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45화 (45/93)

〈 45화 〉 45화 구출 작전

* * *

5시간의 숙면은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모두 날리고 체력을 전부 회복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완전 회복. 시그 완전 부활. 시그 부활!

……시르가 오른팔을 치료해주지 않았다면 고작 이 정도로 회복되지 않았겠지만 말이야. 아무리 나라도 뼈가 부러진 것을 몇 시간 자는 거로 회복시킬 수는 없다. 마법의 힘은 정말 굉장하네. 아니, 이 경우엔 성법인가?

가장 굉장한 건 시르지만.

몸 상태 점검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방이나 문밖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해가 완전히 지고 별빛이 내리는 한밤중인데도 길드 안은 분주했다. 사람의 소음이 사라지지 않고 활발하고 움직이고 있다. 그 소음 중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벗어둔 외투를 입고 문을 열자 이쪽을 보고 깜짝 놀라운 접수원의 모습이 보였다.

“시그 님?”

“네에. 시그입니다.”

장난스럽게 대답하면서 윙크를 하자 접수원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정말 딱 5시간만 주무셨네요. 몸은 괜찮으세요?”

“완전 말짱. 풀 컨디션.”

“괜찮으시다니 다행이군요.”

접수원은 진심이 담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 많이 해줬나 보네. 고마우셔라. 뭐, 지금 중요한 건 이제까지의 일과 앞으로의 일이지. 즉, 좃빠지게 바빠질 거란 소리다.

“별 일 없었죠?”

“네. 특별한 문제는 없었어요. ……마스터에게 아직 연락이 오지 않은 것만 빼면요.”

역시, 아직 안 왔나.

구출 작전이 무사히 성공해서 연락이 오는 게 베스트였겠지만,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지 않지. 애초에 계획도 연락이 오지 않을 걸 가정해서 짰으니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다.

연락이 오지 않는 이유가 구출자와 인질이 전부 죽은 경우만 아니라면 말이지.

“그런가요.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죠. 시르는?”

“시르 님이라면 객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정말 엄청나게 고생하셨으니까, 반드시 칭찬해주세요.”

접수원은 그리 말하며 눈을 찡긋했다. 어허. 어딜 연인이 있는 남자에게 윙크를 날리시나.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마찬가지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 객실은 어디인데요?”

“여기 맞은편 벽의 두 번째 방이요.”

“근처구만.”

“되도록 시그 님과 가까운 곳에서 쉬고 싶다고 하셔서.”

“하. 이 사랑스러운 애인을 어찌하면 좋을꼬.”

“……애인자랑은 나중에 해주시죠. 솔직히 눈꼴시려워요.”

진심으로 질린다는 표정을 보니, 나도 조금이지만 부끄러워졌다. 시르가 옆에 있다면 모를까, 없는 장소에서도 이러는 건 역시 조금 그렇다. 뭐가 그런지 나도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좀 그래. 그래서 빠르게 화재전환을 시도했다.

“샤리스 님과 데르카 님은요?”

“…두 분은 지금 시청에 가 계세요. 이것저것 보고할 것도 논의할 것도 많으니까요. …특히 길드 마스터의 상황은 숨길 수 없는 문제이라…. 아. 그리고 시청에서 시그 님의 출석을 요청했었어요. 두 분이 단호하게 거절하셨지만요.”

“예상대로네요. 그런 난리가 있었으니 사건 해결의 중심에 있던 나를 어떻게든 만나고 싶었겠죠. 그래도 길드까지 찾아온 사람은 없나 보군요?”

“네. 그들도 그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죠.”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 안에 도사리는 감정은 곱지 않다. 대충 모험가 길드와 여기 시청의 관계가 어떤지 알겠군. 뭐, 그야 이런 사설 무장 단체와 권력자들의 관계가 원만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래도 모험가 같은 게 인정되는 걸 보면 유리가 몇 번이나 언급한 상부가 어지간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국가에 이런 억지를 강요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시의 피해 상황은 어떤가요? 자세한 정보는 없더라도 대략적인 것만이라도 듣고 싶은데.”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만 100명이 넘어요.”

접수원의 미소가 사라지고 거기에 음울한 음영이 드리웠다.

……100명이라. 생각보다 피해가 적다고 해야 할지, 많다고 해야 할지. 사망자가 100명 이상이라면 사상자는 최소 다섯 배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확실히… 테러의 규모를 생각하면 적은 피해다. 그 공의 90%는 내 덕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100명이라는 숫자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하물며 이렇게 평화로운 도시에서 느닷없이 일어난 테러의 피해라면 도시민 전체가 공포에 질려도 이상하지 않다. 당연히 치안도 나빠지고 범죄자들이 준동할 가능성도 있다.

……뭐, 이건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포감을 날려버리고 도시의 치안을 안정시키는 건 위정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그렇군요. …음.”

“…시그 님이 아니었다면 피해가 더 커졌겠죠.”

“그 얘기는 이미 많이 들었고 앞으로도 많이 들을 테니, 여기서는 하지 맙시다. …음. 혹시 시르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지쳤나요?”

해결할 수 없는 우울한 문제는 해결 방법을 찾을 때까지 내버려 두는 편이 좋다. 괜히 거기에 매몰되면 다른 일도 하지 못하게 된다. 내 단호한 화제변경에 접수원은 조금 움찔했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안색이 많이 나빠지긴 했지만, 그건 결계와 치료를 병행하는 바람에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 거였으니까요. 쉬러 들어가시고 두 시간 정도 지났으니,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되셨을 거예요.”

“길드에 다친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나 보군요.”

“…그게 소문이 나는 바람에.”

“소문?”

접수원은 조금 망설이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소문의 요정공주가 성녀처럼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요.”

“……요, 요정공주?”

그게 누구의 별명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그러니까… 조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니, 그야 나도 속으로 몇 번이나 공주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어째서 별명이…! 이, 이게 이세게의 센스인가!

내가 당황하자 접수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모르셨군요. 시르 님의 별명이에요. 그야 그렇게 눈에 띄는 외모에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계시니 그런 별명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죠.”

“아니, 그래도 요정공주라니….”

다들 시르의 종족을 알고 있는 걸까? 시르는 자신의 귀를 최대한 숨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 입으로 종족을 얘기하고 다니진 않았다는 건데….

접수원은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르 님은 본인 입으로 종족을 얘기하신 적이 없지만… 같이 의뢰를 수행했던 모험가나 여관에서 목격정보 등으로 귀가 뾰족하다는 건 알려졌거든요. 마침 마스터도 알브이시고 해서 다들 시르 님이 알브라고 알고 계세요.”

님프인 건 모르는 건가. 하긴, 언뜻 본 귀의 모양이나 길이를 보고 님프와 알브의 차이점을 알긴 어렵겠지. 마침, 유리도 알브이니 그쪽으로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기는 하다. 엘프, 알브, 님프는 같은 요정족으로 친척 관계인 종족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별명이…. 하. 어울린다면 어울리지만…. 음. 역시 좀….”

“후후후. 그래도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퍼지고 있는 별명에 비하면 요정공주는 양호한 편이죠.”

“……무슨 별명인지 두렵지만 들을 수밖에 없군요.”

“요정성녀.”

“…어휴.”

듣지 말 걸 그랬다. 즐겁게 말하는 접수원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런 별명이 퍼지기 시작했는지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접수원은 먹이를 발견한 사람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세요? 시그 님에게도 멋진 별명들이 생기고 있답니다?”

“몰라. 안 들려. 안 들을 거야. 아. 저 지금부터 시르 데리고 길드 마스터 구출하러 갈 거니까, 뒷일은 부탁합니다.”

귀를 막고 온몸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곧바로 시르가 쉬고 있는 객실로 향했다. 뒤에서 입을 가리고 있는 접수원을 한 대 때려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는 시르가 보였다.

무릎 위에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시르는 조금 전에 들은 별명에 설득력을 부여할 정도로 성스럽고 아름다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시르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 어깨를 살짝 잡고 이름을 불렀다.

“시르.”

“…에, 아, 앗! 시, 시그 님?!”

화들짝 놀라면서 잠에서 깬 시르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음. 너무 잘 자서 날아갈 것 같아. 그리고 미안. 시르도 많이 피곤할 텐데.”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시그 님처럼 큰 부상을 입었던 것도 아니고, 떨어졌던 마력과 체력은 이제 전부 회복되었습니다.”

시르는 의연하게 말하고 벽에 기대 놨던 창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길드 마스터님을 구출하러 가시는 겁니까?”

“그래. …힘들겠지만, 같이 가줄 수 있어?”

대답은 알고 있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시르는 내 영혼을 녹여버릴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 저는 언제까지고 시그 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부탁할게. 같이 유리 베르실을 구해오자. 아. 되도록 그 테르시아 영애라는 사람도.”

“네!”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우리는 객실을 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접수원이 손에 들고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쿠르시카 도적단에 대해서 길드가 파악한 내용과 놈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산맥의 지도입니다.”

“언제 주나 했네.”

“…달라고 하신 적 없잖아요.”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거라 말하지 않았을 뿐이죠.”

얼굴을 잠깐 구겼던 접수원은 내 능글거리는 말에 피식 웃었다. 나는 그 서류와 지도를 받고 빠르게 넘기면서 머릿속에 기억시켰다. 그렇게 10초 만에 전부 숙지하고 곧바로 시르에게 넘겼다.

“나는 다 외웠으니까, 시르는 가는 도중에 봐도 돼. 알아둬야 할 것들이 제법 있네.”

“…알겠습니다.”

시르는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금세 납득하고 서류를 받았지만 접수원은 해괴한 표정을 지으면서 날 보고 있었다.

“…농담이죠?”

“이런 걸로 농담할 사람으로 보여요?”

“아니, 그렇게 대충 넘기고서….”

“기억력이 워낙 좋아서.”

“………하아.”

내 태연한 대답에 접수원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 같았지만, 종국에는 한숨에 그 모든 것들을 흘려보냈다.

“……지금 바로 가실 건가요?”

“우리 고향엔 시간은 금이라는 속담이 있죠.”

“아. 들어본 적 있어요.”

“…그 말대로입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죠.”

…여기에도 있는 속담이었구나. 일부러 번역기능 쓰지 않고 말한 건데.

접수원이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혹시나 해서 한 가지 물어봤다.

“아. 그런데 혹시 길드에 보관 중인 검이 있나요?”

“……검이요?”

“……검 말입니까?”

열심히 서류를 읽고 있던 시르까지 의문을 표했다.

나는 두 사람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뒤.

한 자루의 롱소드를 허리에 찬 나와 창을 등에 멘 시르는 별과 달이 뜬 밤거리를 지나 남쪽 성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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