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65화 (65/93)

〈 65화 〉 65화 우당탕탕 모험가 생활

* * *

신령??

말 그대로 신의 령.

이세계에는 꽤 많은 수의 신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칠대신 같은 상위 신부터, 그들을 시중드는 중, 하위 신에 이미 대다수 멸신??당한 악신들까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100이 넘는 신이 존재했었다.

그중 대다수는 지상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관심이 있는 신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지상에 간섭했다. 각 신을 모시는 교단이 대표적인 간섭수단이고, 간혹 화신化?이 등장하기도 했다.

신령은 그런 간섭수단 중 하나이다.

신이 령?의 일부분만 지상으로 내려보내 조언이나 지식을 내려주는 것. 그게 책에서 봤던 신령의 존재 이유였다.

지금 그런 신령이 내 앞에 있다.

나는 그런 신령의 관자놀에에 팔꿈치를 박았고.

…이거 좆된 거 아님?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듣던 것보다라…. 대체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사람 등 뒤에 오면 안 된다는 건 듣지 못했나 보군?”

[그럼 역시 함부로 등 뒤로 다가온 내 잘못이네. 미안해.]

신령은 순순히 사과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좋아! 관자놀이를 후려갈긴 건 따질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아니, 그런데 신령이 왜 이렇게 갑자기 등장하는 거야? 언젠가는 만나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이런 장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쁜 의도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조심해야겠어.

나는 태연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알면 됐어. 그래서 너는 누구야? 날 알고 있는가 본데….”

[듣던 대로라면 내 정체를 짐작하고도 남을 텐데.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건지 모르겠어. 보통 사람은 영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그대는 그걸로는 알 수 없어.]

신령은 대답 대신 묘한 얘기를 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행동 자체는 귀엽지만, 온통 하얀색에 내 눈으로도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라 와닿지는 않았다. 눈에 안 좋은 색이야. 신령이란 이렇게 요란한 색을 달고 사는 건가?

그나저나 영혼이라…. 사람의 영혼을 보고 그걸로 진의까지 알아볼 수 있는 건가? 신령은 신령이로군.

“갑자기 영문 모를 소리라고 하고 싶지만…. 괜히 이런 식으로 탐색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건 잘 알겠다. 그래서 신령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지? 그것도 이런 오밤중에 말이야.”

연기를 때려치우자 신령은 놀랐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역시 연기였어! 모르는 척해서 나를 탐색해보려고 한 거였구나. 듣던 대로 똑똑한 인간이야.]

“이 정도로 똑똑하다고 하기엔.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거지.”

[내가 이제껏 만났던 사람들은 내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거나, 알게 된 뒤에는 곧바로 공손한 태도를 보였어. 그대는 내 정체를 짐작하고도 오히려 경계하고 연기까지 했으니, 그들보다 똑똑한 사람 아니야?]

“…그건 똑똑한게 아니라, 그냥 의심이 많은 거지.”

[의심이 많은 게 똑똑한 게 아니야?]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니 머리가 아팠다. 이 화제로 이 이상 얘기해 봤자 시간만 낭비하겠네.

“그래. 나 똑똑해. 아마 전 인류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머리가 좋을 거야. 그런데 그건 지금 중요한 일이 아니지? 설마, 내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보려고 여기 온 건 아닐 테고 말이지. 그래서 어디의 신령님이시지?”

[그래? 나는 꽤 흥미 있는 주제인데. 역시 인간의 감성은 나와는 다른 것 같아.]

신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묘하게 인간 같으면서도 핀트가 어긋난 게 역시 다른 생물이라는 느낌을 확 들게 만드는군. 아니, 신령이면 애초에 생물이 맞는 건가? 신을 생물계로 분류해도 되는 거야?

“나는 관심 없어.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건 댁이 찾아온 이유와 어서 돌아가서 자고 싶은 것뿐이지.”

[그것 외에도 관심 있는 것들이 있지 않아? 예를 들자면 오래전에 멸망한 동족을 부활시키려는 아이들에 대한 거라든지.]

“…알고 있는 게 있는 거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용무가 있다면 ‘나’에 관해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그것들의 얘기라니….

[있다마다. 그 아이들은 오래 전부터 그 짓을 반복하고 있지. 말려보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를 않아. 자신들이 모시는 신 외의 신들의 말은 그들에겐 무가치해.]

“꽤 동정적이네. 그래도 동족을 추앙하는 것들이라 그런가?”

[오. 그 말대로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들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었는데, 역시 그대는 달라. 똑똑해.]

조금 비아냥을 담아 말해 보았는데 오히려 감탄이 돌아왔다. …아니, 진심으로 비아냥 거린 게 아니기는 했는데 말이지. 역시 인간과는 다른 존재야. 감성이 완전히 달라!

“…그래. 하지만 놈들은 당신을 추앙하는 인간들도 해치는 놈들이야. 이미 멸망한 동족을 추종한다고 해도 용서할 수 있는 무리는 아니지 않나?”

[맞아. 동정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건 그들이 우리의 아이들을 죽이기 때문이 아니야.]

무심한 말이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인간과는 다른 감성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너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거냐! 라고 따져 물어봐야 그렇다. 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한다. 인간과는 다른 사고 회로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 감정적인 부딪침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신령이 저런 말을 한다고 분노하기엔 나도 그렇게 감성적인 인간이 아니란 말이지. 애초에 지구에서도 무교였던 나다. 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공감은 못 한다.

내 삶에 힘이 된 것은, 나와 가족과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지 신의 힘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네가 어디의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신자들이 들으면 실망할 말이네. 아니, 예전에 그 말을 듣고 실망한 사람들 있었지?”

[역시 잘 아네. 맞아. 이 말을 들으면 내색하진 않아도 실망하더라고.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대는 내 신자도 아니고 딱히 믿는 신도 없는 것 같으니 상관 없지 않아?]

“응. 상관없어. 그러니까,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슬슬 졸리기 시작하거든?”

이놈과 대화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신적인 존재와는 최대한 직설적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거다. 평범하게 얘기하면 이야기가 계속 헛돌게 되는구만.

[그러지. 나도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니까.]

“아니, 시간도 없으면서 왜 잡담을 그렇게 하는 거야?”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말하는 시간이라는 건 틀림없이 지상에 존재할 수 있을 시간일 텐데! 그걸 이런 쓸데없는 문답으로 날려버리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이냐! 이것도 단순히 감성이 달라서 그런 거야? 돌겠네.

[그건….]

“아니, 됐어! 지금은 내가 말을 잘못했으니까, 그냥 본론으로 넘어가자. 지금 한 말은 신경 쓰지 말아줘. 부탁이야. 진짜.”

[…역시 특이한 인간이야. 후후. 직접 보러 오길 잘했어.]

뭐가 그리 좋은지 새하얀 몸이 가볍게 떨렸다. 여전히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표정 파악도 안 되는네.

[그래. 그대 말대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내가 그대를 찾아온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야. 첫 번째는 멸망한 동족들을 추종하는 아이들. 두 번째는 악신을 추종하는 어리석은 자들. 세 번째는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차원 전이 현상.]

“전부 듣고 싶은 얘기들이군.”

특히 마지막.

나는 신령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새하얀 그 존재는 표정이나 감정을 알기 어려웠다. 마지막 말을 무슨 의도로 내게 한 걸까? 다른 두 개를 얘기하는 김에 한 걸까? 그게 아니면 내가 지구에서 날아온 이세계인이라는 걸 알아보는 걸까? 직접 물어보는 편이 가장 확실하지만… 나는 아직 이 신령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내가 이세계로 오게 된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은가?

갑작스러운 만남에 이어진 중요한 정보의 홍수에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다행이야. 그럼 순서대로 얘기할까?]

“응.”

순순히 대답하면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이제까지보다 더욱 상세하게 신령의 모습을 살폈다. 알아보기 힘들었던 이목구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령이니 성별 같은 게 없어도 이상하지 않긴 하지. 그런데 이 자식, 자기가 어떤 신인지는 여전히 한마디도 안 하네.

[첫 번째로 멸망한 동족을 추종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을 ‘여명’이라고 불러. 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가 소속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작은 1,021년 전의 전쟁 이후야. 그때 멸망한 동족들을 추종하던 아이들의 후손들이 만든 조직이지.]

여기까지는 대부분 나도 알고 있는 정보다.

신성대전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에 일어난 전쟁이고 그 전쟁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신들이 멸망했다. 그때 멸망한 신들을 추종하던 것들의 후손이 소위 말하는 ‘잊힌 신들의 추종자’들이라는 건 유리에게도 들었고 도서관 깊숙한 곳에 있던 고서에서도 읽었다. 그런데 스스로 ‘여명?’이라고 칭한다는 건 지금 처음 듣네. 그리고 이 정도로 끝날 리도 없겠지. 나는 신령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처음에는 그 세력이 미약했지만, 지난 천 년 동안 그 힘을 은밀히 키워왔어. 최근에는 국가 하나를 능히 전복할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을 손에 넣었더라고. 네가 지켰던 도시에 온 강자들은 ‘여명’에서 ‘사도’라 불리는 아이들일 거야. 과거에는 그 정도의 사도들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 대체 어떻게 그만한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었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

한번 말을 시작하니 끝도 없이 이어진다. 조금도 숨을 고르지 않고 말을 하는 걸 보니, 신체구조 자체가 인간과는 다르다. 겉으로 볼 때는 인간 같지만, 저건 껍데기일 뿐이지 내부 구성은 애초에 생물이 아닐 거다.

[그 아이들의 목적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아. 당시에 멸망한 동족들을 되살리는 것. 그 수단을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알고 있는 것들이 있어. 대표적으로 멸망한 동족의 파편이 깃든 물건들을 모으는 거야.]

“신의 파편?”

새로운 정보다. 그리고 곧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타라스트의 숨겨진 도서관에 있던 게 그거였나 보군?”

[역시 똑똑하네. 맞아.]

신령은 기쁜 듯이 웃었다. 이제야 이목구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군.

[그대가 어디까지 짐작하고 있는지 알려줄래?]

“뭐, 어려울 것도 없어. 도서관의 숨겨진 방은 전대의 시장이 은밀히 만든 곳이야. 그는 세계 곳곳에서 골동품이나 신비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거기에 숨겨두고 있었어. 한번 봤는데, 정말 별의별 게 다 있더라고. 그 숨겨진 방은 상당히 은밀하고 정밀한 은폐 마법으로 감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가짜나 함정들도 설치되어 있었지. 그런 숨겨진 방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건 보통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상위 마법사라 해도 말이지. 그래서 놈들은 천공탑을 노렸다.”

도서관의 가짜 방과 함정들은 천공탑에서 제공되는 마력으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끊어버리는 거로 놈들은 숨겨진 방을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그 안에 있던 물건 중 정확히 어떤 것이 네가 말하는 물건인지는 몰라. 다만, 전대 시장은 그 물건이 신의 파편이 담긴 물건이라는 건 몰랐을 테지. 그것 때문에 놈들이 그런 대형 사건을 벌이면서까지 도서관을 노릴 줄도 몰랐을 테고.”

[맞아. 전대 시장은 그 사실을 몰랐어. 그저 조금 특이한 도색잡지 정도로 여겼지.]

“……도색잡지였냐.”

어쩐지, 남사스러운 것들이 많더라니!

…아니,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놈들은 도색잡지를 손에 넣기 위해 그 난리를 피운 게 되는 건가?

존나 웃기네!

…그 웃긴 일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진짜로 웃을 수는 없지만 말이야.

[우리들은 알았어. 애초에 그런 생각지도 물건에 멸망한 동족의 파편을 불어 넣은 게 우리들이니까.]

“…왜 하필이면 그거냐.”

[예전에는 여성용 자위기구에 들어간 적도 있어.]

“씨발! 그 얘기는 하지 마! 그 새끼들이 불쌍해지잖아!”

이미 멸멍한 신들을 되살리려고 천 년 동안 암중에서 노력해 왔는데, 그 방법이 자위기구나 도색잡지를 모으는 거라니! 그 녀석들도 그런 물건을 회수하면서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쏟아붓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일로 다른 신들에 대한 증오를 불태웠을지도 모른다.

내 기준으로 따지면 조상님의 유골을 그런 물건들에 숨겨 놓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씨발. 상상하니 진짜 좆같네. 내 안의 유교 드래곤이 포효를 질렀다.

나는 경멸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신령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신령은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동방에는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속담이 있는 걸로 아는데. 우리가 한 것도 그것과 같은 거야.]

“달라. 애초에 그 속담은 이때 쓰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 얘기는 됐으니까, 놈들이 그걸 모아서 뭘 하려는 건지부터 말 해봐.”

이 화제를 계속 이어나가면 그것들을 진심으로 동정하게 될 것 같으니 그만뒀으면 좋겠다. 진짜. 다행히 신령도 이 화제로 질질 끌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반은 추모의 의미, 나머지 반은 그걸로 어떻게든 멸망한 동족을 부활시키고 싶은 거야. 어떻게 부활시킬 건지는 나도 몰라. 애초에 멸망한 동족을 부활시키는 방법이 있었으면 우리가 진즉에 했을 거야. 이제는 보지 못하는 동족들이 너무 많이 있으니까.]

아련한 감정이 전해졌다.

…신령도 이런 인간적인 감정이 있는 건가. 다만, 그걸 느끼는 방식이 인간과 너무 다르기에 기괴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것 외에도 다른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나도 몰라. 내가 그 아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이게 전부야.]

“자신 있게 말한 것치고는 정보가 너무 부족한데.”

진심이다. 나름대로 융익한 정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도 알고 있던 것들이다. 뭐, 추측하던 걸 확신 받은 건 소득이지만. 기껏 신령이 직접 와서 전달할 만한 정보는 아니다.

그러자 신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다른 아이들은 이 정도만 알려줘도 지극히 감사하던데. 역시 그대는 다르구나? 똑똑해서 그런가?]

“…이젠 슬슬 네 화법에도 익숙해지고 있는 내가 두렵다. 됐고. 놈들에 대해서 더 알고 있는 거 없어? 예를 들어서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라던가.”

[음. 몇몇 사도들의 이름이나 별칭은 알고 있는데. 별로 중요한 건….]

“존나 중요한 정보잖아! 그걸 말하라고! 그걸!”

짜증 나! 지구에서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짜증 나는 일도 없었는데, 이놈은 멍청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 짜증이 두 배로 났다.

내 분노에 녀석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건 또 왜 인간적인 거냐.

[그렇구나. 중요한 정보였구나. 나는 몰랐어.]

“…이제 알았으면 됐어. 후회는 나중에 하시고, 지금은 놈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나 좀 불어.”

[알았어. 역시 똑똑한 아이는 다르네.]

저놈의 똑똑하다는 소리는 작작 좀 하면 안 되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아니, 시발. 이전에 만났던 인간들은 얼마나 멍청했기에 저런 반응이 나와?

…아니, 이 세계의 인간들이라면 신령이 나타나자마자 고개를 조아리고 공손하게 굴었을 테니, 이런 의문도 품지 않았으려나. 나처럼 신령의 관자놀이에 팔꿈치를 꽂은 인간은 단연코 없었을 테고.

…좋아. 마음을 넓게 가지자.

[거울 마법을 쓰는 상위 마법사. 이름은 몰라. 하지만 그 아이들 사이에선 ‘청자경??’이라고 불려. 폐륜을 저지른 무도가. 이름은 빌쟈크. 그 아이들은 물론이고 밖에서도 ‘자주랑???’이라고 불려.]

청자경. 자주랑.

타라스트를 습격했던 주축들이다.

그 후드 놈. 청자경이라 불리는 거냐. 그야말로 겉모습 그대로네. 자주랑은 이미 들었던 별명이고.

[거대한 핏빛 창에 혈마법을 사용하는 알브. 그녀의 이름은 라일레아 베르실. 그 아이들 사이에선 홍마창???이라고 불려. 몬스터를 조종하는 특기를 가진 아이. 이름은 레베카 레르시블. 그 아이들 사이에선 적마희赤??라고 불려.]

홍마창. 적마희.

거대한 창을 쓰는 알브 소녀. 채찍을 쓰던 새디스트 여자.

라일레아 베르실과 레베카 레르시블.

…이건 꽤 큰 정보다. 무엇보다 홍마창의 성을 알게 된 것은 큰 성과이다.

그래. 유리의 그때 반응은 수상쩍었지. 친족이었다면 전부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은 만나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고 추궁할 근거도 부족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돌아가면 추궁해야겠군. 그리고 레베카 레르시블. 유리도 그녀일지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정답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제법 큰 정보다. 하지만 신령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것. 아니, 그? 그녀? 뭐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그 아이들 사이에 존재해. 우리도 종잡을 수 없는 존재야. 그나마 알고 있는 건 별명뿐이야.]

신들도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고? 그리고 처음의 저 혼란한 호칭은 뭐냐. 하지만 이어진 신령의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순간 명확하게 보인 신령의 얼굴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얼굴과 수많은 이름을 가진 아이…. 그렇기에 그 어떤 이름도 그 아이에겐 의미가 없어. 오로지 그 아이의 별명인 ‘천?의 가면’만이 의미가 있을 뿐. 조심해. 이 아이야말로 ‘여명’의 ‘사도’들의 수장이야. 그리고 가장 위험해.]

이제야 이목구비를 똑바로 볼 수 있게 된 신령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시르와 똑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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