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59화 (59/93)

〈 59화 〉 59화 마탑의 마법사들

* * *

마법.

이 얼마나 감미로운 울림인가.

나는 어렸을 때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마법도 쓰고 검도 잘 쓰고 주먹도 잘 쓰는 킹왕짱 먼치킨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굉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믿지 못할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에서 나온 이 세상을 다 준다는 매혹적인…이 아니고!

그 이야기들에서 나온 신비한 힘들을 나는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마법이나 무공처럼 신비한 힘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고 만들어 보려고 해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평범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신체 능력과 인지능력, 기술을 완성하는 거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니까.

그러니 지금. 마법이 실존하는 판타지 세계에 본의 아니게 소환된 현실에 내가 마법을 추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처음에는 이 세계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너무 많고, 사건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그럴 여유도 없었지만, 시간이 생긴 뒤에는 자연스럽게 마법에 매달리게 되었다.

거기다가 젊은 나이에 마법을 6위계에 도달한 시르가 내 연인이지 않은가! 이건, 안 배우곤 못 배기지!

일전에 약속한 것도 있어서 나는 시르의 창술을 봐주고 시르는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 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그러니까, 그 난장판이 끝난 바로 다음 날부터 마법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단 3일 만에 우리는 아주 처참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마법의 둔재이고 시르는 그런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기엔 가르치는 능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을!

내가… 내가 둔재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내가 마법 둔재라니! 어흐흑! 의사 양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요! 내가… 내가 마법에 재능이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아아아!!!!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재능이 없는 것도 시르가 가르치는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와 연인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나로서도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현실은 현실. 인정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법이다.

그래. 나는 재능이 없어!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시르도 마법을 가르치는 재능이 없어! 교육자로서는 수준 이하야!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천재는 가르치는 능력은 형편없다고. 지구에선 스포츠 계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자기는 쉽게, 본능적으로 할 수 있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그 원리를 가르쳐 주고 습득시키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시르는 딱 그런 타입이었다.

이것은 시르의 마법유파????가 이론보다 감각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한 탓도 컸다.

마법을 배우고 사용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감각들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입문하는 것조차 어려운 유파로, 시르는 그런 유파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천재였다고 한다.

본인은 매우 겸손하게 별거 아닌 것처럼 얘기했지만, 그런 유파에서 3년 전, 고작 22살에 6위계에 도달한 것부터가 천재라는 증명이다.

그런 감각적인 천재이니, 이론 분야가 뒤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시르가 알려준 이론들은 내가 책을 보고 배우고, 그걸 토대로 추론한 내용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즉,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마법적인 감각을 다루는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천재 스포츠 선수는 재능이 없는 선수들이 왜 그걸 못하는지 이해를 못 하고 가르치는 것도 못 한다고 했는데, 시르도 마찬가지였다.

시르는 마력을 느낄 수는 있는데, 정작 영혼으로 마력을 가공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영혼으로 어떻게 마력을 만들라는 거야?

하니까 되는데요? 수준의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르가 시범을 보여줘도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막막함을 느낀 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설마 이 나이에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대신 MIT에 들어간 1년 차에도 이 정도로 막막하진 않았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노력해도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는 감각은 정말… 정말 힘겨운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겪어본 좌절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좌절감이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다. 극복도 힘들고.

참고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칠 때 절대로 저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몸을 쓰는 일이든 학식이든 간에, 나는 이론이 먼저고 실천은 그 뒤다. 그리고 배우는 사람의 수준에 맞춘 최적의 교육으로 가르치는 분야에서도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시르는 도저히 마력을 가공해내지 못하고 끙끙대는 나를 보고 걱정스럽고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슴이 아팠다.

“시그 님은 제가 이제까지 봐온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영혼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래서 막강한 항마력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 정도의 상위 마법사의 마법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항마력을 저는 이제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영혼이 강하면 항마력이 강하다는 얘기는 지난번에도 들었지. 그럼 마력을 가공하는 것은? 오히려 영혼이 강해서 힘든 걸까?”

“………마력은 이 세상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진원?을 영혼으로 가공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마력을 만들어내고,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한 영혼일수록 강한 마력을 만들고 더 많은 마력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그 님도 잘 알고 계시는 사실이지요.”

“…그래. 책에서 보고 시르도 그렇게 설명해줬지. ……그런데 그렇게 강력한 영혼을 가진 내가 왜 진원을 마력으로 가공하지 못하는 걸까? 느낄 수는 있는데, 만들 수가 없어. 이렇게 갑갑한 기분은… 정말 처음이야. 너무 낯선데.”

“그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시그 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시르가 너무 우울해했기 때문에 그것을 달래주느라 침대 시트를 몇 개나 갈아야 했다. …거기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울분이 포함되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당연히 시르를 탓하는 건 아니다. 이건 내가 부족한 탓이다. …하아.

…어쨌든 시르는 강한 영혼을 가진 내가 왜 마법을 쓰지 못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감각적인 마법사인 시르로서는 나를 가르치는데 시작부터 막힌 셈이다.

글자를 가르치려고 해도, 펜을 쥐고 작대기를 그리는 것조차 못하니 가르치기도 막막하겠지. 나도 돌아버릴 지경이다. 하지만 시르가 나를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에 우울해하게 둘 수도 없었다.

내 연인이 내가 원인으로 슬퍼하다니! 그걸 참을 수 있겠냐! 그럴 바엔 차라리 마법을 포기하고 말지!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에 끝까지 매달리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인지라, 나는 시르와 길고 긴 협의 끝에 마탑의 마법사를 초빙해서 마법을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감각파인 시르와는 달리 이론파인 마법사라면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도 있으니까.

………사실, 나는 짐작하고 있는 이유가 하나 있지만. 그걸 인정하면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기에 추하게 매달리는 것이다……. 한심하네. 정말.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그래서 마탑과 거래할 때 이론에 빠삭한 마법사도 요청했다. 단기간에 안 될지도 모르니, 꽤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도록 모험가 활동이 가능한 사람을 요청했다. 그리고 노엘은 자신의 수제자인 라냐를 데리고 왔다.

일단, 재능은 합격이었다. 노엘이 자랑하고 시르가 감탄할 정도라면 확실하다. 느껴지는 분위기와 성격을 봐도 이론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린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세계는 16세부터 법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활동에 제한이 없다. 거기다가 나는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마법사를 원했다. 그러니 나이가 많은 마법사는 오히려 불편하다. 실제로 조건 중 하나가 나이가 최소한 20대 이하일 것이었다.

모험가 조건을 붙인 건 단기간에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것도 있지만, 같이 다니면서 마법을 쓰는 것을 보다 보면 감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르가 있지만, 감각적으로 마법을 쓰는 방식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여러 방식의 마법을 접하는 거로 감을 잡아보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스승을 입 다물게 만들고 자기소개에 들어간 라냐를 우리를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긋이. 품평하듯이. 얼마나 말솜씨가 뛰어난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으윽.”

그런 시선에 부담이라도 느낀 걸까? 스승의 옆구리와 뺨을 마구 찌르고 꼬집어서 기어코 침묵시킨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라냐는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슬슬 나와 시르의 눈치를 보는 것이 자기소개를 요청받은 아싸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 회사 면접자 중에도 저런 타입이 제법 있었지. 객관적인 스펙은 나쁘지 않은데 면접에서 조지는 사람들. 나는 그런 모습을 그리 나쁘게 보진 않았지만, 플러스가 되는 요소로 여기지도 않았다. 실제로 이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런 태도를 씹어먹을 정도로 스펙이 좋으면 좋아했지만.

과연, 라냐는 태도를 뒤집을 정도로 좋은 스펙을 가졌을까? 제자에게 꼬집혀서 빨개진 볼로도 싱글벙글 웃고 있는 노엘을 보면 조금 믿음이 가진 않았지만….

그때 각오를 다진 듯한 라냐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흠! 흠! 아, 안녕하세요.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저는 타라스트 마탑의 마법사인 라냐입니다. 유파는 원소집속학파입니다. 위계는 4위. 나이는 17살입니다. 그, 부족한 몸이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앞으로 잘 부탁해. 라냐.”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냐 양.”

“그, 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상냥한 반응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았는지 라냐의 표정과 목소리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래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 우리는 착한 사람들이라고. 잡아먹지 않아.

“좋아. 그러면 실력 확인도 할겸 길드로 가볼까?”

“네, 네?”

“그게 좋겠습니다. 옥석 등급의 의뢰 중에 적당한 게 있으면 좋겠군요.”

“그, 저기…?”

“아. 좋은 생각이시네요! 역시 시그 님이세요! 자아. 라냐. 오늘부로 너는 두분의 모험가 동료야! 언제 계약이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까지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렴!”

“스, 스승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랐는지 라냐는 반쯤 울상이 되었다. 어허. 왜 이렇게 겁을 먹으실까? 길드에 가서 모험가 등록 좀 하고 옥석 등급의 의뢰 중 적당한 몬스터 좀 때려잡으러 가면서 실력 좀 보겠다는 건데. 그렇게 무서운 일도 아니잖아?

“걱정하지 마. 너를 미끼로 쓰거나 방패로 쓰는 일은 없을 테니까. 우린 그런 막되먹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네.”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사색이 되더니 얌전해졌다.

…아니, 농담이라고. 이게 농담으로 안 들렸어? 긴장을 풀어주려는 농담이잖아! 그런 억울함을 담아 시르와 노엘을 보자 두 사람은 제각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시그 님.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하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과거의 모험가들이 그런 잘못을 자주 저질렀기 때문에 그런 말이 모험가의 입에서 나오면 단순한 농담으로 넘어가기 힘들어집니다.”

“…죄송합니다.”

…옛날에 진짜로 저런 일을 저질렀다고? 그런 역사가 있는데 지금은 오히려 도시의 해결사 같은 이미지를 만들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가볍게 한 농담이 무겁게 변한 건 용서할 수가 없다! 시르가… 그 시르가 나를 애석한 눈으로 보게 만들다니!!!

“우와앗. 시그 님은 어떻게 그런 발상을 바로 떠올리세요? 무서운 분이시네요오오.”

“…죄송합니다!”

이 여자에게까지 이런 놀림을 당하다니! 굴욕이다! 이대로 접싯물에 코를 박고 죽고 싶어!

“…쿠, 쿠후후.”

그때 작은 웃음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슬쩍 시선을 향하니, 라냐가 입가를 가리고 웃고 있었다.

뭐야. 웃으니까 더 귀엽네. 이런 쿨계열 미소녀는 갭이 드러날 때가 가장 예쁜 법이다. 그래도 그걸 입 밖으로 낼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다. 시르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지금은 광대를 충실하게 연기하자. …이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자자. 이제 그만 떠들고 길드로 갑시다. 이러는 순간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뢰가 줄어들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아앗. 말 돌리는 솜씨가 너무 조잡하시네요! 시그 님이 그런 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아!”

“손목을 분질러 버릴까 보다! 아니, 분질러 주마!”

“히이이익!!! 끼에에에엑!!!”

“후후. 알겠습니다. 시그 님. 자. 라냐 양도 일어나시지요. 보시다시피 시그 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십니다.”

“……저기, 스승님이 손목을 붙잡고 울부짖고 계시는 데요.”

“저건 가벼운 장난입니다. 보세요. 웃고 계시지 않습니까? 진심이라면 이미 분지르고도 남았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아주 잘 알겠습니다. 죽은 듯이 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그 님. 저도 실패해버렸습니다.”

“괜찮아! 시르! 나도 실패했으니까! 대신 몸보다 방정맞은 입을 가진 이 여자의 손목을 대신 대가로 지불하겠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 이론을…! 거기다가 은근슬쩍 성희롱까지 하셨죠! 고소할 거야! 고소할 거예요!”

“그 전에 양손목을 분질러 주마.”

“헤, 헤헤헤. 제가 말이 헛나와 봅니다. 이놈의 방정맞은 입에 벌을 주시지요. 헤헤헤.”

“…라냐 양의 스승님은 참으로 개성적인 분이시군요.”

“……자살할까.”

이런 저런 소란 끝에 다른 손님들에게 폐가 된다며 웃는 얼굴로 축객령을 내린 주인아주머니가 최종 승리자가 되고 우리는 숙소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길드로 향하던 도중에 노엘은 마탑으로 재빠르게 내뺐다. …나중에 만나면 최소한 볼 정도는 꼬집어 봐야겠어. 나잇값 못하는 주책맞은 아줌마 같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소동 덕분에 라냐가 우리와 친해질 수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설마, 노린 건 아니겠지. 자신의 위엄을 손상하는 대가로 제자의 앞날에 보탬이 되어 주는… 그런 기특한 여자일 리가 없다. 틀림없다.

그래도 분위기가 나아진 건 틀림없어서 길드에 도착한 뒤에도 우리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네가 시르를 빼앗아 갔다는 시그라는 놈이냐!”

길드 안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을 지르는 금발태닝양아치만 없었다면 말이다.

이 새끼는 또 뭐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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