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에 천재가 가면-36화 (36/93)

〈 36화 〉 36화 늑대와 춤을

* * *

사람과 짐승의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전위예술이나 다를 바 없는 흔적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늑대인간이 죽인 사람들. 내가 죽은 늑대인간.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태을천강 전투복의 강화기능을 정지시키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입에서 약간이지만 단내가 났다. 한순간이지만 전투복의 성능을 60%나 끌어올린 결과 순식간에 연소 된 지방의 냄새다.

…오버킬이군. 60%는커녕 20%만 썼어도 충분했다. 괜히 에너지만 낭비한 셈이야. 그만큼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는 증거이다.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정할 필요는 없다지만, 이런 일에 하나하나 이렇게 반응하다간 비명횡사할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니,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시그 님!”

“괜찮아. 시르. 끝났어.”

“………….”

내 담담한 대답과 주변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했는지 시르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나를 봤다. 그 얼굴에 떠올라 있는 감정을 읽은 나는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상자는 어때?”

“…상처는 전부 치료했습니다. 다만 흘린 피가 많아서 기절했습니다. 지금은 보호막으로 보호 중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시르는 이내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없이 내 몸을 꽉 껴안았다. 옷에 피가 묻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말 사랑스럽고 상냥한 여성이야.

나는 더럽혀지지 않은 손으로 시르의 등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다친 곳은 아무 데도 없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뭐, 그럼 뒷정리하자. 이것저것 챙겨 가야 하는 게 많네.”

“알겠습니다. 아. 그 전에 잠시….”

내 몸에서 떨어진 시르는 양손을 깍지를 끼고 눈을 감고는 기도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바닥의 피에 그녀가 더러워지는 게 기분이 나빴지만,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말리지는 못했다.

이윽고 그녀가 여전히 번역이 안 되는 주문을 외우자 몸 전체에서 녹색광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하늘로 기둥처럼 솟아오르더니, 수십 미터 상공에서 폭발했다.

샤락 샤락 샤락 샤락

녹색 빛의 입자가 눈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 장소 말고도 상당히 넓은 범위로 쏟아지는 빛의 입자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서 여전히 기도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시르를 봤다.

몸에서 은은한 녹색 오로라를 뿜어내는 그녀는 마치 여신처럼 보였다.

그래. 여신. 나의 여신.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 입자는 쏟아지지 않게 되었고, 음침했던 숲의 분위기와 퀴퀴한 냄새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시르가 눈을 떴다. 그녀의 황금은 평소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끝났습니다.”

“정화작업이지?”

확인차 묻는 말에 시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네. 늑대인간은 혈액으로 전염되지는 않습니다만…, 어디에 그 흉악한 질병을 숨겨 놨을지 몰라 숲 전체를 정화했습니다.”

“수고했어. 덕분에 뒤처리도 말끔하게 되었네. 이걸로 피해가 이 이상 늘 일은 없겠지.”

공치사가 아니라 진심이다.

늑대인간의 전염은 혈액이 아닌, 놈들이 가진 특유의 기운으로 이루어진다. 딱 봐도 사악해 보이는 시커먼 기운이 몸 안으로 침투해서 육신을 늑대인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적은 양으로는 안 되고 상당한 양을 주입해야 한다지만, 문제는 점막으로도 전염되기 때문에 바닥이나 벽, 나무 등에 기운을 숨겨 놔도 전염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처죽인 놈이 어떤 수를 썼을지 모르니, 숲 전체를 정화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이건 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여서 시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시르는 내 칭찬에 조금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곤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시그 님이 늑대인간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주신 덕분에 이 정도로 피해로 끝날 수 있는 겁니다.”

“그런가. 그럼 우리 두 사람 덕분이네.”

내가 방금 전의 우울함을 날려 버리고 방긋 웃으면서 말하자 시르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계속 센치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지. 어서 이곳을 정리하고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늑대인간의 출몰과 퇴치는 최대한 빨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짓거리를 벌인 놈들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었고.

그 뒤 우리는 살해당한 모험가들의 짐과 유해를 수습하고 늑대인간의 팔다리와 기절한 생존자를 챙겨서 하산했다.

늑대인간이 죽었기 때문인지 늑대들의 습격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와는 반대편으로 도망가는 발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 동족과 늑대인간의 피 냄새를 맡고 도망친 거겠지.

하산하는 동안 우리는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르는 늑대인간과 전투를 벌이고 기분이 울적해 보였던 나를 배려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지만, 중상자를 치료하고 대규모 정화까지 사용한 시르의 피로를 배려해서 쓸데없는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하나를 무사히 끝냈다고 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심각하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건 경험담이었고 지금부터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산 너머의 들판에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는 검은색 그림자가 있었다.

맹렬한 기세로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거대한 생물.

대형버스에 필적하는 크기를 가진 거대한 네발짐승.

저놈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간절히 다시 보기를 바랐을 정도다. 그리고 지금 처리한 늑대인간 놈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놈이었다.

야천랑.

토론토로의 재앙.

그 괴물이 도시로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발작하듯이 외쳤다.

“시르! 주변을 경계하면서 천천히 와! 절대로! 절대로 달리면 안 돼!”

“시그 님?! 갑자기 무슨……!”

시르의 뒷말이 이어지기 전에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태을천강 전투복의 기능을 다시 활성화해서 미친 듯이 달렸다. 시르가 순식간에 멀어진다. 주변 풍경이 빠르게 뒤로 날아간다.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저 멀리서 도시의 북문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그림자를 노려본다.

놈의 속도는 250km/h를 넘고 있었다. 고속열차에 맞먹는 속도! 생물이 낸다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였지만, 엄연히 눈앞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늦는다.

이대로는 놈이 북문에 도달하기 전에 앞을 막아설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상 출력을 높여도 달리기 속도가 극적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최대출력이어도 지금 속도와 큰 차이는 없다. 두 발로 달리는 동물이 가지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다. 그것도 나는 초인적인 힘을 이용해 바닥을 힘차게 연속으로 차는 식의 주법을 쓰는 데도 한계가 명확했다.

지금 내 속도는 치타조차 뛰어넘었지만, 아예 생물인지조차 의문인 저놈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북문의 성문이 내려가는 게 보였다. 위병들이 도시를 향해 달려오는 놈을 발견하고 급히 성문을 내리는 중이었다. 늑대들의 습격으로 북쪽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경계하고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성문이 내려가는 속도를 보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놈이 성문에 도달하는 시간과 성문이 완전히 닫히는 시간이 차이가 거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성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놈이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다급한 마음에 좀 더 속도를 높였지만, 그런다고 놈과 나의 거리가 좁혀지지는 않았다. 그나마 놈이 우리보다 도시에서 더 멀리 있었을 때 발견하고 달려와서 이 정도다.

펑!

그때 성벽 위에서 포성이 터지더니 거대한 불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놈에게 날아들었다. 화살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지만, 마찬가지로 화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는 놈을 맞추기엔 너무 느렸다. 놈은 아예 공격을 피하지도 않았고 불덩어리는 훨씬 뒤쪽에 떨어져서 폭발했다.

쾅!

폭음과 함께 땅이 치솟았다. 겉보기만 보면 60mm 박격포에 맞먹는 위력! 마법인가! 하지만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데!

펑! 펑! 펑! 펑! 펑! 펑! 펑!

그때 포성이 연달아 터지면서 일곱 개의 불덩어리가 놈에게 쏟아졌다. 이번에는 놈의 이동 경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쏟아진 포격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식으로 쏟아진 포격에 놈도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지근거리에 떨어진 포격은 하나도 없었지만, 놈의 속도는 확실하게 줄었다. 그리고 그때 성문이 완전히 내려와서 닫혔다.

위잉

그리고 성문에 푸른색 막이 생기더니 그걸 중심으로 성벽 전체를 뒤덮어 갔다. 방어 마법? 성문 만이 아니라 성벽 전체에 방어 마법이라니. 마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나조차도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나는 판타지 세계의 방어능력을 너무 얕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강력한 몬스터들과 부대끼고 사는 판타지 세계이니만큼 거대한 도시라면 그에 상응하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쏟아지고 있는 포격과 저 방어 마법 같이 강력한 몬스터에게서 도시를 지킬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다.

문제는 포격이 놈의 속도를 줄일지언정 실질적인 피해를 조금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저 정도 속도라면 성문에 도착하고 나서도 놈을 따라잡지 못해!

저 방어 마법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건가!

왠지 불안한 느낌에 무리해서 속도를 높여갔다. 그리고 그때 포격을 요리조리 피한 놈이 성문 앞까지 도달했다. 성문 위에서 거의 직각으로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덩이의 크기가 이전보다 확연하게 작았다.

거리 문제인지, 아니면 성문에도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서인지 몰라도, 저놈의 방어력을 생각하면 저 정도로는 큰 피해를 주지 못해!

놈도 그것을 알았는지 포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문을 향해 그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쩌적!

멀리서도 들리는 끔찍한 소리가 들리고 푸른색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한 방도 못 버티냐아아아아아!!!!

파스스스스

속으로 절규를 지르고 있을 때, 잘려 나간 보호막이 금세 수복되기 시작했다. 오! 그래! 수복기능은 있구나! 그 정도는 해야지!

하지만 놈은 그걸 가만히 지켜볼 정도로 멍청한 녀석이 아니었다.

카아앙! 카아앙! 카아앙! 카아앙! 카아앙!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일격에 보호막은 순식간에 넝마가 되었다. 직격으로 쏟아진 포격에 얻어맞으면서도 놈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미친 듯이 발톱을 휘두르면서 괴성을 지른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느 순간 성문을 보호하고 있던 푸른색 보호막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력 공급을 감당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누적 데미지 때문에 마법에 손상이 간 건지는 몰라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성문을 향해 놈의 발톱이 휘둘러졌다.

썩뚝! 키이이잉. 쿵!

일격에 거대한 성문이 케이크처럼 손쉽게 잘려 나갔다.

조각난 성문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쓰러지자 놈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틈이 생겼다. 놈은 주저하지 않고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위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불덩어리를 뒤집어썼다.

“공격! 멈추지 말고 계속 공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괴물 놈! 죽어라아아아!!!”

“쏴! 쏴라! 쏴! 멈추지 마!”

병사들의 고함과 비명 같은 함성이 울리고 마법과 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강력한 몬스터의 등장에도 물러서지 않는 맹렬한 공격이었지만… 효과는 좋지 않았다.

[크르르르르륵!]

놈이 몸을 돌려서 자신을 공격하는 성벽 위의 사람들을 노려본다. 실시간으로 몸에 불덩어리와 빛줄기, 화살을 맞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내가 겪어본 놈의 방어력은 높기는 했지만, 저 모든 공격을 담담히 받아 낼 정도는 아니었다. 저 지능이 높은 녀석이 갑자기 무식한 돌격으로 도시를 습격한 것도 그렇고, 절대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캬아아아아악!]

그때 놈이 괴성을 지르면서 성벽 위로 날아올랐다. 그 뒤의 광경을 나는 볼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끄아아아아악!!!!”

“내 팔! 내 파아아아알!”

“으아아아아아악!!!!”

“죽어! 죽어! 이 괴물 놈…! 크악!”

“에밀! 이, 이 괴물 놈아아아아아아!!!”

비명. 고함. 통곡. 분노. 증오. 공포.

온갖 감정이 담긴 메아리가 귀에 들어온다. 감정이 생성된 증거를 내뱉듯이 성벽에서 조각난 사람들이 쏟아진다. 피가 흘렀다.

그리고 내가 도착했다.

탁! 탁! 탁!

성문으로 들어가는 대신 성벽을 밟고 위로 올라간다. 성벽의 작은 돌기를 이용해서 미끄러지듯이 중력을 거스르며 치솟는다. 순식간에 15m 높이의 성벽을 타고 올라와 학살의 현장에 당도했다.

예상대로 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 만났을 때 놈의 눈에는 이성의 빛이 반짝였다.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교활하고 악랄한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놈의 눈에서 보이는 것은 광기뿐이었다.

포격과 마법, 위병들의 저항이 소용이 없는 건 아니어서 놈의 몸 곳곳엔 상처가 가득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상처를 입고 있었다. 치명상이나 중상은 하나도 없지만, 경상도 저렇게 많이 당하면 결국 지쳐 쓰러져 죽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전에 적어도 이 북쪽 성벽 있는 위병들은 전부 죽을 거다. 집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고 있을 수많은 사람도 죽겠지. 토벌하러 온 병사들의 절반 이상은 죽겠지. 모험가들의 대다수도 죽겠지.

[캬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악!”

“끄악!”

“어머니…….”

놈이 괴성을 지르면서 발을 휘두를 때마다 두세 명의 사람이 토막 나서 죽는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은 잘려 나간 신체 부위를 붙잡고 울부짖는다.

피로 물든 성벽 위에는 비참함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분노한 인간 하나 있었다.

“이 개새끼가.”

[크르르르르륵!]

절로 튀어나온 욕설에 놈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때는 고작 한 대 맞고 만만치 않다고 생각해서 도망친 놈이 지금은 상처 입은 모습으로 살의를 드러냈다.

그리고 한순간에 내 앞에 당도해 발톱을 휘둘렀다.

그때 이미 나는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놈의 발톱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놈의 손이 공기를 가르면서 생긴 바람이 내 몸을 밀어 올린다. 그 힘을 이용해 공중에서 회전해서 그대로 돌려차기를 놈의 얼굴에 박아 넣는다.

손괘?? 돌풍?風

쾅!

[쿠웨에에엑!]

톤 단위의 무게를 자랑하는 늑대의 몸이 기세 좋게 뒤로 날아간다. 충격의 고통에 기세를 줄이지 못한 놈은 그대로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기 전에 이미 달리기 시작한 나는 놈이 성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그 옆구리에 내려 차기를 먹일 수 있었다.

쾅! 쿵!

[캬아아아아아!!!!]

강한 충격에 돌바닥에 튕겨 나간 녀석은 마구 날뛰면서 일어섰다. 놈의 발톱에 잘려 나간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중 내 쪽으로 날아온 몇 개를 손으로 튕겨 내고 적당한 크기의 하나는 붙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놈의 눈으로 집어던졌다.

퍼억!

[케아아아아아아!!]

눈알로 빨려 들어가듯이 파고들은 돌조각이놈의 눈알을 터트렸다.

눈 대신 돌조각을 받은 놈은 피를 흘리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네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그때와는 달라.”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때 처음부터 전력으로 이놈을 박살 냈더라면…. 후회가 떠올랐지만, 이내 가슴에 묻었다. 지금은 불필요한 감정이다. 이후에도 불필요한 감정일 거다. 시각은 되돌릴 수 없고, 냉정하게 이건 나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래도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자 감정이다.

머릿속으로 명령어를 입력한다.

태을천강 전투복 완전 가동

파지지지직!

벨트에서부터 시작된 막대한 전력이 전신으로 뻗어나간다.

기이이이잉!

인공 근육 역할을 하는 특수 타이츠가 몸을 조여 오고 내의에 내장된 외골격에 힘이 들어왔다. 30mm 기관포도 완벽하게 막아 내는 코트, 강철을 깨트려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장갑. 작은 비침을 통해 신체에 투입된 나노머신이 전신에 활력을 불어 넣고 심장 박동을 빠르게 했다.

이것이 내가 개발한 태을천강 전투복의 전력.

비장의 수까지 갈 필요도 없다.

네놈은 이거로도 충분해.

“이번에는 실수 안 하고 작살내주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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