드는 소리에 나는 대답대신 피식 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얘기를 웃으면서 듣고 있던 시르가 내 손등에 손을 포개면서 속삭였다.

“역시 시그 님이십니다.”

“후. 이제 하루에 한 번 이상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 걸릴 것 같아.”

“후후후.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해드리겠습니다.”

간드리저니는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손결이 손등을 쓰다듬었다. …으음! 이런 행동도 야할 수 있다니! 시르! 무서운 아이! 하지만 내 옆에는 시르만 있는 게 아니다! 나를 가운데에 두고 양옆에 앉은 두 사람 중 한 명인 라냐는 나와 시르의 교류를 눈치채지 못하고 순수한 눈빛으로 말했다.

“매번 이렇게 환영을 받으면 정말, 모험가 생활에 푹 빠지는 것도 이해가 돼요.”

“피로스도 말했지만, 이런 일이 흔한 건 아니야.”

“그렇죠. 하지만 시그 님과 함께 다니면 자주 겪지 않을까요?”

헤헤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군.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역시 외형만 보면 어린애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뭐, 이렇게 말해도 라냐도 아침부터 여러모로 활약했다. 땅을 뒤집고 숲에 불을 지르고, 논밭에 번개 마법까지 썼으니까. 그렇게 했음에도 별로 지친 기색도 없다. 역시, 마탑에서 추천할 만한 인재다.

“아니, 오늘은 유난히 기분이 좋아서 이것저것 한 거지. 들리는 마을마다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시그 님은 기분이 좋으면 남을 돕나요?”

눈을 동그랗게 뜬 라냐를 보니 귀여웠던 조카들이 떠올라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가, 조카들도 어렸을 때나 쓰다듬는 걸 좋아했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리고 그만두었다.

“내키면. 뭐가 됐든 내 도움으로 기뻐하는 사람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남을 돕는 게 기분이 좋은 일인가요?”

제딴에는 맹랑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말은 지구에서도 질리도록 들어봤다. 나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라냐. 너는 어떤데? 네가 마법을 써주자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분이 어땠어?”

“……으. 그건.”

“좋았지. 너, 분명 그때 환하게 웃고 있었다고. 아주 시원하다는 표정이기도 했고. 안 그래?”

“네. 맞아요. 기분 좋았어요. 농촌 분들이 그렇게나 좋아해 주시니까… 저도 기뻤어요.”

놀리려다가 오히려 반격을 맞자 라냐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툴툴거렸다. 역시 애야.

“그럼 됐지. 남을 돕고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 동방에선 이걸 일석이조라고 불러.”

“그러네요. 멋진 일이에요. 그럼 시그 님이 남을 돕는 건 근본적으로 자신이 기분 좋기 위해서인가요?”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지. 다만, 전부는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사람이란 복잡해. 단순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도 세세하게 보면 복잡한 일면이 있지.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도우면 기분이 좋아. 하지만 굳이 남을 돕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힘을 쓰는 건 귀찮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어. 그래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굳이 돕지 않지. 여기서 말하는 수지란, 내가 일한 만큼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야. 나는 꽤 계산적인 이유로 사람들을 돕거든.”

“……그런 것치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잖아요? 촌장님이 주시려던 돈까지 한사코 사양하셨으면서.”

“계산적이라고 그게 반드시 금품을 뜻하는 건 아니지. 어쨌든 나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아니면 타인을 돕지 않아. 오늘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뿐이야.”

밤부터 새벽까지의 일.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즈음에 느꼈던 고양감.

숙소로 돌아오자 나를 맞이해준 시르의 미소.

그 모든 것이 내가 이른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 준 이유가 되었다. 그들에게 돈을 준 것도 아니고 물건을 준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들을 처리해줬을 뿐이다.

배수로를 새로 뚫어주고 길을 만들고 개간을 막는 장애물들을 치워주는 등등.

간단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상당한 힘이 드는 일들. 나는 식후 운동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며칠을 쏟아부어야 하는 노동.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고작 그 정도를 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기뻐하고 환호하는 그들을 보고 나도 즐거웠으니, 오히려 내겐 이득이었지. 나는 관심종자니까.

뭐, 결국,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을 도와줬고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는. 그런 단순한 얘기다.

라냐는 내 말에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생겼는지 고민에 빠졌고, 시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등 위로 깍지를 끼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차 위에서 즐거운 기분으로 상단의 목적지까지 평화롭게 이동했다.

상단이 목적지인 도시에 도착한 건 노을이 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전의 마을을 떠나고 거의 9시간이나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사이에 들렸던 마을도 없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반면에 모험가들은 쌩쌩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그 님! 시르 님! 라냐 님! 피로스 님! 세랴 님! 여러분들 덕분에 이번 상행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으하하하하하!”

도시 내에 있는 거래처에 도착한 후. 상단주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우리에게 의뢰 완료 증서를 발급해줬다. 거기에 추가로 두둑한 목돈을 얹어주려고 했는데, 모험가가 의뢰인에게 개인적으로 금품을 받는 건 규칙을 어기기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상단주는 이번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다른 목적으로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번 상행 중에 만난 몬스터 군단! 놈들은 우리 상단의 병력만으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적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손에서 우리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험가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목숨값입니다. 부디,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길드도 이것을 책잡을 수는 없습니다. 의뢰 중에 발생한 의뢰 외의 문제를 해결한 경우에는 의뢰자와 모험가, 길드의 협의에 따라 추가 보상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길드까지 동행하겠습니다.”

나도 알고 있는 규칙이었다. 하지만 상단주가 그 규칙까지 말하면서 보상을 주려고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이 탐욕스럽지만 현명하고 양심적인 상인을 새로운 눈으로 보면서 그가 내민 보상을 받아들었다.

“이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군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주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여기 증명서에 관련된 내용만 추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스 상단주님.”

“으하하핫! 시그 님이 해주신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시그 님! 그럼, 또 인연이 된다면!”

“네. 분명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겁니다.”

“그건 정말 기쁜 말씀이시군요!”

그걸 끝으로 우리와 한스 상단주는 해어졌다. 그래. 조만간 다시 만날 거야. 당신 정도의 상인은 만나기 쉽지 않지. 앞으로 자주 이용할 테니, 준비해두는 게 좋을 걸?

“이야. 저만한 상단주 정도 되면 통이 정말 크군요!”

“우와. 피로. 이거 봐봐. 이게 대체 얼마야?”

“소은화가 몇 개나 있는 거야? 이번 의뢰금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여기에 몬스터를 잡은 것까지 합치면…. 와! 장비 바꾸자! 나 사고 싶은 메이스 있었잖아!”

“그래! 나도 갑옷 좀 바꿔야겠어. 지난번의 그거 남아 있으려나~”

피로스와 세랴는 뜻하지 않은 수익에 입이 찢어지도록 기뻐하고 있었다. 나야 뭐,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기뻐할 놀랄 만한 금액도 아니다. 이거의 몇백 배나 되는 돈을 이미 벌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거로 자랑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지. 이 두 사람은 실력도 있고 인성도 좋으니 앞으로 자주 보고 싶은 얼굴이기도 하고.

“그러게. 상당한 금액인데? 아. 그런데 너희는 이제 어쩔 거냐? 우리는 일단 숙소를 잡은 뒤에 내일이나 출발할 건데.”

“아. 저희는 일주일 정도는 이곳에서 일 좀 해보려고요. 모르는 곳도 아니고.”

“숙소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희가 잘 알고 있는 곳이 있는데.”

“마음은 고맙지만, 직접 찾아보게. 새로운 도시는 그런 맛도 있는 거잖아?”

“하하. 그렇죠. 그것 또한 모험 아니겠습니까.”

피로스와 세랴와는 그러고 헤어졌다. 두 사람은 곧바로 길드로 가서 정산하고 새로운 일을 받으려고 했고, 우리는 먼저 숙소를 찾은 뒤에 길드로 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우리에게 예의상 동행을 요청했지만, 내가 거절하자 곧바로 받아들이고 물러섰다. 현명한 녀석들이야. 괜히 엉겨 붙어봤자 호감도만 떨어질 거라는 걸 아는 거지. 비루한 것들은 어떻게든 우리와 엮여 보려고 할 텐데 말이지.

“자아, 그럼 우리는 숙소를 찾으러 가볼까. 좋은 곳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시르는 이 도시에 와본 적 있어?”

“저도 이곳은 처음입니다. 북쪽으로는 와본 적이 별로 없어서….”

“저도 몰라요. 와. 이 도시의 마탑은 세모나네요?”

“라냐에게는 안 물어 봤는데.”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어요?”

“장난이야. 장난. 그런데 정말 마탑이 세모나네. …특이한 모양이야.”

가벼운 장난에 볼을 부풀린 라냐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이 도시의 마탑을 바라보았다. 마탑은… 그러니까, 피라미드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도시에 들어오기 전의 산맥에서 봤을 때는 잘못 봤나 싶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진짜로 피라미드였다.

…일종의 수렴진화겠지. 지구에서도 이집트와는 상관없는 곳에 피라미드가 있던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저 마탑은 지나치게 똑같단 말이야.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르와 라냐와 즐겁게 잡담을 나누면서 도시를 걸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라리레스트.

특이한 모양의 마탑을 가진, 타라스트 못지않게 커다란 도시. 특산물은 이 근처에서만 채집된다는 약초. 시장은 있지만, 자유도시가 아닌 알레르스크 자작령에 속한 북부와 중부를 잇는 교역의 요충지 중 하나.

그리고 아이르세르가 알려준.

악신의 추종자들의 아지트가 숨겨져 있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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