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3화 구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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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모험가는 없었다. 복도 끝에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접수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금 늦게 올라온 우리를 보고 여전히 영업용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만난 뒤로 나날이 표정 연기가 능숙해지는데? 처음에는 저 정도가 아니었는데…. 그래도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걸 보니, 여유 있어 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내심은 매우 떨리고 있을 것이다.
그야, 하마터면 길드가 불탈 뻔한 데다가 도시 곳곳에서 폭발 테러가 일어나고 재앙과 늑대인간들이 쳐들어왔으니 불안감이 드는 건 당연하다. 여유 있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정신력이 있는 쪽이 대단한 거지. 그리고 아마도 길드 마스터의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소식도 그녀를 겁먹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겠지.
“가자. 시르.”
“네. 시그 님.”
그리 좋은 얘기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우리 둘 다 생각하지 않았다. 시르는 긴장된 얼굴로, 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길드 마스터의 방으로 이동했다.
접수원은 가까이 다가온 우리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거듭된 전투로 힘드실 텐데, 쉴 틈도 주지 않고 이렇게 불러들여서 죄송합니다.”
“얼마나 큰 부탁을 하려고 그런 말을 하신데. 평소처럼 합시다. 평소처럼.”
“…역시 시그 님이시네요. 좀 더 거들먹거려도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런 저열한 만족감을 얻는 취미는 없어요. 잔말 말고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얼마나 대단한 얘기를 가지고 왔는지 몰라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보죠.”
“………후후. 역시 그릇이 다르시네요.”
접수원은 어떤 감정인지 명확하지 않은 웃음을 보이곤 문을 열었다. 나는 시르가 접수원을 노려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녀는 잔뜩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음. 내가 너무 신경 쓰는 걸까?
……어쩌면 나는 시르가 질투해주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 음습함이라니…! ……쩝. 아무래도 나도 조금 피곤한가 보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생각을 정리하고 시선을 돌려서 방 안쪽을 봤다.
길드 마스터의 방에는 유리 베르실 대신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손님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장년의 남성과 묘령의 여성.
남성은 몸에 꽉 뀌는 가죽옷에 그 위로도 도드라지는 보디빌더 같은 근육을 가진, 딱 봐도 전사인 걸 알 수 있는 분위기였다.
허리춤에는 검을 두 자루 차고 있었는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크기였다. 보기와는 다르게 파워 타입이 아니라 기교 타입인 걸까?
여성은 검은색 정장에 흰색 블라우스라는 전형적이면서도 선정적인 복장으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야한 선생님 같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분홍색 장발에 눈물점, 약간 처진 눈이 더욱 그런 분위기를 도드라지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주장하려는 듯한 수정구가 박힌 지팡이를 소파 옆에 세워두고 있었다.
전형적이면 전형적이고 개성적이면 개성적이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두 사람이 상당한 강자라는 것이다. 남성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에게서도 강자 특유의 느낌이 전해졌다.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역시 본인들 입으로 듣는 게 제일이지.
우리가 안으로 들어오자 접수원이 입을 열었다.
“옥석 모험가 시그 님과 시르 님을 모셔왔습니다. 데르카 님. 샤리스 님.”
“바쁜 와중에 수고했다. 히리에.”
“고마워. 히리에. 미안하지만 좀 더 고생해 줄래? 아무래도 서기가 한 명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소개만 하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것 같은 접수원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연히 나와 시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데르카라 불린 남성과 샤리스라 불린 여성은 소파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을 본 시르가 숨을 삼켰다.
그리고 침묵.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우리를 보고 접수원의 미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듯이 외치는 그녀의 표정을 보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지금은 쓸데없는 기싸움을 걸어오는 이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게 먼저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봤고, 시르도 입을 꾹 다물었다. 두 사람도 계속 입을 열지 않고 나를 봤다.
결국, 먼저 포기하고 입을 연 것은 그들이었다. 원래 이런 건 아쉬운 쪽이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듣던 것보다 훨씬 기가 쎈 후배님이군.”
“하아. 그러니까, 나는 이런 쓸데없는 기싸움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잖아. 괜히 시간만 낭비했지?”
“……필요한 일이다.”
“필요는 무슨.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대단한 후배님에게 인사하고 협조를 구하는 거지. 첫 만남부터 이미지를 조지면 어쩌자는 거야? 진짜. 어휴.”
샤리스는 대놓고 데르카를 탓하며 혀를 찼다. 데르카는 불평이 가득한 얼굴로 대꾸했다.
“………너도 동의하지 않았나.”
“그래. 네가 간만에 의견을 내서 굽혀줬지. 그러지 말 걸 그랬어. 애초에 도시를 구한 영웅에게 이게 무슨 대접이야?”
“………….”
데르카는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바위 같은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떠올랐다. …설마, 울려는 건가?
…아니, 그런데 이게 뭐하는 짓이야.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부르더니 다짜고짜 기싸움을 벌이고, 안 될 것 같으니까 외견상 딸뻘인 여자에게 잔소리나 듣고. 덩치와는 다르게 소인배네.
반면에 야한 여선생 같던 샤리스는 대범한 미소를 짓더니 내게 다가와 오른손을 척 내밀었다.
“인사가 늦어서 미안해. 후배님. 반가워. 나는 샤리스. 순금 모험가야. 당신과는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어.”
순은은 아니라고 예상했다. 리에나와 비교하면 차이가 꽤 컸으니까. 상위 모험가라.
나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잠깐 보다가 씨익 웃으면서 손을 맞잡았다. 다행히 이번에도 시르는 질투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조금 움찔하기는 했지만…. 세이프!
“반갑습니다. 옥석 모험가 시그입니다. 순금 모험가라. 대단하시네요.”
“대단하기는 뭘. 오히려 모험가가 되고 하루 만에 옥석이 되고 순은까지는 초고속 승급이 확정된 시그 후배가 훨씬 대단하지.”
샤리스는 사람 좋게 웃고는 손을 가볍게 흔들고 놔주었다. 생긴 것과는 달리 호탕한 성격이군. 야한 여교사라고 속으로 생각한 게 조금 미안해졌다. 아니, 그래도 복장이 말이야! 내 안의 유교 드래곤이 꿈틀힌다고!
손을 놓은 샤리스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가, 다시 밝게 웃으며 말했다. 표정 변화가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이제는 도시를 구한 영웅이잖아? …같은 모험가로서도, 이 도시의 주민으로서도 나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 정말 고마워.”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일종의 경례 같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을 보고 그 이상의 표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이곳의 문화를 몰라서 얼마나 대단한 인사인지 모른다고. 그래도 마음은 전해졌으니, 조금 전의 기싸움은 잊어주기로 했다. 그걸 벌인 주범도 여전히 의기소침해하고 있으니 말이지.
“별 말씀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죠.”
“…후후후. 정말 대단하네. 보통 그런 말엔 겸양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당신에게는 그런 게 없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당연히 진심이다. 해야 할 일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당연하죠. 뭐, 이 얘기는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저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만.”
“아. 물론이지. 자자. 이쪽에 와서 앉아. ……야.”
내게는 살갑게 대하던 샤리스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서 의기소침해하고 있는 데르카를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더니, 이내 그가 앉아 있는 소파를 걷어찼다.
와우. 화끈한 누님이네. 시르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런데 시르는 저 두 사람과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샤리스는 시르에게는 따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시르도 그걸 불만으로 여기지 않았고. 뭔가 있는 건가.
“뭐하냐. 빨리 인사 안 하고!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얼렁 일어나서 인사 안 해? 사과도!”
“……알았다. 보채지 마라.”
그녀의 재촉에 데르카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비유처럼 마치 산이 일어서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래간만에 사람을 올려다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세계에 와서는 처음이다.
데르카의 키는 224cm나 되었다. 예상한 것과 비슷한 크기다. 나보다 머리 하나 반은 크다. 어깨도 훨씬 넓다. 그러다 보니 허리에 찬 두 자루의 소검이 더더욱 눈에 띄었다. 저 덩치라면 길이 60cm의 검은 단검이나 다름없다.
그는 음울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음. 지구와 비슷한 방식의 인사로군.
“반갑다. 나는 순금 모험가 데르카. 조금 전의 무례를 사과하겠다. 그리고… 도시를 구해줘서 고맙다. 후배님.”
“반갑습니다. 옥석 모험가 시그입니다. 그리고 사과도 감사 인사도 됐어요. 샤리스 님에게 이미 받았으니까.”
나는 꾸밈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뭔가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데르카는 눈에 어떤 빛이 들어왔다.
“…그대는 마음이 넓군. 후우. 나는 어쩌자고 이런 자를 시험하려고 했단 말인가.”
“그거야 네가 미련곰탱이라서 그렇지. 어휴. 진짜. 시청 애들에게 이상한 거나 배우고. 그냥 옛날처럼 단순무식하게 굴면 안 돼?”
샤리스는 그리 말하면서 데르카의 등을 찰싹 소리가 나게끔 쳤다. 당연히 아프진 않았겠지만, 데르카는 다시 의기소침해졌다.
“…그런가. 내가 배운 건 쓸데없는 거였나.”
“애초에 네가 정치질 같은 걸 할 수 있겠냐고. 이번에 제대로 알았지? 앞으론 걔네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마. 그것들한테 네가 배울 건 하나도 없다고.”
“……알았다. 다시 사과하겠다. 미안하다. 후배님.”
데르카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고선 시무룩한 채로 소파 구석에 가서 앉았다. 쿵. 소파가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은 소리였다. ……아니, 외모 가지고 사람 차별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진짜 소심한 사람이네.
그래도 왜 저 사람이 조금 전에 기싸움을 걸어왔는지, 샤리스가 그걸 어째서 허락해줬는지 알 것 같았다. 이상한 정치질 같은 걸 배웠구만. 그걸 걱정한 샤리스는 나를 이용해서 그 버릇을 고쳐주려고 한 건가.
뭐, 기싸움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스스로 포기한 걸 보면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리고 샤리스가 날 이용한 건… 흠. 악의도 없고 기분 나쁘지도 않으니 세이프. 어느 정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음흉함은 세이프다.
“조금 특이한 선배님이시네요.”
“그래도 소심한 선배라고 하지 않다니, 배려심이 있구나?”
“이 정도는 기본이라.”
“푸흣. 그거 결국 소심하다고 말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그걸 아시는 분이 눈치 없게 말하는 건 어떠려나요~.”
“아, 아. 그러게. 내가 눈치가 없었네!”
샤리스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데르카의 옆에 앉았다. 나하고 시르는 반대편 소파에 나란히 앉으라는 거지? 배려심 있구만.
나는 더욱 의기소침해진 데르카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계속 멍하니 있던 시르는 내 손길에 정신을 차리고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내 오른쪽에 앉았다. 그런데 데르카도 시르에게 따로 인사를 하진 않는군.
“자아. 그럼 지금부턴 진지한 얘기야. 히리에. 기록 부탁해.”
“…알겠습니다.”
결국, 도망치지 못한 히리에는 필기구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우리들 옆에 앉았다. 왜 이리 죽상이야? 얼굴 피라고. 이런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는 건 출셋길이 열렸다는 거잖아?
“데르카. 너도 궁상 그만 부리고 제대로 자세 잡아. 대단한 후배님 앞에서 계속 추태 부릴레?”
“……알았다. 대신, 나는 계속 입 다물고 있겠다.”
“그래. 그래라. 그편이 더 도움이 될 테고.”
“………….”
“아 쫌! 그만 좀 삐져! 이런 놈이 한때는 우리 도시 최대 전력이었다니! 어휴! 소심이!”
“……………우.”
“한 대 때리고 싶네! 진짜!”
그렇게 말하면서 손바닥으로 등을 철썩철썩 때린다. …아니, 때리면서 그런 말을 하면 어쩌자는 겨. 그리고 이 두 사람을 보는 게 재미있기는 한데, 이래서야 진도가 안 나간다. 강제로라도 본론으로 돌아가야겠다.
“네에. 그래서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흠흠! 이거 미안. 못난 꼴을 보였네.”
“………….”
내 말에 본인들의 추태를 깨달은 두 사람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샤리스는 조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얼굴로 지팡이의 수정구를 테이블 위에 걸쳤다. 그러자 그곳에서 분홍색 입자가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에 한 사람의 상반신이 모습을 만들어냈다.
유리 베르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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