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64화 우당탕탕 모험가 생활
* * *
“으하하하핫!!! 감사합니다! 시그 님! 당신께선 우리 상단의 영웅이십니다! 으하하하하핫!”
“별말씀을.”
전투가 끝난 뒤.
물리적으로 입이 찢어지라 웃으면서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상단주에게 나는 겸손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전투의 뒤처리를 하는 병사들과 상단주의 옆에서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호위대장을 보면서 말했다.
“모두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 피해가 나왔을 겁니다. 상단주께서 고용한 병사들의 실력이 대단하더군요. 호위대장님과 소대장들의 침착한 지휘도 놀라웠습니다.”
생각지 못한 칭찬이었는지, 호위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를 구한 것은 시그 님이십니다. 트롤과 오우거를 그렇게 베어 넘길 수 있는 용사는 몇 없습니다.”
“으하하하하. 그렇습니다. 우리 상단의 병사들도 아주 잘 싸웠지만, 트롤과 오우거는 시그 님이 아니었다면 해치울 수 없었겠지요. 저는 쫄딱 망해서 거지가 되거나 여기서 뼈를 묻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시그 님!”
그들도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알겠지만,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법이다. 오히려 내 쪽에서 적당한 금칠을 해주니 호감도가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진 않는다.
뭐, 호위대장이나 소대장들의 지휘가 신속했던 것도 맞고, 병사들도 열심히 싸우기는 했으니까. 완전히 빈말도 아니다.
그렇게 서로를 칭찬하는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뒤처리도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병사들과 모험가들은 제각기 처리한 몬스터의 시체에서 쓸만한 물건을 꺼내거나 잘라내었고, 상단직원들은 그 물품들의 가치를 간략히 평가하고 기록해서 마차에 쌓았다.
어차피 대다수가 놀이어서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건 없었지만, 병사들에겐 뜻하지 않은 부수입이 들어온 셈이다. 그것도 이런 대규모 병력과 싸웠음에도 상처하나 입지 않고 공돈을 벌었으니, 더더욱 기분이 좋겠지.
놀들이 사용하던 무기는 그대로 쓰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녹이면 철값은 나올 테고, 놀의 신체에서 가장 비싼 부위인 손톱, 발톱, 눈알은 한 마리만 잡아도 이틀 치 봉급은 되었다.
뭐, 그걸 다 합쳐도 내가 잡은 트롤과 오우거의 수익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양쪽 다 몸뚱어리의 값어치가 상당해서, 이번 호위 의뢰로 받을 돈의 몇 배를 벌었다. 특히 트롤의 피와 오우거의 힘줄은 구하기 힘든 만큼 부르는 게 값인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내가 잡은 놈들은 시르와 라냐가 정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잡일을 시킬 수 없어서 처음에는 내가 하려고 했지만, 전투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굽힐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시르는 상단 전체를 보호했고, 라냐는 첫 실전인데도 훌륭하게 활약을 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니. 대체 자기 평가가 얼마나 박한 거냐고. 이 부분은 나중에 제대로 얘기해봐야겠군. 두 사람 다 자신감이 떨어진단 말이야.
그렇게 시체까지 바닥에 파묻는 작업까지 끝내고 상단은 다시 출발했다. 그전에 시체를 묻은 곳에 표지판을 세워서 이 근처에서 대규모 몬스터 군단이 출현했음을 경고했다. 타라스트에 부상을 병사무리하다가 넘어졌다를 전령 대신 보냈으니, 나름대로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나저나 이만한 몬스터 군단이 도시 근처에서 출몰하다니. 짐작 가는 이유가 몇 개 있었지만,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 최소한 우리를 노리고 준비한 병력은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근처에 큰 피해가 생긴 마을들이 있겠지. 저만한 군단이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으니. 뭐, 거기까지 내가 걱정해줄 필요는 없다. 그 근처 영지나 이 나라에서 판단할 문제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올라선 마차 위에서 주변을 살폈다. 상단주는 이번에 진심으로 같은 마차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거절했다. 아무리 그럴 만한 업적을 세웠다고 해서 모든 편의를 다 받으면 마음에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금욕적인 사람까지는 아니지만, 나태하게 사는 사람도 아니다.
그 뒤, 약 세 시간을 더 간 뒤에 우리는 다른 도시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가 지기 직전이라 상단은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떠나기로 했다.
다행히 마을은 평화로웠다. 도시와 도시 사이의 길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마을이다 보니 사람도 적당히 있었고 상단의 중요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집도 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우리 파티는 귀빈 대접을 받으면서 집에서 쉬게 해주었다. 이건 받아들여야지. 여기서 괜히 밖에서 병사들이랑 같이 야영한다고 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야영은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피로스와 세랴도 가장 많은 활약을 해서인지 따로 방을 받을 수 있었다.
배정받은 방에 간단하게 짐을 정리하자, 상단직원이 이 마을의 촌장이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청했다는 말을 정중하게 전달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곧바로 촌장의 집으로 가보니 이미 와있던 상단주가 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식사 자리에 참석했고, 상단주는 우리를 소개한 뒤에 아까 전의 싸움에서 우리의 활약을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촌장은 그 얘기를 듣자 기겁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정말 큰일을 겪으셨군요!”
“으하하하. 제 상행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만, 여기 계시는 모험가분들 덕분에 이렇게 몸 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네. 딱히 문제는… 다만, 최근에 근처에서 몬스터들을 보는 일이 적어지긴 했었습니다.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라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쩌면 여러분들이 싸웠던 놈들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강력한 몬스터 무리가 나타나면 근처의 몬스터들은 알아서 도망가기 마련이란다. 책에서도 접했던 지식이기에 수긍하기는 쉬웠다. 촌장은 그런 일이 자기 마을 근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만한 무리가 우리 마을에 들이닥쳤다면…. 후우.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마을까지 구해주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별말씀을. 흉악한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모험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진심으로 감사하는 촌장에게 겸손하고 격식 있는 대답을 돌려주자, 그는 진심으로 감격한 얼굴이 되었다.
“그야말로 영웅의 마음가짐! 오오. 타라스트를 구한 영웅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직접 보니 소문이 실제보다 못하군요!”
“이런, 그렇게까지 금칠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촌장의 말을 적당히 받아넘기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다. 촌장이 대접한 요리를 아내가 직접 한 거라고 하는데, 양도 푸짐했고 맛도 좋았다. 시골의 가정식 기준으로 상급에 들어가는 요리 실력이다.
시르는 옅은 미소를 짓고만 있어도 식사 자리의 분위기를 한 단계 높여주었고, 라냐는 아싸답게 대화에 끼어들지는 못했지만, 시골 가정식은 입맛에 맞았는지 요리는 맛있게 먹었다.
흥이 오른 촌장은 비장의 술까지 대접했고 상단주도 이에 질세라 챙겨온 술을 꺼내서 저녁 식사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크읏! 이야, 시그 님은 영웅답게 술도 호쾌하게 드시는군요! 이거, 꽤 독한 술입니다만?”
“네. 확실히 제법 독한 술이네요. 하지만 제 고향에는 이것보다 독한 술들도 있었습니다.”
“허어! 그럴 수가! 과연 동방입니다. 제가 듣기론 동방에는 이쪽에서는 상상도 못할 재료로 술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이쪽 지방 사람들이 기겁할 것 중 하나로는 독사로 담근 술이 있겠네요. 독주도 되고 약주도 술이었죠. 저는 즐기지는 않았습니다만.”
“독사로 술을 담다니! 진정한 의미에서도 독주로군요! 그걸 먹어도 괜찮답니까?”
“대부분 독은 술에 중화되어서 효력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니, 뱀술을 먹고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그걸 먹고 죽으면 바보 취급을 당하죠.”
“어허. 정말 신기하군요. 그것 외에도 특이한 술이 있습니까?”
“뭐, 독벌로 담은 술도 있고. 일단 술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동물은 술의 재료가 되곤 했죠.”
약간의 MSG를 친 동방의 얘기에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책으로 접한 이 세계의 동방은 지구의 동방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 세계에 맞춰서 변형시킨 지구의 얘기도 여기 사람들에겐 꽤 잘 먹혀 들었다.
“히끅, 히끅, 이, 이거어어 마이있네에에요오오오.”
“후후. 라냐 양은 귀엽네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도 이제 성인이라도 과감하게 술에 도전했던 라냐는 완전히 뻗어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혀꼬부러진 소리는 전형적인 취객이었다. 한잔에 뻗어 버리다니, 아무리 처음이라지만 주량이 너무 약한 거 아니야?
그런 라냐를 귀여워하는 시르도 약간이지만 볼이 달아올라 있었다. 시르의 주량은 이미 파악해두었으니 이 이상 마시지 못하게 해야지. 다행히 시르는 술주정이 없어서 취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나는 촌장과 상단주가 가져온 술의 절반을 혼자서 비웠음에도 취기가 조금도 올라오지 않았다. 나의 슈퍼 간은 고작 이 정도 알코올로 취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신진대사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르니 어지간한 독주가 아닌 이상 취기를 느낄 일도 없었다.
내가 술을 즐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점이다. 뭐, 원래부터 몸을 망칠 뿐이지 좋을 게 없는 물질이라 좋아하지 않았었지만.
결국, 그런 주량의 차이로 인해 촌장과 상단주가 먼저 뻗어 버려서 저녁 식사로 시작된 술자리도 끝나게 되었다. 상단주는 상단직원이, 촌장은 촌장 부인이 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라냐를 업고 시르와 팔짱을 끼고 촌장집을 나섰다.
간만에 적당한 양의 술을 마셔서인지 시르의 얼굴엔 진심으로 즐거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고, 라냐는 행복한 얼굴로 아예 잠들어 있었다.
“후후후. 시그 님.”
“왜?”
“후후후. 한번 불러봤습니다.”“
”…취했구나.“
”아직 안 취했습니다. 그저… 기분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앞으론 자주 술자리를 가질까?“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시그 님도 술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니까요. 그저, 지금은… 순수한 호의로 대접받은 거라서 기분이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시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팔을 꽉 껴안았다. 그 사랑스러운 행동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순수한 호의로 받는 대접은 기분이 좋지. 나도 그렇다. 지구에서도 이세계에서도.
…어쩌면 타인을 돕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일지도 모른다. 뭐, 이 부분은 예전부터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에 굳이 지금 결론 낼 필요도 없지.
방까지 올 때까지 시르는 계속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와 간단한 잡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방에 도착한 뒤에는 곧바로 침대에 앞으로 엎어져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약간 상기된 얼굴과 그 안에서 반짝이는 황금에 담긴 의도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그 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긴 아니지.“
세상에. 시르가 이렇게나 야한 아이였다고?!
목소리에 담긴 끈적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설마, 취기가 이제야 도는 건가! 그런 황당한 생각까지 들었을 때, 시르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후훗. 장난입니다. 그런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네요.“
”…하아. 시르.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장난이었다니… 뭔가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로군. 그래도 안심이다. 시르가 진심으로 유혹했다면 나는 참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라냐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었겠지. 얘… 침대에 눕힌 순간 잠에서 깼다고.
그때 시르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시그 님이 원하시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안 괜찮아!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시르의 몸을 만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경지수 시발놈아. 왜 여기서 이딴 식으로 발현되는 거냐?
자신의 몸을 확실하게 제어하기 위해서 익힌 기술의 배반에 충격받았을 때 시르는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이번에도 장난입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 말만 남기고 스스륵 눈을 감고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하아.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술 때문인가? 시르가 저런 야릇한 농담을 하는 것은 술 때문이야? 하지만 지난번에 같이 술을 마셨을 때는 저러지…… 아니, 그때는 술 마시고 바로 했었지. 저런 농담을 할 이유도 틈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시르는 분위기를 타면 야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첫날에도 그랬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농담 정도는 허용범위다.
문제는 이 대화를 자는 척하면 듣고 있는 라냐다.
…빨개진 귀가 술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겠군. 음. 이거 내일 아침에 어떤 얼굴로 우리를 마주할지 기대되는데?
그런 짓궂은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을 가지고 나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예 집을 나가서 근처의 논두렁이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미 상당히 늦은 시간이라 마을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나마 야영지의 병사들이 피워놓은 모닥불과 밤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이고 있는 별들과 달이 지금 세상의 빛의 전부였다.
”죽이는 달이군.“
정석적인 중2병의 대사를 내뱉고 논두렁이를 걸었다. 별 의미는 없었다. 그저, 이 마을의 풍경이 내 고향의 풍경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좀 더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고향이라.
생각할수록 내가 이런 겪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어떻게 내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었던 거야? 정말로 신적인 존재들이 나를 소환하기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가진 번역 치트가 설명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은 나를 소환한 걸까? 그것도 타라스트에서 조금 떨어진 소환에 떨군 거지?
…빌어먹을.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답이 없는 문제는 뒤로 밀어두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술이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았나 보군. 이런 답 없는 감상적인 고민을 하다니….
”…돌아갈까. 잠이나 자자.“
그렇게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사락
등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몸을 멈춘다. 호흡을 멈춘다. 온몸의 근육이 한순간에 수축하고 팽창했다. 동시에 폭발적인 속도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팔꿈치를 휘둘렀다.
손괘?? 절풍?風
내가 인식하지도 못한 새에 내 뒤를 잡은 존재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하는 타격음과 함께 저릿한 통증이 팔꿈치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 통증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절풍은 틀림없이 상대의 관자놀이에 꽂혔다. 하지만 공격을 맞은 상대의 머리가 박살나긴커녕, 목조차 1mm로 옆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마차, 거대하고 부술 수 없는 벽을 친 것처럼.
그것은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새하얀 존재였다.
내 팔꿈치가 관자놀이에 꽂힌 상태 그대로 그 존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듣던 것보다 성격이 급하네. 아니, 이 경우엔 함부로 등 뒤로 다가온 내 잘못일까?]
그것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것은 신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